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0년 성서와 문화

[이 정 배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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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서세동점의 시기, 조선의 식자들 대다수는 전통에 대한 좌절과 함께 서구문물을 앞 다투어 수용하고자 했다. 물론 자신들의 지적 유산을 최고로 믿고 그것을 지키려 했던 수구적 지식인들도 더러 있었으나 대다수 식자층은 전통과의 단절을 꾀했다. 자신의 조국을 지키지 못한 과거의 종교이념에 대한 절망이 너무도 깊었던 까닭이다.
이런 정황 속에서 서구 기독교를 수용하되 그것을 자신이 평생 몸담았던 유교와의 연속적 차원에서 보고자 했던 학자가 있었으니 최초의 신학자, 정동교회 한국인 최초의 목사인 탁사 최병헌(1858-1927)이었다. 충북 제천이 고향인 탁사는 인생의 절반 이상을 유학자로서 살았으나 우연한 기회에 J. 로스 선교사의 한문선생이 되어 한문성서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에 참여하던 중 그에게 세례를 받고(1893) 신학을 공부하였다. 개종한 양반계층들의 교회인 정동교회에서 목회를 했으며 감리교 신학대학교의 전신인 협성신학교에서 교리사, 종교사 등의 과목을 가리키는 신학자의 삶을 살기도 했다.
개신교 최초의 신학논문인 ‘죄도리’란 논문을 썼으며 한국 초유의 신학 잡지인 <신학월보>를 창간했고 유불선 세 종교를 기독교와의 관계 속에서 평가한 신학 소책자들 <성서명경(聖山明鏡)(1912)>과 <萬種一(1922)>을 남겼다.
이런 저술이 가능했던 이유 중의 하나로 보수 신학적 배경을 지닌 여타 선교사들과 달리 다소 진보적 성향을 지닌 아펜젤러와의 깊은 사귐을 들 수 있다. 기독교의 진리가 한국인의 하느님 신앙과 접촉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펜젤러의 소신이었다. “… 한국인은 모든 것 위에 있는 최고 존재로서 하느님 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위에 (신학을) 세우십시오.”
실상 최병헌의 젊은 시절은 유교관리를 꿈꾸며 과거를 준비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매관매직되는 유교의 타락상을 목도했으며 민비시해로 이어지는 망국의 징조를 경험하면서 최병헌 스스로도 유학에 좌절하기도 했었다. 그에게 세례, 곧 기독교인의 의미는 하늘을 섬기도록 가르치는 사서오경(四書五經)의 유학과는 다른 길이었다. 즉 하늘의 사랑을 보여준 대속(代贖)의 의미가 유학자인 그에게 새롭게 각인된 것이다. 하지만 최병헌은 유학을 버릴 수 없었다. 한국인이 지닌 최고의 신개념을 하느님 사랑,  곧 속죄적 기독교의 관점에서 풀어내야만 했던 것이다.

 

