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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나는 사람

성서와 문화 2010.06.25 11:06 조회 수 : 2435

[신 옥 진 ·부산공간화랑 대표]

 


1970년대 서울에는 명동화랑이 있었다. 이름 자체는 명동에 있는 화랑이라는 뜻 외에는 별 뜻이 없는 그저 평범한 이름이다. 그 시절 비슷한 시기에 개관 한 현대 화랑이 건설회사 이름과 흡사한 평범한 이름이었듯이 …
그런데 그 명동화랑의 사장인 김문호라는 사람만은 그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선친이 석유사업인가 뭔가 하는 부잣집 아들이었던 그는 공군 대위로 예편해서 화랑계로 뛰어든 사람이다. 이를테면 별 고생 모르고 살아온, 어쩌면 세상물정에 어두운 사람이다. 70년대 서울 강남의 7공자 비슷한 계열의 사람일 법한 그런 인간이 마약 중독자 같은 쪽으로는 용케 빠져들진 않았지만 아무튼 길을 잘못 들어 돈키호테처럼 화랑계로 뛰어든 것이다. 여기까지는 일반 평범한 사람과 별 차이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화랑의 출발이 범상치 않았기 때문에 지금 이글을 쓰게 된 동기라면 동기다. 동기가 의외롭다는 것은 그 당시 우리나라 현실로서는 너무도 생소할 만큼 대단히 앞서간 미니멀 아트 계열의 일본작가들, 이를테면 사다마사 모토나가, 수가이 쿠미, 시라가 가즈오, 시노하라 유시오, 요쿠타다노리, 지로타 카마츠 등과 우리나라 김창열, 박서보, 윤명로, 하종연, 윤형근, 정상화, 정창섭 등의 작품들을 기획, 전시한 것이었다.
그 당시 미술 유통 분위기상, 이중섭 김환기 장욱진 도상봉 같은 작품들을 혈안이 되어 찾아다니던 화랑 초년생이었던 필자의 눈에는 그런 현대미술작품들이 너무나 생경하고 한편으로는 신비롭고 신선해 보였다. 말하자면 이해는 잘 안가되 형언할 수 없는 매력이 늘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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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규 작 - 지원의 얼굴]

 


