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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가는 길

성서와 문화 2010.06.25 11:05 조회 수 : 2355

[이 문 균 ·신학]

 

 

모두 잘 지내고 있지요? 며칠 전 조연 친구의 메일을 받았을 것입니다. 교직 생활을 마감하면서 갖는 소회를 담담히 적어내려 간 그 친구의 글을 보면서 저는 늙음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몇 년 전에 우리 동기들이 모인 자리에서 주고받은 seven up이야기 생각납니까? 노인이 되면 일곱 가지를 Up 시켜야 한다는 seven up 이야기 말입니다. 그 당시 회갑을 앞둔 시점이었기 때문에 그 때 주고받은 내용이 제 마음에 깊이 와 닿았습니다. 친구들은 몇 가지나 기억이 나나요? 저는 4개 밖에 생각이 나지 않아서 인터넷에서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1.Clean Up  2.Dress Up  3.Shut Up  4.Show Up(모임에 잘 참석을 하여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라는 뜻이라네요)  5.Cheer Up(다른 사람을 칭찬하고 격려할 뿐 아니라 스스로 움츠러들지 말고 기운을 내라는 뜻이라네요)  6.Pay Up(지갑을 열라는 의미는 잘 알고 있지요?) 7.Give Up(나이가 들면 이것저것 내려놓아야 한다네요.)
여기까지가 Seven Up입니다. 그런데 요새는 Seven Up Plus가 나왔다고 합니다. 일곱에 하나 혹은 둘을 더하여 여덟, 아홉이 된 것입니다. 공감이 돼서 여기에 소개합니다.
8. Fresh Up(새로운 것에 관심을 가져라. 복고적, 보수적인 것에 집착하지 말고, 머리와 마음을 맑게 하라.)
9. Stand Up(누워있지만 말고 서서 움직여라. 건강을 위해 활동하고 운동하는 것이 좋다.) 

 

