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1년 성서와 문화

[ 이 경 ·그리스도교 목사]

 

 

올해 초 미국의 공영방송은 “미국에서의 신God in America”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미국의 역사를, 종교적 박해로 인한 청교도의 이주와 정착, 국가 건설(영국으로부터의 독립)에서 시작해서 20세기 민권 운동, 보수적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을 정치적 권력기반의 중요한 자산으로 삼은 레이건과 부쉬 정부 그리고 9·11 테러사건 이후 미국의 종교다원주의 상황에서 탄생한 오바마 정부에 이르기까지 종교와 정치권력이 어떻게 관계 맺어 왔는가하는 관점에서 공영방송 특유의 비판적 뉘앙스를 가지고 몇 편의 시리즈로 연속해서 기술하고 성찰한 바 있다.
나는 이것을 보면서 미국 공영방송의 다큐멘터리가 지닌 장점들(전문성과 비판적 공정성)에 다시 한 번 감탄하고 -물론 미국 공영방송도 외국인의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의 이해관계에 충실하게 복무하는 편향된 시각이 다분하여 그 공정성에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미국이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전된 세속사회이기는 하지만 종교가 여전히 미국사회를 규정하고 움직이는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를 보면서 당연히 한국사회와 비교해서 생각하는 가운데 특히 흥미를 끄는 것은, 청교도시대 이후로 면면히 이어져 온 미국의 보수적 복음주의교회와 교인들의 정치적 열망(기독교 국가의 건설과 그 가치들의 현세적 실현)이 어떻게 성공하고 좌절되었는가를 기술하는 부분이다.
21세기 종교다원주의 상황을 특히 9·11 테러사건 이후 미국의 새 국면을 비중 있게 다루기는 하지만, 이 보다는 오히려 그러한 정치적 열망의 성공과 좌절을 전편을 흐르는 일관된 주제로서 다루고 있는 것을 볼 때, 나는 한국의 비판적 양심을 가진 기독교인 뿐만 아니라, 특히 복음주의적 보수기독교인들이 꼭 한번 시청하기를 기대했다.
얼마 전 한국의 보수적 대형교회 목사들을 중심으로 한 일군의 교회지도자들은 한국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걱정(?)하면서 기독교 신당의 필요성에 공감하여 그 발기인 대회를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반대중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어서, 정치·사회적 보수 성향을 띠는 기독교인들도, 특히 건강한 기독교 사회윤리를 주장하는 교회지도자들도 그러한 정치적 열망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성희롱의 언사를 다반사로 즐기기까지 하는 기독교 목사가 자신의 심각한 종교적 타락상을 보지 못하고 - 나는 여기서 인격의 죽음을 본다 - 기독교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단초를 마련하겠다고 기독교 신당을 공공연히 주장하는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 쓴 웃음과 한탄 뒤에 이러한 부패한 현실이 도도한 관성처럼 여전히 지속되고, 그 영적이고 실천적인 변혁은 쉽게 오지 않으리라는 우리 마음속의 비관적인 전망을 무엇으로 달랠 수 있겠는가?

 

