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1년 성서와 문화

[김 창 락·신학]

 

 

5.
콕스는 현대사회를 진단하는 데 인류의 전체 역사과정을 통한 사회 변화의 3단계 진화도식을 응용한다. 인간의 사회는 원시시대부터 지금까지 3단계로 진화해서 현대에 이르렀는데 맨 처음 단계는 부족(tribe)시대, 그 다음 단계는 소도시(town)시대, 그 다음 단계는 대도시(city)시대이다.
사회의 3단계 진화설을 처음으로 내놓은 사람은 프랑스 철학자 꽁뜨A. Comte였는데 그는 1. 신학적 시대 2. 형이상학적 시대 3. 실증적 시대로 구분했다. 콕스는 꽁뜨의 이론을 따른 것이 아니라 네덜랜드 사회학자 판 포이르센C. A. van Peursen의 도식을 응용했다. 포이르센은 이 3단계를 1. 신화적 시대 2. 재론적 시대 3. 기능적 시대로 구분했다. 포이르센의 이 세 시대는 콕스의 1. 부족시대 2. 소도시 시대 3. 대도시 시대에 해당한다. 포이르센이 각 시대를 그 특징적인 시대정신에 따라 명명했다면, 콕스는 각 시대의 외형적 구조에 따라 명명했다.
아득한 옛날 원시인들은 신화 속에서 살았으나 개명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현상이 무엇이며 실체가 무엇인지를 묻는 존재론적 사유를 하면서 살았다. 현대인은 무엇은 무슨 일을 하는가 하는 기능적 사유방식으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영어의 town이라는 낱말의 사전적 정의는 village(마을)보다는 크고 city(도시)보다는 작은 규모의 주거지이다. 고대와 중세에도 규모상으로는 현대의 도시에 버금가는 도시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콕스가 현시대의 특징인 세속도시의 직전 단계의 주거지 형태를 town이라는 용어로 총괄한 것은 현대의 과학기술의 결과로 생겨난 기술도시(technopolis)와 구별된다는 공통점에 의거한 것이었다.
부족시대에는 부족이라는 공동체가 삶의 최대 공간이었다. 부족인은 평생 동안 자기 부족 이외의 사람과 접촉하는 기회가 거의 없었다. 부족은 확대된 가족이며 부족인은 대가족의 일원으로 존재했으며, 종족이 규정해 준 ‘나’ 이외의 개체적 존재로서의 ‘나’라는 관념이 있을 수 없었다. ‘나’와 대립관계에 있는 ‘타자’라는 관념도 없었으며 ‘타자’는 ‘나’와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횡적으로 연장된 ‘나’의 분신이었다. 이러한 연장선은 자연계에까지 미쳤다. 즉 부족인은 자연을 ‘나’의 일부로, ‘나’를 자연의 일부로 생각했다. 부족인은 신화적인 사고로 살기 때문에 그들의 삶의 공간은 온통 마법에 걸린 숲과 같았다. 그들은 여러 신들과 귀신들이 우글거리는 숲 속에서, 그들 가운데서 그들과 함께 살아갔다. 영웅으로 떠받드는 그들의 조상은 신들과 동격시 되었고, 신들만이 거주하는 별도의 성스러운 공간이 없었으며 부족인의 일상 삶의 공간과 신들의 공간은 구분되지 않고 혼재되어 있었다.
이러다가 화폐와 문자의 발명으로 말미암아 이제 부족인은 타 부족과 접촉하고 교류하는 기회가 많아지게 되었으며 그 결과로 여러 부족들이 함께 모여서 소도시(town)라는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를 형성하여 살기 시작했다. 이 경우에 각 부족의 고유한 신들은 부족들의 통합체인 새로운 소도시(town)를 총괄하기에 부적격이기 때문에 한 단계 더 높은 신이 도시의 수호신으로 요청되었다. 소도시인들은 존재론적 사고, 즉 각 사물의 배후에 있는 존재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는 사고 속에 살았기 때문에 인간을 포함하여 각 사물들을 수직적인 위계질서 속에 배치하였다. 따라서 신들은 인간들보다 더 높은 단계의 거주지에 거주하는 존재들로 자리매김 되었으며 인간사회에도 왕이라는 통치자와 백성이라는 피지배자 사이에 수직관계의 위계질서가 생겨났다. 신들은 어떤 초자연적인 거처로 물러나고 세계를 인간에게 넘겨주었다. 신들이 거주하는 성스러운 곳과 인간이 거주하는 속세는 완전히 분리되었다. 자연계는 인간과 전적으로 분리된 별개의 존재로 대상화 되었으며 자연계로부터 귀신을 제거하는 자연의 탈마법화 사조가 생겨나서 인간은 주술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 세 시대는 연속적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배타적으로 완연하게 서로 단절되지도 않는다.

 

콕스는 현대의 기술도시와 비교해서 대조적인 차이를 나타내기 위하여 그 사회의 특징적인 구조적 형태에 따라서 이전 단계의 두 시대를 각각 부족(tribe) 시대와 소도시(town) 시대라고 일컬었다. 포이르센은 그 세 가지 사회의 특징적인 존재 방식에 따라 다음과 같이 명명했다. 1. 부족 시대 → 신화시대 2. 소도시 시대 → 존재론적 시대 3) 기술도시 시대 → 기능적인 시대.
신화시대에는 세계는 온통 마법에 걸린 숲에 해당했으며 이러한 주술의 세계에서 인간은 자연 속에 함몰되었다. 존재론적 시대에는 인간은 주술의 공포에서 벗어나며 신들은 어떤 초자연적인 거처로 물러나고 세계를 인간에게 넘겨주었다. 신성한 것과 속된 것이 분리되었으며, 대상들은 커다란 하나의 위계질서 속에 자리매김 되었다. 오늘날 등장하고 있는 기능적 시대에는 사고는 이제 더 이상 고립된 실체들의 반영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도구요, 인간 사회를 작동시키는 도구이다. 세속화된 세계에서는 존재론적 사고방식, 즉 고도의 형이상학적 존재에 대한 사고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 사물들은 더 이상 그 자체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들과 이루려는 목적과 관련해서 존재할 따름이다.

