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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사기의 멋과 나

성서와 문화 2012.09.18 14:08 조회 수 : 972

[김 효 숙 ·조각]

 

 

분청사기의 멋은 청자나 백자가 줄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어 나는 분청사기의 아름다움과 멋을 즐겨왔다. 또한 분청사기를 통해 좋은 작품이란 어떤 것이며, 작품은 어떻게 만들어져야하고, 작가의 작업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등의 예술과 예술가의 길에 대한 많은 생각들을 해 왔다. 더불어 우리조상들의 피 속에 흐르는 삶의 따듯한 정서와 해학을 만나며 이것들이 내 삶의 바탕이 되어지기를 원해 왔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영국의 예술평론가 허버드 리드는 “한 나라의 예술과 그 감수성의 정밀함은 그들이 만든 도자기에 의해서 판단하라.” 는 지적을 한바 있다. 이는 그 나라 그 시대의 예술적 능력을  도자기만큼 잘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고려청자와 조선의 백자는 그 우월성이 뛰어나, 우리민족의 예술적 역량의 탁월함을 말해줘 왔으며, 이는 결코 우리만의 자찬自讚이 아니다. 그런데 청자와 백자라는 세계 도자역사의 양대 줄기 속에서 우리나라에서는 분청사기라는 독특한 도자 양식을 탄생시켜 우리의 도자사陶瓷史를 더욱 풍요롭게 하고 있다.
분청사기란 회청색의 태토胎土에 분粉을 발라 장식한 사기라는 뜻이다. 청자의 바탕에 하얀 분을 발라 백자 비슷하게  만든 것으로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 나라를 세워가는 14세기에서 16세기 사이 약 200년간에 걸쳐 청자가 백자로 이행해 가는 시기에 왕성하게 만들어졌다. 다시 말해 분청사기는 고려의 정신적 바탕을 이루었던 불교에서 조선의 건국이념인 유교로 전환해 가는 과정에서, 옛 것은 지고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받아드려 담아내려 하지만 이미 몸에 배어온 이념의 조형형식이 그대로 남아 있어, 이 두 서로 다른 힘이 충돌하고 갈등하면서 만들어내는 화합의 마당에서 생긴 약동하는 창조적 기운의 산물인 것이다. 강물이 흘러  바닷물과 합쳐지는 강 어구에 민물고기와 바닷고기가 다양하게 서식하여 풍성한 어장을 이루는 이치라고나 할까...

