전체기사 - 2013년 성서와 문화

[이 정 배 ·신학]

 


영靈적 기독교란 1901년에 태어나 33세로 세상을 떠난 시무언是無言 이용도 목사의 삶과 사상을 대표하는 핵심개념이다. 일제치하 교권화敎權化된 조선 기독교에 항거하다 오히려 이단異端시비에 내몰려 한국교회로부터 목사직을 박탈당한 이력履歷도 바로 영적 기독교에 대한 소신 때문이었다.
송도고보高普시절 3.1 독립운동에 가담한 죄로 옥고를 치렀고 협성신학교(現감리교신학대학교) 재학시時 학업보다 신新 세상(독립)에 대한 열망을 키웠으며 기도생활에 전념한 것도 영적 기독교의 맹아萌芽를 드러내는 부분이다. 그가 즐겨 사용했던 ‘是無言시무언’ 이란 말에서도 영적 기독교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 말보다는 침묵, 교리보다는 사랑의 행위를 중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까닭이다. 요컨대 민족 독립, 교회개혁, 영적 부흥, 고난과 사랑의 신비주의가 영적 기독교의 핵심요소였던 것이다.

청년 이용도 목사가 활동하던 시기는 1920-30년대였다. 당시는 3.1 독립운동의 실패로 기독교 신앙의 내세적 경향이 농후했고 교파주의가 강세였으며, 교회생존이 존립목적이 될 만큼 세속적 양상을 띠었다. 당시 한 신문 사설은 기독교로 하여금 ‘거리의 종교’가 될 것을 촉구한 바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용도는 성령의 역사役事에 힘입은 신앙체험을 강조했고 그리스도의 고난을 자신과 일치시키는 신비주의를 말했으며 그를 근거로 교회개혁을 시도했다. 한마디로 ‘감感하여 지知하라’는 것이 한국교회를 향한 그의 사자후였던 것이다. 이는 우선 교리가 아닌 체험의 중요성을 일컬으나 한국 및 한국인의 현실을 적시하라는 충고이기도 했다. 또는 한국인 목사들의 지적능력을 낮게 평가한 미선교사의 신학에 좌우되지 않는 한국적 주체성을 확보하라는 외침일 수도 있다.
여하튼 이를 위해 이용도는 누혈漏血의 신학자로 불릴 만큼 민족과 교회 현실을 위해 많은 눈물을 흘렸다. 2-3시간 지속된 부흥집회 시간 내내 한마디 말없이 울기만 하다 강단에서 내려온 적도 허다했다. 눈물은 사랑의 표현이었고 그 사랑이 영적 기독교의 핵심이었다. 눈물은 현실부정인 동시에 현실긍정이란 영적 양극성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전도사 초년시절 이용도는 강원도 통천에서 깊은 기도 중 승마勝魔체험을 했다. 이는 자신을 억누르던 마귀와의 싸움을 극복한 일종의 중생체험이었다. 혹자는 이를 무속적 강신체험의 기독교적 표현이라고 일컫는다. 무속巫俗적 삶의 지평 하에서 전도부인으로 살며 평생 사랑과 눈물을 가르친 그 어머니의 종교적 영향력이기도 했다. 본 체험은 이용도 자신의 자기 정체성의 물음과 직결되는 것이었다. 교회개혁과 민족의 주체성 확립을 위해 사랑과 눈물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도 자신에 대한 이해가 달라졌던 까닭이다.
주지하듯 인간은 문화의 창조적 주체이기 이전에 문화적 산물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승마체험은 선교사들에 의해 주입된 기독교와 일제의 식민지 문화담론에 기인한 자신의 허상虛像적 정체성으로부터 자유를 가져왔다. “나도 지금까지 너무 남의 세상에 살아왔습니다. 너무도 남의 눈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나도 이제부터 예수쟁이만 되렵니다. 미치도록 믿으렵니다. 이렇게 노력하는 것이 나의 생활이 되겠지요.” 서구 기독교에 자기 정체성을 투영시켰던 지난 삶에 대한 통렬한 반성인 셈이다.
동시에 본 회심悔心은 국가의 독립이 외형적 구조가 아니라 인간의 영과 정신의 내면적 변화에 기인하는 것임을 천명한 사건이기도 했다. 물론 이용도의 영성은 비정치적이거나 세상초월적인 것으로 오도誤導되곤 했다. 하지만 진정한 독립, 한국적 주체성은 종래처럼 일본을 적으로 보는 시각이 아니라 그런 분별심分別心 마저 수정할 수 있는 진정한 종교, 곧 예수정신에서 비롯함을 말하려 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용도는 ‘예수쟁이’의 길을 자신 속에 육화된 동양적東洋的 사유의 틀에서 표현하였다.
강신降神체험에 근거하여 예수쟁이가 된 이용도의 자기이해는 다음과 같았다. “... 나의 이상, 나의 주의(ism), 나의 계획 다 집어 치우고, 오, 주여, 나는 무無요 공空이로소이다. 나의 위에 성령이 움직이어 주의 이상을 세우고 주의 계획을 세우시옵소서. 그리고 주께서 움직이옵소서. 그리하여 나는 주에게 딸려 움직일 것입니다.” 물론 이용도는 이를 ‘육肉에 죽고 영靈에 살자’는 말로도 언표 한 바 있다. 하지만 이것을 서구적 이원론 내지 그에 기초한 신비주의로 보는 것은 영적 기독교의 오독誤讀일 것이다. 여기서 육肉이란 서구적 이원론의 틀이 아닌 생명의 역환逆換을 적시하는 까닭이다. 역환逆換이란 영을 통해 육을 살리는 길로서 육肉 자체의 부정이 결코 아니란 사실이다. 앞서 영적 기독교를 영적 양극성의 산물로 본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이런 영적 생명이 본래 인간에게 없던 것인 바, 하느님을 아는 일이자 예수로부터 받은 것이란 사실이다. 그렇기에 영적 생명은 여타의 문화적 지배 담론들과는 무관할 수밖에 없다.
이점에서 이용도의 고난과 이단정죄는 실상 문화적 이념을 확대 재생산한 종교권력에 의한 영적 생명의 파괴라 하겠다. 크게 보면 동양적 생명세계에 대한 서구 종교이념의 폭력인 셈이다.

