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1년 성서와 문화

九旬有感구순유감

성서와 문화 2011.12.23 18:25 조회 수 : 2554

[유 동 식 ·신학]

 

 

1. 제3의 우주

인생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 했다. 90이면 과분한 축복을 받은 인생이다. 그러나 막상 이 나이를 살아온 나의 느낌은 그저 어제 오늘을 살아왔을 뿐, 오래 살아왔다는 느낌이 들지를 않는다.
사실, 100억년을 넘게 팽창해가고 있는 광대무변한 우주를 생각해 본다면, 90인생이란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먼지 한 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놀라우신 창조의 기적이 있었다. 그것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이 되어 오셨다는 사건이다. 영원과 시간이 하나가 된 것이며, 영과 육, 거룩과 세속이 하나가 된 제3의 우주를 창조하신 것이다. 이것이 곧 로고스·예수이신 그리스도의 탄생이었고, 그의 안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요한 1:14)
하나님의 영성우주가 영원한 제1의 우주요, 그가 창조하신 4차원의 천지가 제2의 우주라고 한다면, 그리스도의 탄생은 이 두 우주가 하나로 통전된 제3의 우주이다.
그럼으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를 모시고 사는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 있으면서 동시에 영원을 사는 것이며, 세속적인 일상생활이 곧 거룩한 영적 생활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 있다. 구체적으로는 그의 십자가상의 죽음과 그의 부활을 나의 것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며, 이에 동참하는 것이다. 이것을 예식화한 것이 세례예식이다.
나는 유아세례를 받은 3대째 그리스도인이다. 그러나 과연 오늘의 내가 바울과 함께 다음과 같이 고백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대신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갈라 2:20)

 

2. 지나간 죽음

90이면, 내 느낌이야 어떻든 간에, 머지않아 죽음을 맞이해야 할 시점에 와 있는 것이 객관적인 사실이다.
죽으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놓아 버려야 한다. 모든 소유물은 물론이고,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던 내 생명마저 놓아 버려야 하는 것이다.
삶이란 기쁨이며, 기쁨의 원천은 사랑에 있다. 사랑이란 나와 너 사이의 관계를 통해 창조되는 생명력이다. 그럼으로 죽음이란 모든 관계의 단절이며, 사랑과 기쁨의 소멸을 의미한다.
그런데 사랑이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이 죽음을 없이하기 위하여 그의 아들 그리스도를 십자가 위에서 죽게 하셨다. 곧 인간의 죽음을 대신 죽게 하신 것이며, 인간의 죽음을 죽인 사건이었다.
삶을 부정한 죽음을 다시 부정하신 그리스도의 절대부정은 차원을 달리한 절대 긍정으로 승화된다. 곧 죽음을 넘어선 새로운 삶인 부활의 세계가 전개되는 것이다. 그럼으로 이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고 받아들인 사람에게는 죽음이 없어진다. 죽음에 이르지 아니하고  “이미”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이다.(요한 5:24)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나간 과거사가 되었다. 보다 엄밀히 말하면, 그리스도인에게는 죽음이 없다. 이에 대해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한 11:25-26)

그리고 이렇게 질문하신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나는 마르다와 함께 내 믿음을 고백한다.

“네, 주님, 주님은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을 내가 믿습니다.”(요한 11:23)

그럼으로 머지않아 다가올 나의 육신의 죽음은 그와 동시에 내가 영체로 부활할 것을 믿는다.

 

3. 복음적 실존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인 구원의 복음은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로써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이 복음을 믿고 받아들임으로써 새로운 존재가 된다. 이에 대해 예수께서는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신 다음 그를 믿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는 내 안에 있고, 나는 너희 안에 있는 것을 알리라,”(요한 14:20)

그리스도를 매개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는 삼태극적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 된 특권을 누리며 사는 우주적 존재로 승화된다. 이것을 가능케 하시는 이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와 함께 영원히 계시게 된 성령이시다.(요한14:16)
이것을 나는 복음적 실존이라고 한다.
복음적 실존은 제3 우주 안에 사는 존재이다. 영원과 시간이 하나가 된 현재에 산다. 그에게 지금(只今)은 종말론적 지금(至今)이다. 세속적인 일상생활이 곧 거룩한 영성 생활이 되는 새로운 삶이 전개된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곧 영적인 자유와 빛의 평화, 그리고 사랑의 기쁨 속에 주어진 오늘을 여여如如하게 살아가는 존재가 된다.
삶이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창조 되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창조의 원동력이 곧 사랑이다.
복음적 실존인 삼태극의 중심에는 십자가로 상징되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 이 사랑이 있어 그리스도와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이며, 이 사랑이 상호내재하고 있는 삼태극을 회전케 한다. 삼태극의 회전은 나선형으로 상승케 하는 창조적 운동이며, 그 상승이 하나님의 뜻인 아름다운 삶을 창조해 간다.(창세 1:31)
이것은 개인의 실존 뿐 아니라, 그가 속한 공동체를 또한 창조적 구조로 이끌어 간다.
여기에 그리스도인 된 우리들의 기쁨과 감사가 있고, 하나님과의 대화인 기도가 있다.
지상에서의 나의 삶을 언제까지 허락해 주실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내가 확신하는 바는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내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힘입어 부분적으로나마 이미 하나님의 자녀 된 특권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과, 그 자유와 평화와 사랑의 기쁨이 완성되는 미래가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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