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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질하지 말라

성서와 문화 2011.09.27 19:59 조회 수 : 3100

조 용 훈 ·신학

 


일반적으로 십계명의 제 칠 계명(도둑질하지 말라)은 자본주의의 토대인 사적 소유권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이해되곤 한다. 하지만 십계명이 선포될 당시의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사적 소유권 개념이 매우 낯설었다. 부족 공동체요 유목사회였던 고대 이스라엘에서 우물이나 목초지, 그리고 가축은 공동 소유였다.
이 같은 소유에 대한 공동체적 이해는 추수 때에 가난한 사람들의 이삭줍기를 배려한 데서도 알 수 있다. “밭에서 난 곡식을 거두어들일 때에는 밭 구석구석까지 다 거두어들여서는 안 된다. 거두어들인 다음에 떨어진 이삭을 주워서도 안 된다. 포도를 딸 때에도 모조리 따서는 안 된다. 포도밭에 떨어진 포도도 주워서는 안 된다. 가난한 사람들과 나그네 신세인 외국 사람들이 줍게, 그것들을 남겨 두어야 한다.”(레위기 19:9-10)
소유에 대한 공동체적 관점은 모든 소유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생각에 토대를 둔다. 그런 생각에서 히브리인들은 땅을 영구히 매매할 수 없었다. 인간에게는 소유권이 아니라 사용권이 허락되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것이요 동시에 공동체의 것인 땅이나 가축, 우물을 사유화하려고 시도했다. 그래서 경쟁력이 모자란 사람들이 생존권을 잃게 되고, 마침내 공동체의 존립이 위태롭게 되었다. 아간이라는 사람 이야기(여호수아 7장)는 한 개인이 공동체 전체의 소유물로 간주된 전리품을 사유화했을 때, 민족 전체가 어떤 위기에 빠지는가를 잘 보여준다. 아간 사건으로 말미암아 히브리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다음 전투에서 크게 지고 만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절도죄에 대해 이슬람교는 유대교보다 훨씬 무겁게 다룬다. 이슬람교에서는 범죄자에게 신체형을 선고하는데 비해 유대교는 배상법으로 그친다. 그 이유는 아마도 유대교에서는 도둑질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사회적 약자 계층에 속한다는 사실을 고려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구약성서는 생계형 좀도둑보다는 탐욕스런 왕도둑을 더 신랄하게 비판한다.
예레미야는 “불의로 궁전을 짓고 불법으로 누각을 쌓으며 동족을 고용하고도 품삯을 주지 않는 자에게 화가 미칠 것”을 선포한다.(22:13) 야고보서 역시 가난한 일꾼의 품삯을 도둑질하는 부자를 비난한다.(야고보서 5:4) 구약성서가 왕도둑을 비판하는 이유는 그들이 비록 드러내놓고 남의 것을 강탈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온갖 속임수와 부정한 방법으로 도둑질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성서는 절도죄를 개인의 죄로 보기 보다는 사회적 죄로 본다.
사도 바울은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을 남의 것을 훔치지 말라는 소극적 해석에 머물지 않고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가난한 사람을 위해 돕는 삶을 살라고 권면한다.(에베소서 4:28) 예수님께서도 부자에게 가진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따라올 것을 요청한다. 이런 가르침에 따라 기독교는 역사 초기부터 가난한 사람을 위한 각종 구제와 봉사에 전념했다. 사도행전 6장에서 우리는 초기 예루살렘 공동체가 구제사역을 말씀사역 만큼이나 비중 있게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과 같이 가난이 구조화, 제도화되는 사회에서는 개인적 구제만 아니라 경제정의 실현에도 관심해야 한다. 개인적 자선이라는 덕목만 아니라 경제정의를 위한 사회비판과 정치참여의 덕목도 요청된다. 경제정의를 실현하는 데 있어 일자리 창출은 무엇보다 우선적인 과제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는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경제성장이 계속되고 부가 창출되어도 일자리는 늘지 않는다. 노동할 권리를 개인들에게 보장하기 위해 국가와 기업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사회적 취약계층을 고용해 자립을 도우려는 취지에서 활성화되고 있는 사회적 기업에 대한 교회의 관심도 요청된다.
