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0년 성서와 문화

[김 순 배 ·피아니스트 / 음악평론]

 

 

음악회가 시작하기 전 그날 연주 될 곡목을 해설한 프로그램을 열심히 읽는 청중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오로지 현장과 그 순간의 느낌이 중요하다며 아무 선입견 없이 음악 자체에 열중하려는 사람들도 있지요. 음반을 들을 때에도 사람들의 태도는 비슷하게 양분되는 것 같습니다. 음반 속지의 곡과 연주자에 대한 정보를 미리 읽는 경우와 먼저 음악부터 듣고 보는 쪽으로 나뉘는 것입니다.
어느 편이 더 좋다거나 올바르다는 판단을 굳이 작동할 필요는 없겠지요. 작품이나 연주자에 대한 정보를 미리 입력시키면 음악을 들을 때 일종의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이 끼어들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사전조사를 철저히 하고 연주에 접해야 그 곡에 대한 이해가 더 심도 있게 이루어진다는 주장에도 일리는 있습니다. 아무 정보 없이 그저 음악 자체에 모든 것을 맡길 때에는 일정 수준 이상의 듣는 귀가 이미 확보되어 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이제는 해묵은 느낌이 드는 제목으로 다가오지만 19세기 후반 유럽에서는 이른바 ‘절대음악이냐 표제음악이냐’를 놓고 논쟁이 한참 뜨거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즉 음악은 그 어떤 다른 조건에도 얽매이지 말고 단지 소리와 구조자체로 충분한 의미와 아름다움을 가진다는 절대음악 옹호론과 음악은 결국 음악외적 이데아(idea)나 상상력의 표현도구로서 기능할 때 높은 시너지 효과를 가지는 예술로 업그레이드된다는 이른바 표제음악파 사이에 대립이 그것이지요.
절대음악 지지파들은 어떤 종류의 음악외적 방해요소도 없는 순수 기악음악을 최고의 이상으로 삼습니다. 자연히 장르도 소나타나 심포니와 같이 추상적이면서 작품의 구조가 다른 어떤 요소보다 중요시되는 것들을 선호하게 됩니다. 음악이란 그 구성 재료인 소리와 그것을 조합하는 형태만으로도 자족적인 아름다움을 가진다는 의견은 멘델스존, 브람스 같은 작곡가나 한슬릭(Hanslick)같은 음악미학자들의 지지를 받았지요.
한편 음악에 문학이나 철학에서 비롯된 내용과 상상력을 풍부하게 끌어들여 스토리텔링을 전개장치로 삼고 감정의 고양(高揚)에 작품의 존재의미를 부여한 프로그램 뮤직(Program Music)은 교향시(tone poem)라는 장르의 급부상과 함께 리스트, 바그너, 베를리오즈 같은 급진 낭만주의자들의 전유물이 됩니다.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음악은 외부적인 환경과 생산조건에 얽매이게 되는 일종의 기능예술이었습니다. 중세의 교회를 비롯하여 귀족들의 궁정에서 음악은 봉사적 역할을 활발하게 수행했던 것이 사실이니까요.
중세시대부터 존재해 온 모테트(Motet)와 같은 장르만 해도 다성부로 이루어진 여러모로 다재다능한 음악으로써 교회의 의전이나 예식에도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세속음악으로도 자주 제작되었는데 결혼식을 비롯한 사회적 행사에서 그것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예컨대 3성부로 된 모테트의 각 성부는 다른 내용의 가사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예사였는데 아무도 그것에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윗 성부는 라틴어 나머지 성부는 프랑스어나 다른 세속어로 구성되어 있어도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하니  모테트의 가사가 딱히 어떤 의미를 전달하느냐에 관해서 중세 사람들은 관심이 없었던 것이지요. 그러니까 모테트는 기능음악이었지만 어떤 의미에서 그 자체의 존재로써 의미를 갖는 최초의 절대음악이라고 한다면 너무 비약이 심한 것이 될까요?
고전시대 깊숙이 들어오기까지 음악은 그 어딘가에 봉사되는 기능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적어도 시대의 ‘초월남’ 베토벤에 이르러 드디어 참을 수 없다는 듯 작곡가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독자적인 작품 창작의 기치가 높이 올라갈 때까지는 말이지요.

 

19세기 낭만시대만 해도 기능성을 추구하던 과거의 그림자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어서 작곡가나 음악학자들의 자의식에서는 끊임없는 예술적 자주성과 독립성을 희구하는 열망이 숨어있었습니다. 힘들게 쟁취한 음악의 홀로서기 및 자주적 가치의 앙양은 절대음악 지지자들에게는 끝까지 수호해야 할 가치로 인식되었겠지요. 그런 그들에게 음악외적인 요소를 잡다하게(!) 끌어들이는 표제음악은 또 다른 각도에서 음악 고유의 순수한 자존심에 흠집을 내는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겁니다.
한편 표제음악 옹호자들에게 있어서 절대음악이란 따분하고 답답한 구시대의 유산쯤으로 다가왔겠지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지론이었습니다. 그들이 음악 속에 집어넣어서 표현하려는 다채로운 내용이야말로 음악을 더욱 실감나게 만드는 수단이었습니다. 숱한 문학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드라마’적 구조는 음악이라는 매체를 갈구하고 있었고 음악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효과만 하더라도 드라마틱한 내용이 훨씬 강렬한 것 같았지요. 더구나 절대음악 하는 사람들의 고답적이고 오만한 태도, 즉 음악은 음악자체의 아름다움에 봉사해야하고 청중들은 부차적인 존재라는 식의 철학도 못마땅했을 겁니다. 듣는 이의 입장에서도 내용과 스토리를 담고 전개되는 음악이 훨씬 이해하기도 쉬울 것이 아닌가 말이지요. 
한편 절대음악 진영의 사람들은 일종의 ‘쿨(cool)’ 함을 유지하려 애썼고 결국 추상적이고 형식존중의 음악이라 하더라도 듣는 이들의 마음에 가 닿을 수 있다면 어떤 식의 상상이나 임펙트를 분명히 창출해 낼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 두 진영의 논쟁과 대립은 어쩌면 다분히 19세기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가능하고 가능하지 않은 것도 가능해진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어쩌면 부질없고 의미 없는 입씨름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속성은 분명히 있습니다. 음악을 듣는 귀가 아무리 익숙해지고 여러 다양한 스타일에 한껏 길들여져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음악회 프로그램 노트가 필요하고 음반 설명지가 필요할 지도 모릅니다. 비록 인터넷 동영상으로 클래식 음악을 접하는 온라인 청중들에게는 같은 온라인 청중이 던진 코멘트 하나가 그 곡을 이해하는 주요 단서가 되거나 음악 듣기에 결정적 영향력을 미치는 이 시대이지만 말입니다.
이른 아침 그 옛날 기능음악 중 으뜸이었던 그레고리안 찬트를 틀어놓고 한참을 듣다보면 마음이 스스로 정화되며 단순 투명해지는 효과를 맛볼 수 있습니다. 나른한 오후 베를리오즈의 교향시 ‘이탈리아의 해롤드’를 들을 때 끓어오르는 감정의 고양은 또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요? 늦은 밤 비밀스럽게 틀어놓은 브람스의 ‘클라리넷 소나타’의 정감에 가슴을 부여잡은 채 잠을 못 이룰 때면 절대냐 표제냐의 구분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경지로 들어서게 됩니다. 어쩌면 논쟁일랑 미학자들이나 논객취향의 창작자들에게 맡기고 음악을 만드는 주체가 아니라  듣는 주체로서의 자유와 행복을 맛보는 편이 훨씬 좋을 것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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