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1년 성서와 문화

김 순 배 ·피아니스트 / 음악평론

 

 

클래식 음악은 아직도 많은 청중들이 어려워합니다. 그 중에서도 ‘현대음악’이라 불리기도 하는 20세기의 음악은 사람들이 거의 ‘기피’하는 대상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렇지 않아도 딱딱하고 지루하게 느껴지기 쉬운 클래식 음악에 한술 더 떠서 불협화음을 비롯한 각종 ‘소음’들과 낯선 사운드로 범벅이 된 20세기 음악에 친근감을 느끼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음악 애호가들이나 나아가서는 전공자들에게도 20세기 음악은 아직 완전히 소화하기 힘든 음악이니까요.
그런 20세기의 음악은 그 어느 시대에서보다도 다양한 실험과 새로운 모험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1910년경 러시아의 스트라빈스키Stravinsky가 원시시대의 난타에 가까운 음악으로 사람들의 귀를 놀라게 하고, 독일의 똑똑한 작곡가 쇤베르크Schoenberg가 익숙한 장조와 단조를 버리고 이른바 ‘무조음악’을 주창하며 낯선 음향을 들고 나온 이래 음악은 과거와의 급진적인 결별을 선언합니다.
이후 오직 새로운 것만이 미덕이라는 기치 아래 20세기의 음악은 각종 실험과 모험에 뛰어들게 되지요. 한 세기 내내 혁신적 시도들이 반복되며 새롭지 않은 것들은 절대 주목을 받지 못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실험은 점점 실험자체를 위한 것이 되어가고 음악은 새로움 자체가 목적인 정체불명의 것이 되어갑니다.

역사학자들은 중세시대, 즉 대략 주후 400년에서 1200년에 이르는 시기를 ‘암흑시대’라는 다소 폄하하는 의미가 담긴 용어로 지칭하기도 합니다. 전쟁이나 질병으로 인해 피폐했던 사회상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다음에 오는 르네상스 시대에 비해 추적할 수 있는 자료나 정보가 거의 없다는 혹은 인간의 이성이 신의 권위 아래 억압되어 있었다는 인식에서 나온 개념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음악사적으로 보면 그 시기는 철저히 교회(이 때에는 교황이 중심이 되는 카톨릭 교회) 가 주도하던 시대입니다.
‘암흑시대’라는 명칭을 음악사적 시각으로 보면 인간의 필요와 즐거움을 위한 음악 대신 교회의 필요에 부응하는 종교음악만이 정식 음악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음악사에서의 중세는 철저히 교회음악의 시대인 것입니다. 하지만 서양음악의 기본적인 인프라가 형성된 것은 바로 이 시기입니다. 즉 클래식 음악은 교회음악을 그 발원처로 삼아 발전해 온 장르인 것입니다.

한편 여러 새로운 시도들로 숨 가빴던 20세기는 다른 의미에서의 ‘암흑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의 존재나 영성자체에 대한 고찰을 담은 음악은 주류에 끼어들지도 못했을 뿐더러 아무도 그 같은 발상의 음악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새로운 것의 추구’만이 작곡가들에게 주어진 지상명령이었으니까요. 영성보다는 인간의 상상력의 극대치를 시험하고자 하는 의욕만이 충만했던 시대입니다.
이런 와중에 20세기 중반 홀연 등장한 프랑스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Messiaen의 존재는 매우 특별합니다. 현대 음악의 대부로 칭송받는 그의 작곡관은 ‘Soli Deo Gloria(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였으니까요. 그 옛날 바로크의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표방했던 음악관의 참으로 오랜만의 재현입니다. 하지만 메시앙의 정신을 이어받을 작곡가는 쉽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다들 아직도 못다한 실험에 매달리고 있었던 탓이지요.

