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0년 성서와 문화

김 용 수 ·조각가

 

 

미수의 노모가 퇴원하는 날 칠순의 어른이 문병을 왔다. 그냥 가셔도 될 일인 데, 노장은 한사코 지하 주차장까지 계단을 내려와 후학을 배웅했다. 주차장 입구. 백미러 속으로, 손을 흔들며 돌아서는 노장의 등이 보였다. 벙거지 모자를 쓰고 사색에 잠기듯 조금 숙인 머리, 바쁠 것 없이 소요하듯 걷는 걸음 - 초봄 햇살아래 담수처럼 염담한 뒤태, 그가 도예가  이종수 선생이다. 선생님과 여러 일이 있었지만, 그날 선생의 따뜻한 배려는 지금도 가슴을 휘 돈다.

선생은 언젠가 말했다. “이젠 심~ 심하고, 쓸쓸한 그릇 하나 굽고 싶어.”

실로, 이종수 선생은 지금 어느 경계를 넘고 있는 듯하다. 매미가 탈을 벗을 때 고스란히 그 흔적을 남기지만, 매미는 거기 없듯이 - 이종수의 모습은 있으나, 작가의 내면은 이미 날아 버린 매미다. 그 매미는 어디로 갔는가?

쨍~그렁, 그릇 깨는 소리가 허공을 가르자, 원초의 생명성이 움직인다. 아련히 먼 생명을 깨우는 소리. 태초의 소리가 그 소리요, 아기가 탯줄과 떨어지며 내는 소리처럼. 파破 음音은 작가의 내면을 휘돌아 차크라를 움직이고 이내 침묵 속으로 든다. 그 정적 사이로 작가의 안목은 조금씩 트여서- 사금파리가 산이 된 만큼 심안은 깊어 갔으되 아는 이 없고, 사유는 넓디넓어 비할 바 없이 쓸쓸하다. 풍상을 견딘 나무가 시리다 한 적이 없는 것처럼 세월도 뜻도 한 몸이 된 솔나무처럼 서 있는 작가, 그 안의 자리는 잴 수 없는 여백이 있다.

낙엽이 떨어져 부토가 되고 세월이 삭혀 숙성시킨 것 같은 천연의 그릇 속에는 아무 셈이 없어 욕망이라든가 바램도 가셔버린 홀가분함이 배어 있고, 비우려는 의식조차 없었으나 어느새 비움을 넘어 오히려 삶의 애환을 고스란히 끌어안은 넉넉한 세계가 있다. 언 듯 보면 촌 머슴 같고 수줍움 많은 촌색시처럼 저만치 물러나 있으되, 보는 이가 궁금하여 말을 걸게 되는 마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옛말에 “소인의 사귐은 꿀과 같이 달고, 군자의 사귐은 담담한 물과 같다(小人之交 甘如蜜 君子之交 淡如水)” 했거니와. 선생은 물론이려니와 선생의 작품을 가까이하려는 사람은 맹물 맛을 먼저 알면 좋을 듯싶다. 맛없는 맛을 즐길 수 있을 때야말로 생명에 보탬이 되고, 심~심한 중에 여유 있는 맛을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 정악 ‘수제천’같이, 담담하나 장중하고 무미한 것 같으나 듣다보면 깊어지는 것처럼 - 선생의 작품은 오래 사귈 수 록 감칠맛이 더 한다.

작품은 작가가 정신을 벼린 만큼 반응하고, 그에 비례하여 일상에 영향을 미친다. 작가들은 사물의 표정을 읽는 데 탁월한 감각을 지닌 까닭에 작품제작에 있어 사물이 병들고 아픈 곳을 만져서 건강하게 할 수 있다. 그 건강은 아름다움이란 이름으로 드러난다. 여기서 아름답다는 것은 어떤 고정된 원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서, 만약 ‘무엇이 아름다운 것이다’는 전제가 앞서면 길은 엇 나고 만다. 무엇을 규정하려 들면 들수록 그 실체는 오히려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극한 아름다움은 어떤 규정과도 떨어져 자유롭다. 작가가 무엇에 매이게 될 때, 작품의 생명력은 그만큼 반감되고 만다. 작가의 영혼이 자유로울수록 사물도 숨이 트여서 소통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고, 이 상호작용이 원만할수록 조화의 함량은 그만큼 커지게 되는 것이다.
선생의 작품이 무엇을 강요하거나 묶으려 하지 않고, 삐뚤면 삐뚠 대로 놔두고 잘난 곳은 오히려 눅이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도 그만큼 물성이 지닌 숨결을 잘 터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미美를 넘어 미美를 볼 수 있는 안목은 심미안이 열리는 길이다. 만약 우리가 아름다움에서 자유를 만날 수 있다면 한 층 더 행복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종수 선생은 천품天品의 작가라 할 수 있다. 자기 안에 본성을 살펴서 펼 줄 아는 지혜의 사람. 앎에는 지식과, 훈련으로 아는 것이 있으며, 그냥 아는 것이 있으니. 그냥 아는 것을 천품天品이랄 수 있는 것이다. 천품이란 안다, 모른다는 것을 떠나, 찰나에 통섭해버리는 것이다. 예리한 직관으로 바로 들어가 꿰뚫어 닿는 세계다. 따라서 창작은 훈련만으로 되지 않는다. 99%의 노력이 있어도 1% 천품이 없으면 명작을 내기 어려우나, 그 1% 또한 사람을 떠나 논할 수 없으니. 한 사람 작가 내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이다.

