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1년 성서와 문화

[김 균 태 ·국문학 / 한남대 교수]

 

 

한국인들은 자연에 대해 어떤 인식을 하고 있을까? 고전시가 작품들을 통해서 이를 살펴보자. 고전시가에 나타난 한국인의 자연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우리 선조들은 자연을 산, 돌, 물, 꽃과 같은 대상으로서의 자연으로 인식하기도 하고, 고향, 농촌, 산촌, 어촌 등과 같은 공간으로서의 자연으로 인식하기도 하였으며, ‘자연自然’의 어휘적 의미 그대로 ‘스스로 그렇게 됨’이란 원리로서의 자연으로 인식하기도 했다.
한국인들의 자연에 대한 인식 중 대상으로서의 자연을 노래한 것에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것이 없지 않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病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이것은 고려조 문인인 이조년李兆年의 시조이다. 여기서 시적 화자는 한 밤 중 달빛에 비친 배꽃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면서 두견을 통해 자신의 잠 못 이루는 정한情恨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고시조에 나타난 자연은 대상 그대로의 미적 정서보다는 그것이 가지는 유가적 이념을 중시했다.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고 하니
봉래산蓬萊山 제일봉第一峰에 낙락장송落落長松 되었다가
백설白雪이 만건곤滿乾坤할 제 독야청청獨也靑靑 하리라

 

이것은 독자들도 잘 알다시피 사육신死六臣 중의 한 사람인 성삼문成三問의 시조이다. 여기에 나오는 소나무는 그 자체로서의 미적 가치가 평가된 것이 아니다. 백설이 천지에 가득한 시절에도 ‘독야청청’하는 소나무의 변함없음에 가치를 두고 있다. 그리하여 시적 화자도 이 소나무처럼 변치 않을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이처럼 고전시가에 나오는 자연물은 대개 유가적儒家的 이념을 비유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국화는 오상고절傲霜孤節, 매화는 아취고절雅趣孤節, 모란은 군자지취君子之趣가 있음을 노래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공간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선조들의 인식은 시적 화자가 자연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관념으로 바라보는 자연과 그 공간 속으로 들어가서 직접 체험한 자연 두 가지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 두 관점에 따라서 자연에 대한 인식은 크게 달라진다. 전자는 주로 자연을 관념으로 인식하면서 자연이란 공간을 현실에서 소외되거나 좌절된 시적 화자가 자연에 돌아가서 위로받을 수 있는 안식처安息處로 생각한다. 그래서 자연은 한가롭고 아스라한 추억이 담긴 아름다운 곳으로 묘사되고, 심지어는 자연으로 돌아온 뒤에도 시적 화자는 자연과 물아일체物我一體되었다거나 또는 그렇게 되기를 노래한다. 이것은 자연을 관조觀照하면서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이른바 유한자적有閑者的 삶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처한 시적 화자는 속세에서 자신의 삶을 허무한 것으로 인식하고 그것을 외면하고자 한다. 그렇지만 현실이 그들을 다시 부르면 자기의 안식처라고 노래했던 그 자연을 언제 그랬었느냐는 듯이 떨치고 그들이 조금 전까지 외면하고자 했던 그 속세로 주저함이 없이 나간다.

 

강호江湖에 병病이 깊어 죽림竹林에 누웠더니
관동關東 팔백 리八百里에 방면方面을 맛디시니
어와 성은聖恩이야 가디록 망극罔極하다

 

