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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찌우마(八馬理) 선생님

성서와 문화 2010.12.27 11:41 조회 수 : 2421

허 영 수 ·소설가

 

 

오사카(大阪)에 근무하던 1995년 1월17일부터 9일간 일본 고오베神戶에 대지진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하찌우마 선생이라는 분을 떠올리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이분을 꼭 선생이란 칭호를 붙여 부른다.
1994년 9월 신라 금동불상, 백제 귀걸이 등 신석기시대에서 삼국,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국보급 문화재 380점을 조건 없이 기증한 분이다.
그 분을 찾아간 것은 고오베 대지진이 발생하기 20일 전인 1994년 12월 28일이었다. 조계종 종정이신 월하스님의 서예 작품을 정중히 전해달라는 문화부 차관의 부탁을 받았다. 그분의 집은 고오베 대지진 때 피해가 극심했던 고색창연한 아시야茅屋에 있었다.
짙은 감색 양복의 정장으로 맞아준 60대 노신사는 산사에서 참선하는 선사禪師의 모습이었다. 소박한 응접실에 안내되었을 때 테이블 위 퇴색한 사진을 얼른 치우며 “귀국의 철천지원수인 이또오伊藤博文와 제 할아버지께서 미국 유학을 떠날 때의 기념사진을 선생님이 오시는 줄 알면서 신경 쓰지 못해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하는 것이었다. 음성과 태도로 보아 형식적인 사죄나 의례적인 겉치레가 아니었다. 일본이 우리에게 저지른 죄 값을 대속하려는 듯한 순교자적 모습이라고 하는 것이 어울렸다.
그 많은 우리나라 국보와 보물급 문화재를 어떻게 수집했으며 기증하게 된 동기는 무엇일까?
하찌우마 선생의 아버지는 옛 ‘사무라이’적 품격을 지닌 분이었다. 1916년 와세다早稻田대학 상학부 출신으로 하찌우마 기선회사, 다몬多聞양조, 고오베 은행, 호마이寶梅園농장을 경영했다. 1938년에 귀족원 의원이 되신 분으로 골동품 수집과 감상이 취미였다고 한다. 도굴꾼이나 무식한 소장所藏가들이 헐값으로 일본에 넘기던 시기에 사 모았던 것이다.
두주불사로 한량이시던 이분은 65세에 타계하고, 수집한 문화재는 차남인 하찌우마 선생에게 상속되었다. 장남은 아버지의 백작작위를 물려받은 철저한 신도神道(일본국교) 신봉자로, 불상이 대부분인 이런 골동품은 불교신자인 아우에게 주었다고 한다.
“어머님이 몸이 불편해서 우리 부부는 함께 해외여행을 못 해봤습니다.”
이 말은 효도만은 우리나라가 종주국이라고 자부하고 있던 나를 부끄럽게 했다. 그러나 궁금한 것은 아직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는 문화재 기증 이유다. 그의 답은 간단했다
“주인에게 주인의 물건을 돌려주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메이지明治유신 이전만 해도 우리나라에 문화를 전수해 주신 스승인 나라에 우리는 배신으로 보답했습니다. 제 어머님이 내년이면 99세입니다. 백수를 살게 해주신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그래서 반환한 것입니다.”
기증寄贈이란 낱말을 쓰지 않았다. 반환이라 했다. 이날 이후 선생과 나는 자주 만났고, 은근한 정도 들었다.
고오베 대지진으로 하찌우마 선생이 살고 있는 아시야가 불에 타고 있는 TV 화면을 보면서 하찌우마 선생 댁에 다이얼을 돌렸다. 물론 불통이다. 배달 불능인 줄 알면서 편지를 썼다. 무사하기를 진심으로 빌면서. 
2월 19일, 6장의 정성을 담은 회답이 왔다.
“어머니를 변기에 앉혀 용변을 보시게 하고 침대에 눕혀드린 것이 새벽 5시40분. 운명의 5시46분 정전. 암흑 속에서 나무아미타불을 염송念誦했습니다. 상하좌우의 격동이 멈추자 어머니를 불렀습니다. 2층에서 아내가 내려왔습니다. 전원무사, 날이 밝은 후에야 알았습니다만 어머니 변기 의자 위에는 대형 장롱이 반파된 채 덮여있었습니다. ‘생과 사’가 단 몇 초의 차이였습니다. 부처님의 가호에 감사할 뿐입니다. 한국의 귀중한 문화재를 지진이 나기 전에 무사히 반환할 수 있게 된 것도 부처님이 유도해 주신 자비라고 생각됩니다. 불은에 감사할 뿐입니다.” 완전한 상태에서 귀국의 문화재를 반환할 수 있게 되었다는 안도감과 희열, 하찌우마 선생은 열반涅槃의 경지에 다다랐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얼마 후 하찌우마 선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저녁을 함께 하고 싶다고. 약속시간에 맞추어 고오베로 갔다. 120년이 된 고색창연蒼然한 조용한 레스토랑이었다. 동경에 사는 친한親韓파 대학 동창까지 불러 자리를 함께 했다. 그날 하찌우마 선생의 이야기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분의 외동아들이 췌장암으로 투병할 때, 아버지의 팔을 붙들고 링겔주사 바늘을 꽂을 때가 없어 팔을 절개하고 꽂는 아픔을 참지 못하고 “죽어도 좋으니 팔을 절개하지 말아 달라.” 고 울부짖는 것을 보고 일본이 한국의 주권을 빼앗고 양민과 애국자에게 지금 자기 아들이 당하고 있는 몇 배의 고통을 가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말을 할 때 하찌우마 선생의 눈은 충혈 되어 있었고, 술잔을 든 손은 떨고 있었다. 나도 그 모습에 가슴으로 통곡이 솟아올랐다. 남의 불행 남의 슬픔을 자기의 불행과 슬픔으로 생각할 수 있는 그 진정과 겸허한 노력이 그 민족의 덕성德性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10년 가까이 일본의 우로雨露에 젖고 일본쌀을 먹고 살았다. 그동안 평범한 일본인들 중엔 하찌우마 선생과 같이 남을 배려하고 겸허한 사랑과 진정이 흔해빠진 생활 윤리임을 접할 때마다 과거 일본의 잘못을 이들이 만회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1995년11월. 정부 수립 후 두 번째로 하찌우마 선생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첫 번째 수상자는 야나기무네요시柳宗悅씨다. 현재 ‘중앙국립박물과’에 하찌우마 코너가 상설되어 있고 이 분이 기증한 문화재가 상설 전시되고 있다.

