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0년 성서와 문화

김 영 덕 ·화가

 

001.jpg

 

젊어서부터 산을 좋아해서 근 50년 가까운 산행이력을 쌓은 나에게도 금강산 행은 꿈의 길, 갈망의 길이었다. 
그러나 초행의 2박3일간의 짧은 일정에서 겪은 바 구룡연폭포, 상팔담, 만물상에 한정되는 공식적 볼거리로는 그것이 빼어난 외금강의 일부이기는 하되 역사적으로 회자되던 금강산을 상상했던 모습에는 많이 미진하고 아쉬운 것이었다. 그래서 혹시 다른 무엇인가가 없을까 수소문을 해봤다. 그리고 예상은 적중했다. 일반화되지 않은 대박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 외금강산을 조망하는 빼어난 전망대 중의 하나인 세존봉(1,160m)을 등반하고 그 뒤편으로 돌아 집선연봉(1,351m)을 낀 동석동 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여덟 시간이 소요되는 산행코스가 별도로 운영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이 코스의 일부는 대단한 험로여서 산행의 경험이 많은 경력자들로 30명을 단위로 조를 편성하여 신청하면 현대 아산 측과 북측의 안내인 각 3-4명씩이 동행 안내하는 형식이었다. 나는 현대 아산 측의 현지 운영 팀에 부탁하여 아예 서울서부터 이 코스를 하기로 하고 내려오는 팀에 나를 소개하여 끼워 넣어 주기를 부탁하였다. 2-3일을 기다려 어느 은행의 직장동호회라는 삼,사십대의 원기 왕성한 산 꾼들 틈에 끼워져 이 늙은 몸이 그들의 주행력에 뒤쳐지지 않으려고 난생처음으로 겪는 초죽음의 산행을 치뤘지만 소득은 흡족했다.
1,160m의 고지에서의 조망과 동석동 계곡을 타고 내려오면서 오른편에 펼쳐지는 집선연봉의 압도하는 웅자 (그 중 동북능 북벽은 900m의 깎아 세운 암벽이다)에 탐닉하고 이 길의 끝자락 금강미인송이 꽉 들어찬 숲길, 신계천(신계사 앞을 흐르는 내) 다리에 이르는 5-6키로 쯤 되는 그 몽환적 풍경을 경험하고 비로소 금강산이 어째서 금강산인지가 어렴풋이 잡히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의 내부에서 금강산 그림 작업의 구상이 서서히 빚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2005년 가을께였다. 작업이 시작됐다. “나의 금강도-서기瑞氣”가 나오고 이어 “나의 금강도-천화天華는 청靑에서 나다”도 나왔다. 뒤이어 “나의 금강도-효봉曉峰”, “나의 금강도-금빛 단애斷崖”가 나오고, 나오다 무너진 것도 있다.
작업실에 새 캠퍼스가 여럿 세워지면서 다시 기를 충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또 가고 싶었다. 이번에는 현대아산의 서울본사 관광 운영 팀에 그만한 사람을 다리 놓아 부탁해 흔쾌한 승낙을 얻어냈다. 현지 운영 팀에 “최선의 편의를 제공할 것”이라는 지시를 얻어낸 것이다.
현지에 가서 과연 호사를 했다. 현대아산과 북측의 안내자 각 두 명 씩이 나를 옹위하고 내 희망에 따라 집선연봉을 보러 다시 동석동 계곡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번에는 역으로 신계천 다리에서 시작한 산행이었다. 다시 본 집선연봉!! 먼젓번과는 계절과 시간대가 달라 그 풍광은 전혀 새로운 모습이었으나 처음 볼 때의 압도적 충격과 가슴 벅찬 설렘은 이제 많이 가시어 흥분 속에 여유를 갖고 대상을 음미하며 내 감성에 깊이 흡인할 수 있었다.
