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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의 추억

성서와 문화 2011.09.27 19:57 조회 수 : 2907

허 만 하 ·시인

 


암스테르담은 조용하고 차분한 도시였다. 예약했던 호텔 방에 짐을 풀고 가벼운 마음으로 거리 산책을 즐길 수 있었다. 중국집에 들러 닭고기로 저녁을 때울 수 있었다. 20층 객실에서 내려다 본 바깥은 운하와 벽돌색 지붕이 인상적이었다.
네덜란드의 수도인 이 도시를 찾았던 것은 국립 반 고흐 미술관을 찾아보고 싶었던 소망과 고독한 철학자 스피노자가 태어난 고장의 공기를 맡아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발자국이 남아있는 이 도시의 거리를 걸었던 것은 32년 전(1979 년)의 초여름 일이었다.
내가 이한직 시인의 추천으로 『문학예술』을 거쳐 등단한 것은 경북대 의대를 졸업한 1957년의 일이다. 나는 등단 소감의 끝 구절을 스피노자의 『에티카』 끝 구절을 그대로 빌려 썼던 것이다. 그나마 거기에 라틴어 그대로 차용하는 현학성을 드러냈던 것이다.
하이데거가 관심을 가졌던 독일의 시인 노발리스가 그를 두고 신에 취한 사람이라 말했던 스피노자에게 나는 이상한 마음의 빚을 지고 있었던 것이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며 렌즈를 갈아 생계를 이어가며 『에티카』(원래 스피노자가 생각했던 제목은‘나의철학’이었다)를 완성한 스피노자의 겸손한 생애가 어쩐지 돋보였던 것이다.
나는 그 무렵 『에티카』 자체를 읽지 못하고 일어판 해설서를 읽었었다. 『에티카』는 장대한 개념의 탑이었다. 그는 이 저서 집필 동안 손님 접견도 멀리하고 3개월 동안 바깥출입도 하지 못했었다는 일화에 관심을 가지기도 했었다.
그의 주저 『에티카』는 완성되었지만 핍박으로 출판을 단념할 수밖에 없었던 고독한 철학자, 그 고독이 숭고하게 보였었다. 평생의 소원인 그 저서를 완성한지 2년 후 폐질환(유리가루를 들여 마신 결과로 발생한 진폐증과 무관할 수 없는 것이 아닐지 나는 생각한다)으로 죽게 되어(1677년, 44세), 벗들의 도움으로 『유고집』(네덜란드에서 금서가 됨)의 일부로 출판되기에 이른 불우했던 평생. 명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자연이 곧 신이라 믿었던 소신의 철학자 스피노자가 말년에 살았던 고장은 헤이그(해아밀사의 그 해아)였다.
그의 사상은 고독하지 않았다. 대 시인 괴테는 젊은 시절 스피노자의 사상에 접하고 정신을 휩쓰는 회오리바람을 느꼈다고 기술하고 있다(『시와 진실』). 언젠가 대여 김춘수 시인에게 그의 천사개념에 대해서 물은 적이 있다. 나는 그의 대답을 들으면서 바로 스피노자를 떠올렸었다. 천지만물에 천사가 깃들어 있다는 것이 대여의 믿음이었던 것이다.
스피노자는 몸과 정신의 이원론에 사로잡혀 있던 데카르트 철학의 결함을 극복하는 방향에서, 근대에 있어서 처음으로 완전한 합리주의적 체계를 구축한 철학자이다. 그의 사유체계는 전통의 사상에 새로운 세계관을 정교하게 통합한, 독창적이고도 깊이를 가진 철학이라 한다.
의대학생으로서 철학분야 서적을 즐겨 읽었던 나는 스피노자의 대표작 『에티카』의 끝 구절에서 그의 체험이 낳은 아름다운 깊이를 느꼈었다. 내가 당선소감에 빌려 썼던 『에티카』의 끝 구절은 “모든 고귀한 것은 어렵고도 드물다”였다. 평생을 렌즈를 갈며 살았다는 그의 전기적 사실도 평생을 현미경 렌즈와 더불어 살아가게 될(나는 병리학 전공으로 현미경과 함께 지냈었다) 나의 미래와 겹쳐보기도 했던 것이다. 스피노자의 이 구절에서 어쩐지 고난과 평화가 하나가 되는 위로를 느꼈던 것이다. 나는 그 무렵 과학과 시의 길을 걸어야 하는 앞날의 어려움을 맞이할 예감을 각오처럼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남들이 모르는 비밀스러운 스피노자와의 인연을 가슴에 숨긴 채 나는 암스테르담 거리를 부질없이 걸었었다. 스피노자가 걸었을지도 모를 거리라고 나를 타이르면서 낯선 거리를 걸었었다. 그의 무덤은 헤이그 한 교회에 있으며 그곳에 그의 동상이 서 있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었지만, 끝내 그 곳에 참배하지 못하고 말았었다.

