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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수치法水峙로 오세요

성서와 문화 2012.12.19 12:52 조회 수 : 945

[이 반 ·극작가]

 

 

가을의 끝은 언제나 정직하다. 산하가 화장을 지워버리고 맨 얼굴을 내민다. 녹색 의욕도 붉은 정열도 다 놓쳐버린 산하는 가을의 끝에 와서 제 모습을 드러낸다. 산은 여름의 긴 장마에 씻긴 몸을 드러내고 신선한 향기를 풍긴다.
백두대간을 가운데 두고 산들은 사방으로 내려앉는다. 서쪽은 완만하게, 동쪽은 급하게 내려꽂힌다.
산의 생김새와 지질에 따라 계곡이 생겼는데 사람이 그렇듯이 똑같은 계곡은 없다.
둔전리의 둔전계곡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천불동계곡, 오색계곡, 도원, 백담계곡, 12선녀탕 계곡 등이 있는데 이 계곡들은 모두 설악과 금강산이 발원지다. 이 계곡들은 설악산이나 금강산의 모든 계곡이 아니다. 산사람들이나 관광객들이 친숙하게 찾아들고 쉽게 노크하는 골짜기일 뿐이다.
백담계곡은 청봉 아래서 시작하여 북쪽으로 쏠리다 수렴동, 영실암 앞으로 해서 백담사 마당에 이르러 잠시 쉬다 갑자기 왼쪽으로 굽이쳐 물결이 빨라지며 단숨에 용대리에 이르러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천천히 내려간다. 물의 근원이 어디인지, 또 종착지가 어디까지냐고 물으면 정확한 답을 말할 수 없다. 아래로 흐르는 모든 하천의 발원지는 하늘이고 종착지는 바다일 테니까. 낙동강이나 한강 발원지가 어느 지점이라고 점찍는 일은 가능하겠으나 그 두강의 발원지 역시 하늘이다.
설악산 백담 계곡은 언제 찾아가 보아도 감동을 안겨 준다. 길에서 한참 내려가야 이를 수 있는 계곡의 청결한 물은 깨끗하고 맑다. 바람이 나뭇잎 하나 떨어뜨리면 물결은 하얀 거품을 물고 속세의 잡티를 밀어낸다. 백담 계곡은 언어나 미술보다는 음악으로 표상해야 제 모습을 바로 전할 수 있을 것 같다. 물결이 한결같지 않다.
급하게 몰아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멈춰 서 있는 곳, 뛰어서 곤두박질치는 곳, 모여 앉아 숨죽여 속삭이는 곳, 그것은 항시 주위의 풍광을 안고 있다. 수천, 수만 년간 벽을 허물고 땅을 파고 바위를 씻고 내려오는 백담 계곡수는 극적이다. 의미 있고 장엄한 교향곡이라는 생각은 그래서 든다.
용대리에서 백담사까지는 10여키로 되는데 도보가 제격이지만 시간에 쫓기며 사니까 버스로 왕복하고 백담사에서 수렴동 까지 걸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백담사는 현재 강원도 인제군에 속해있고 오늘 소개할 계곡은 양양군에 있다. 양양은 조선시대에 산 좋고 물 맑은 곳으로 이름나 있었으나 해방 후, 3.8선이 그어지고 한 읍이었던 속초가 시로 승격되면서 구역이 잘려 나가고 갈라지면서 옛날의 영광을 잃어가고 있다.
나라의 미래를 설계하던 선각자들은 제철소 입지를 물색할 때 양양과 포항을 후보 도시로 정하고 경중을 따졌다고 한다.
양양은 강릉과 속초에 가려 자신의 속살을 드러내지 않았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 인구 3만여명이 살고 있는 평범한 군청소재지일 뿐이다. 그러나 오늘 소개할 양양의 한 계곡은 평범한 계곡 중의 하나가 아니라 신비스러운 비경이다. 양양에는 천년사찰 낙산사가 있고 연어의 어머니 강 남대천이 있다.
남대천 역시 동해안 소도시 남쪽에 있는 작은 내(川)가 아니라 거대하고 웅장해서 내륙의 길고 넓은 강에 뒤지지 않고 자신의 위용을 자랑할 만한 큰 강이다.
남대천 북쪽 뚝은 양양 시내를 안고 있다. 하류는 동해바다와 면해 있는데, 상류의 물이 모여들어 호수같이 넓고 바다같이 그윽하다. 남대천 양안에는 둔치가 넓다. 갈대를 비롯한 각종 수목이 어울려 철새들의 낙원을 이룬다. 갈대밭 사이의 맑은 물은 연어길이다. 숲 사이로 강태공들의 낚시대가 보인다.
은어와 송어와 황어가 계절을 따라가며 잡힌다.
남대천에는 큰 다리가 세계 있는데 서쪽 다리가 월리로 해서 남쪽으로 나가 국도와 만난다. 다리를 넘자마자 오른쪽으로 꺽어들면 강양안으로 넓은 벌이 펼쳐진다.