 

6.
콕스의 <세속도시>가 현 단계의 기술도시의 사회적 현상에 대한 진단과 그 이전의 두 단계의 사회의 특징을 기술하는 데 그쳤다면, 하나의 위대한 사회학적 저술은 되었을지언정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개신교 신학저서의 하나로 선정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세속도시>의 신학 저서로서의 공적은 현재의 세속화와 도시화 현상의 사상적 근원이 바로 성서적 신앙에 있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논증한 데 있다.

 

세속화는 종교적·형이상학적 감독으로부터 인간의 해방을 지향하는 것, 즉 인간의 관심이 저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향하는 것이다. 세속화는 사회와 문화가 종교적 지배와 폐쇄된 형이상학적 세계관의 감독을 벗어나는 거의 되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해방 과정이다. 이 해방의 원천은 무엇인가? 독일 신학자 고가르텐 Friedrich Gogarten은 세속화란 성서적 신앙이 역사에 끼친 영향의 정당한 결과라 했다. 세속화가 기독교의 세력 밑에 있는 서양문화 안에서 가장 먼저 나타났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서양문화와 직결된 자연과학의 발달,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탄생, 문화적 다원주의의 발생은 성서의 원초적 자극으로부터 생겨난 결과물이다.

 

구약성서의 신앙에는 세 개의 중심축이 있는데 그 셋은 각각 세속화의 한 가지 측면을 발생시켰다. 천지창조, 출애굽 사건, 우상금지 계명이 바로 그 세 개의 중심축이다. 천지창조 신앙은 자연을 탈주술화 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자연의 탈주술화는 자연과학 발달의 단초가 되었다. 출애굽 사건은 정치권력의 비신성화를 가능하게 했으며 정치권력의 비신성화에서 민주주의적인 민권사상과 평등사상이 배태될 수 있었다. 우상금지 계명은 인간이 이룩한 어떠한 가치라도 상대화 하게 했는데 모든 가치의 상대화는 문화적 다원주의를 발생하게 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없을 때에 인간은 해, 달, 별들, 강들, 대지, 대양을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신들 또는 반신적半神的 존재로 숭배해야 했으며 온갖 정령들이 우글거리는 마법의 숲속에서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혀 살아야 했다. 인간은 신도 자연의 일부로 보았으며 자아와 자연을 구분하지 못하고 자신이 대자연의 일부로 종속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창조신앙은 자연을 하나님과 분리하고 인간을 자연과 구분하게 했다. 창조신앙은 자연을 반半 신성한 힘으로 보는 주술적 세계관의 몽매蒙昧에서 깨어나게 했다. 자연의 탈주술화, 탈마법화는 인간을 자연의 위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힘이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6 키엘케고어를 생각한다 -그의 156주기를 맞아 - file 성서와 문화 2011.12.23 2692
35 사랑이와 슬기 file 성서와 문화 2011.12.23 2837
34 이신李信을 통해서 본, 현대 전위예술과 기독교 신앙 file 성서와 문화 2011.12.23 2887
33 은발銀髮 선생님 file 성서와 문화 2011.12.23 2648
32 길 - 걷는 길, 물류物流의 길 그리고 인도人道 - file 성서와 문화 2011.12.23 2764
» <세속도시>의 진가眞價를 찾아서 (Ⅱ) file 성서와 문화 2011.12.23 2625
30 한국 고전시가古典詩歌에 나타난 자연관自然觀 file 성서와 문화 2011.12.23 2754
29 조시마 장로의 강기슭 풍경 file 성서와 문화 2011.12.23 2723
28 음악 片紙 ⅣⅩ 그리스도께 바치는 최고의 음악적 헌사 file 성서와 문화 2011.12.23 2667
27 九旬有感구순유감 file 성서와 문화 2011.12.23 2553
26 따뜻한 십자가十字架 - 김효숙金孝淑의 브론즈 file 성서와 문화 2011.09.27 3388
25 음악 片紙 ⅢⅩⅨ 20세기 음악과 영성靈性 file 성서와 문화 2011.09.27 3275
24 도둑질하지 말라 file 성서와 문화 2011.09.27 3098
23 제주의 자연과 더불어 file 성서와 문화 2011.09.27 3207
22 암스테르담의 추억 file 성서와 문화 2011.09.27 2903
21 <세속도시>의 진가眞價를 찾아서 (Ⅰ) file 성서와 문화 2011.09.27 2954
20 초막절과 한가위 file 성서와 문화 2011.09.27 3457
19 예술가의 보람과 소명 -다섯 번째 “성서와 문화 미술동인전”에 부쳐- file 성서와 문화 2011.06.17 3420
18 마음을 비치는 그림 file 성서와 문화 2011.06.17 3185
17 사의정신寫意精神과 추상정신抽象精神 - 조각가 김 종영과 최 종태의 세계 - file 성서와 문화 2011.06.17 33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