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1년 성서와 문화

[김 순 배 ·피아니스트 / 음악평론]

 

 

해마다 크리스마스 즈음이면 어김없이 울려 퍼지는 음악, 바로 ‘할렐루야’ 코러스입니다. 여느 크리스마스 캐롤 못지않게 전 세계인들의 귀에 친숙한 합창곡이지요. 성탄의 벅찬 기쁨을 대변하는 듯한 웅장한 사운드가 언제 들어도 감격적입니다. 제목은 ‘할렐루야’이지만 우리는 왠지 이 곡을 크리스마스, 즉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노래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이 곡의 가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지요.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세상 모든 나라가 우리 주 곧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영원히 통치하시리라
바로 만왕의 왕, 만주의 주시로다. 할렐루야!’

 

이처럼 가사의 내용은 크리스마스와 직접 관련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 최후의 승리를 기리며 바쳐드리는 영광송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도 예수 탄생의 놀라운 사건을 축하하기에 이 곡 만큼 적절한 곡도 드뭅니다.
할렐루야가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에 포함된 합창곡이라는 사실쯤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메시아’는 매우 큰 규모를 가지고 있지요. 전체는 세 파트로 나누어지고 각 파트의 곡들을 합치면 모두 53곡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입니다. 1부는 ‘예언과 탄생’ 2부는 ‘수난과 속죄’ 그리고 3부는 ‘부활과 영생’으로 이루어진 가히 음악적 서사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주 시간만 2시간 30분이 족히 걸리는 대작이지요. ‘할렐루야’ 코러스는 44번 째 곡입니다. 즉 2부 ‘수난과 속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합창인 것입니다.

오라토리오라는 장르는 온전한 구조를 가진 스토리를 여러 형태의 음악에 담아낸다는 점에서 오페라와 흡사합니다. 아리아, 중창, 간주곡, 서곡 등이 들어가는 것은 오페라와 같으나 오라토리오의 주제는 성서적인 것이 원칙입니다. 무대장치나 액션이 없고 특정 캐릭터를 설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페라와 다르며 합창의 역할과 비중이 매우 큰 것은 오라토리오만의 특징입니다.
헨델은 원래 오페라 작곡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독일 출신이었지만 수년간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다 영국에 정착한 그는 오페라 작품들로 대중의 인기를 얻었지요. 잘 알려진 아리아 ‘울게 하소서’는 바로 그가 만든 오페라 ‘리날도’에 등장하는 노래이고 유명한 ‘라르고’ 역시 ‘세르세’라는 작품에 나오는 아리아입니다. 오페라의 본 고장인 이탈리아에서 갈고 닦은 실력으로 만든 아름다운 아리아들이 영국의 청중들을 사로잡았습니다.
헨델의 오페라에서는 당시 유행이던 카스트라토(castrato,여성의 목소리를 내는 남성 소프라노)가 자주 주인공 역할을 맡았습니다. 오페라에서 탄탄한 이야기의 구조와 그에 걸 맞는 다양한 형태의 음악보다는 현란하고 정교한 노래 기교를 내세우는 카스트라토에 청중들은 열광했고 헨델은 그런 그들의 기호를 재빠르게 간파한 것입니다.
하지만 대중의 취향은 변해갔습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주인공의 아리아가 지배하던 오페라에 싫증을 느끼고 보다 리얼한 일상적인 소재로 만든 음악극에 새로운 관심을 쏟기 시작한 것입니다.
헨델은 안팎으로 점점 궁지에 몰리게 됩니다. 대중의 변덕이 초래한 인기의 급락, 기하급수로 늘어나는 빚, 게다가 갑자기 덮친 뇌졸중으로 오른손을 거의 쓸 수 없게 되는 등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습니다.
이 같은 난관 속에서 그는 ‘메시아’를 쓰게 되지요. 더블린의 음악 자선단체인 ‘필 하모니아 협회’의 작곡 의뢰가 직접적인 동기이기는 했지만 헨델은 거의 운명처럼 ‘메시아’를 시작하게 됩니다. 텍스트는 예수님의 탄생과 수난 그리고 부활의 승리에 대한 여정을 담은 이사야서와 복음서 그리고 시편과 고린도전서를 비롯한 성서의 여러 곳에서 발췌한 구절들에 깊은 명상적 주석을 덧붙인 것입니다.
청중들의 차가운 외면, 연이은 흥행 실패, 엎친데 덮친 건강의 악화 등 혹심한 시련 속에서 헨델을 구원한 것이 바로 ‘메시아’의 창작이었던 셈입니다. 그는 이 방대한 작품을 단 24일 만에 완성했다는군요. 식음을 전폐한 채 마치 무엇에 사로잡힌 듯 빛의 속도로 곡을 써내려가며 그는 많이 울었다고 전해집니다. 절망과 낙담의 와중에서 그리스도의 생애를 음악으로 만드는 작업을 통해 헨델은 아마도 깊은 영적 위로와 감격을 체험했을 것입니다.
1742년 더블린에서의 초연은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이 작품이 공연되는 곳에는 예외 없이 깊은 감동의 물결이 넘실대게 됩니다. 1750년 런던 연주에서 당시 영국 왕 조지2세가 ‘할렐루야’ 부분에서 벌떡 일어나 감격을 표한 이후 이 합창에서 청중 모두 기립하는 것이 관행이 되었다지요. 헨델 생전 이 작품은 서른 두 번 연주되었는데 모든 수익금을 철저히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것으로 이 작품을 향한 그의 각별한 심정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한 때 오페라의 상업적 성공에 그토록 집착했던 헨델의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였습니다.

 

탄탄한 드라마 구조 대신 듣기 좋은 아리아들만 부르는 카스트라토에게 지나치게 의존한 탓도 있겠지만 당대 청중들의 인기를 독차지 했던 헨델의 수많은 오페라들은 이제 모두 잊혀졌습니다. 몇 개의 아리아들만이 지나간 화려함의 잔해처럼 남아있지요. 하지만 초연 당시와 마찬가지로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오라토리오 ‘메시아’는 사람들에게 변함없는 감동을 줍니다.
드라마라는 측면에서 보아도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만큼 감동적인 드라마도 다시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인류역사에 전무후무한 임팩트를 끼친 그 분의 생애를 위대한 음악으로 극화할 수 있었던 헨델은 그 누구보다도 축복받은 작곡가임이 분명합니다. 메시아에는 ‘할렐루야’ 이외에도 주옥같은 아리아와 합창들이 풍부합니다. 비교적 친숙한 1부 ‘예언과 탄생’ 말고도 2부 ‘수난과 속죄’의 ‘진실로 주는 우리의 괴로움 맡으셨네.’ 3부 ‘부활과 영생’의 ‘내 주는 살아계시고.’, ‘사람 인하여 죽음 왔으니.’ 등 심금을 울리는 노래들로 가득 차 있지요.
어쩌면 ‘메시아’는 수난절과 부활절에 더 절실하게 다가오는 음악입니다. 올 크리스마스에도 ‘할렐루야’를 듣노라면 여전히 가슴은 벅차오르겠지만 내년 봄 4월이 오면 다시 ‘메시아’의 2부와 3부를 깊은 묵상과 함께 들을 수 있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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