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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랑風浪과 풍류風流

성서와 문화 2012.09.18 14:05 조회 수 : 921

[유 동 식 ·신학]

 

 

1. 풍랑의 밤
요즘엔 아침마다 배달되는 신문을 펴보기가 두렵다.
주폭, 묻지마 폭력, 왕따와 자살, 성폭행, 살인, 강도, 사기, 뇌물 등등 위아래 할 것 없이 모든 사회악들이 요동치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선거철이라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만, 우리나라에는 웬 대통령감들이 그리 많은지, 제각기 자기가 한국의 구세주라고 자화자찬하며 상대방을 비방하는 팔불출들의 이야기로 지면을 메우고 있다.
민족 주체와 민주라는 간판 아래 신흥종교집단으로 전락한 좌파 교조주의자들이 스스로 멸시하고 있는 한국의 행정과 교육뿐만 아니라 이제는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한 마디로 한국은 지금 풍랑이 요동치는 어두운 밤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한국은 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굴지의 종교적 활동국가이다. 1000만명의 신도를 가진 한국 기독교는 다섯 개의 방송채널을 운영하고 있으며, 미국 다음으로 많은 선교사들을 외국에 파송하고 있다. 교육과 병원, 사회사업 등 활동하지 않는 분야가 없다.
한국 불교 역시 1000만 신도로 구성된 한국의 토착종교집단이며, 두 개의 방송국, 그리고 사회사업 등 그 활동과 규모에 있어 기독교와 쌍벽을 이루고 있다.
부처님은 무량광불無量光佛이다. 그의 탄생을 축하하는 4월 초파일엔 온통 연등으로 세상을 밝히고 있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성탄절 역시 그러하다. 서울 시청 앞을 위시로 전국 3만여 교회들이 등불을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이 어두운 밤은 어찌된 일일까?
예수님은 이 폭풍 속에서도 여전히 뱃전에 누워 잠들고 계시는 것일까?
종교의 존재 이유는 과연 무엇이겠는가?

 

2. 그리스도와 원효
종교는 인생문제에 대해 궁극적 해답을 추구하는 신앙체제이다.
인생은 생, 노, 병, 사의 주어진 고난의 물결을 타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유와 평화와 사랑의 기쁨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여기에 파도치는 인생문제가 끊임없이 우리를 따르고 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문제 해결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부분적이거나 일시적인 해결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대해 궁극적 실재와의 관계에서 궁극적 해법을 제시하려는 것이 종교이다.
종교의 형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요동치는 인생의 파도의 원인을 초월적인 바람(風)과의 관계에서 보려는 유형이 그 하나요, 또 하나는 파도의 본체는 바닷물이요, 그 흐름(流) 작용으로 보는 유형이다. 전자를 대표하는 것이 창조주 하나님을 신봉하는 기독교요, 후자를 대표하는 것이 체용론體用論에 입각해서 삼법인三法印을 푸는 불교이다.

제자들과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가던 예수께서는 뱃전에서 잠들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나운 바람이 일어나 큰 물결과 함께 배가 요동치며, 침수의 위기를 맞이했다. 그러자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우며 구원을 요청했던 것이다.
이에 예수께서 일어나 바람을 꾸짖으시니, 바다가 잔잔해졌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갖도록 가르치셨다.(마가 4:35-41)

원효는 <금강삼매경>의 대의를 말하는 가운데 이런 글을 남겼다.

“무릇 일심一心의 근원은 있음과 없음을 떠나 홀로 청정하고(一心之源 離有無而獨淨),
삼공三空의 바다는 진리와 세속을 원융하여 깊고 고요하다.(三空之海 融眞俗而湛然)”

요동치는 인생문제의 궁극적 해결을 위해서는 파도치는 인생에 집착하지 아니하고, 부처님의 고요한 자비의 바다를 깨닫고 그리로 돌아가는데 있는 것이다.

 

3. 풍류와 예술
인생과 세상 풍랑의 원인을 바람(風)과의 관계로 보는 종교(기독교)와 궁극적 실체인 바다와 그 흐름(流)관계로 보는 종교(불교)의 두 눈을 합쳐서 본다면, 세상과 인생은 본시 풍류風流의 표출이요,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다.
풍류란 자연과 예술과 인생이 혼연일체가 된 경지의 아름다움이요, 이것을 우리는 ‘멋’이라고 한다.
일찍이 신라의 석학 최치원은 한국인의 영성을 불러 ‘풍류도’라고 했다. ‘도道’란 종교적 진리이다. 풍류도는 실로 유, 불, 선 삼교의 종지를 포함한다고 했다. 풍류도란 곧 종교-예술적 영성이다.
신라 진흥왕 연간에는 이러한 풍류도를 지닌 청년들을 기르기 위한 교육을 실시했고, 그 청년들을 불러 화랑이라고 했다.
이 화랑들이 당시 분열된 고구려와 백제와 신라를 하나의 통일국가로 만들었고, 그들이 화려한 한국문화의 초석을 놓았다. 불국사와 석굴암이 그 대표적인 문화유적으로 남아 있다.
단재 신채호는 “화랑의 역사를 모르고 조선사를 말하려 함은, 골을 빼고 그 사람의 정신을 찾음과 같다”고 했다(<조선상고사>). 화랑이란 풍류도인을 뜻한다. 한국인의 정체성과 주체성의 뿌리는 신화나 유물사관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풍류도에서 찾아야 한다.
오늘의 분열과 죄악으로 가득찬 어두운 한국을 다시 밝고 아름다운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얼인 풍류도에 기초한 새로운 문화운동이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것은 종교에 뿌리를 둔 예술문화운동이 그 중심축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오늘날 각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한류’가 그 새로운 문화의 도화선이 될런지도 모른다.
나는 여기에서 풍류도의 포월적 “포함삼교”의 정신을 강조하고 싶다. 그것은 무엇보다 한국의 2대종교인 기독교(風)와 불교(流)가 서로 영적으로 소통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새롭고 아름다운 풍류문화 창출의 영적 기초가 되리라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