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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과 그린다는 것과

성서와 문화 2010.12.27 11:41 조회 수 : 2348

최 종 태 ·조각가 / 예술원회원

 

 

그림은 왜 그리나. 이 물음은 내가 50년을 생각했는데도 끝이 없습니다. 아마도 답이 않나오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름다움을 찾는 일이다. 이것 역시 내가 50년을 생각했는데도 아름다움이란 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알 수 없는 것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이 부질없는 일을 우리는 왜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좋은 그림을 만나면 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감격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나는 요즘 감격을 잊어버린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또는 자나 깨나  감격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나는  좋은 그림을 앞에 했을 때 감격합니다. 베토벤의 음악을 들을 때도 그런 감격이 있습니다. 감격이란 무슨 현상일까요. 나는 그림을 그릴 때 그런 감정을 못 느끼면서 일을 합니다. 그리는 내가 못 느낀 그런 것을 내 그림을 보고서 감격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무슨 일일까요. 그림 그리는 사람 마음속에 무언가 있는 게 아닐까요.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림 속에 감격이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사람 마음속에 있는 그 무엇인가가 그림이라는 표현방식을 통해서 가시권으로 나왔는데 사람들이 그 형상을 통해서 감격이라는 충격을 느낀다. 그런 일일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내 그림이 자유롭게 누구의 구속도 받지 않고 독립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근래 더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전에는 그런 생각이 없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내 생각 내 느낌으로 내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것인데 말이 그렇지 그게 그냥 되는 게 아닙니다. 유구한 역사가 있습니다. 그 수수만만의 손길로부터 자유롭게 나 혼자 설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있기 어려운 일입니다. 길가에 작은 풀들은 제각기 자유롭습니다. 그러나 그림이란 것은 저절로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피카소가 한 말이 자꾸만 생각납니다. “내가 어린이와 같이 그릴 수 있게 되기까지 50년이 걸렸다” 화가의 자유란 것은 그렇게 얻기 어려운 것입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자유를 얻고 싶은 그런 생각을 이제 포기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 말입니다. 포기해야 자유가 생긴다는 말일수도 있습니다. 자유를 얻으려면 자유라는 그 생각을 놔야만 한다. 불가(佛家)에서는 방하착(放下着)이란 말을 합니다. 표류가 된다 해도 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잊어버리고 싶습니다. - 그 생각을 잊어버림으로 해서 그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
우리는 수시 수시로 감격이라는 경험을 합니다. 새로 나온 봄 싹을 만날 때, 벚꽃이 휘날리는 언덕길을 갈 때, 아기의 너털웃음을 들을 때……. 그것은 어떤 기쁨일는지도 모릅니다. 그림 그릴 때 그런 기쁨은 없습니다. 단지 망상에서 벗어나는 시간이 있습니다. 현실이라는 무게로부터 해방되는 시간이 있습니다. 생각이 중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막대한 고요의 시간이 있습니다. 그림은 이성으로 그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감성의 움직임 같은 것도 아닙니다. 무엇이 어떻게 움직여서 그림이 되는 것일까요.
화가는 모르는 것이 참 많습니다. 우선 그림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매일같이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어떤 그림이 더 좋은 그림일까요. 그것을 재는 잣대(尺)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림을 분별 하는 것일까요. 그림의 무게를 재는 저울이 없습니다. 그림을 보는 것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사람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 있습니다. 백년 이백년의 시간이 걸려서 평가되는 수도 있습니다. 요즘은 그림을 화폐가치로 생각하는 수가 많습니다. 화가가 돈 벌려고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닙니다. 그림 그리는 마음은 그런 생각이 일어나는 곳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순결로 해서 물듦이 없는 곳입니다. 돈은 그림하고 상관이 없습니다. 그림 그릴 때 그 마음은 잠시 이 세상을 떠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림이 행위하는 곳은 죄의 물듦이 없는 차원입니다. 깨끗한 세계가 있습니다. 완전히 깨끗한 세계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완전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곳은 차원을 달리하는 곳이란 말을 한 것입니다. 완전한 그림은 없습니다. 완전히 아름다운 그림은 없습니다. 단지 완전한 곳과의 연결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림에 생명이 있다고 합니다. 세계의 박물관에는 한량없는 그림들이 있지만 완전한 것은 단 한 점도 없습니다. 사람이 완전한 것을 만들지 못한다는 말이 옳을 성 싶습니다. 그러면서도 감격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진짜 「완전함」을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큰 감격이 있을까요. 비할 수 없이 큰 것, 형언할 수 없는 어떤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
만약에 내가 지금 어떤 한 꿈이 있다면 완전한 것을 보고 싶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것은 내가 한평생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로 꿈꾸었던 것 그 모든 것들의 총체적인 것일 수 있습니다. 그 모든 것입니다. 나는 그것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싶다기 보다 그것을 만나고 싶은 것입니다. 어떤 대면(對面)입니다. 거기에는 큰 기쁨이란 게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서 그냥 관습처럼 그림을 그립니다. 요즘 알게 된 것인데 아! 안 된다 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밖에 안 되는 것일까. 한 치만큼 이래도 나는 진전하는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지금도 또 선을 넘지를 못하고 여기까지 입니다. 나는 매일같이 안 되고 있는 것을 확인합니다. 아침에도 확인하고 저녁에도 확인합니다. 안 되고 있는 것 그 나의 흔적을 보면서 나는 쓸쓸합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를 삶인데 덜된 이것을 남겨놓고 결국은 나는 가야합니다. 모든 가치, 거기에 대한 물음을 허심탄회하게 내려놓고서 나는 지금 오직 안 된다는 것만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이것만이 진실입니다. 화가에게 있어서 일 한다는 것은 명상의 시간입니다. 자기성찰의 시간입니다.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냥 과정일 뿐입니다. 사람이 숨을 쉬듯이 화가에게 일이란 숨 쉬는 것과 같습니다. 일종의 휴식이랄 수도 있습니다.
안다는 것이 무엇인가요, 소유한다는 것이 무엇인가요, 누린다는 것이 무엇인가요, 부귀나 영화는 또 무엇인가요, 그 인간적인 것들을 다 바다 건너에다가 놓아두고 오로지 맑은 것으로 남는 것, 인간은 시원의 곳을 그리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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