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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신학 탐방 (1)

성서와 문화 2012.09.18 14:09 조회 수 : 903

[김 경 재 ·신학]

 

 

1. 현대신학의 개념
규정
현대신학의 다양한 흐름을 그 발생배경과 핵심논지를 중심으로 해서 두 차례에 나누어 이야기 해보려 한다. ‘현대신학’이라고 말할 때는 흔히 두 가지 서로 다른 개념을 우리말로서는 구별 없이 쓰는 경우가 많아서 혼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첫째 개념은 19세기 슈라이에르맛허의 신학운동을 기점으로 하여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이나 합리주의적 계몽가들의 냉랭한 이성적 신학운동과 구별해서 ‘현대신학’(Modern Theology)이라고 부른다. 핵심은 정통적 교의(Dogma)의 틀이나 정통교리들doctrines에 기초한 방법론 자체를 전제하지 않고 새롭게 기독교 진리를 이야기 해보려는 운동을 펼쳤기 때문이다. 계시나 교의를 전제로 하여 그것들로부터 기독교의 진리를 체계적으로 연역해 나가려는 ‘위로부터 아래로’의 방향보다는 ‘아래로부터 위로’의 신학방법을 선호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위 혹은 아래는 공간적 은유이다. ‘위’(above/ up)라는 단어는 초월적 차원, 영원성, 하나님의 주체성, 계시의 선행성, 불변적 교의, 성경의 신언성, 타율적 권위를 상징한다. ‘아래’(below/ down)는 내재적 차원, 시간성, 인간의 주체성, 이성의 성찰력, 해석학적 상관성, 피조물의 자율적 책임을 상징한다. 그럼으로, 일반적 신학사에서 말하는 현대신학(Modern Theology)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계시 못지않게 인간의 종교성 그 자체를 주목한다. 신학 작업에는 감성적 체험과 지성이 동반되고 이해되는 신앙고백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둘째 개념은 20세기 후반 즉 1960년대 이후 최근의 신학사조를 말 할 때 ‘현대신학’(Contemporary Theology)이라고 부른다. 좀 더 구체적이고 특수한 주제를 다룬다는 의미에서 ‘현대신학’이라고도 말 할 수 있겠다. ‘아래로부터 위로’의 방향을 선호한다는 점에서는 일반적 의미의 현대신학과 그 경향성이나 기질을 공유한다.
그러나, 시대 구분에서 본다면 좀 더 최근의 신학 곧 1960년대 이후부터 21세기 최근까지의 신학운동을 의미한다. ‘아래’(below/ down)의 상징적 개념이 인간학적 좁은 개념에 국한되지 않고 정치사회학, 문화종교학, 더 나아가서 자연생태학이나 현대 자연과학의 근본통찰과 문제를 신학 안으로 끌어안으면서 ‘복음과 구원’의 의미를 통찰하고 해명하려 한다. 한국의 민중신학이나 남미의 해방신학, 여성신학, 생태학적 신학,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종교신학과 새로운 성서 해석학, 영미계의 역사적 예수연구 운동, 화이트헤드 유기체적 과정철학에 영향 받은 신자연신학, 예술을 통한 영성신학 등 다양한 신학운동이 구체적 사례들이다.
<성서와 문화> 이번호와 다음호에 연속하여 살펴보려는 ‘현대신학 탐방’에서는 1960년대 이후부터 최근에 이르는 지구촌의 다양한 신학운동 곧 ‘컨템퍼러리 신학’(Contemporary Theology)을 사랑방 이야기하듯 다섯 마당으로 나누어서 평이하게 말해보려고 한다.

 

