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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편지

성서와 문화 2012.12.19 12:52 조회 수 : 909

[박 조 향 ·전 미술교사]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 같다.’라는 잠언 말씀이 마음에 흡족하게 들어온다. 나는 편지쓰기를 좋아한다. 동창이나 사촌들은 이-메일로 하자고 구박하지만, 연세 드신 분들은 답장을 주거나 회답 대신 전화를 주시기도 한다. 문제는 제자들인데 이젠 성적표나 생활기록부에 전혀 영향력을 끼칠 일이 없는데도 착실하게 답장이 온다. 내 딸아이는 이상한 옛날 담임선생님 때문에 언니들 생고생 시킨다고 질색이다. 디지털로 신속, 정확, 편리하게 해결되는 것을 복잡하고 번거로운 절차로 스트레스 받게 하느냐고 야단이다. 그런데도 나는 내게 익숙한 절차를 은근히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릴 적부터 편지 쓰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수업시간에 쪽지를 주고받다가 벌을 선적도 있다. 여중 2학년 때 부산에서 서울로 수학여행을 갔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 우리는 경무대(청와대) 견학 후 대통령할아버지와 기념촬영도 했다. 학교에 돌아와 전교생이 대통령께 감사의 편지를 쓰게 되었다. 그 중에서 내가 쓴 편지가 뽑혀서 퍽이나 우쭐해서였을까? 나는 그 때부터 더 신나게 편지를 쓰게 되었다.
졸업 후 서울 E여고에 진학하여 부산에 남아 있는 친구들, 우리가족, 스승님에게 열심히 편지 쓰느라고 너무나 바빴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나의 편지 쓰기는 계속 되었다. 어느 날 실기실에 복학생 형이 들어와서 두리번거리더니 내게로 다가왔다. ‘서울구경 안 시켜주나?’ 하길래 ‘누구세요?’ 되물었다. 고3때 국군장병 아저씨께 보낸 내 위문편지를 받았던 장본인이라고 했다. ‘아저씨 휴가 나오면 서울구경 시켜 드릴께요.’라고 쓰여 있었다는 것이다. 위문편지를 읽고 상상하던 모습과 달라서 실망했는지, 아니면 남자친구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형을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그 후, 남자친구가 최전방에 배치되었다. 강원도 산골에 파묻혀 나만 바라보고 있는 그에게 열심히 위문편지를 써 보냈다. 나의 그 정성에 감동 받았는지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아직도 손 편지를 쓰냐고 의아해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 손편지를 받고 행복 하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평생 홀로 외롭게 사신 친정어머니는 딸의 편지를 받아 읽고 또 읽고 온 동네에 자랑하는 재미로 행복하게 살았노라고 했다. 어머니께 아직도 부치지 못해 남아있는 편지는 하늘나라로 띄워 보내 드려야 할 것인지....

이민 와서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게 되었다. 계속되는 시행착오와 빈번한 실수로 낙심되고 고통스러웠다. 내가 잘 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보람도 없고 우울한 나날이었다. 주 3일 정도 함께 차도 마시고 점심도 먹고 전화도 자주하는 옛날 제자가 힘내라고 위로의 편지를 보내왔다. 그녀의 정성스런 편지를 읽으면 심금을 울이는 교감을 느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예쁜 카드가 얼룩졌다. 어제 만났고 내일 또 만날 텐데, 우편으로 보내다니 신선한 충격이었다. 편지는 멀리 있어 만나지 못하는 사람에게만 보내는 것인 줄로만 알고 있던 내 상식이 파괴되는 순간이었다. 손으로 쓰는 편지에는 보내는 이의 숨결이 숨어있어 짙은 감동을 받게 된다.

내가 다니는 교회는 바라만 보아도 감동을 준다. 학업과 일에 지치고 힘들 텐데 찬양과 악기로 헌신하는 학생들, 청년들이 있어 흐믓하다. 나의 젊은 날이 부끄러워 이제야 겨우 깨닫고 동참하려고 했더니 어느덧 효도관광 초대받는 입장이 되어 있다. 무엇으로 내 몫을 할까 고심 후 찾아냈다. 바로 젊은 저들의 노고를 알아주고 격려해 주고 더 많이 칭찬해 주는 것이다. 유난히 인사 잘하는 꽃미남 형제에게 착하고 고맙고 멋지다고 편지를 했더니, 다정한 인사로 반겨주어 내가 행복했다. 피곤해 보이는 찬양팀장에게는 매우 진한 감동 자체이며 나날이 발전하는 멋진 팀이라고 칭찬편지를 보냈더니, 활짝 웃으며 더욱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그들이 바로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것이 느껴진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받는 것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의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노라.’

유치환 님의 시를 읊조리며 내 손편지는 계속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