모든 실험과 시도에 지쳐가는 20세기 후반을 향하던 와중 이윽고 영성에 맥을 댄 작곡가들이 하나 둘 출현합니다. 주로 옛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러시아 지역의 작곡가들이지요. 에스토니아의 아르보 패르트, 러시아의 슈니트케와 구바이둘리나 같은 이들이 기독교적 영성spirituality을 작품세계의 근간으로 삼은 드문 현대 음악 작곡가들입니다.
현대 음악의 바흐라는 별칭을 얻어 가진 패르트, 극심한 개인적 고난 속에 마침내 하늘의 소망을 발견한 슈니트케, 자신을 끊임없이 사로잡는 깊은 신앙적 비전을 음으로 형상화하는 구바이둘리나는 현대음악의 암흑시대를 밝히는 매우 소중한 빛줄기들입니다.

그중에서도 기독교적 영성spirituality의 지속적 추구 측면에서 가장 돋보이는 현대 음악 작곡가가 바로 소피아 구바이둘리나(1931 ~ )입니다. 이른바 ‘새로운 영성New Spirituality’의 대표 주자라 할 수 있지요. 그녀의 작품에서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악기들을 예사롭게 조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타악기와 색소폰 그리고 일본 악기 고토koto와 서양의 오케스트라가 한 작품에서 만나는가 하면 첼로와 합창에 타악기의 조합이 자연스럽게 끼어드는 식이지요. ‘첼로 협주곡’에도 오케스트라가 맡아야 할 반주를 합창이 대신 하는데 그 내용은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코가 신을 찬미하는 시편입니다.
‘Seven last words’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상의 칠언을 독특하게 표현합니다. 여기에서도 역시 낯선 악기인 러시아식 아코디온 바얀Bayan이 사용되지요. 바얀이 압축되거나 풀어지며 연주되는 양상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상에서 호흡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In Croce’라는 작품에서는 오르간이 수직적 음향을 구성하고 첼로가 수평적 진행을 맡음으로 십자가의 형상을 그대로 구현하고 있으며 대표작으로 꼽히는 ‘요한 수난곡’에서는 바리톤과 팀파니 또는 타악기와 베이스의 대화가 요한복음서와 계시록을 융합한 대본을 효과적으로 전달해 줍니다.
그녀의 음악적 상징주의는 메시앙처럼 작곡 기법상의 장치로 나타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특정 악기나 악곡의 구조 자체를 상징의 매체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렇듯 구바이둘리나의 작품은 영성과 드라마가 절묘하게 결합되어 매우 특별한 임팩트를 자아냅니다.

이질적인 악기들의 앙상블을 통해 모든 것을 아우르고 포용하되 그것 너머를 지향하는 신앙의 절대세계를 표상하고 싶었던 그녀입니다. 하지만 온갖 새로운 시도들은 시도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고 작품에 사용한 특정 장치 역시 실험 그 자체를 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그녀의 고백입니다. 그 누구보다도 혁신적인 작곡가이지만 ‘실험적 아방가르드’로 불리는 것을 결코 기꺼워하지도 않습니다. 작곡가란 모름지기 ‘혁신’에 집착하기보다는 ‘깊이’를 추구해야 한다고 구바이둘리나는 주장합니다. 이것이 바로 ‘새 것 지상주의’에 심취해 있는 여느 현대 작곡가들로부터 그녀를 구분하는 결정적 차이라고 할 수 있지요.
자신을 ‘종교적인religious 작곡가’라 부르는 이들에게 구바이둘리나는 이렇게 답합니다. “‘Religion’이란 본질적으로 관계의 회복이다. 삶에 있어서 모든 종류의 잃어버린 연계성, 즉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람과 신 사이의 관계, 그것들의 회복을 시도하는데 쓰이는 것이 음악의 보람이다.” 척박한 영성의 불모지, 또 다른 의미의 암흑시대 20세기 후반 등장해 음악적, 영적 각성의 계기를 마련해 준 구바이둘리나 덕분에 미래를 향한 현대음악의 지평이 훌쩍 넓혀진 것이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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