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1년 성서와 문화

김 창 락·전 한신대 교수 /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장

 

 

1.
<세속도시The Secular City>의 영어 원본의 초판이 출판된 것은 1965년이었다. 저자인 하비 콕스Harvey Cox는 그 때 36세의 젊은 무명 교수였으나 이 저서를 통하여 그는 일약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는 신학자의 대열에 들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하비 콕스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없을지라도 <세속도시>에 대해서는 들어 본 사람이 많다고 할 정도로 저자보다 그의 저서가 더 널리 알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저서는 그가 하버드 대학 교수로 부임한 이후 처음으로 내놓은 작품이었지만 이른바 전문적인 학술서적에 속하는 것은 아니었다. 전문적 학술서적이라 함은 학자가 학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논증을 펼치는 깨알 같은 각주들로 숨막히게 범벅이 된 저서를 가리킨다. 그러한 것은 학문적으로 아무리 탁월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하더라도 독자의 99%에 해당하는 일반인들에게는 외면당하기 십상이다.
<세속도시>는 전국기독교학생연맹(NSCF)의 회원들의 교육교재로 사용한다는 목적으로 저술되었다고 한다. 어떤 저서가 베스트셀러로 히트를 칠 것인지 아닌지는 일반 독자들은 예측하지 못하는 경우라도 출판전문가들은 환히 안다. 그렇지만 이 <세속도시>에 대해서는 출판전문가들의 판단도 완전히 빗나갔다. 의뢰받은 첫 출판사는 출판을 거절했으며 이 저서를 출판해준 맥밀란 출판사도 초판 발행부수의 절반인 5,000부를 NSCF가 구입해준다는 조건 아래 출판을 해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출판사상 유례없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세속도시>는 신학서적으로는 드물게 출판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16개나 되는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총 100만부 이상이 팔리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던 것이다.


2.
<세속도시>는 독일 마부르크 대학이 선정한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개신교 신학저서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1988년에 <뉴욕타임스>지는 20세기에 가장 위대한 신학자 10명 가운데 하나로 하비 콕스를 꼽았으며 미국에서 라인홀드 니부어R. Niebuhr와 P. 틸리히Tillic 이후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로 칭송했다.
콕스는 <세속도시> 이후에도 많은 훌륭한 저서들을 출간했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오로지 <세속도시>가 어떠하기에 20세기 후반에 신학계에 그렇게 큰 영향을 끼쳤으며 이것으로 말미암아 저자가 20세기 세계 10대 신학자의 대열에 우뚝 서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3.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서에서 ‘도시’라고 하면 요한 계시록에서 죄악으로 멸망을 선고 받은 큰 도시 바빌론 또는 죄악으로 이미 멸망 받은 옛 소돔과 고모라 성을 떠올릴 것이다. 생계나 자녀교육 등의 사정 때문에 부득이 현대의 대도시에 거주해야 하는 사람들은 극심한 환경오염에 시달리면서 쾌적한 시골을 이상향으로 꿈꿀 것이다. 낭만주의자들은 일찍부터 “신은 시골을 만들었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는 격언을 유포시켰는데 오늘날 도시인들의 거의 대다수는 적극적으로든지 암묵적으로든지 이 말에 정서적으로 동의할 것이다.

 

4.
명의名醫가 되려면 먼저 병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다음으로 이에 따른 적절한 처방을 내려야 한다. <세속도시>는 넓은 범위로는 현대의現代醫, 좁은 범위로는 20세기 후반기의 사회현실의 특수성에 대한 진단과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서의 그리스도 교회의 실천방안을 쾌도난마快刀亂麻처럼 과감하고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리스도 교회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두고 그 당시에 여러 거물급 신학자들과 대다수 교회의 지배적 세력들이 서로 다른 깃발을 내걸고 “이것이 나아갈 길이다” 하고 선전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반 신학자뿐만 아니라 평신도들은 곁길로 오도되거나 어느 길을 선택해야 할지를 모르고 방황해야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상처로 서구 사회에는 전반적으로 실존주의 사조가 휩쓸고 있었는데 이에 따라 비판적인 신학계는 실존주의 신학에 빠져들어 있었다. 특히 미국에서는 60년대 초에서부터 중반까지 이른바 ‘신의 죽음의 신학’이 지성적 신학자들 가운데 유행하고 있었다.