다음날 수정봉(773m)에 올랐다. 이 산은 온정리, 그러니까 관광객들이 집산하고 여러 시설물들이 널려있는 본부지역의 북쪽에 있는, 평양 옥류관의 금강산 분점건물의 배경을 이루는 바위산이다. 외금강 산줄기와 동해바다 사이의 한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예로부터 질 좋은 수정이 무진장으로 묻혀있다는 이 산은 온 산이 단단한 화강암 덩어리로 오랜 지질학적 시간 속에서 풍화, 마모, 침식이 거듭되어 기기묘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널려있고 산의 중허리까지는 발달한 계곡과 바위에 뿌리박은 잘생긴 금강송으로 수려한 경관을 이루고 있었다. 정상에 얼추 오른 곳에는 풍화와 마모로 거대한 통바위가 아치형으로 돌문을 형성하고 있는데 그 규모가 가로 세로 10여 미터로 자연의 경이로운 조화造化에 오직 입이 벌어질 따름이었다. 그것이 유명한 수정문이다. 그리고 산의 능선 어디서나 눈을 들면 일망무제! 천혜의 포구 장전항을 안은 동해바다가 아득하고 뒤편으로는 외금강산줄기가 티끌하나 걸림 없이 파노라마로 한 눈에 가득하다. 외금강산의 전체상을 담은 뛰어난 영상물들이 이곳에서 만들어졌음을 알게 한다.
어린애처럼 고추먹고 맴맴을 돌아보는 나의 어지러운 시야에 금강산과 동해바다와 그 하늘이 범벅이 되어 환영처럼 덮쳐왔다. 나는 숨을 고르며 맞춤의 바위 위에 앉아 이 장엄한 풍광을 음미했다. 저것은 온정령 그 옆이 상등봉, 관음연봉, 그 뒤로 옥녀봉, 비로봉, 장군봉, 채하봉, 집선봉, 세존봉 그 옆에 천화대 그리고 강선대 소반덕, 저 아래가 동석동계곡 저쪽이 옥류동계곡 그 위에 구룡연폭포와 상팔담 …… 그리고 아 ~ 저기 온정령 고갯길 그 아득한 너머로 내금강산이 있으려니 …… 나는 그 동안 익혀온 외금강산줄기와 마주하고 이름 맞추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나를 안내하고 온 남북 양쪽의 안내자들은 조금 떨어진 바위 그늘에 앉아 웃음꽃을 피우며 담소를 즐기고 있었다. 참으로 보기 좋구나. 그리고 고마운 사람들이다. 눈물겨운 오늘의 내 조국이여-
2007년 드디어 내금강산길이 열렸다. 나는 허기진 듯이 그 곳에 들어갔다. 우리나라의 윗대 화가들 중에 금강산을 그린 사람들은 여럿이지만 그 중 가장 많은 작업을 한 화가는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에 걸쳐 활약한 진경산수화의 창시자인 겸제 정선과 단원 김홍도일 것이다. 이 분들의 작업은 내외금강산의 여러 풍경과 해금강의 총석정에까지 미치고 있지만 이 중 가장 으뜸인 것은 겸제선생의 금강전도(국보 217호)일 것이다. 그 그림은 우선 구상부터가 차원이 다르다. 그의 사유세계가 어떠했으면 저런 발상과 구도가 나왔을까. 자연에 대한 전일적, 직관적 파악에서 온 것이라 흔히들 말하지만 그 빛나는 예지는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이 궁금증을 풀어주는 자료를 나는 최근 어느 연구서(간송문화, 2007년)에서 찾았다. 겸제선생은 주역과 천문학에 조예가 깊어 당시의 좌의정 김창집의 천거로 관상감 천문학겸교수(종六품)로 조정에 특채된 바 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그의 초월적 사유의 연원의 일단을 짐작케 한다. 작가에게 있어 전문적 식견 외에 드넓은 지식과 깊은 교양이 작업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금강전도가 바로 이 곳 내금강산의 정양사 사역에 있던 헐성루(6.25때 소실)에서 작업되었으리라는 것이 연구자들의 정설이다. 이 헐성루는 내금강 으뜸의 전망대로 47개의 봉우리들이 한 눈에 들어오는 승지勝地란다. 이 풍경을 그린 정충엽(1720-?)의 “헐성루 망 만이천봉”이란 화제가 쓰인 그림이 있어 이곳의 실경을 보여주고 있어 다행이다. 그러나 내가 2007년 가을 내금강에 들어갔던 당시 이 길은 닫혀있었고 오직 장안사 터, 표훈사, 만폭동 보덕사(굴), 묘길상의 길만이 열려있었다. 정양사 헐성루를 거쳐 오르는 비로봉(금강산의 정상, 1,638미터)길도 곧 열린다는 소식이 있었으나 상항은 불행히도 급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어쨌거나 절름발이이긴 해도 이로써 내외금강산을 두루 보고 그 기운을 오관 속에 탐욕스럽게 담았다. 그러면서 계속 그림을 생각했다.