그러나 매력은 매력이고 하루 벌어 하루 버티는 그 당시 나의 처지에서 그런 작품들을 사서 창고에 넣어두고 기다릴 여력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늘 그냥 스쳐만 다녔다. 다만 그 사람 김문호 사장만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때 나 같은 사람의 처지는 그냥 잡화상 하듯 철학도 없이 이것저것 사고팔아서 하루하루 치대나가는 형편인데 비하면 그이는 그야말로 미술계의 앞날을 예견해서 비전을 제시하며 큰 그림을 그려나가는  진정한 의미의 화상상(畵商像)으로 우러러져 서울을 갈 때마다 명동화랑만은 꼭 들리곤 했다.
그 화랑엔 미술계의 저명작가들과 미적 식견이 높고 늘 매스컴에 등장하는 눈에 익은 일급 평론가들이 항상 드나들고 있었다. 그 속에서 필자는 막내둥이로써 이런저런 서울미술계의 돌아가는 단편적 소식을 주워듣고는 흡족한 마음으로 부산행 하행선 열차나 고속버스 등을 타고 피곤함도 잊은 채 내려오곤 했었다.
그런데 여러 번 다니다 보니 왠지 명동화랑의 경영이 서서히 기우는듯한 느낌이 다가왔다. 명동에서 철수한 이후 명동보다 후미진 충무로로 옮겨갔다. 넓은데서 좁은 장소로, 전세에서 월세로, 거기서 다시 안국동 쪽 지하 화랑으로 점점 죄어드는 상황에서 김문호 사장의 건강도 급격히 쇠퇴하는 듯 했다.
그이는 경영이 어려운 와중에서도 아랑곳없이 미술잡지를 창간한다고 법석을 떨기도 했는데 ‘창간호’이자 ‘폐간호’를 겨우 한권 내고는 끝내 다음 잡지는 출간되지 않았다.
그 소식을 듣고 찾아갔더니 불 꺼진 안국동의 지하화랑엔 전시 후 팔지 못한 천재조각가 *권진규의 테라코타 반신상이 지하의 좁은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희미한 빛에 듬성듬성 목을 빼고 을시년스럽게 놓여져 있었다. 그 때의 섬뜩하고 답답함은 카타콤베(catakombe)를 방불케 했다. 안쪽 쪽방 사장실에서 김사장이 인기척을 듣고 슬로우 비디오 장면처럼 쳐진 어깨로 걸어 나오던 모습은 마치 놓여진 조각 중에 하나가 움직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지금은 2~3억원을 호가하는 그 조각이 그 당시는 한 점 삼만원 정도였다. 오늘날에는 너무나 유명해진 지원의 상, 자각상, 비구니상 등이 그때는 그렇게 팽개쳐져 망각의 공간속에 먼지가 쌓인 채 하염없이 방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후 경영은 더욱 어려워지고 이름 모를 그의 병은 더욱 악화되어 가는 듯 했다. 그런 속에서도 그이는 체념한 상태에서 폭주를 불사한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간이 나쁘다고 했던가. 바람결에 들리는 소문은 그의 미래 미술에 대한 컨셉에 맞지 않는 구상계열 작품인 도상봉 박고석 황염수 오지호 등 그 당시 돈 되는 작품들을 어렵게 구해 들고 다니며 생기는 수입으로 막바지 경영을 이어가며 병 치료를 하는 듯 했다.
나 또한 결핵이 도져 흉곽외과 수술로 갈비뼈 하나와 하단 폐 한 엽을 잘라내는 등 대 수술로 말미암아 나뭇가지에 걸린 바람 빠진 풍선같이 몰골이 말이 아닌 상태였기 때문에 번연히 눈을 뜨고 보면서도 별 도움을 줄 방법이 없었다. 기껏해야 보신탕집이나 갈비탕 집 같은 데를 가서 그 당시로서는 좀 후한 식사대접을 한다던가, 그에게 남아있는 상품성이 전혀 없는 일본 현대 판화 한두 점을 사서 생활의 보탬이 되었으면 하고 마음속으로 빌면서 허탈한 마음으로 하행선열차에 무거운 몸을 실곤 했다.
어느 날은 둘이서 식사를 하다가 그가 자신의 머리를 한번 쳐다봐 달라고 했다. 듬성듬성 머리카락이 빠져버리긴 했으나 아직도 남은 것이 더 많은 상태인 그의 머리에 큰 누룽지 같은 얇은 비듬이 얹혀 있었다. 그 비듬을 떼어버리면 얼마 안되서 또 그만한 크기가 생긴다는 것이었다. 그는 공포감을 숨기려고 태연한척 얘기했고 나 역시 생뚱맞게 큰 덩어리의 비듬이 섬뜩하고 괴이했지만 태연한척 웃으며 머리를 자주 씻으라는 얼토당토않은 소리로 얼버무려 넘어 간적이 있었다. 그 와중에 나한테 한 얘기인데 “사람은 늙어가면서 향기가 나야 성공한 인생”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자신은 거기에 이르지 못했으니까 신옥진 당신은 꼭 향기 나는 사람이 되라고 당부했다. 결벽증이 심한 그이는 대화 말미에 그 말은 자기가 한 말이 아니고 일본 동경화랑의 야마모토 사장이 자신에게 해준 말인데 가슴에 와 닿아서 내게 전한다고 했다.
동경화랑의 야마모토 사장은 그 당시 김문호 사장과 함께 한·일간의 미래미술 보급에 많은 일을 하고 영향력을 끼친 인사이다. 특히 그는 한국작가를 좋아해서 이우환 김창열 박서보 이동엽 허황 권영우 심문섭 등의 작품전을 동경에 있는 그의 화랑에서 과감하게 초대해 주어 오늘날 우리나라 작가들이 일본에 대거 진출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야마모토 사장은 별세하고 그의 아들들이 대를 이어가고 있으나 그 당시만큼 활발하지는 못하다. 그리하여 야마모토 사장과 서울의 멋쟁이 김문호 사장 모두가 세상을 등지고, 그들이 그처럼 외롭게 후원했던 한일 양국의 미니멀 아트 계열의 작가들은 이제 양국 현대 미술의 큰 기둥이 되었다. 그리고 “향기 나는 사람”을 그처럼 절실히 당부하고 열망했던 그들이 먼 시간이 흐르고 난 지금, 그들 자신들이 향기 나는 사람의 당사자였음을 나는 깨닫게 된 것이다. 일순 현란한 향기를 뿜었다가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리는 그런 일회성 향기가 아니라 있는 듯 없는 듯 가끔씩 그리워지는 싫증이 나지 않는 향긋한 향기가 참 향기라는 사실도 ….

 

* 권진규
일본 무사시노 미술학교 출신인 그는 일본에서 니혼바시 갤러리, 미나미 갤러리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열고 일본 미술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한국 미술계의 완강한 배타성에 부딪힌 가운데 김문호 사장의 전격적 후원을 받았다. 그러나 지병과 생활고에 직면한데다 명동화랑 마저 경영부진에 시달리는 과정에서 결국 그는 동선동 그의 ‘아뜨리에’에서 목메어 자결했다.
무사시노 미술학교는 2009년 개교 80주년을 맞아 전체 졸업생들 중 가장 예술성이 뛰어난 최우수 작가 한명을 선출하였는데 거기에 조각가 권진규가 교수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선정되었다. 2009년 10월 동경근대미술관과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 대형 전람회가 개최되고 2010년에는 우리나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도 이동전시회가 개최된다. 조각가 권진규와 명동화랑 김문호 사장이 세상을 등진지 실로 34여년만에  이루어진 빅 이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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