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1년 성서와 문화

 다카도 카나메(高戶 要) / 희곡작가

 

 

대전에 있는 한성신학대韓聖神學大의 박영배朴永培교수와 그 부인인 조각가 김효숙金孝淑 선생과는 근 일년 만에 서울에서의 만남이었다.
일년 전, 전시중戰時中에 일본에서 학살된 한국의 국민적 시인 윤동주尹東柱에 관해 강연한 바 있는 연세대학 채풀실에서의 재회였다. 오랜만이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나의 부족한 강연을 훌륭한 한국어로 통역해 주었을 뿐 아니라 그 번역물을 “설교집”에 게재해 주신데 대한 감사와 그 때 한국의 현대 미술관에 안내를 받아 한국의 현대미술사 및 현대 조각사를 개관槪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데 대한 감사, 그리고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김효숙 선생의 조각 작품에 감동하여 그 해 봄, 인사동의 “선화랑”에서 개최된 개인전에 참여할 생각이었으나 할 수 없었던데 대한 사과 등등 ……
그러나 막상 만나고 보니 인사도 사과도 입에서 잘 떨어지지 않았다.
이런 저런 대화중에 이전부터 부탁했던 “아트리에” 방문이 허락되어 시인 김원식선생과 전망사의 마상조 선생과 함께 김효숙 선생의 조각의 현장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있었다.
12층 아파트의 1층 35평 정도의 공간 여기저기에 조각 작품이 놓여 있었다.
초기의 단정하고 균형 잡힌 사실적인, 그러면서도 탄탄한 기초를 엿보게 하는 나부裸婦로부터 점차 ‘포름’이 팽창하고 긴축하여 요동하면서 원을 그리며 돌아 우주공간을 독자적으로 창조하기까지의 격투格鬪의 역사가 하나하나의 작품에 새겨져 있었다.
압도당하는 느낌으로 눈이 가는대로 작품을 보면서 역시 개인전 팜프렛에 실려 있는 최근작에 시선을 돌리는 시간이 많았다.
나는 그림이나 조각을 감상하는 것을 대단히 좋아하지만 작품에 관해서는 전적으로 ‘아마추어’이기에 논평論評을 할 자격은 전혀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김효숙 선생의 작품을 응시하는 중에 세가지의 특색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되었다.
첫째로, 작가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과 관계되지만 기독교적이라기보다는 넓은 의미에서 종교적 향기이다.
어떤 브론즈는 일본에서 말하자면 약사사藥師寺의 백봉白鳳, 천평시대天平時代의 관음불觀音佛, 한국에서 말하자면 신라시대의 미륵불彌勒佛을 연상케 한다.
섬세하고 고상하여 기품이 높다. 내면의 무한의 우주를 간직하고, 인간의 번뇌를 초극超克하여 강폭强暴한 영혼을 진정시키는 고요함이 있다.
둘째로, 토착적土着的인 민중民衆의 냄새가 있는 점이다. 넉넉하고 천진난만하며 그러면서도 치기稚氣를 띈 둥근 얼굴의 여인상이다.
일본에서 말하자면 ‘나기와’나 ‘고개시’와 닮았고, 한국에서 말하자면 탈춤의 가면의 천진난만한 기백과 상통한다.
대지에 힘 있게 뿌리를 내려 아무리 짓눌리고 고생스러워도 흔들림이 없는 강인함이다.
끝으로 모순, 갈등, 죄, 악에 괴로워하며, 고투苦鬪하는 찢어진 영혼의 울부짖음이 형상화 되었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거칠고 강렬한 ‘포름’이다.
 연세대학 채풀실 입구에 놓여있는 오른손의 손목과 손바닥의 브론즈는 그리스도의 손을 연상시키며, 괴로움에 떨며 말할 수 없는 고통을 표현하고 있다. 네 개의 손가락 끝이 어두움을 찌르고 대지에 파고들듯이 밑을 향해 박동하고 있다. 단지 엄지손가락만이 위를 향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우주공간을 방황하고 있다.
“엘로힘, 엘로힘, 라마사막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신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은 작품이다.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아트리에’에 멍하니 서 있는데 뜻밖에도 일년 전에 약속한 가면假面을 기증받았다. 내가 가면을 좋아한다기에 만들었다는 테라코타의 가면이었다. 좌우가 언밸런스하며 가운데 코등이 찢어진듯하며 눈이 지그재그로 붙어있다. 어딘가 비애에 젖어 있으면서도 유머러스하다.
김원식 선생이 나의 얼굴과 닮아있다고 평하였지만 어떤 점에서 나라는 인간의 처절함과 어리석음이 따듯하게 받아드려져 표현되어 있는지 모른다.
놀라운 것은 그 뿐 아니라 또 하나의 노끈으로 단단히 포장된 뭉치를 기증받은 일이다. 브론즈 십자가라 한다. 그것을 풀면 가지고 가기가 번거롭다기에 무거운 뭉치를 그대로 가방에 넣어 질머매고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여 곧 열어 보고 깜짝 놀랐다.
청동색의 중량감 있는 높이 40cm, 좌우 30cm, 폭이 두꺼운 쪽이 12.3cm되는 브론즈의 십자가였다.
한 마디로 말해서 따듯함을 느끼게 하는 십자가였다. 어떻게 이 세상에 따듯함을 느끼게 하는 십자가가 있을 수 있겠는가?
나는 수많은 십자가를 보아왔다. 루벤스의 영웅적인 십자가, 그뤼네발트의 음산한 십자가, 렘브란트의 배후에 빛을 발하는 십자가 등, …
그 어느 것이나 비참하여 처절한 십자가형의 고통을 표현하여 보는 사람에게 공포감을 환기시킨다. 그러나 이 브론즈의 십자가는 따듯하다. 죄가 용서되어 있고, 아픔이 가라앉아 있는, 그리고 슬픔이 위로받고 있음을 엄숙하게 그러나 따듯하게 전해주고 있다.
십자가의 횡목橫木에서 밑부분은 일반적으로 가슴과 하반신이지만, 거기에는 발등부분이 둘 포개어져 새겨져 있다. 마치 그것은 버선이나 치마처럼 불룩해 있다. 물론 거기에는 못자국이 나 있어 고통을 느끼게 하지만 따듯한 곡선이 평온함과 따듯함을 드러내고 있다.
다른 횡목 쪽도 팔은 없고 단지 손바닥만이 새겨져 있다. 그것은 마치 장갑 같기도 하고 저고리 같기도 하다. 부드럽게 불룩한 아이들의 장갑 같은 손바닥에는 역시 못자국의 상처가 나 있어 얼핏 풍만한 가슴의 젖꼭지와 같이 느껴진다.
옛날에 본 ‘사랑愛’이라는 한자의 기초가 된 상형문자에는 유방과 젖꼭지가 도안되어 있었으나 이 양손바닥에는 어머니의 가슴에 넘치는 사랑이 느껴진다.
횡목의 위, 머리에 해당되는 부분에서는 가시 같기도 하고, 성령의 불꽃같기도 한 그 무언가가 하늘을 향하여 나르고 있다. 십자가가 우주를 향하여 할렐루야를 부르며 날개치려는 듯하다.
김효숙 선생의 어디에서 이 활력에 넘치는 다이내미즘이 생겨났을까 ….
우리집 벽에는 이 브론즈의 십자가의 중량감을 지탱할 수 있는 벽면의 여유가 없다. 매일 책장 한 모퉁이에 안치해 놓고 바라보며 의문을 던진다.
이렇게 따듯하게 위안을 안겨주는 묵직한 십자가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를 ……

 


<박영배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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