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1년 성서와 문화

[박 영 배 ·본지 편집인 / 신학]

 

 

일찍이 아테네의 현자賢者 소크라테스는 델피의 신전에 기록된 ‘네 자신을 알라’한 이 말을 신의 계시로 받아드려 모든 질문의 기초로 삼았다. 과연 인간이 어떠한 존재인가 하는 이 물음은 인간 스스로가 제기한 물음 중에 가장 근원적인 문제이다. 인간의 모든 문제는 자기 자신을 아는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대 아테네의 소크라테스와 같은 전형적인 인물을 근대 사상가 중에서 찾는다면 19세기 덴마크의 사상가 쇠렌 키엘케고어Soren Kierkegaard 1813-1855에서 찾을 수 있다. 그의 42년의 짧은 생애는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이었다. 그러기에 그의 전 저작활동은 자기에 대한 깊은 통찰과 자기 분석에서 한발도 벗어나지 않았다.
키엘케고어는 인간의 문제를 실존적으로 생각하려한 최초의 사상가이다. 그가 뜻하는 실존은  행동과 사고가 하나이다. 그래서 그는 인생의 참된 진리의 문제들에 관심을 갖는 데는 객관적이고 소극적인 태도가 아니라, 우리의 주체적인 전 인격과 인간성을 투자하는 태도로 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키엘케고어의 연구가의 한 사람인 샤르 르 블랑은 키엘케고어를 다른 철학자로부터 구별하는 가장 큰 특징으로 인간의 파토스를 정당한 철학적 주제로 격상시켜 거기에 위엄과 새로운 위상을 부여한 것이라 했다.
19세기 말 인본주의적 낭만주의浪漫主義와 객관적 보편주의普遍主義가 성행하는 사상적 풍토에서 특이한 모습으로 등장한 키엘케고어는 철학적 사상가라 하기에는 너무나 종교적인 사상가였으며, 종교적 사상가라기에는 너무나 시적詩的인 사상가였다.
20세기 독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그의 소책자인 <이성理性과 실존實存>에서 “현대의 철학적 상황哲學的 狀況은 그들이 살아 있을 때는 별로 문제 되지 않았고 그 후에도 오랫동안 중요시 되지 않았던 키엘케고어와 니체, 이 두 사람의 사상을 계속해서 확대시켜 온 사실에 의하여 규정된다고 말하고 있다.” 특별히 현대철학의 특유한 개념인 생生과 실존實存의 두 요소가 그들에 의하여 현대인들에게 전달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과연 키엘케고어는 사후死後 오랫동안, 그의 모든 것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 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두 세대世代가 지난 다음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은 유럽 사람들에게 엄청난 파괴와 허무를 눈앞에서 목격하게 했다. 그리고 이 대전大戰의 위기감을 배경으로 하여 실존주의는 독일을 비롯하여 불란서와 전 유럽으로 번져 갔다. 그 후 다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패전의 고통 속에 있던 독일은 물론, 비록 전승국戰勝國이라고는 하나 말할 수 없는 곤경에 처한 불란서에서 성행한 것을 보면 실존주의 사상이란 삶의 위기와 절망 속에서 나타나는 위기의 사상이며, 역설逆說의 사상이라 할 수 있다.
한편 한국에서의 키엘케고어와 실존사상의 영향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5년 만에 맞은 1950년의 6·25가 그 도화선이기도 하다. 전쟁의 포화로 인하여 온 국토가 잿더미가 되는 현실을 온 몸으로 경험하며, 실의와 절망을 딛고 학업으로 돌아 온 젊은이들 사이에서 실존주의의 사상적 분위기는 마치 시대정신처럼 번져가고 있었다.
이 무렵 젊은이들 사이에는 키엘케고어를 비롯하여 니체, 하이데거, 야스퍼스, 마르셀, 샤르트르, 카뮈, 도스토예프스키, 릴케 등에 대한 책자를 앞 다투어 탐독하고 있었다. 필자가 키엘케고어를 접하게 된 것도 1953년경이었다. 그리고 1955년 키엘케고어 100주기를 맞아 대학신문에 “키엘케고어의 생애와 사상”에 대하여 두 번에 걸쳐 연재하기도 했다. 케엘케고어는 나의 젊은 날의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나는 그에게서 나의 거친 지성知性과 신앙의 갈망을 풀어놓을 수 있었다. 나는 그의 진실과 성심誠心 앞에, 그리고 그의 결연한 신앙에 늘 절망하면서도 그를 벗어날 수 없었다.