서양의 풍경화는 철저하게 물리적 현상의 재현이고 그 방법이 과학적이고 분석적이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동양 쪽은 전통적으로 작가가 형상을 경험하고 거기에 자신의 심리를 진하게 개입시켜 사유와 명상을 통해 풍경의 기운氣韻과 조응하면서 우주적 화음을 얻고자하는 쪽이었다.
나는 여기에 더하여 우리의 역사에서 가장 빛났던 시절, 그 역동성과 희망, 그리고 오늘의 민족적 고난 속에서의 간절한 염원. 그런 것들을 이 위대한 풍경과 함께 버무려 표현할 수는 없을까. 그런 것을 골똘히 생각했다.
나는 나의 금강도에 고구려인들의 마음과 그들의 생활, 산천과 하늘을 담기로 했다. 구도의 근간을 여섯 개의 방사형도상들로 꾸몄다. 이들은 내외 금강산에 있는 이름난 바위들로 금강산의 상징물들이다. 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삼선암(75m), 명경대(90x30m) 다보탑(50x20m), 절부암, 수미탑(60m), 귀면암(40m)이다. 그 가운데에 삼족오와 옥토끼, 두꺼비가 들어있는 고구려의 해와 달을  띄웠다. 그리고 우리 눈에 익숙한 四신수와 수렵도 무용도 주악하는 천인상 그리고 길상수인 기린 등이 배치되고 당대 동아시아 최고 수준이던 고구려 천문학의 천문도와 금강산 둘레에 난만하게 피는 꽃들로 구성했다.
총체적으로 무너져 내리는 오늘의 세계 속에서 동양적 가치와 사유에 조금은 익숙해져 있어 그 길에서 스스로의 행로를 찾고자 하는 나를 그나마 다행이라 여기면서 …… “나의 금강도 -고구려의 하늘”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2 위대한 영웅 마하트마 간디(Ⅱ) - 그의 원체험(原體驗)과 사상 - 성서와 문화 2010.12.27 2456
31 성부와 성자와 성령 성서와 문화 2010.12.27 2125
30 산다는 것과 그린다는 것과 성서와 문화 2010.12.27 2347
29 하찌우마(八馬理) 선생님 성서와 문화 2010.12.27 2419
28 만년晩年의 광경, 추억 한국의 벗에게 띄우는 편지 성서와 문화 2010.12.27 2155
27 마魔의 벽을 넘고 있는 그릇 - 도예가 이종수의 세계 - 성서와 문화 2010.12.27 2320
26 음악 片紙 ⅢⅩⅥ 영혼을 사로잡는 ‘연습곡’ 성서와 문화 2010.12.27 2088
25 시인詩人과 설교자 - 보는 사람, 볼 수 있게 하는 사람 - 성서와 문화 2010.12.27 2077
24 공주의 조팝나무 성서와 문화 2010.12.27 2419
23 위대한 영혼, 마하트마 간디(Ⅰ) file 성서와 문화 2010.10.04 2614
22 한국적 통섭(通涉), 일명 함(含)의 신학 성서와 문화 2010.10.03 2123
21 미수米壽와 미수美壽 file 성서와 문화 2010.10.03 2450
20 맑고 순수한 영혼의 노래를 그린 이 남 규 화 백 file 성서와 문화 2010.10.03 2489
19 음악 片紙 ⅢⅩⅤ 책으로 엮인 음악편지 성서와 문화 2010.10.03 2329
» 나의 금강도金剛圖 - 고구려의 하늘 file 성서와 문화 2010.10.03 2440
17 역사의 자연화, 자연의 역사화 성서와 문화 2010.10.03 2465
16 난곡(蘭谷) 조향록 목사의 그 지극한 삶을 기억하며 성서와 문화 2010.06.25 2447
15 향기 나는 사람 file 성서와 문화 2010.06.25 2433
14 빛으로 가는 길 file 성서와 문화 2010.06.25 2347
13 장공(長空) 김재준의 ‘성령찬가’ file 성서와 문화 2010.06.25 25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