1973년에 개관한 국립 반 고흐 미술관 Riksmuseum Vincent van Godh Amsterdam은 산뜻한 기하학적 아름다움을 지닌 현대식 건물이었다. 유리가 이름다웠던 이 건물 안에 고흐의 그림과 편지들, 고흐 관련 다양한 소장품이 수장되어 있고 그 일부가 전시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미술관에서 고흐의 작품들을 직접 살펴볼 수 있었던 일은 감격 그 자체였다. 화집에서 사귀었던 낯익은 그림 앞에 서면 그가 잡았던 붓 자국에 담겨 있는 고흐의 정신이 내 가슴 안으로 뛰어드는 것 같았다. 초기에서 만년에 이르는 작품 하나하나가 내 혼을 흔드는 것 같아서 때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었다. 장내는 고요했다. 사람들은 기침도 삼가 하는 것 같았다.
네덜란드 남부의 한촌 준데르트에서 태어나(1853,3,30) 프랑스의 오베르 쉬즈 우아즈에서 숨질 때(1890,7,29)까지의 37년 동안의 발자국을 살펴보는 일은 도저히 하루 동안에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불타오르는 보리밭의 불꽃같은 생을 살았던 한 화가의 숨결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었던 일은 동양의 한 시인에게는 과분한 일이었다. 그의 공간에서 풀려나 초록색 잔디밭에 선 나는 한국에 돌아가면 오직 시의 길에 매진해야겠다는 결의를 다질 수 있었다. 1979년 6월 22일의 일이었다.

이 미술관에는 2백에 육박하는 고흐의 회화와 5백에 이르는 드로잉과 7백여 편의 고흐의 편지 및 이력관련 문서들이 수집되어 있으니 네덜란드 정부의 문화에 대한 관심과 국민들의 고흐 사랑의 뜨거움이 낳은 예술의 전당이었다. 미술을 사랑하는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 암스테르담의 국립 고흐 미술관은 분명히 세계미술 연구의 한 중심이 되어 있었다. 나는 몇 년 전 찾아보았던 양구의 박수근 미술관을 떠나면서 두 미술관의 속내를 비교해 보았던 일을 떠올리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벨기에 국경에 가까운 네덜란드의 시골마을 준데르트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빈센트 반 고흐가 소박한 시골 농부로서의 일생을 마치지 않고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화가가 되는 계기는 고흐가 16나이로(1869년) 미술상 구필Goupil상회 헤이그 지점의 점원으로 취직한데 있다 할 수 있다 구필상회는 파리에 본점이 있는 국제적인 화상이었다. 고흐는 본사의 명에 따라 영국 런던지점, 파리본점에 일터를 옮겼으나, 일에는 흥미를 잃고 성서 읽기에 빠져들어 지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77년(24세) 고흐는 암스테르담의 신학교에 들어간다. 몇 년 후 고흐는 벨기에의 목사 양성소에 들어가 보리나즈 광산에 전도하러 간다. 이 탄광촌에서 그는 노동자들과 함께 지나며 헌신적인 봉사활동을 펼친다. 그 때의 그의 심경은 다음과 같다.
“나로서는 평생을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를 위한 일에 노력하고 싶다. 그 일에 실패하고 내가 쓰러진다 하더라도, 그 곳에는 항상 멀리 서 있는 것이 있을 것이다. 이 비참한 밑바닥에서 저 정상을 바라보는 그리움은 남을 것이다.”(1876년)
 젊은 고흐는 이런 이상대로 지원 전도사로 보리나즈의 탄광에서 일하게 되지만 가난한 광부들을 위하여 옷가지도 돈도 침대도 내어놓는다. 이런 일이‘전도위원회’의 눈에는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비쳐 1879년 7월 그는 해임된다. 이 일이 빈센트에게 화가의 길을 열어주는 기연이 되었다. 이때의 심정을 우리는 동생인 테오에게 쓴 다음 편지로 짐작할 수 있다.