2. 첫째마당: 해방 정치신학과 역사적 예수연구 운동/ 하나님은 공의와 해방을 요구한다 
비인간적 삶의 사회구조로 부터 인간해방에 일차적 관심을 갖는 1960년대 이후 정치신학 흐름 안에는 한국의 민중신학, 남미의 가톨릭의 해방신학. 그리고 여성신학운동이 포함된다. 그리고 이 신학적 운동은 ‘역사적 예수연구’와 호흡을 같이하면서 본래적 복음의 원 모습은 “정의와 사랑이 입맞추는 ‘하나님 나라’ 운동이었다.”고 확신한다. 그럼으로  현실 안에 있는 구조악과 우상화된 정치·경제·문화 권력에 저항하면서, 타계적 영혼구원이 일차적이 아니라 현세적 몸의 구원이 더 중요하다고 정치신학 흐름은 강조한다.
이러한 관심에 일차적 노력을 기울이는 신학운동은 총괄하여 ‘현대정치신학 흐름’이라고 말 할 수 있다. 현대정치신학의 핵심은 중세 가톨릭신학과 근세이후 개신교신학을 막론하고 기독교가 ‘탈정치화’ 한 것을 잘못이라고 본다. 종교의 임무를 개인영혼이 사후에 천국 들어가는 영혼구원 문제로 변질시키고, 현실적 삶에서는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시녀로 전락하거나 불의한 사회구조를 온존시키는 반생명적 역할을 했다는 통절한 자기반성에서부터 시작한다.
일찍이 마르크스가 타락한 종교를 일컬어 ‘인민의 아편’이라고 비판한 점을 통절하게 받아드린다. 치유처방을 제시하기 전에 ‘집단적 허위의식’과 ‘습관적 보수신앙’의 분석을 위하여 방법론적으로 사회과학적 이론과 인간집단 무의식의 억압기제를 분석한다. 그러한 방법론적 분석수단만을 보고, 교권주의자들과 현실 기득권 계층은 ‘현대정치신학의 흐름’을 불신앙적 좌파 이념운동이라고 쉽게 매도한다. 역사적 예수연구 운동을 신앙 없는 인본주의자들의 신앙파괴 운동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물론 일부 과격한 신학자들 중에는 탈기독교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건전한 신학자들은 ‘복음’의 본질회복에 큰 공헌을 했다. 남미해방신학의 구띠에레츠와 보프신부, 한국의 안병무와 서남동, 세계 여성신학계의 피오렌자와 로즈마리 류터, 역사적 예수연구 학자군 중 마커스보그와 존 도미닉 크로산 등의 학자들 이름은 관심 있는 일반 지성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현대정치신학의 의미를 압축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현존장소 혹은 부활하신 주님을 현실적으로 만나려면 예배당이나 성경책에서 보다 <눌리고 가난한 형제의 고난현장에서 만나라!> 는 충고라고  할 수 있다.

 

3. 둘째마당: 종교신학의 대두 / 진리의 하나님은 특정종교나 기독교 문화에 갇히지 않는다.
현대신학(Contemporary Theology) 흐름 중 두 번째로 살펴보려는 신학운동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65) 이후 활발해진 종교신학의 흐름이다. 흔히 종교 간의 대화신학, 종교문화신학, 해석학적 지구신학운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새로운 신학운동은 분명 20세기 전반기 까지는 서양신학계에서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던 새로운 주제에 대한 신앙적 지성의 고뇌의 결실이며 지금도 진행 중에 있다. 한마디로 교통통신의 발달과 문화교류를 경험하면서, 지구촌의 문명을 각 지역에서 이끌고 온 위대한 세계종교들과 기독교와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야할 것인가의 문제가 대두된 것이다.
사실 19세기와 20세기 전반기에 이르기까지, 세계 그리스도교 신학은 ‘그리스도교’가  세계 종교사 속에서 가장 발달한 영적 종교의 최고봉이며, 다른 종교들은 훌륭한 점이 더러 있더라도 그리스도교보다는 ‘열등한 종교요, 불완전한 종교’라는 우월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지구촌이 되어가고 문화제국주의 시대가 끝나면서 이전의 생각에 안주 할 수 없게 되었다. 불교, 유교, 힌두교 등 아시아의 위대한 세계적 종교들이 그리스도교의 그러한 기독교의 우월주의를 용납 않으며, 도리혀 독단과 독선의 잠에서 깨어나라고 충고하였다.
세계신학계는 하나님(진리자체)은 영원하고 절대적이지만, 하나님과 구원을 체험하고 표현한 역사적 종교들은 상대적이라는 것과, 그 상대적 진리체험을 통해서 절대를 맛보고 증언할 수 있다는 깨달음에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종교간의 대화와 협력과 상호배움을 통해서 피차 더 성숙해 갈수 있음을 경험하게 되었다. 독단주의와 혼합주의를 동시에 경계한다. 인간은 철저하게 해석학적 존재 곧 문화-역사적 영향을 받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죤 힉, 폴 니터, 죤 캅, 라이몽 파니카, 한스 큉, 유동식등은 그 분야 대표적 학자들이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