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2년 성서와 문화

[이 반 ·극작가]

 

 

설악산 청봉에서 동쪽 능선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면 화채봉이 있고 화채봉에서 역시 동쪽으로 뻗은 계곡으로 따라 내려가면 동해바다에 이른다.
산자락 계곡을 사이에 두고 남쪽은 물갑리, 북쪽은 둔전리, 간곡리, 석교리 등의 작은 마을들이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동네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설악동이 설악산의 왼팔이라면 약수가 나오는 오색리가 오른팔, 둔전리 나 물갑리는 설악산의 심장이란다. 내 어머니는 설악산의 심장인 둔전리에 사시다 돌아 가셨다. 어머니 집 곁에 밭이 있는데 오래도록 묵혀두다 금년에 들어 농사짓기로 결심했다. 바다일이라면 몰라도 땅에선 호미 한번 쥐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농사짓겠다니, 주위 친구들이 뜨지막한 눈으로 바라보며 너 나 없이 개인교사나 된 듯 농사일을 가르쳐 준다.
처음부터 늦게 시작한 농사였다. 5월 18일. 포크레인 한 대 빌려서 땅을 뒤집어 업고 트랙터로 노타리를 치고 시작해야 된다고 했다. 묵혀 두었던 땅에서의 농사는 그게 순서라고 했다. 포크레인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에게 전화해 밭 위치를 말해주고, 금액과 날짜를 정해주었다. D데이가 5월 18일이었다. D데이가 가까워지자, 그 날이 바로 부처님 오신날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포크레인 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부처님이 오신 날인데 일을 하겠느냐고 물으니까 하겠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집사람이 했다.
속초에서 차로 7번 국도를 따라 시내를 지나고 대포항도 뒤로하고 물치에 이르러 오른쪽으로 꺽어 서쪽으로 달렸다. 국도에서  둔전리 까지는 6키로나 된다. 하늘엔 구름이 있었으나 비는 내리지 않았다. 둔전리에 이르니 청봉과 화채봉은 검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밭을 일군다고 각오하고 밭에 이르렀는데 땅은 이슬비에 젖어 있었다. 조금 있으니, 포크레인 기사가 트럭을 타고 왔다. 기분 좋게 생긴 청년이었다. 작업을 시작하자니, 손을 펴 보인다. 제법 큰 빗방울이 그의 손바닥에 떨어졌다. 땅이 젖어 있기 때문에 일하기 힘들다고 한다. 일도 하루 이틀 만에 끝낼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한다. 비가 끝이면 다시 연락하기로 하고 그들은 물치로 내려갔다.
농사에 관한한 나보다 더 적극적이고 아는 것도 많은 아내가 양양에서 농사짓고 있는 교회에서 만난 임 선생에게 전화를 넣었다. 그분은 충청도에서 양양에 와서 농사를 짓는데 완전 전문가였다. 마을 가운데에 한옥도 짓고 밭농사 논농사의 규모가 제법 크고 합리적 농촌생활을 하는 분이었다. 마침 빗줄기가 뜸 하니까 자신의 마을에 있는 포크레인과 트랙터를 불렀다. 점오가 다 되어 양양 쪽에서 농기계들이 도착했다. 굴곡이 심한 데는 포크레인이 지형을 만들어 나가고 평지는 트랙터가 노타리를 치기 시작했다.
옆에 있는 사찰의 염불소리가 계곡을 채우는데 농기계 소리가 방해되는 것 같아 조심스러웠다. 염불과 농기계 굉음사이로 휘파람새 울음소리 유난하게 들린다.
핏기를 잃고 있던 땅이 거므스럼하게 뒤집어 지더니 흙이 생명력을 찾아 기운을 풍긴다. 흙이 이슬비를 맞아 아름다워 진다. 흙에 안기고 싶다. 그리고 그 위에서 뛰고 싶다.
죤 스타인백의 소설 ‘에덴의 동쪽’을 엘리아 카잔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는데, 농장주인의 작은 아들 역을 제임스 딘이 했는데 밭에 콩을 심고 콩이 비를 맞아 싹이 솟아오를 때 밭 가운데서 좋아서 뛰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도 뛰고 싶은데, 현실을 생각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제임스 딘은 20대 초반이고 나는 늙은이가 아닌가. 그리고 몸도 자유스럽지 못하지 않는가.
아내는 임 선생의 도움을 받아 모종하기 시작한다. 피망, 파푸리카, 고구마, 토마토, 오이, 대파, 땅콩 등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틀 사흘 간격으로 밭에 심어 나간다. 농사에 대하여 잘 모르는 나는 어쩡쩡한 자세로 밭 주위를 서성거린다. 어머니 집 처마 앞에는 돌배나무가 서있다. 흐른 세월대로라면 꽤 컸을 터인데 생각보다 자라지 못했다. 대추나무도 있고 옆집의 개복숭아가 울타리 너머로 가지를 뻗고 있다. 열매도 꽤 달려 있다. 호두나무가 높게 서 있는데 눈길도 주지 않았다. 청설모의 것이려니, 생각했다. 뽕나무 몇 그루가 서 있었다. 따주지 않아 땅에 오디가 질펀하게 널려 있다.
