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2년 성서와 문화

한국의 보자기

성서와 문화 2012.12.19 12:49 조회 수 : 964

[김 효 숙 ·조각]

 

 

살아가며 아름다운 마음과 삶의 지혜를 만나는 것은 큰 기쁨이다. 이 기쁨 중에 하나가 한국의 보자기이다.
보자기는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생활용품으로, 천으로 만든 것이 주종이다.
옛 선조들은 물건을 싸서 보관해 두거나, 물건을 싸서 운반하기 편한 도구로써, 혹은 물건을 덮고 가리고 싸서 보호하는 등의 다양한 쓰임새로 의식주衣食住의 생활 곳곳에서 보자기를 활용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보자기가 발달한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주거공간이 협소했다는 사실을 먼저 들 수 있을 것이다. 보자기는 용적容積의 신축이 자유롭고, 사용하지 않을 때는 작게 접어두면 공간을 차지하지 않으므로 가재도구로서 적격이었다. 또한 풀었다 매었다의 개폐開閉가 용이하고, 특별한 장치와 사용 기술도 필요치 않으니 그저 용도에 맞게 사용하고, 필요치 않을 때 접어 넣어 두었다 다시 꺼내 재사용하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실용적인 용도 외에, 보자기에 물건을 싸두는 것은 복福을 싸두는 것과 같은 일종의 기복신앙적祈福信仰的인 의미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물건을 서로 주고받을 때에 예를 갖춘 행위로서 물건을 보자기에 싸서 전달하였다. 그러므로 보자기에 공을 많이 드리는 것은 일종의 치성을 드리는 행위였다. 복을 불러드리고 또 복을 전해주는 우리 심성 밑바탕의 따뜻함과 정성이 배어 있는 물건이다.
따라서 보자기에 수를 놓거나 조각 천을 하나하나 이어 붙여 정성을 다하는 것은 곧 복이 오기를 비는 일종의 초복招福의 행위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각종 예물을 싸던 혼례용 보자기는 이러한 의미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보자기의 사용 범위는 아주 넓어 일상적인 용도 외에도, 기우제를 지낼 때 제단에 치거나 조상의 영정을 싸는 등의 특수한 용도로도 쓰였다. 그러나 보자기는 일반적으로 크게 궁에서 만들어 쓴 궁보宮褓와 민간인들이 생활 속에서 널리 만들어 쓴 민보民褓로 대별할 수 있다. 특히 민보를 대표하는 조각보와 수보繡褓는 생활의 유용성만이 아니라 그 아름다움과 창의성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조각보는 쓰다 남은 자투리들을 활용해 만든, 폐품활용이라는 생활 속에 번뜩이는 지혜의 소산이다. 궁보에서는 발견된 예가 없다. 크기와 모양과 색상이 각양각색인 수많은 조각천들이 규격성을 배제하고 이어져 있으면서도 산만하거나 복잡한 느낌을 주지 않고, 전체 속에 함께 통합되어 계산된 질서보다 더 높은 통어統御된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자투리 조각천들을 모아 지고至高의 구성미를 창출해낸 능숙한 솜씨는 우리나라의 여성들 속에 깃들어져 있는 본능적인 미적 감수성을 실감케 한다.
또한 조각보 외에도 자투리 조각천으로 다양한 생활 소품을 허다히 만들어 썼다. 아주 작은 조각천으로는 골무나 베갯모, 저고리의 앞섶장식 등이 만들어졌고, 그 보다 좀 더 큰 조각은 실패나 조각상자 등을 만드는데 썼다. 이렇게 작은 천 조각 하나까지도 버리지 않고 알뜰하게 활용하여 생활 곳곳에서 창의성을 발휘하며 규모 있게 산 우리 여인들의 긍정적인 삶의 지혜가 아름답게 다가온다.
현존하는 조각보 가운데는 사용한 흔적이 없는 것들이 많다. 이는 구체적인 용도뿐이 아니라 조각보 만들기는 여성들로 하여금 창조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해 주는 건전한 여가활동으로써 노동과 유희, 예술이 하나로 합쳐진 활동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조각들을 이어간다는 연장개념延長槪念이 장수의 축원祝願 등의 의미도 담아 많이 만들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수보는 주로 혼례 등의 기쁜 일에만 쓰였다. 수보는 바탕천은 면직물로 하고 안감은 명주를 많이 썼다. 비단천에 비단실을 사용해 만든 자수품들과는 구별된다. 기러기보, 혹은 원앙보라고도 불리는 혼례용품답게 전통적으로 상서롭고 영험한 의미를 지녀왔던 나무, 여기에 곁들여 학, 봉황, 공작 같은 서조瑞鳥와 부귀와 영화를 상징하는 꽃, 다복과 다산(다남多男)을 상징하는 열매, 환희와 복에 관련된 새와 나비 같은 상징문양들과 문자문양 등이 널리 수놓아졌다.
보자기는 어떻게 만드느냐 따라 홑보, 겹보, 누비보 등으로 불리기도 하고, 노리개보, 이불보, 밥상보, 횃댓보 윷보 등 쓰임새에 따라다 다양하게 불려진다.
