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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비치는 그림

성서와 문화 2011.06.17 14:47 조회 수 : 3188

[한점 朴 用 慈 ·화가]

어느 화가의 그림을 두고 꼭 있어야 할 함축된 깔끔한 조형미와 물감 낭비가 없는 것이 마치 절에서의 발우공양을 연상케 한다는 평을 접한 적이 있다. 그림도 우리의 삶도 발우공양처럼 꼭 필요한 것만으로 유연하고 즐겁다면 참 좋으리라. 
하지만 우리는 필요 이상의 것들을 탐하기에 핵심의 심층에 들어가지 못하고 외연을 서성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림 그린다는 핑계로 닥나무로부터 오랜 공정과 유통과정을 거쳐 내 앞에 다가온 종이를 쓰고 버리는 일을 하는 나는 어디쯤 와 있는 것인지 ….

존재 자체에 대한 어설픈 질문에 휘감겨있던 10대의 설익은 무거움은 그림을 좋아하던 내게 마치 구원 비슷한 길이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감으로 자연스레 미술대학을 지원하게 했다. 
대학을 입학한 시점에서 어느 사이 4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그림과 친하게 지내고는 있지만 기대하던 구원이나 동경의 실체에 다가선 것은 아닌 채 그림과 함께 호흡하며 성장하고 있을 뿐이다. 
실제 그림 그리기는 심층에 들어가는 듯한 기쁨의 맛이 있는가 하면, 실패하고 절망하는 양극을 경험하게 하며, 그 모두를 넘어서려는 과정임을 체험하게 한다.

우리는 모두 삶을 통해 타인에게 저절로 보여지는 존재들이다. 어떻게 살아가든 타인 앞에 서 있게 되는 존재인 나는 알게 모르게 배움과 영향을 주신 분들과 함께 있는 것이니, 우주의 광대한 공간과 시간 속에 한점 티끌 같은 유한자 존재로 서 있는 나는 나만이 아닌 것이다. 어쨌든‘나’라는 한 모양새를 지켜보고 있는 이들은 친구와 가족, 돌아가신 부모님, 선생님만이 아니라 때로는 그림 또한 나를 비추며 위안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호수’라는 제목을 가진 작은 크기의 그림이 그것이다. 살고 있는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곧바로 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호수 주위는 녹색과 푸른색이 어우러져 있고 이와 함께 살짝 깃들여진 밝은 색감도 참으로 아름답다.
호수는 아이보리 색으로 표현되며 구상성을 띠고 있지만 이 그림은 호수를 보고 묘사하여 그린 그림이 아니라 작업실에서 만들어진 ‘호수’임에 틀림없으니 그린 분 마음의 ‘호수’를 그려 놓으신 것은 아닐까 한다.
그림을 그린 분은 이봉상 선생님(1916~1970년)이신데 선생님의 다른 그림을 직접 본적은 별로 없고 다만 100인 선집(한국 현대미술 대표작가 100人選集 1976년 금성출판사)을 가지고 이봉상 선생님의 다른 작품들을 살펴보니 구상성이 남아 있되 상징적인 표현을 즐기셨던 것으로 보이고, 내게 있는 이 그림은 좌우 손바닥을 펼친 크기의 작은 크기이지만 선생님의 수작秀作이라고 느껴진다.
종이에 유채로 그려진 이 그림이 70년대 초반 우리 집에 왔을 때부터 가족들은 모두 이 ‘호수’ 그림을 좋아했다. 당시 재직하시던 대학 후문 근처에 연구실을 가지고 계시던 아버지께서는 제법 떨어져있는 정문 가까이의 미술대학 선생님들을 만나 함께 화랑구경에 나섰다가 그림을 구입해 오시기도 하셨던 기억이 있다.

당시 우리 집에 있던 그림 중에서도 특별히 마음이 가던 이 ‘호수’그림이 내게 온지도 이미 한참 전이라, 무심코 그림 앞을 스치며 지나곤 하지만 가끔 그림 앞에 잠시 서면 호수가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추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림은 작가가 그리는 시간보다 타인에게 보여지는 시간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긴 것도 그림 그리기가 참으로 어려운 일임을 알려주는 척도이다. 
좋은 그림은 적절히 잘 익은 열매에 농부가 손을 대면 자연스레 뚝 떨어지는 이치와 조금은 닮아 있는듯 싶다. 
또한 사과나무를 가꾸는 이가 정성을 다해 키운 한그루 나무에서도 사과 맛이 조금씩 다르듯 한 사람이 마음을 다하여 그린 그림들도 그 맛이 다른 것을 보면 그림그리기 또한 농부가 하늘 보며 농사짓듯, 그림 작업도 그리는 이의 몫만은 아닐 것이다.

이제 종이나 천에 물감으로만 그림을 그리는 시대는 이미 아니지만, 무엇을 통해서든 그 본질이야 어찌 다르랴. 때로 눈을 강하게 잡아끄는 조형물로 일단 사람을 모으는 전시물들을 대하게 되면, 사람 마음의 심층에 조용하고 깊게 다가서는 그림이 더 그리워지고, 작은 크기의 그림‘호수’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마치 사람 마음을 비추는 거울 앞에 선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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