경제정의 실현에 교육의 기회 균등도 중요한 과제다. 우리나라처럼 학력별 임금격차가 아주 큰 사회에서 경제정의는 교육의 기회균등을 통해서만 실현된다. 최근의 한 통계를 보면, 소득 상위 20%의 사교육비 비중이 하위 20%의 다섯 배를 지출하고 있다. 가난의 대물림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교육의 기회균등을 위한 정치 참여만 아니라 저소득 자녀를 위한 공부방 운동 같은 일에도 더 관심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경제정의에 관심하는 교회는 국가 간의 경제정의에도 관심해야 한다. 장하준 교수는 그의 책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강도만난 이웃을 돕는 대신 그들의 약점을 이용해서 잇속을 차리는 나쁜 사마리아인을 언급한다. 1997년 우리나라 외환위기 때에 국제금융기구(IMF)가 그랬듯이, 간혹 국제기구들을 동원해서 경제 강대국들이 자기 잇속을 차리는 일들이 있다. 다행스럽게 최근에 사회단체나 교회에서 공정무역fair trade에 대한 관심이 높다. 커피를 예로 들면, 아프리카나 남미에서 원두를 생산한 농민은 소비자가 지출하는 커피값의 겨우 1%에 해당하는 돈만 손에 쥐고 나머지 99%는 유통업자와 소매상 몫이 된다. 공정무역운동은 생산자에게 정당한 값을 지불함으로써 함께 살아가는 세계에 기여하고자 한다.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는 약육강식의 시장에서 부자들의 큰 도둑질과 구조적 도둑질 문제를 간과하는 잘못을 범한다. 그 대신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좀도둑질만 문제 삼는다. 이에 반해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서는 사회 구조악을 문제 삼으면서 작은 도둑질의 심각성을 간과하거나 가볍게 다루는 단점이 있다. 성서는 소유와 재산의 문제에 대해 이데올로기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자본주의건 아니면 사회주의건 모든 형태의 이데올로기는 문제를 폭력적으로 해결하려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세리였던 삭개오에게서 강제로 돈을 빼앗지 않으셨다. 삭개오를 감동시킴으로써 자기 스스로 잘못을 깨닫게 하셨다.
예루살렘의 초대교회 공동체 역시 감동스런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함께 모여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줌으로”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다.(사도행전 2:44-47) 고대 기독교의 변증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아리스티데스Aristides가 주후 125년경에 기독교인을 박해하던 로마황제 하드리안에게 쓴 변증서에는 더 감동스런 그리스도인의 삶이 소개되고 있다: “그들(기독교인)은 참으로 인류애와 친절함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들 가운데서 거짓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며, 서로를 사랑합니다. 그들은 과부를 멸시하지 않으며, 고아를 슬프게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공정히 배분된 것조차 자신만의 소유로 여기지 않습니다 …. 그들 중 가난한 사람이 죽으면 그 죽음을 발견한 사람이 누구나 자신의 능력에 따라 그를 장례해 줍니다 …. 그들 가운데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이 있으면 그들의 일용품이 풍부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2-3일씩 금식하면서 그들의 일용할 양식을 가지고 가난한 사람을 돕습니다.”
그러고 보면, 복음의 능력은 교회가 어떻게 설교하느냐가 아니라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며 살아가느냐에 더 많이 좌우되는 것 같다. 가난한 사람을 대하는 교회의 태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교회 스스로가 가난의 영성을 추구하는 일이다. 여기서 가난의 영성이란, 가난한 자들과 연대하며 가난한 자들을 위해 투쟁하는 것만 아니라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하여 스스로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는 삶을 가리킨다. 그것은 물질적 풍요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이 탐욕의 시대에 교회가 우리 사회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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