50년대 말경에는 서울의 여기저기에서 키엘케고어에 관한 세미나와 강연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특별히 교회청년들을 중심한 모임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키엘케고어가 살았던 19세기 유럽의 사상계는 데카르트와 칸트에 이어 관념철학觀念哲學의 완성자인 헤겔사상이 시대정신時代精神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기에 헤겔의 철학은 유럽 사상계에 압도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따라서 키엘케고어의 일생일대에 걸친 시대비판은 철저한 헤겔비판에서 시작된다. 키엘케고어와 동시대를 살았던 칼 마르크스는 헤겔사상을 거꾸로 뒤집어 놓음으로 자신의 유물사관唯物史觀의 이론을 정립했다. 그러나 키엘케고어는 인간의 삶의 다양성을 하나의 체계 속에 담을 수 없다는 신념으로 헤겔철학의 체계 자체를 해체하려 했다. 이러한 사상적 투쟁은 그의 모든 저작 속에 스며있다. 그리고 그의 투쟁은 실존사상을 통해서 20세기 철학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헤겔 자신의 말에 의하면 “철학이 다루는 단 하나의 대상은 하나님이다. 하나님을 다루고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을 인식하고 하나님께로 모든 것을 소급시키며 …, 정당화시키는 것이 철학의 과제다”라 한다. 언듯 보기에 헤겔에 있어서 인본주의적 근대문화와 기독교적문화가 완전히 악수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전적으로 환상에 불과하다.
키엘케고어에 있어서 기독교신앙은 이성적 사고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의 역설이다. 키엘케고어에 있어서 헤겔적인 화해는 기독교 신앙의 지양과 종교와 신앙의 폐지를 의미했다. 키엘케고어에 있어서 신앙은 이성의 사고가 미칠 수 없는 역설이며, 영원한 하나의 패러독스이다. 키엘케고어는 철저히 이성적 사고가 중지되는 거기에서 비로써 신앙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키엘케고어는 젊은 날 일기 속에, “객관적 진리를 발견하였다고 하자. 또 철학의 체계를 세웠다 하자. 그러나 그것이 어떻단 말인가? 나의 실존의 가장 깊은 뿌리와 서로 얽혀 있는 것, 그것으로 인해서 전 세계가 무너져 버린다 해도 내가 그것을 붙들고 매달릴 수 있는 것, 그런 것을 나는 갈망하고 있다. 나는 그것을 추구하리라” 한다. 그러기에 키엘케고어에 있어서 소위 박식한 학자나 온갖 잡동사니 지식을 많이 알고 있다는 지식인들이 굉장한 체계를 말하나 실은 궁전 같은 집을 지워놓고 자기들은 초라한 외양간에 살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했다.
진리란 피와 땀으로 땅을 갈듯이 나의 실존의 주체성을 속 깊이 통과함으로서 파악되는 것이다. 따라서 키엘케고어에 있어서 나라는 실존은 개념적 사유로서는 알 수 없는 깊이를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진리는 이러한 실존적 입장에서 비로소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키에케고어의 사상을 ‘불안의 철학’, ‘우수憂愁의 철학’이라 한다. 대체 불안 이란 무엇인가? 그 불안은 자유의 가능성 때문에 생기는 불안이다. 자유가 진정한 자유인 이상, 아무 것에도 의지하지 않는 발붙일 밑바닥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만약 자유의 밑바닥에 물질이나 권력이 있다면 자유는 그것으로 인하여 한정되고 제한되어 자유를 잃고 만다.
정신이 위대할수록 자유의 가능성은 많아지고, 가능성이 많아질수록 불안이 많아진다. 따라서 실존사상은 보편타당한 진리 보다는 한계상황 속에 있는 구체적인 인간의 혼을 일깨워 주는 주체적인 진리를 요구한다. 실존사상은 또, 현대의 어둡고 기형적인 측면을 거리낌 없이 폭로하는 동시에 삶의 허무와 심연深淵과 죽음 등에 직면하게 하며, 하나님 또는 초월자와 대결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키엘케고어에 있어서 내가 실존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 앞에 있는 존재이다. 하나님 앞에 외로이 서있는 고독한 실존은, 몰락이냐? 구원이냐? 에 대한 결단과 선택, 즉 이것이냐? 저것이냐? 라는 이자택일의 요구 앞에 선다. 여기에서 절망에서 벗어나 질적으로 새로운 비약이 이루어짐으로서 구원이 가능하다. 이것이 키엘케고어가 말하는 질質의 변증법辨證法이다.
하나님을 매개로 하여 개체個體는 그 자신의 역사에 관여함 같이 다른 모든 개체의 역사에 관여 한다. 어떤 개체도 인류의 역사에 대하여 무관無關한 것이 아니며, 동시에 인류 또한 개체의 역사에 무관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점은 고독한 실존사상이 어떻게 하여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실현될 수 있는가를 시사해 주는 대목이며, 동시에 키엘케고어의 정신적 유산이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그 의미를 더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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