몇일 뒤 밭에 고랑을 내고 콩을 심으라고 한다. 나는 옆구리에 씨앗 바구니를 끼고 씨를 뿌린다. 밀레의 그림에 나오는 씨 뿌리는 농부를 상상하며 그렇게 폼을 잡아 보지만 몇 고랑을 오가지도 않았는데 옆구리가 쑤신다.
그 즈음 아내는 들깨와 옥수수, 수박, 호박, 부추, 참외, 박 등을 심는 것 같은데 늦게 시작해서 잘 클지 모를 일이다. 아내는 메밀꽃이 소담히 필 때를 그리며 메밀씨도 심는다. 열무, 근대, 상추까지 심고 나니 초여름이다. 날씨에 따라 밭이 마를 때도 있고 젖을 때도 있다. 밭이 마르면 물을 주는데 하늘도 목이 타는지 수분을 바로 빨아간다. 농사에 관한한 사람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은 얼마 없는 것 같다. 모든 일은 하늘이 하고 사람은 보조역만 하는 것 같다.
햇볕 따가운 날이다. 콩도 깨도 고개를 꺽고 쳐져 있는 것을 보니 한숨이 나온다. 다시 원기를 회복하고 서 있지 못할 것 같다.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비온 날 뒤에 밭으로 가 보았다. 콩과 깨는 아침조회를 하는 중학생처럼 고개를 곧게 처들고 당당하게 서있다. 기특하여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은데 콩의 웃자란 꼭대기는 처주어야 된다고 한다. 몇 고랑 정리도 못했는데 허리가 아프다. 그리고 몇일이 지났다. 콩잎 사이로 여리고 작은 보랏빛 콩꽃이 보이기 시작한다. 귀엽다. 이대로 계속가면 콩깍지에 알이 들어앉을 것이다.
콩에 대하여 알게 된 것은 해방 후 이북에서였다. 식량이 부족해서였는지 콩떡으로 아침과 저녁을 대신하던 시대가 있었다. 조밥과 감자밥보다 먹기 힘든 콩떡으로 아침과 저녁을 나자니 자연히 먹기 힘들고 심술이 났다. 그 꼴이 안스러웠는지 어머닌 콩떡 양 볼에 콩잎을 붙여 주었다. 조금은 먹기 쉬었다.
나중에 콩잎 대신에 깻잎을 붙여주었는데 깻잎 냄새가 신기해 그 맛이 한결 나았다. 그 후 교회를 알게 되어 주일 학교에 나갔더니 선생님이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해주는데,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빙그레 웃었다. 아벨은 양이나 소의 살고기로 하느님에게 제사 드리고 카인은 기껏 콩떡을 제물로 바쳤으니 하느님인들 콩떡을 좋아 했겠느냐는 생각이었다.
콩이나, 조, 감자는 강원도에서 많이 생산된다고 알고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한반도의 서북쪽 끄트머리인 함경북도와 만주 쪽에서 많이 생산된다. 특히 두만강 양안은 콩과 땅콩이 가득 자라 발 디딜 틈이 없다. 오죽 했으면 강 이름이 두민강豆滿江일까. 먹을거리 많지 않던 70년대와 80년대 젊은이들은 땅콩과 구운 오징어를 주전부리 감으로 삼았다. 코드 깃을 세우게 되는 늦가을 볶은 콩이나 땅콩, 그리고 구운 오징어를 씹으며 겨울을 보낸 기억이 난다.
볶은 콩이나 땅콩과 오징어가 조합하여 만들어 내는 맛은 환상적이었다.
두만강 양안이나 간도 땅에서 자라던 콩이 두만강에 수장되거나 뗏목에 콩이나 땅콩을 싣고 강 상류에서 하류로 또는 그 반대로 오르내리다 뗏목들이 물결(물갑)에 뒤집혀 강에 화물을 쏟아 넣으면 강은 그대로 두만豆滿이 되었다.
두만강은 동쪽에서 흘러 수만년 수천년 동안 땅을 가르고 육지의 퇴척물을 동해바다로 밀어내어 나진 앞바다 밑의 거대한 모래 평원을 만들었다. 바다 밑의 모래 평원은 바람이 만들어 놓은 육지의 사구처럼 높지도 않고 날카롭지도 않다. 수심 깊은 곳의 물결은 점잖고 부드러워 바다밑 모래벌은 넓고 아늑하게 어머니의 품과 같이 된다.
대한해엽을 따라 남쪽으로 흐르던 오징어들은 일본 규슈 앞에 이르러 왼쪽으로 꺽어 다시 북상한다. 성어가 되어 이미 어미가 된 오징어들은 혹가이도에 이르러 한반도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 곳이 두만강 하류 물밑 모래 평원이다.
나진 앞바다는 두만강의 콩과 땅콩물이 침천된 곳이다. 혹가이도에서 올라온 어미 오징어들은 콩과 땅콩을 먹고 마시고 호흡하며 조용히 죽어간다. 나진 앞 바다 밑 넓고 넓은 모래밭에 세상의 모든 사막의 모래알보다 더 많은 생명체를 탄생시키고 죽어간다.
여름 중에서도 제일 뜨거운 8월이다. 강원도 설악산 아래 둔전리 어미니 땅에서 깍지 속의 콩알이 영글어간다.

註¹ 屯田이란 사찰이나 군의 양식을 생산하는 공간을 지칭하는 보통명사이나 곳에 따라선 지명을 말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