도자기를 이루는 원소는 흙과 물, 불과 바람이다. 이것은 고대로부터 인간을 이룬다고 생각했던 4대원소와 같다. 말하자면 생명의 탄생과정을 오롯이 품고 있어 인간과 친연성이 그만큼 높은 장르라 할 수 있다. 선생이 흙 개는 일(태토수비)부터 불을 지피기까지 손수 노고를 아끼지 않는 까닭은, 생명에 대한 경외심에서 오는 것이다. 생명의 신비를 알면 좋으련만 그럴 수 없으니, 오직 정성을 다 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것이요. 고적한 긴 시간을 기다리면서 터득하니 자연의 순리다.
예로부터 동양은 작품이 곧 자연이 되는 경지를 높게 평가했다. 아니, 사람이 자연이므로 작가의 본성이 천연처럼 나타난 작품을 높이 샀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종수 선생의 작품은 빛을 발하고 있다.

‘겉 터진 항아리’는 선생이 처음 시도한 작품이자, 작가의 인생관이 잘 드러나고 있다. 세계 도자 사에서 쓰임을 떠나 완상玩賞을 위한 작품이 적지 않으나, 이 작품처럼 모든 재미까지 지워버리고, 쓸모없는 쓸모(無用之用)의 자유自由 경지로 치솟은 수작은 없었다. 만들었으나 자연이 된 그릇. 못 쓰여서가 아니라, 관람의 순간 충격이 곧바로 꽃자리가 되어서, 경계를 벗어버리게 하는 기쁨이 있다. 인류와 괘를 함께한 도자기이지만, 이 같이 무엇이 되려는 주장을 빼버리고도 정신의 승화로 이끈 그릇을 보지 못했다.
언젠가 필자가 겉 터진 항아리에 관해서 여쭸을 때, “어머니야, 평생 일하시다 등터진 어머니 손이지!”하고는 긴 여운을 남기셨다. 그랬다, 파란만장의 세월을 일로써 감내한 우리 어머니들 정성이 하늘에 닿아서 된, 정화의 그릇이었던 것이다.

선생의 달 항아리만 해도 사대부의 고대광실이 아니라, 가난한 선비 글방에 놓여야 제격일 것이다. 온전한 것들이 다 팔려나간 후, 눈 설미 깊은 눈에 띠여 안기게 된 - 조금은 덜된 그릇이라서 달빛도 편히 내려와 쉴 것 같고, 대숲을 헤집던 미풍도 잠시 목축이고 쉬어 가는 샘물 같으니. 청빈의 선비와 짝하면 세상이 아름다울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원래, 백자는 조선 성리학 이념을 구현한 그릇이다. 담백하면서도 단아한 생활을 이념으로 했던 곧은 선비들은, 백자를 곁에 두고 늘 자신을 경계했으나. 사대부들이 즐기던 관요 백자는 만든 냄새를 지우지 못했다. 후기로 갈수록 만드는 사람의 고유 본성 보다는, 고관대작들의 기호에 맞추려다 볼거리에 치우쳐 시대 이념을 이탈하고 만 것이다.

비둘기 한 쌍이 있는 토기형자기 앞에서는 그 순정한 눈을 만나게 될 때, 사람들은 손수건을 꺼낼지 모른다. 그림도 아닌 도자기에 어떻게 그렇게 깨끗한 눈매를 새길 수 있단 말인가?
흔히, 도자기는 사람이 만들고 마무리는 자연이 하는 데 매력이 있다고 하지만. 그 순간 작가 스스로 비둘기와 감응 되지 않고는 그렇게 선한 눈을 그리기 어렵다. 다시 말하면 자연이 빚고 자연이 마무리 하는 경지라야 가능한 것이다.

이와 같은 천연성은 옛 사람이나, 현대작가들이 도전하는 마의세계다. “어린 아이가 되는 데 평생 걸렸다”고 피카소는 말했다지만, 그도 자연이 되지는 못했다.
만약 이종수 선생이 없었다면 조선의 그릇은 슬프고, 세계는 공허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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