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2년 성서와 문화

[김 순 배 ·피아니스트 / 음악평론]

 

 

‘Hodie Christus natus est..’
미국의 한 도시, 모두가 아마추어인 한인교회 성가대원들은 난생 처음 접하는 라틴어 가사를 매우 곤혹스러워 했습니다. 크리스마스 기념음악회의 첫 곡은 라틴어로 되어있으며 반주 없이 부르는 ‘아카펠라a cappella’였지요. ‘오늘 그리스도가 나셨다. 오늘 구세주가 강림하셨다...’의 뜻을 가진 고풍스러운 라틴어가 여간 낯선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그 난해한 언어를 외워서 불러야 했습니다. 이 노래는 원래 중세 수도사들이 부르던 찬트Chant였지만 영국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1913-1976)이 ‘캐롤의 축제’라는 합창모음곡의 첫 번호로 삼으면서 재발견 된 곡입니다. 어렵사리 가사를 외우고 곡을 익힌 성가대원들은 크리스마스 이브의 음악회에서 마치 수도사들처럼 하얀 가운을 입고 손에는 촛불을 하나씩 든 채 예배당의 뒤편으로부터 일렬로 행진하여 앞으로 걸어가며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음악회의 멋진 시작이었습니다.

캐롤carol이라고 하면 대개 크리스마스 시즌에 부르는 노래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의 기원은 반드시 성탄절과 연관되지는 않습니다. 원래는 중세 혹은 그 이전부터 풍부하게 생산된 영국의 민속 노래를 가리키는 명칭이었지요. 그것도 춤이 동반되는 노래였습니다. 둥글게 원을 이루어 노래를 하며 춤을 추는 서민들의 민요가 캐롤이었습니다. 중세 시대 캐롤은 철을 가리지 않고 서민들이 즐기는 노래였지만 축제 기간이나 성탄절과 같은 특별한 이벤트에서 더 많이 불렸기 때문에 어느새 크리스마스 용도의 노래로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어찌되었든 원래 춤과 더불어 불리던 노래여서인지 성탄을 맞이하는 사람들에게 캐롤은 즐겁고 설레는 정서를 한껏 안겨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Hodie’로 시작하는 브리튼의 ‘캐롤의 축제’는 좀은 엄숙하고 진지한 칸타타나 오라토리아가 주류를 이루었던 정통 크리스마스 음악의 풍경에 매우 신선한 기운을 불어 넣습니다. 유럽의 섬나라 영국이 낳은 걸출한 20세기 작곡가로 높이 평가 받는 브리튼이 1942년 만든 이 작품은 여러 면에서 독특합니다. 11개의 곡으로 이루어진 작품의 가사로는 라틴어가 사용되는가 하면 작자를 알 수 없는 중세 시인이 쓴 옛 영어old english로 된 시를 그대로 씁니다. 우연히 스코틀랜드의 옛 마을을 방문하게 된 브리튼은 무명의 중세시인들이 남긴 시들을 모은 낡은 시집을 발견합니다. 그 중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고 즐거워하는 몇 편의 시들은 마침 하프Harp를 소재로 한 작품을 구상하고 있던 그에게 색다른 영감을 던져줍니다. 브리튼은 그 시편들 하나하나를 크리스마스 캐롤로 만들어 나갔습니다. 맨 앞과 끝에는 오래된 단선율 성가인 ‘Hodie’를 첨가해서 독특한 작품을 탄생시킨 것이지요. 가장 난해한 종교적 언어와 서민들이 춤추며 불렀을 대중적 노래 가사를 혼합한 드문 시도입니다. 구교로부터의 결별을 선언하고 영국 국교라는 독자적 노선을 걷기도 한 나라다운 복합적 측면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고 기리는 마음에는 계급의 구분이나 언어의 장벽 같은 것이 있을 수 없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겠지요.

소년들로만 이루어진 합창대를 위한 작품인 ‘A ceremony of carols’는 반주악기로 하프 하나만을 지정했습니다. 마치 ‘천사들의 합창’ 같은 설정이랄까요? 열 한 개의 곡은 탄생의 바로 그 날과 주인공 아기 예수를 향한 찬양의 심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소년들의 목소리가 들려주는 높고 투명한 노래들은 다른 어떤 크리스마스용 음악들보다 소박하고 순수한 느낌을 전해줍니다. 중세 유럽인에 의해 씌여진 가사들은 철저히 그들만의 시각을 반영한 것입니다. 실제로 그리스도의 탄생이 한 겨울은 아니었다지만 시집 속의 크리스마스는 모든 것이 차갑게 얼어붙은 한 겨울밤이었지요. 아담이 사과에의 유혹을 못 이겨 타락한 것이 원죄의 시작이라는 관점에 의거해 그가 사과를 따 먹지 않았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오시지 않았을 터이니 그 실수는 어떤 의미에서 다행이라는 다소는 엉뚱한 서민들의 종교관과 그것을 담은 낯선 중세 영어가 투박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구주 예수가 나셨다’로 시작해서 ‘어서 오시옵소서 하늘의 왕이여’, ‘이 작은 아기가 세상을 구원하시리라’, ‘차갑고 추운 겨울 밤 나신 아기’를 지나 아담으로부터 비롯된 인간의 원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친히 땅에 내리신 주님을 감격으로 맞이하는 ‘Deo Gracias’에 이르면 이 합창모음곡들이 그저 단순 소박한 성탄찬가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리스도의 강림 그 의미를 정확하게 감지하고 인식하는 대부분 이름 모를 중세 시인들의 시가 시공을 뛰어넘어 생생하게 와 닿습니다. 해독이 힘든 라틴어와 옛 영어로 된 가사가 묘하게 혼합되어 있으며 음악적으로는 전통적 화성감각을 잃지 않는 가운데 참신한 요소들을 군데군데 배치해 현대적 분위기를 적절하게 자아내는 이 작품은 행렬 찬양 ‘Hodie’로 시작해 마지막도 ‘Hodie’로 끝납니다.

미국 어느 도시 한인교회, 주로 유학생들로 구성되었던 성가대의 지휘를 맡았던 저는 낯선 라틴어를 힘들게 외워 반주 없는 아카펠라로 일치단결해서 불러야 했던 브리튼의 ‘Hodie’를 해마다 돌아오는 성탄절이면 어김없이 떠올리고는 합니다.

 

‘Hodie Christus natus est,
오늘 그리스도가 나셨다
Hodie Salvator apparuit
구세주가 강림하셨다.
Hodie in terra canunt angeli
오늘 천사들은 땅으로 내려와
Laetantur aranchangeli
기쁨에 벅차 노래 부른다.
Hodie exultant justi dicentes
오늘 땅위의 의로운 사람들은
Gloria in excelsis Deo
 하늘에 모든 영광을 돌린다.
Alleluia! Alleluia! Alleluia!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