분청사기의 종류에는 상감분청사기象嵌粉靑沙器, 인화분청사기印花粉靑沙器, 조화彫花,박지분청사기剝地粉靑沙器, 철화분청사기鐵畵粉靑沙器, 귀얄분청사기, 덤벙분청사기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이는 기형 위에 무늬를 만들 때 새기거나, 찍거나, 긁어내거나 그리거나 하는 여러 가지 제작기법을 사용 하였는데 어떤 수법으로 무늬를 넣느냐에 따라 다르게 불러진 것이다.
상감분청사기는 고려조의 상감기법의 전통을 이어 가면서도, 흑색과 백색으로 이루어지던 선線 중심의 상감무늬에서 흑색무늬는 쓰지 않고 백색무늬의 선들이 굵어지고 점차 면으로 넓어져 면상감 되는 특징을 가진 것이다. 이렇게 달라진 상감기법은 분청사기 특유의 조화와 박지 분청사기에로 진화하는 모태를 이루게 한다.
조화. 분청사기는 상감기법 즉 일일이 무늬를 파내고 흙으로 다시 홈을 메워 무늬를 만드는 과거의 수법에서 벗어나 백토로 분장한 흰 칠 위에 뾰족한 도구로 무늬를 긁어내어 새기는 것으로, 흰색 표면에 태토胎土의 회색 선이 대조적으로 드러나게 함으로써 좀 더 손쉽고 자유롭게 무늬를 구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선을 음각 하는 것만이 아니라, 여백의 넓은 면을 긁어내어 양각의 무늬를 만들어내는 박지분청사기가 함께 혼재 사용되며 본격적인 분청사기 특유의 아취와 멋을 들어낼 수 있게 했다.
철화분청사기는 계룡산 동학사 입구 일대 가마터에서 주로 만들어진 지역적 특성을 가지고 있어 계룡산 분청사기라고 불러지기도 한다. 귀얄로 백토를 희게 분장한 뒤 철분을 묻힌 붓으로 그림을 그린 것인데, 철화의 색이 적갈색이나 흑갈색 혹은 거의 흑색이어서 마치 흰 종이 위에 그려진 수묵화를 보는 듯하다. 파고 긁어내어 무늬를 만드는 조각적 기법에서 직접 붓으로 무늬를 그려내는 회화적 수법을 사용하여 보다 대담하고 자유분방하게, 회화적 역량을 드러낸 것이다. 철화분청사기에서 보여주는 필력은 정말 대단하여, 분청사기의 내용을 더욱 풍부하고 다채롭게 하면서, 그 격과 아름다움을 한층 더 끌어 올렸다 할 수 있다.
뭐니뭐니해도 분청사기의 기본은 그릇을 귀얄로 분장하여 만들므로 귀얄분장은 분청사기의 성격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특징적인 요소이다. 귀얄이란 올이 굵은 풀비 같은 붓을 말하는데 백토를 귀얄에 묻혀 기면器面에 쓱쓱 바르기 때문에 붓이 간 자국의 다양한 변화와 그 흐름의 율동적인 맛이 그대로 남아 그 자체로 시원스럽고 생동감 넘치는 추상적인 무늬화가 되는 것이다. 무늬를 위한 바탕으로서의 귀얄분장 외에, 거침없이 유연하게 흐르는 능숙한 붓자국의 율동미와 붓질 사이사이에 드러나는 공간과 바탕색과의 대조는 그 자체로 문양과 같은 효과를 나타내며 충만한 생명력과 여유로움을 선사한다. 이렇게 귀얄분장만으로 그릇을 꾸민 것을 귀얄분청사기라고 한다.
덤벙분청사기는 귀얄 붓을 쓰지 않고, 그릇을 그대로 백토물에 덤벙 담갔다 꺼내 기면을 뽀얗게 백토만으로 분장한 것이다. 표면에 귀얄자국이 없어 차분한 느낌을 주며, 거의 백자와 같은 느낌을 준다.
인화분청사기는 도장 찍듯 아주 작은 모양의 무늬를 촘촘하게 반복해 찍고 그 홈에 백토를 넣어 기면을 메우는 제작방법을 사용한 것인데, 흐트러짐이 없이 단정하고 규격적인 면모를 보이며 차분하고 신선한 맛이 난다. 이는 신라시대로부터 정치적, 학문적 중심이었던 영남권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백제 문화를 바탕으로 뛰어난 문화. 예술적 전통을 이어 온 호남지방의 조화, 박지분청사기와 충청도의 철화분청사기의 대범성과 자유분방함과 대조를 이루는 아름다움을 가진다.
이렇게 분청사기는 제 각기 다른 멋을 지니고 있지만 모두 우리 곁에 살아 있고 늘 접할 수 있는 모란이나 새, 버드나무 같은 평범한 것들을 아주 대담하게 단순화시키고 해학이 넘치게 재구성하여 무늬와 기형이 혼연일치가 되게 만들어내는 공통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기형과 무늬의 어우러진 멋과, 그 위에 표현된 무늬들의 신들린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나는 먼저 그 자유로움을 꼽는다. 모든 예술의 핵심은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이 아닌가 한다. 꾸미고 잘 보이려는 헛된 마음에서 벗어난 순수하고 욕심 없는 맑고 깨끗한 마음의 지경 말이다.
분청사기조화어문편병糞淸沙器彫花魚文扁甁에 두 마리의 물고기가 한 방향으로 헤엄쳐 가고 있다. 그릇의 넓은 화면에 있는 위의 물고기가 좀 더 크고 힘차게 리드해 가는 듯 보인다. 둥근 그릇을 앞뒤로 눌러 평편하게 만든 편병에 흰 분을 바르고 뾰족한 도구를 사용해 무늬를 긁어 새긴 것이다. 그림의 선들에는 머뭇거림이나 주저함이란 보이지 않는다. 천진스럽고 꾸밈이 없이 단순화되어 그려진 두 마리의 물고기가 두 개의 둥근 선 안에 그대로 가득하다. 이 사랑스러운 물고기 한 쌍이 자유롭게 헤엄치는 모습이 얼마나 평화롭고 착하고 다정해 보이는지, 보고 있으면 하늘나라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렇게 우리 미술의 근본을 이루는 우리 심성의 바탕에는 단순하면서도, 저절로 사람의 마음에 웃음을 머금게 하고 즐겁게 해주는 해학적 표현이 깔려있다. 모자람도 더함도 없이 편안함을 주는 이 담담한 정경은 나에게 많은 삶의 가르침을 이야기해 준다.
분청사기철화당초문粉靑沙器鐵畵唐草文항아리에 그려진 추상화된 당초문은 자유분방하고 힘차고 빠른 속도감을 가지고 그려져 있다. 애써 무엇을 닮게 그리려 마음을 빼앗긴 것이 아니라 무아지경에서 그냥 그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필력을 가지려면 얼마나 수없는 반복의 수련이 있어야하고 마음을 비워야하는지 노력해 본 사람만이 그 대단함을 알 수 있다. 그 붓놀림이 주는 빠른 율동의 생동감은 수없는 반복의 과정에서 몸에 밴 연속의 시간만이 허락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분청사기가 주는 또 다른 매력은 대범하여 조그만 것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다. 우리 미술의 멋이 그러하듯 부분 보다 전체를 중요시 하는 것이다. 세부의 부분 부분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거칠기도 하고 서툴러 보이기도 하고, 미흡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런 것들이 어우러져 하나가 되었을 때 느끼는 아름다움이다.
분청사기의 경우, 위와 아래의 분위기가 다르다. 전체적으로 보아 밑에는 힘이 있고 위에는 얌전하게 하여 대담하고 천연스런 느낌이 들게 한다. 굽은 듬직하니 두꺼워 바닥을 받치는 발로서 힘만 가지게 하고 문양도 거의 없다. 칠도 윗부분은 곱게 바르고 밑 부분으로 갈수록 거칠게 처리하여 대범하고 소탈한 느낌을 준다.

이렇게 분청사기 속에는 한국미의 특징을 이루는 갖가지 다양한 요소들이 내포되어 있다. 이를 통해 한국미의 정수精髓와 한국인의 심성의 원형을 찾아 새로운 창조의 길과 좀 더 나다운 삶을 열어 가고자 하는 나의 바람은 분청사기의 멋과 함께 계속되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