이 길은 봄에 지나는 것이 좋다. 사과와 배와 복숭아 과수원이 집단으로 펴져 있는 곳인데 군락을 이뤄 핀 꽃들은 환상적이다. 멀리 청봉 자락엔 흰 눈이 쌓여 있는데 강가의 꽃들은 활짝 웃고 꽃 봉우리는 수줍게 고개 숙이고 있다.
차로 남대천에서 서쪽으로 20여키로 달리다보면 어성전漁成田이란 마을이 나온다.
漁成田은 한자가 뜻하는 대로 밭에 고기가 가득 찼다는 의미다. 옛날 어성전 주위의 강과 내와 개천과 논과 밭에 민물고기가 가득했다고 한다. 그 풍요로운 마을 주위 언덕에는 유난히 소나무가 많은데 미인송이다.
송이가 많이 나오는 동네다. 내에는 연어가 몰려다니고 산과 숲에서는 송이가 고개를 내민다.
어성전에서 남서쪽으로 꺽어들면 법수치法水峙 계곡이고 서북쪽으로 돌아서면 면옥치綿玉峙 계곡이다. 끝에 ‘치’자가 있어 바다 생선에 갈치, 꽁치, 새치 등이 있으니 계곡명의 치자가 옛날 민물고기의 이름이 아닐까 상상해 보았는데 그렇지 않다고 한다.
어성전 주민들에게 물으니 자세히는 모르나 법수치는 옛날부터 도를 닦는 사람들이 많아 法水峙라고 했다고 한다. 면옥치綿玉峙는 양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라 그 같은 계곡명을 얻었다고 한다.
면옥치는 계곡도 짧고 길도 포장되어 있지 않고 험해서 자동차로는 돌아보기 힘들 것 같아 법수치 쪽으로 차의 방향을 돌렸다. 면옥치는 도보로 둘러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법수치 옆 자동차 길은 강의 수면과 평형을 이뤄 바라보기 편했다. 강바닥의 주먹돌과 바위가 훤히 드려다 보였다.
길도 높낮이가 심하지 않고 평지에 가까웠다. 강은 넓고 길었다. 험산 중의 계곡이라기보다 평야를 지나는 강물과 같았다.
법수치의 발원지는 오대산이라 했다. 법수치의 강물은 백두대간의 옆구리를 끼고 유유히 북쪽으로 흐르다 어성전에서 동쪽으로 꺽이고 있었다. 사람은 자연의 영향을 받는다니, 분명 옛날에 이곳에 살던 사람이나 길가던 나그네들은 강물에서 이치를 지키며 사는 지혜 또는 순하게 사는 법을 익혔을 것 같다.
강양안과 가운데에 바위들이 튀어나와 바닷가의 갯바위같이 사람들의 쉼터를 만들어 주는데, 바위의 꼬리나 옆에는 항상 자그마한 소가 있어 잠시 멈춰 서게 했다. 소는 물이 깊어 고기떼들이 몰려다닌다. 법수치는 숨겨진 비경이라 생각했는데, 입구에서부터 끝까지 아름다운 펜션과 카페와 수련원들이 줄지어 서있다. 복잡하거나 까다로운 느낌은 주지 않는다. 자연이 수려하기 때문에 온갖 인위적은 구조물들을 넉넉하게 소화해 내고 있었다.
11월 중순, 가을의 마지막이면서 겨울의 초입이다. 산의 모든 수목이 잎을 떨어 뜨렸는데, 몇몇은 그래도 마지막 잎을 안고 있으면서 빛으로 나목이 되길 거절한다. 빨간 빛의 나무 잎사귀는 정열 덩어리다. 산은 더 허허롭고 적막하다. 바람이 불고 산까마귀가 이 산에서 저 산으로 날아간다.
가을과 겨울은 서로 맞물려 가고 오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법수치에선 계절이 오버랩 되지 않고 분명한 선을 보여 주며 한 계절이 지난 다음에 다음 계절이 오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어성전에서 법수치 끝은 10키로는 되는 것 같다. 자동차, 사람 하나 만나지 못했다.
세상에 이렇게 조용하고 그윽한 계곡이 있다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서 유원지의 뒷모습을 보이지 않아 더 충만하다.
서림지, 필례약수터길, 구룡령, 곰배령 등은 세상에 알려져 관광객의 발길이 끈이지 않으나 법수치와 면옥치는 한가롭고 적요해서 자신을 돌아보기 좋은 공간이라 생각된다.
조선시대에 눈이 무겁게 내려 피해를 입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발길 닿는 데마다 흩어져 있다.
그러나 오대산이나 점봉산, 설악의 동쪽 자락에는 눈이 옛날같이 많이 내리지 않는다. 겨울 내내 참았다, 구정을 지내야 눈이 쌓인다.
유유히 여유롭게 흐르는 강물과 태고적 정적을 지니고 있는 법수치 계곡 위로 올라가본 적은 없다. 그러나 위에는 월정사, 상원사, 대관령 등이 펼쳐져 있어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오대산 진고개 옆의 연곡천과 더불어 법수치의 발원지 역시 하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