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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와 슬기

성서와 문화 2011.12.23 18:33 조회 수 : 2838

[김 용 수 ·조각가]

 

 

남쪽 진도에서 원불교 교무로 있는 후배님이, 이 번 작업실 이사한 곳이- 산속 외진 것을 알고, 태어난 지 한 달된 진돗개 한 쌍을 보냈습니다. 얘들의 외할머니가 진돗개 보존 품평회에서 이등을 했다 하고, 어미는 산에 쳐놓은 덧에 걸렸으나, 일주일 만에 자기 다리를 스스로 끊고 주인을 찾아왔다합니다. 그러고는 팔년 만에 이 한 쌍을 낳았다합니다.
정성으로 보낸 그 고귀한 생명의 강아지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수컷은 ‘슬기’로 암컷은 ‘사랑’이로 명명하였습니다. 지혜와 자비를 우리말로 푼은 것입니다. 소시 적 읽은 헤르만 헤세 ‘지와 사랑’ 제목이 생각납니다. 수컷은 듬직하나 지혜가 필요할 것 같고, 암컷은 귀여우나 사랑이 필요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한편, 세상을 살면서 이 두 가지가 나에게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나를 경책하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슬기야! 하고 부르는 소리에 지혜 없음을 자각하고, 사랑아! 하고 부르면서 자비가 모자람을 반성하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 참담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저승길에 옥황상제 앞에 서면, 남을 위하여 얼마나 공 드렸느냐를 묻는다는데- 캄캄한 절벽의 일상이요, 사랑을 전하지 못하는 삶이었습니다. 사랑이 깊은 사람치고 지혜롭지 않은 사람 없고, 지혜가 높으면 사랑 또한 깊지 않을 수 없으니, 지혜와 사랑은 나눌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녀석들은 무럭무럭 자라서 어느덧 세살입니다. 생명도 생명인지라 이 둘의 성향 또한 다릅니다. 사랑이는 호기심이 강해서 이것저것 관심이 많으나 슬기는 무딥니다. 슬기는 아무거나 잘 먹지만 사랑이는 새 먹거리는 유심히 살폈다가 천천히 먹습니다. 슬기는 샘이 많아서, 사랑이를 쓰다듬으면 자기를 더 해달라며 파고듭니다. 항상 슬기를 먼저 만져주는 데도 그 사이를 참지 못하는 것입니다. 슬기는 동네에 들어가 말썽피우기 일 수지만, 사랑이는 풀어 놓아도 작업실 근처를 떠나지 않고도 잘 놉니다. 까치와 온갖 새들, 메뚜기, 방아깨비가 친구입니다. 사랑의 계절이 오면 슬기는 킁킁거리며, 사랑이에게 늘 구애를 하지만 사랑이는 아랑곳 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랑이를 보면서, 요즘 문란한 세태를 반추합니다. 영리한 것은 한배가 아니라도 신중합니다. 지인이 기르는 풍산개 역시 그러함을 보았을 때 거참! 영묘 하구나 생각했었습니다. 암컷이 응하지 않으면 수컷은 먼 산만 바라보다, 또 외출입니다. 동물도 자기 본능을 억제할 줄 안다는 것을 이 때 알았습니다. 참 숭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농사철은 얘들이 갇히는 계절입니다. 농작물 망친다는 마을의 원성이 높은 것입니다. 요즘 산돼지가 말썽을 많이 피웁니다. 한해 농사를 망치기 다반사입니다. 작업실 옆 천 평의 땅콩 밭을, 하룻밤 사이에 멧돼지 한 가족이 쑥대밭을 만든 적도 있습니다. 날씨가 고르지 못한 탓에 산 도토리, 상수리, 산밤 등등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개체가 늘어나 먹 거리는 부족하고, 생명은 살려고 몸부림치는 것이나, 마을의 입장에서는 일 년 농사가 하루 새 사라지는 꼴이니 참담한 것입니다. 산돼지 잡겠다고 엽사들이 밤새 진을 쳐도 별무소득입니다. 멧돼지들은 야밤에 무리로 이동합니다. 이 때 새끼들도 함께 옵니다. 새끼 보호본능이 있으므로, 개들을 풀어 놓으면 방비가 된다는 것을 마을 분들은 이해 못합니다. 더하여 밭 주위에 덧까지 설치했습니다. 이 덧에 사랑이가 먼저 걸렸습니다. 비명 소리에 나가보니 사랑이가 애절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어미 일생이 뇌리에 떠나지 않았는데, 일이 벌어지고 만 것입니다. 다행이 일할 때 쓰는 전선줄이 닺는 거리라서, 절단도구로 덧을 끊을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슬기가 또 같은 일을 치렀습니다. 이번에는 두 배의 전선이 필요했습니다. 난감했습니다. 작업실에 남은 전선을 모두 찾아 잇고서야, 슬기를 해방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작업실을 비운 사이 일이 벌어졌다면 어땠을까? 아득할 뿐입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얘들이 크면서 사냥 본능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생명은 자유가 근간이므로 처음부터 풀어놓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꿩, 너구리, 뱀, 토끼를 잡아 당당히 옵니다. 그때마다 난감하기 이를 데 없어, 혼을 내고 사냥감을 땅에 묻지만 걱정이 큰 것입니다. 다음 생에 사람 몸 받기로 흰 개가 일 순위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나쁜 짓 하지 말고 좋은 데 가라고 늘 기도 하던 터에, 이놈들은 주인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냥을 계속하니 속이 타는 것입니다. 얘들은 사냥할 때, 주로 협공을 합니다. 영리한 사랑이가 먹이를 찾아 쫓고, 슬기가 옆길에서 공격을 합니다. 하는 수 없이 묶어놓았다가 산책길만 동행하기로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속수무책이 됩니다. 잘 따라오나 싶다가, 어느 사이 녀석들은 신나게 산속을 헤집고 사냥감을 찾는 것입니다.
어느 날은 큰 고라니를 맹렬히 쫓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도망가는 고라니, 뒤 쫓는 두 마리 하양 개, 그 뒤를 안 돼!를 연발하며 따라가는 주인……. 이렇게 한바탕 소동이 있고 나면, 고요한 산책길은 아수라장이 됩니다. 그 회 수도 점점 늡니다. 걔들도 눈치가 있는지, 날이 어둡도록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걱정이 되어 찾아 나섭니다. 방황하는 얘들을 만나면 반갑습니다. 자기들도 반가운지 꼬리를 연신 흔듭니다. 달래서 집으로 옵니다. 다시 묶어 놓고 쓰다듬으며, 예의 훈계를 합니다. “얘야, 좋은데 가야지, 친구를 다치게 하면 쓰냐! 잘 놀아야지!” 그리고 벌칙으로 그날 저녁은 없습니다. 녀석들은 기가 죽습니다. 그러면 또 안쓰럽습니다.