주지하듯 앞에서 언급한 최병헌이 쓴 두 권의 주저(主著)는 모두 ‘서양의 하늘과 동양의 하늘이 다르지 않다’(西洋之天卽東洋之天)는 원리에 근거하고 있다. 나아가 그는 동양의 상제가 곧 서양의 상제이기도 하다는 주장까지 서슴지 않았다. 보편적 하느님 체험 하에서 유교와 기독교를 함께 이해하려 했던 것이다. 유교 고전에 능통한 학자로서 최병헌은 의당 마테오 릿치의 <천주실의(天主實義)>란 책을 읽었을 것이다. 하여 그는 인격신 개념을 탈각시킨 성리학을 비판하며 선진유학의 인격신 개념을 강조했다. 공자 역시도 천지를 주관하는 상제를 경외하는 인물이었음을 적시한 바 있다.
하지만 최병헌은 <천주실의>에 나타난 적응주의에 만족하지는 않았다. 유교와 기독교간의 같은 점에 초점을 맞춘 탓에 정작 양자 간의 차이점, 곧 예수의 대속사상에 대한 언급이 약술 내지 간과된 것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다. 유교와 기독교를 하늘(天)의 보편성 속에 놓으면서도 예수의 대속사상을 강조했다는 말이다. 따라서 최병헌에게 유교와 기독교는 연속적이면서도 비연속적 관계에 있다는 말이 적합한 표현일 듯하다. 바로 그의 두 책은 모두 이런 시각을 반영한 저서로서 배타주의로만 일관된 대다수 한국 교회는 지금도 탁사 최병헌의 시각을 좆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탁사와 같은 사상가를 우리 민족 속에, 한국 기독교에 주셨다는 사실에 깊이 감사한다. 그가 있었기에, 그로 인하여 기독교의 토착화 운동이 비롯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1912년에 쓴 <聖山明鏡>은 동양의 거룩한 산(聖山)에서 유불선의 대표자들, 眞道(유교), 圓覺(불교), 白雲(도교)과 기독교의 신천옹(信天翁) (여기서 신천옹은 몸집이 거위보다 큰 바닷새의 하나로서 입을 벌려 물고기가 들어오는 것을 믿고 기다린다는 의미로 만들어진 조어이다. 결국은 유불도가 기독교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상징한 것이다.) 간의 가상 대화를 수록한 한글 소설이다.
진도와의 대화에선 천당/지옥이, 원각과의 대화에선 출가전통에 대한 비판이 그리고 백운과의 대화에선 영혼에 대한 주제가 관건이었다. 불교와 도교측은 신천옹의 말에 쉽게 긍정했으나 유교를 설득시키는 일이 난제였다. 치국평천하를 외치는 유교의 시각을 천국/지옥설로 설득시키기가 어려웠다는 말이다.
실제로 최병헌은 국권을 빼앗기는 것도 죄악이지만 그것을 뺏는 일은 더욱 나쁜 것이라 하여 현실 정치적 문제를 소홀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유교와의 연속성 문제는 기독교인이 된 그에게 여전히 중요한 사안일 수밖에 없었다. 10년 후의 작품인 <萬種一>에서 유교와의 대화가 중심축을 이룬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우선 책명 <萬種一>의 뜻을 풀이 하면 다음과 같다. “種은 근원적 진리를 조회하여 그 이치를 받들어 행하는 것이며 一은 한 덩어리의 고기에 의해 모든 음식의 맛을 알 수 있다” 여기서 一은 하나의 신체험이라 해도 좋다. 따라서 본 책 제목은 ‘만 가지 종교가 있으나 하나의 신적 체험 혹은 ’요점‘을 공유할 수 있다’는 뜻인 것이다.
최병헌에게 있어 일체 종교를 파악할 수 있는 하나의 종지(요점) 는 유신론, 신앙론 그리고 내세론이었다. 그에게 기독교는 이 셋을 온전히 포괄한 종교였다. 이점에서 하늘 숭배(공경)만 있고 내세론이 없는 유교는 한계로 지적되었다. 하지만 유교 역시도 유신론과 신앙론을 갖고 있기에 要點(신체험)에 있어 기독교와 연결고리가 있으며 한 솥 안의 고기 맛(一)의 비유가 유교에게도 타당함을 강조했다.
이런 맥락에서 탁사 최병헌의 비연속성은 한국 기독교의 기본 정서인 배타성과는 구별될 필요가 있다. 종교에 대한 선험적(교리적)판단이 아니라 경험적, 실존적 연구의 결과인 까닭이다. 한국 교회가 교리적 선험적 판단에서가 아니라 비교종교학적 경험론의 토대에서 이웃종교를 이해했다는 사실이다.
100여 년 전에 살았던 목사로서 최병헌은 인간이 본래 해석학적 존재임을 알았던 큰 사상가였다. 그의 개종체험이 자신의 삶의 바탕이었던 유교와 대화 가능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인 2008년 10월 12일 정동감리교회에서는 濯斯 최병헌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는 출판기념회가 개최되었다. 당일 17명의 학자들이 기고한 <탁사 최병헌 목사의 생애와 신학>이란 책이 교인들 손에 들려졌고 필자가 본 책에 대한 논평을 했다. 탁사의 손주 및 증손주 되는 가족들도 참여하여 뜻 깊은 자리가 되었다. 그의 후손들은 대다수 미국으로 이민 가서 충분한 부를 축적할 만큼 자리를 잘 잡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기고된 글 중 장로교 옥성득 박사의 논문이 눈에 띠었다. 1913년 1년간 행해졌던 탁사의 설교를 분석하며 이전과 달라진 모습을 분석한 글이다. 종래의 문명개화론, 교육 구국론과는 달리 천년 왕국설, 재림 고대론, 성령강림 등 보수적 역사의식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것을 비판적으로 지적했다. 1910년 한일 합방, 1902년 105인 사건 그리고 1919년 기미 독립선언서에 불참 등의 사안을 통해 濯斯의 자기모순을 지적한 옥성득의 논문은 濯斯 예찬에 급급했던 감리교 신학자들에게 일침이 되었다.
여하튼 濯斯 그가 있음으로 해서 대한민국의 기독교는 이 땅의 종교들과 공존할 수 있었고 토착화 신학 전통을 유지할 수 있었다. 특수계시를 인정한다 해서 일반계시(종교)를 부정하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 정경옥 박사, 유불선 종교를 하나씩 부여잡고 그들과 대화했던 海天 윤성범, 一雅 변선환 그리고 素琴 유동식선생님들이 바로 그의 사상적 후계자들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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