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2년 성서와 문화

- 종교개혁 495주년을 맞아 -

성서와 문화 2012.09.18 14:12 조회 수 : 869

 [박 영 배 ·본지 편집인]

 

 

오는 10월 31일은 종교개혁 495주년을 맞는 시점이다. 개혁자들의 사상과 정신을 유산으로 받고 있는 오늘의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그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 오늘의 교회가 직면한 막중한 과제들을 창조적으로 헤쳐 가며 그 전통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1517년의 종교개혁은 마르틴 루터가 면죄부의 부당성을 제기한 데서 비롯된 개혁운동이었으나 이것이 빠른 시간에 전 유럽으로 확산되어 갔다.
종교개혁은 또한 중세적 세계관과 가치관을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인 근대적인 세계관과 가치관을 열어간 출발점이 된 것에서 일대 세계사적인 사건이었다.

프로테스탄트의 원리와 정신은 루터의 개혁문서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여기에서 당시의 교회가 3가지 점에서 교황청의 포로가 되어 있다고 했다.
첫째, 신앙의 궁극적 근거인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를 교황만이 바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주장은 살아있는 말씀을 교황청에 감금시키는 것이라 했다. 즉 루터는 교황의 성서 해석권의 독점에 반대하며, 성서 자체의 진리성과 신앙에 의한 성서 해석을  주장했다.
둘째, 당시 가톨릭교회는 구원에 이르는 길을 인간적인 선행善行과 공적, 또는 종교의례적인 성례전에 제한하려한 것이다. 그러나 루터는 ‘오직 믿음으로만’이라고  주장하며, 이것이 종교 개혁적 인식에 기초이며 출발이었다.
셋째, 하느님과 신자信者의 영적교제가 제사장적인 교직을 통해서 만이 가능하다는 것은 신자의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교직계급의 포로가 되게 하는 것이라 했다.

실로 종교개혁은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담을 헐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1대 1로 설 수 있게 한 것이다. 교황이나 교회가 명하는 대로 따름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성취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권위는 교황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성서에 있고,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하며 우리는 모두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직접 제사장의 자격을 가질 수 있다는 이 원리는 루터와 개혁자들을 통하여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물러 받은 소중한 유산이며 선물이다.

양심良心의 자유는 모든 개혁운동의 핵심적인 요소이다. 루터는 자기의 주장을 취소할 것을 요청받았을 때, 다음과 같이 거부했다. “나는 성서에 근거하여 설명한 것이다. 그러기에 성서에 근거한 명백한 이유에 근거 하지 않으면 나는 취소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나의 양심은 하느님의 말씀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양심에 반反하여 행동하는 것은 위험한 것이며 옳지 않다.” 고 했다.
루터에게 있어 양심은 그의 신앙생활 전체와 관련된 핵심적인 요소이다. 양심의 자유, 신앙의 자유란 마음의 진실을 정직하게 말할 수 있는 자유이며, 자기의 믿는 바를 정직하게 고백할 수 있는 자유이다. 중세 1000년을 이어온 당시 가톨릭교회에 있어서 양심의 자유란 설 자리가 없었다. 교회의 권력화는 물론 교황이 모든 판단의 잣대가 되며, 교황 무오설無娛設이 공공연하게 주장되는 세계였다. 따라서 중세적 봉건제도와 가톨릭 문화는 그 이상 지탱될 수가 없었다.

근대 새 역사의 창조적 소수자는 현세적인 인본주의적 고전문화의 모방이나 중세 가톨릭의 부정에서가 아니라 그것들을 딛고 넘어서서 그리스도의 정신을 새롭게 하며 지성의 심각한 고투를 통해 새롭게 태어난 인격, 즉 영적으로 거듭난 개혁자들이었음을 후세 역사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따라는 근대 새 역사창조는 흔히 말하는 르네상스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영적으로 거듭난 개혁자들에 의하여 제 길을 찾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대목은 21세기의 온갖 과제를 안고 씨름하는 오늘의 교회에 주는 교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