우리는 해방을 맞이하고 얼마 안 되어 민족상쟁의 전쟁으로 국토는 초토화되었다. 이때 이웃 일본은 패전의 파멸을 딛고 일어나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한국도 우리의 주권을 빼앗았던 일본에게서 기술을 배우고 경영을 배웠다. 뿐만 아니다. 정직·친절·근면도 배웠다. 무엇보다 남이 궁지에 몰렸을 때 도우는 지극히 평범한 것 같으나 따뜻한 생활윤리도 일본에게 배웠다.
8월 초에 미국 딸네 집에 갔었다. CNN보다 NHK가 귀에 더 익숙해서 채널을 NHK에 맞추었다. NHK News에 ‘아직 말도 못하는 어린애 남매男妹를 집에 버려두고 나간 엄마가 애들이 굶어 죽을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그 어머니의 인터뷰 내용은 이렇게 간단하고 단순했다. “애들 때문에 내 자신의 시간이 너무 없어서”였다.
또 그 며칠 후 장수 왕국인 일본인의 100세 이상 고령자의 190여명이 이미 돌아 가셨는데 버젓이 생존자로 되어 있었단다. 유가족들이 국가에서 지급하는 장수수당을 타기 위해 사망신고를 하지 않았다. 이제 한국이 일본에게 배울 것이 없어졌다고 생각한다면, 한국인의 교만한 생각일까?
이런 현실은 한국과 일본 모두에게 더 할 수없는 불행이 아닐 수 없다. 한·중·일 세 나라는 동북아시아 전체를 생각하고 세계를 생각해야 할 책무責務를 지니고 있다. 그러기 위해 세 나라는 역사와 문화를 생각하고 공동의 지반地盤을 다져야 할 중요한 시기다. 한·일 양국은 폐허廢墟가 된 나라를 재건할 때의 노력과 정신문화를 되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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