 

법정스님 산문에, 속 썩이는 들쥐에게 공력 드리는 얘기가 있습니다. 말썽 피는 쥐를 제도하기로 결심한 후, 요사 채 뒤 겻에 판판한 돌 밥상을 차리고, 스님은 공양 때마다 쥐 밥을 따로 챙깁니다. 여러 날이 되자 쥐는 살이 오르고, 스님을 보아도 도망가지 않고 다가옵니다. 스님이 말합니다. “얘야, 이생에 밥만 축내고 업만 쌓을 것이냐! 공부해야지!” 쥐가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얼마 후 돌 밥상을 베고 스스로 천화합니다.

 

나는 사랑 이와 슬기를 대할 때마다, 이 이야기가 생각나 희망을 갖습니다. 얘들도 타이르다 보면- 틀림없이 자기 본성을 순화하여, 사냥감이던 친구들과 같이 들로 산으로 맘껏 뛰노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말 못하는 사랑이와 슬기를 보면서, 나는 오히려 많은 것을 배웁니다. 낮선 이가 오면 다가와 곁을 지키는 충직성, 주인의 차 소리를 구별하고, 먼데까지 나오는 마중을 거르지 않는 성실함, 귀신도 본다는 시력, 사냥할 때 최선을 다하는 모습, 진드기 잡아줄 때 잠드는 믿음의 평화, 사람과 똑같은 방귀와 재채기, 혼을 나고도 아무개야! 하고 부르면 반전하는 모습, 커가면서 의젓해지는 행동, 포기할 줄 아는 자세……. 울안에 찾아든 생명이 인생을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침팬지 연구로 평생을 바친 제인 구달 여사는 ‘동물도 구애할 때 선물을 주고, 도구를 쓰며, 슬픔과 기쁨은 물론 고통까지도 인간처럼 오롯이 느낀다.’는 사실을 공표함으로써, 인간만이 사고 할 수 있다는 오만함에 경종을 울립니다. 실재, 생명공학에서도 침팬지와 인간의 유전자(DNA) 서열이 겨우 1퍼센트 차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생명의 인드라 망은 인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촘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주에는 우연이란 없습니다. 노자도 ‘하늘그물은 성글게 되어 있으나 놓치는 게 없다’(天網 疎而不失) 했습니다. 동물이 살 수 없는 환경은 인간도 살 수 없습니다. 과학자들은 멸종 동식물 개체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현대 과학의 성과는, 만물에 영이 깃들어있다는 고대인들의 생각이 빗나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선인들의 생각이 오히려 더 선진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대인의 그 이념이 현대인에게 이어졌다면, 지구는 생명의 약동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낙원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제, 잃어버린 생득적 영감을 되살려 지구의 신음소리를 들어야 할 때 입니다. 죽어가는 땅, 넘치는 홍수, 잦아지는 지진……. 하늘은 끝없이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바람이 차지고 있습니다. 겨울 속 혹독히 견뎌야하는 생명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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