화가이자 신학자였던 이신李信은 이 현실에 어떻게 반응할까? 화가의 예민한 감수성과 신학자의 종말론적 역사의식이 한 인격 속에 통합되어 발현되었다면 그는 이 참혹한 현실을 어떻게 진단하고 어떤 처방을 내릴까?
나는 위와 같은 질문들에 대한 답을 이신이 미국 유학 후 귀국하여 교회와 학교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70년대 초에 - 그러니까 지금부터 40년 전에 - 현대 전위예술과 기독교신앙이라는 주제로 <기독교 사상>지에 연이어서 발표한 글들 속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주제는 그의 박사학위논문 “전위前衛 묵시문학 현상 - 묵시문학의 현상학적 고찰”에서 기독교 신학의 모태인 신구약新舊約 중간기 묵시문학 저자들의 역사의식과 환상의 지향점을 현대 전위예술가와 사상가 그리고 우리나라의 동학의 시조 수운水雲 최제우의 정신세계와 연결시켜서 고찰한 바를, 일련의 단문들 속에서 하지만 그 각각의 완결성을 가지고 간결하고 강렬하게 반복되고 있다.
그것은 기독교신앙과 주변문화, 복음과 상황(삶의 자리), 전통과 현대를 연결지어서 기독교 이후시대에 기독교의 본래적인 창조성과 역동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이며, 현대사회의 부패상을 더 근원적인 차원에서 치유하고 변혁하려는 저항과 창조의 목소리였다.
청소년기부터 시작한 미술수업 그리고 그림과 시詩 창작으로 현대예술의 저항적이고 역동적인 미의식을 본인 스스로 체현한 이신은 현대사회의 부패의 핵심을 인간의식의 둔화와 상상력의 부패에서 찾고, 그 진단 및 치유의 현대적 표현을 다름 아닌 창조적 소수인 전위예술가들의 예민한 미의식과 창조행위에서 보고 있다.
그는 해방신학과 민중신학의 정치 사회적 진단과 처방을 자신의 것으로 수용하면서도 여러 형태의 불평등, 착취와 억압, 가난의 문제를 더욱 더 근원적인 면에서, 즉 하나님 나라와 인자人子라는 기독교의 원형적 상像들을 통해서 성찰하게 그 실천의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메를로 퐁티Merleau-Ponty가 말하는 “제3의 눈”을 자신의 논제로 삼은 글에서 이신은 현대회화의 난해성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고 한다. 그 하나는 작품을 대하는 일반인들의 타성화된 시각적인 관찰습성에서 기인하는 편견이고, 다른 하나는 세계를 여러 방식으로 보아온 지각양식의 역사를 오랜 심미적 경험과정을 통해서 체현하고 있는 현대 화가들의 고도로 발전한 미의식 혹은 심미안이라고 진단한다.
그는 현대회화에서 일반이 보지 못하는 ‘공개된 비밀’을 판독하는 눈이 바로 ‘제3의 눈’이며, 이 눈을 가진 화가가 그린 그림 앞에 설 때 일반은 이해에 앞서 일종의 현기증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은 “단순히 지적인 이해문제를 넘어서 그림을 보는 눈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실존적인 문제다”라고 역설한다.
이신은 이것이 예수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바와 일맥상통하며, 그가 말씀하신 ‘천국’의 현실이 당시 대중에게는 ‘공개된 비밀’이어서 깨달아지지 않았고, 오늘날에도 하나의 수집물이거나 일상생활의 습관화된 루틴routine으로서 심각하게 오해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일반대중이 현대회화를 몰이해하는 상황을 화가의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고 더 근원적인 인간의 실존상황에로 확장시켜 진단한 이신은 죽음에 이르는 그 치명적인 병을 맑시스트들이 말하는 자본주의적 착취나 실존주의자들이 생각하는 ‘절망’에서가 아니라 인간의 이메지네이션imagination의 부패에서 찾는다.
그러면 이러한 인간의 궁극적인 이메지네이션의 부패를 어떻게 치유할 수 있겠는가? 이신은 현대 자본주의 기술문명의 비인간화된 부패상을 일군의 초현실주의surrealism의 예술표현이 그 작품과 행위를 통해 가장 극렬하게 과대 망상적으로 비판하고 인간정신의 전적 자유를 주장하기는 하지만, 그 치명적인 병인 이메지네이션의 치유는 제시하지 못한다고 본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이 바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메지네이션의 기능이라고 보는 이신은 그 궁극성으로 인해 이메지네이션의 부패는 어떠한 정치적 조작이나 윤리적 명령으로도 치유할 수 없고, 그 치유는 다만 굉장한 이메지네이션의 소유자(종교적 언어로 말하자면 ‘계시’의 소유자)만이 가능하다고 역설한다. 종교의 역할(좁게는 기독교)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메지네이션의 부패라는 인간의 궁극적 부패상황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도 현대예술이 주는 저항과 창조행위의 정신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그것은 일상화된 전통의 박제화된 모방이나 부르주아들의 수집대상이 되어버린 작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단회적이고 그래서 종말론적인 의미를 가진 그들의 창조적 예술행위가 현실을 변혁하는 역동성을 발휘한다고 한다.
그래서 예수는 우리가 자연을 그대로 복사하듯이 그리는 전통예술의 작품이 아니라, 정신의 전적인 자유를 누리는 창조적 이벤트 메이커event-maker로서 이해해야 하고, 예수가 “나를 따르라”고 하는 말씀은 우리가 그 분처럼 우리 나름의 창의력을 가지고 생을 의미 있게 승화시키라는 것이다.
이신은 이것이 예수가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기 바로 전에 “제 십자가를 지라”는 의미이고, 여기서 기독교가 전통의 고수固守와 모방에 힘써 회고주의적인 노예종교로 전락하지 않고, 기독교언어가 가진 본래의 역동성을 다시 회복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이렇게 창조적으로 조우한 현대 전위예술과 기독교 신앙은 이후의 이신의 삶에서 ‘슐리얼리즘과 영靈의 신학’으로 전개되어 소천한 지 30년이 지난 오늘, 기독교 이후의 시대에 우리에게 새로운 울림으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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