이것은 그 유명한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가사인 ‘관동별곡’의 서두이다. 작품의 일부만을 가지고 송강의 자연관을 멋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이 사설만을 가지고 보면 시적 화자는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가슴 끝 명치에 병[천석고황泉石膏]이 들었다가 자연에 돌아와 있게 되었음을 노래하고 있다. 그런데 그 다음 구절을 보면 관동 지방 팔백 리를 다스리는 관찰사를 임금께서 맡기시니 성은聖恩이 망극하다고 했다. 필자가 그 뒷부분은 생략했지만, 시적 화자는 바로 현실에 복귀해서 오늘날 강원도라 불리는 관동지방의 관찰사로 재임하면서 그곳에서 본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했다.
이런 부류에 속하는 화자들은 대개 송강과 같은 양반들이다. 이들은 귀거래歸去來 후에 자연을 관조하면서 자연과 물아일체가 되기를 노래한다. 따라서 이들의 귀거래는 ‘명철보신明哲保身’의 방편이었다. 이 명철보신은 주周나라 선왕宣王의 대신大臣인 중산보仲山甫의 덕행을 기린 노래로 “시경詩經” ‘대아大雅’ 증민蒸民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밝히고 살펴서 몸을 보존하고(旣明且哲 以保其身) 밤낮으로 쉬지 않고 임금을 섬기네(夙夜匪解 以事一人)”이다. 이는 선악을 분별하고 시비를 잘 살펴 인재를 가려 써서 자기 몸을 보존하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중산보의 명철보신은 임금을 섬기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조선의 양반들이 이것을 자기 편의대로 해석하여 반사회적 의미로 받아들인 것은 자기들을 목숨을 보호하기 위한 명분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자연은 늘 아름다울 수밖에 없었는데 이런 인식이 가능했던 것은 귀거래 후에도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연은 이처럼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아프고 고통스러우며 원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런 자연관은 특히 민요에 많이 나타나는데 그 내용이 퇴폐적이거나 향락적으로 흐르기도 한다. 반면에 이들의 아픈 삶을 직접 바라보고 노래한 지성인도 있으니 18세기 조선의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 바로 그런 분이다.

 

작은 마을 산기슭 의지하였고 小聚依山坂
황폐한 성 바닷가 접해 있는데 荒城逼海潮
안개 짙어 큰길 가 숲이 어둡고 漲官樹暗
비 머금은 섬 구름 기세 매섭다 含雨島雲驕
빈 장터 까막까치 요란스럽고 烏鵲爭虛市
다리엔 고막 소라 껍질 쌓였네 螺疊小橋
요즈음 고기잡이 세금 무거워 邇來漁稅重
사는 것이 나날이 처량하기만 生理日蕭條
(고전번역원의 번역 인용)

 

이것은 다산이 쓴 ‘저물녘에 광양에 당도하여[暮次光陽]’라는 한시이다. 그런데 이 한시의 시적 화자가 바라보는 자연은 어둡고 쓸쓸하며 음산하기만 하다. 이 시적 화자가 본 바닷가도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의 ‘어부사시사’에서 나오는 바닷가와 다를 바 없지만, 그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돌보지 않아 쓸쓸하고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아픈 현실을 바라보는 시적 화자의 모습에서 자연을 바라보는 진솔함을 느낄 수 있다.
원리로서의 자연自然을 인식한 경우를 보자. 이런 ‘자연’에 상응하는 순 우리말로는 ‘절로절로’라는 것이 있다.

 

청산靑山도 절로절로 녹수綠水도 절로절로
산山 절로절로 수水 절로절로 산수山水 간間에 나도 절로
그 중에 절로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절로

 

이것은 17세시 조선조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시조이다. 여기서는 청산과 녹수가 저절로 되어 가는 것을 보고, 시적 화자도 저절로 자라고 늙어가기를 담담하게 노래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비록 유학자이면서도 ‘청산’과 ‘녹수’를 유가적 이념으로 인식하지 않고, ‘인위人爲를 가하지 않고 저절로 그렇게 됨’을 노래하고 있다. 이것은 도가의 ‘무위자연無爲自然’에서 나온 ‘자연’과도 통한다.
그런데 도가에서 인위人爲를 꺼리는 것은 그것이 거짓[僞]이라고 인식해서다. 도가의 도道는 유가의 실천도덕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천지의 운행을 주관하는 본질로서의 도다. 노자老子 “도덕경”에 나오는 것을 보면, “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상無常의 도가 아니고,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은 무상의 이름이 아니다.”라고 했다. 따라서 도가의 도는 천지가 있기 이전부터 있었지만, 비고[虛] 없어[無]서 존재 아닌 존재이므로 그 이름을 붙일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가의 도가 인도人道라면 도가의 도는 천도天道라고 할 수 있으며 근본적으로 다르다. 오히려 구약 ‘창세기’ 서두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한 그 ‘말씀’과 통할 것 같다.
현대인들은 무엇이든지 자신의 힘으로 이루려고 하지만, 창조된 천지만물은 이미 존재한 것[道]에 의해서 창조되었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것을 ‘말씀’으로 창조한 것이라고 한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이런 관점에서 동양의 유교와 도교 그리고 성서를 통해서 ‘자연’과 ‘창조’에 대한 원리를 함께 논의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지면이 부족하니 여기서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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