“새들이 털갈이를 하는 시기, 그것은 우리 인간에 대한 역경 또 불행 따위의 어려운 시기에 해당한다. 사람들은 털갈이 시기에 머물러 있을 수도 있고 다시 태어나서 그 곳을 벗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인간이 할 일은 못된다. 결코 즐거운 일은 못되니까.”

그는 털갈이 후 새로 태어나는 길을 택한 것이다. 그는 헤이그에서 그린 선묘화 “슬픔”을 테오에게 보내며 “여태까지 내가 그린 인물상 가운데서 최상의 작품”이란 편지를 쓴다. 이 단색 선묘화가 어떤 경로를 밟았는지 종국에 암스테르담의 국립 반 고흐 미술관을 찾아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같은 편지에서 그는 “그 곳에는 적어도 내 심장의 일부분이 들어 있다. 인물상이든 풍경화든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깊은 고통이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사람들이 내 작품에 대해서: 그 화가는 깊이 느끼고 날카롭게 느낀다고 말하는 지점에까지 이르고 싶은 것이야”라 쓰고 있다.

고흐가 남긴 편지가 그의 작품을 비추고 그의 작품이 그의 편지를 비치는 상호조명의 이상한 세계에 우리는 들어서게 된다. 그의 편지는 문학적이다.“겨울 보리가 추위를 견디듯이 나는 겨울을 견딘다고 한 노동자가 말했지만, 정말 그렇다”(1883,2,8)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고흐는 권총으로 스스로의 목숨을 끊고 말았지만, 사후 그의 몸에서 나온 테오에게 쓴 편지 말미는 다음과 같다. “나는 내 그림에 목숨을 걸었고, 내 이성은 그 때문에 반쯤 부서지고 말았다. -그래도 좋다. 허나, 너는 내가 아는 한 흔히 보는 상인 무리가 아니다. 너는 아직 인간답게 행동하는 쪽을 선택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그런 보람이 있는 것일까?”
37년이란 짧은 생애의 마지막 10년을 고흐는 문자 그대로 신들린듯 그림 그리기에 집중했었다. 이 사이에 그는 8백점에 이르는 유화와 선묘화를 남기고 있다. 고흐의 생가가 있는 준데르트의 고흐 광장에는 농밀한 우애로 유명한 빈센트와 테오가 서로 엉겨 있는 청동 동상조각이 서 있다 한다. 러시아 출신의 프랑스 조각가 자킨(Ossip Zadkine)의 작품으로 이 동상 받침대에는 고흐가 입원해 있던 정신병원의 흙이 들어

있으며(상 레미 드 프로방스 시에서 기증), 동상 건립식 날에는 전 네덜란드 율리아나 여왕이 참석했었다 한다. 나는 고요한 호텔의 밤 시간 속에서 관광자료를 살피며, 일상생활에 스며들어 있는(또는 일상생활에서 우러나는) 참된 문화의 존재양식을 생각했었다.

고흐의 일생과 그의 작품의 터치를 집중적으로 만나본 나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 감동과 감격에 사로잡힌 채 공연히 암스테르담의 거리를 이리저리 걸었었다. 운하에서 헤엄치고 있는 오리를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했다. 호텔로 돌아 온 것은 제법 늦어서였다. 저녁 9시 35분인데도 바깥은 환했다. 호텔 창 넘어 멀리 바다가 보이는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커튼 닫기가 아쉬웠다.
다음날 호텔을 떠나면서 매점에서 조그마한 나막신 한 켤레를 샀었다. 지금도 그 나막신을 가지고 있다. 그 나막신은 암스테르담을 찾아본 여행의 기념품이 아니라, 길의 상징이다. 앞으로 내가 걸어야 할 나들이 길. 그 길은 어느덧 내 시의 길에 겹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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