‘세속도시’라는 것은 현대사회의 주요 특징을 표현한다. <세속도시>의 부제는 ‘신학적 전망에서 본 세속화와 도시화 Secularization and Urbanization in Theological Perspective’이다. 그러니까 세속도시는 세속화와 도시화가 융합되어 나타난 오늘날의 사회 현상이다.
세속화는 현대인이 이전 시대와는 전혀 달리 이 세계를 이해하는 가치관적 태도를 표시하며, 도시화는 현대인이 살아가는 주된 삶터의 구조적 측면을 표시한다. ‘속세’ 또는 ‘세속’은 종교적인 관점에서 인간 세상을 가치 비하적으로, 부정적으로 지칭하는 데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콕스는 ‘세속화’는 인간이 종교적, 형이상학적 감독으로부터 해방되는 과정, 즉 인간의 관심이 저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향하는 것을 가리키는 데 사용한다. 그는 세속화를 사회와 문화가 종교적 지배와 폐쇄된 형이상학적 세계관의 감독을 벗어나는 거의 되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과정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네덜랜드 신학자 판 포이르센C.A. van Peursen의 말을 인용하여 세속화란 “처음에는 인간의 이성과 언어에 대한 종교적인 통제에서, 그 다음에는 형이상학적 통제에서” 인간이 구원되는 과정이라고 말하면서 세속화는 인간이 모든 초자연적인 신화와 신성한 상징을 깨뜨리는 것, 인간이 저 너머 세상에서 이 세상과 지금 (saeculum, 이 현재의 시대)으로 관심을 돌리는 것, 인간이 역사를 탈운명화 하는 것, 즉 세상이 자기 손에 맡겨졌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라 했다. 그러므로 현대 도시인들이 세속화 되었다는 것은 인간이 그에게 부여된 자유를 책임적으로 행사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장성했다는 것을 뜻하는 셈이다.
도시화는 단순히 주거민의 수적 규모가 거대하게 팽창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고대, 중세, 근세에도 대도시는 있었으나 현대의 도시와 성격이 전혀 다르다. 현대 도시는 현대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건설된 기술도시technopolis이다. 도시화는 다양성과 전통 해체가 최고조에 다다른 공동생활의 구조를 뜻한다.
현대 기술도시의 물리적 특징은 편리한 통신망과 도로망이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야기되는 현대 기술도시가 제공하는 삶의 두드러진 두 가지 현상은 익명성과 이동성이다. 이 익명성과 이동성은 많은 종교인들, 신학자들, 사상가들이 가장 흔하게 공격 대상으로 삼는 현대도시 사회현상의 두 특징이기도 하다. 도시인은 얼굴이 없이 비인간화 되었으며 또 깊은 인간관계나 지속적인 가치를 계발할 시간도 없이 끊임없이 이리저리 옮겨 다녀야만 하는 신세라고 이들은 비평한다.
그러나 콕스는 이들과 전혀 달리 익명성과 이동성의 긍정적 측면을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첫째로 익명성은 현대 도시의 생활을 인간적일 수 있게 만들며 둘째로 익명성은 많은 사람들에게 위협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훨씬 더 해방적인 현상이다. 익명성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법과 인습의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자유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왜냐하면 도시 생활의 익명성 형태는 인간생활의 필수적인 사생활을 보호하는 데 도움을 주며 도시인간을 인습과 겉치레라는 족쇄에서 자유롭게 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현대 도시인은 자발적이든지 부득이 하게든지 이곳저곳으로 이동한다. 이러한 이동성을 개탄하는 문학 작가들도 있지마는 미국에는 이것을 찬양하는 경향이 있는 작가들도 많이 있다. 이동성은 사회 변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현상유지를 옹호하는 자들은 언제나 이동성을 반대해 왔다. 이동하는 것을 반대하고 거주와 직업의 비이동성을 예찬하는 심리는 반동적인 정신 상태에서 나오는 낭만적인 왜곡이라고 콕스는 비판한다. 사회학자들은 이동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사상과 가능성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더 관대하다고 한다. 미국 흑인 민권운동이 가동된 것은 그 전에 많은 시골 흑인들이 도시지역으로 이동한 경험과 많은 흑인 청년들이 군복무를 통해서 이곳저곳으로 이동해 본 경험이 축적되었기 때문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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