홑보는 말 그대로 안감을 대지 않고 한 겹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대개 명주나 모시로 만들어지는데 천조각을 이어 붙일 때, 솔기부분의 올이 풀리지 않도록 이중으로 홈질을 해서 솔기를 싸게 된다. 이 때 특이한 것은 천과 같은 색의 실을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바탕의 천색과 두드러져 보이는 색실을 써, 바느질 땀이 한 올 한 올 선명하게 드러나 보이게 하는 대비효과를 주게 했다는 것이다. 이는 실 땀이 단지 올이 풀리지 않게 이어 붙이게 하는 목적 외에 보자기를 구성하는 미적요소의 하나로 적극 활용하였다는 점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투리 조각천들이 아닌 하나하나 아름다움을 간직한 조각 면으로서의 가치를 가지면서 전체가 어울려 생명력을 가지게 한 것이다.
겹보는 안감과 겉감 두 겹으로 만든 것이다. 때문에 안감과 겉감이 따로 놀며, 형태가 일그러질 염려가 있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시접부분에서 안쪽으로 돌아가며 안감과 겉감을 함께 집어 홈질을 하였다. 이때는 홑보에서 실 땀이 두드러지게 처리한 것과 달리 바느질 자국이 드러나지 않게 보일듯 말듯 처리하여 바느질의 묘미를 보여주고 있다.
보자기에는 홑보나 겹보를 불문하고 일종의 악세서리라고 할 수 있는 박쥐장식을 달았다. 이는 빨강, 노랑, 파랑, 초록, 흰색 등 채도가 높고 명도가 높은 선명한 색으로 만들어, 이어진 모서리 중, 전체적으로 사각형 혹은 대각선을 이루는 모서리마다 달아 조각보에 매력을 더해 주었다.
박쥐장식은 비단천을 안으로 말아 가는 끈을 만든 후 팔자(8 - 가로 0.4cm, 세로 0.7cm 정도의 크기)모양으로 휘말아 중심부분을 실 땀으로 연결하여 보자기에 붙이는 작은 장식물인데, 꿰매지는 8자의 중앙의 몸체 부분과 둥근 두 개의 원이 박쥐가 날개를 핀 것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다. 박쥐문양은 전통적으로 복과 제액除厄의 상징으로 여기저기에 많이 사용되었다.
겹보의 경우 이 박쥐장식의 사용은 장식적인 아름다움 뿐 아니라 군데군데 안감과 겉감을 고정시켜 주는 역할도 겸할 수 있었다.
누비보는 겉감과 안감 사이에 얇게 솜을 넣어 촘촘히 누빈 것으로 파손되기 쉬운 기물을 싸거나, 음식을 따뜻하게 보온해야 하는 겨울철에 사용하였다.
식탁보의 경우에는 음식국물이 천에 배어들지 않게 기름을 바른 종이(油紙)를 안쪽에 사용하였다.
조각보의 색상은 청靑, 홍紅,과 옅은 파스텔조의 중간색이 주조를 이룬다. 옅은 중간색을 가운데 두고 가장자리에 청홍과 같은 강한 색을 배치하여 전체적인 변화와 긴장감을 주게 구성했다. 청홍은 전통적인 음양오행의 양색陽色으로 창생蒼生과 성장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겹보에서 겉과 안의 배색으로 많이 사용하였다.
한국의 조각보을 생각할 때 어떤 이는 20세기 기하학적 추상을 주도한 네덜란드의 화가 몬드리앙Piet Mondrian을 연상하게 될 것이다. 그는 나무를 그리고 이를 단순화해 가는 반복의 과정에서 수직과 수평으로 구성된 선과 색면의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자연물에서 시작하여 의식적으로 계산된 작업을 통해 그림의 스타일을 완성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옛 여인들이 만들어낸 조각보의 매력은 의도적인 계획이나 꾸밈없이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천진함으로 아름다움을 즐기고, 정성을 드려 복을 기원하는 순박한 마음의 소산인 것이다. 조각보는 기하학적인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수보의 문양에서 보여주는 자연물의 편화編畵 능력도 대단하다. 주로 대상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본 평면도 형식과, 정면에서 본 입면도 형식을 취하면서 입체감을 배재하고 주로 대칭적이거나 방사형으로 배치하였다.
수보의 문양이 주는 단순하고 화려한 색상의 아름다움은 귀貴티를 주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을 물씬 준다. 이 소박하고 욕심 없는 정성의 한 땀 한 땀이 예술적 행위라고 감히 생각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이를 통해 옛 선조들의 신앙과 세계관, 인생관 등을 엿보며, 그 아름다움을 배우고 있다.
보자기는 계급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두루 쓰인 우리나라 고유의 일상적인 생활용품이었다. 사대四代를 살던 집에서 이사를 하려고 이불보를 새로 만들고, 조각보를 만들어 옷장 속의 옷을 덮고, 횃대보를 만들어 벽을 가리고, 밥을 누비보에 싸 이불 속에 넣어 두었다 따뜻 밥을 주시던 할머니와 어머니가 새삼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