 

이로부터 이용도의 영적 생명운동은 문화화文化化된 서구 기독교로부터의 일탈을 꾀했다. 유럽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머물 거처가 상실되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발길을 아시아로 돌려 이곳 동양, 조선 땅에 신新처소를 만들 것을 바랐던 것이다. 이런 공간의 변화는 실상 그 속에 담길 내용의 변화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해서 이용도는 생명의 역환을 가능케 하는 복음의 동양적 이해에 골몰했고 동서양적 기독교이해를 대별大別했다. 즉 서양적 기독교는 물적物的, 현세적이고 동양적 기독교는 영적靈的, 신비적인 것인 바, 동양에서 서양적 기독교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보았다. 해서 서구의 미완성품인 기독교를 동양의 신비주의적 토대에서 새롭게 이해할 것을 촉구한 것이다.
때론 동서양의 기독교 이해를 공관共觀/요한 복음적인 것으로도 분별했는데 요한서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문자가 아니라 영靈으로서의 체험(感)대상임을 고지했던 까닭이다. 하지만 그의 신비주의, 영적 기독교는 사사화私事化된 감정이입이 결코 아니었다. 이용도는 민족의 눈물과 피를 자신의 신비의 場(topos)으로 삼았던 것이다. “약소한 민족, 우리들은 세상의 한 노예로 십자가 형틀을 지고 갑니다. 우리는 벙어리와 같이 우리의 맞을 매를 맞아 상하신 당신을 우러러 뵐뿐입니다.” 그렇기에 영적 기독교는 피눈물 흘리며 예수를 따르는 것이었고 그로 인해서만 눈물이 씻겨 질 수 있다고 믿었다. 즉 이용도의 초월적 신神체험은 자신과 민족 그리고 예수의 고난 간의 상호 일치에서 비롯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거듭 강조하는 바는 이용도의 독특성은 예수 고난의 내면화를 동양적으로 재구성했다는 사실이다. 즉 영적 기독교의 본질인 고난의 신비주의를 약함이 강함을 이긴다는 노장老莊적 지혜로 풀어 낸 것이다. 우주만물의 본성을 유柔로 본 아시아적 지혜를 근거로 이용도는 영적 생명으로서의 예수를 다음처럼 고백했다. “예수보다 더 높은 하느님은 없도다. 예수보다 더 깊은 사람도 없도다. 예수보다 더 굳센 생명도 없도다 ... 헐벗어도 예수라면 따뜻하오. 굶주려도 예수라면 배부르오. 목말라도 예수라면 시원하오. 알고 싶은 것이 예수요, 보고 싶은 것이 예수요, 되고 싶은 것이 예수로다.”

 

결국 영적 기독교란 초기의 승마勝魔체험을 통해 종교와 정치의 이중지배구조를 벗어난 진정한 자아, 예수의 고난과 일치된 삶을 사는 것을 뜻한다. 이는 루터 종교개혁이래로 신앙의인信仰義人을 강조한 서구 개신교 신학의 한계를 적시하는 부분이었다. 당시 조선교회에 만연된 성직주의, 교리주의의 실상은 종교개혁이 미완의 혁명이었음을 반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용도는 생명의 역환逆換을 통해 신앙(바울)의 시대에서 사랑(요한)의 시대로 옮겨가야 함을 강조했다. ‘천적 애天的 愛’, 분별심分別心을 없이한 하늘의 사랑으로 교회와 세상의 변혁을 시도했던 이용도의 영적 기독교는 1세기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도 유효하다. 사랑 없는 신앙은 생명 없는 신앙이란 것이 영적 기독교의 본질을 일컫는 바, 목하目下 기독교는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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