친구들 부디 몸과 마음이 건강하기 바랍니다. 그런데 저는 요양 병원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간신히 삶을 유지하고 계시는 분들을 보면서 우리의 미래를 생각하게 됩니다. 나이가 아주 많아지면 서서 움직이고 싶어도 누워 있을 수밖에 없을 때가 오지요. 내 무거운 몸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 때가 옵니다. 외출을 못하니 옷차림을 신경 쓸 필요가 없게 되지요. 인생의 황혼이 캄캄하게 느껴집니다.
구약 성경 시편 31편 12절에서 시인은 나이가 많은 노인의 심정을 잘 표현하였습니다. “내가 죽은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으며, 깨진 그릇 같이 되었습니다.” 깨진 그릇같이 되었다는 부분을 공동 번역에서는 쓰레기처럼 버려졌다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저는 “노인의 영광은 백발”이라는 헨리 나웬고 월터 캐프니가 쓴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에 보면 샤론 커틴(Sharon R. Curtin)이란 사람이 현대 사회에서 노인이 겪는 괴로움을 표현한 글이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쓰레기를 시인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사춘기(adolescence) 다음은 바로 폐물기(obsolescence)이다. 노인들은 쓰레기 버리는 곳, 양로원, 은퇴한 사람들만 사는 곳, ‘마지막 휴양지’(Last Resort)로 갈 수밖에 없다.”
친구들도 들어봤지요? 깨진 그릇 취급 받는 나이 많은 남편, 버려진 쓰레기로 희화화 되는 은퇴한 가장의 이야기 말입니다. 은퇴 후에 삼시세끼를 집에서 먹으려고 하면 삼식새끼라는 막말을 들을 수 있다는 그런 이야기 말입니다. 슬프지만 업적, 소유, 권력 등에 의하여 사람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와 가정에서 힘을 상실한 사람은 무시당하고 배척을 받게 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불행한 것은 사회가 노인을 외면할 뿐 아니라 노인들 스스로 사회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킨다는 사실입니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자기 자신을 온통 과거에 묻어버립니다. 그래서 과거에 대해서만 말합니다.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부터 자신을 차단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다른 사람에게 버림받기 쉬운 상태에 빠집니다.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않습니다. 앞날에 대해서는 짙은 어둠만을 내다봅니다. 그런 노인들의 앞날은 공허와 어둠으로 지옥같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어둠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젊음은 빛 가운데 있는 것이고, 노인이 되는 것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보면 회갑을 지난 우리는 모두 어둠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셈이네요.
그런데 저는 성경에서 다른 이야기를 듣습니다. 누가복음 2장 25절 이하를 보면 우리는 한 경건한 노인 시므온을 만나게 됩니다. 시므온 할아버지가 아기 예수를 자기 팔로 받아서 안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주님, 이제 주님께서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이 종을 세상에서 평안히 떠나가게 해주십니다. 내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이것을 모든 백성 앞에 마련하셨으니, 이는 이방 사람들에게는 계시하시는 빛이요,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우리는 노인 시므온의 얼굴에서 빛을 발견합니다. 주님의 구원을 발견한 사람에게는 늙어가는 것이 ‘빛으로 가는 길’일 수 있습니다. 바울 선생님은 그리스도인에게는 늙음이 빛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고후4:16, 18)
늙어가는 것이 빛으로 나아가는 길임을 우리에게 보여준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마더 테레사, 김수환 추기경, 그리고 지금 100세가 되신 방지일 목사님, 그 분은 지금도 E-mail을 체크하고 성경 공부를 인도하신다고 합니다. 그 목사님이 “나는 녹스는 게 두려울 뿐, 닳아 없어지는 건 두렵지 않다”고 하신 말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우리는 그 분들을 통해서 잘 사는 사람에게는 늙는다는 것이 빛으로 나아가는 길일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저는 배움, 믿음, 희망, 사랑이 우리를 빛 가운데로 나아가게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이 듦에 대한 저의 단상을 친구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배움을 통한 성장’은 우리 인생이 나이가 들수록 빛나게 합니다. 늙음이 빛으로 나아가는 길이 되려면 말하는 것, 깨닫는 것, 생각하는 것이 어른다워야 합니다. 나만 아는 사람은 유치한 사람이요, 나밖에 모르는 사람은 못된 사람이라고 합니다. 나이가 들면 삶이란 지켜야 할 재산이 아니라 나누어야 할 선물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계속 배우고 성장해야 합니다. 성공보다 성장을 목표로 살아야 합니다.
‘믿음’이 우리의 삶을 환하게 합니다. 시편 기자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박해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주님의 환한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내 앞날이 주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믿음은 우리 삶을 하나님의 선물로 인식하게 합니다. 믿음은 우리의 세월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알고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희망’이 있는 사람은 빛 가운데 있습니다. 주님의 환한 얼굴을 바라보기 때문에 그 빛을 받은 우리의 삶 역시 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빛으로 가는 길 가운데 하나는 소원을 천천히 희망으로 바꾸어 가는 것입니다. 소원은 밖에 있는 것을 가지려고 하는 것이지만 희망은 앞이 열린 것이어서 우리의 삶에 변화를 가져옵니다.
우리의 늙음이 빛으로 가는 길이 되기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 딸로 이 세상에 왔고, 삶의 길을 가는 동안 우리는 아내, 남편, 아버지, 어머니, 형, 누이로서 서로 사랑해야 할 것을 배웁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서로 지지해 주고, 서로 함께 사랑 가운데 성장하고 성숙합니다. 우리는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며 죽은 뒤에도 하나님이 사랑해 주실 사람입니다. 사랑이 우리의 노후를 하나님의 빛 가운데서 평화를 누리게 합니다.
저는 헨리 나웬이 쓴 자기 할머니를 회상하는 글을 여러분에게 소개하고 싶습니다. 나웬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 가운데 주님과 동행한 할머니의 평화로운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우리에게 늙음이 어둠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빛으로 나아가는 길임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저도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오래 산다면 그 할머니처럼 따뜻한 기억을 남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할머니를 회상할 때 슬프다거나 침울한 느낌을 가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 생각 지평선 위로 따스한 웃음이 떠오릅니다. 할머니의 아름다운 흰머리 가락과 입 맞추어 주실 때마다 그토록 부드러운 느낌을 주던 작지만 온화한 얼굴 모습이 보입니다. 편안한 의자에 앉아계신 할머니에게 제 어머니 아버지 이야기와 형 누나에 대한 이야기, 제가 신학 공부하던 때와 사제 서품을 받을 때 이야기며, 앞날의 계획과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해 드릴 때 할머니는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 모든 이야기를 들어 주셨습니다. 할머니는 언제나 제 편이 되어 주셨다는 것을 확실히 기억합니다. 선생님들에 대한 불평을 털어놓아도 언제나 제 판단이 옳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힘들고 긴 여행에 대해 이야기 드리면 할머니는, ‘저런, 불쌍해서 어쩌지’ 하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어떤 말씀을 드려도 할머니는 언제나 아주 진지하게 들어주셨습니다. 할머니는 당신의 긴긴 80년 인생에서 지나간 날들에 대하여 거의 말씀하신 적이 없지만, 할머니의 눈에서 작은 네델란드 농장의 서두르지 않는 삶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할머니가 40년을 함께 사신 할아버지도 보이고, 또 두 분 사이의 열한 아들 딸들도 보입니다. 저의 아버지에게 걷기와 말하기와 가야할 길을 가르쳐 주시던 모습도 보입니다. 끊임없이 괴롭히던 저 지긋지긋한 천식으로 얼마나 고생하셨는지도 보입니다.

창문 곁에 서서 집 앞에 서 있는 영구차를 바라보면서, 무덤으로 실려 가던 할아버지에 대한 마지막 기억을 더듬던 모습도 보입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계속 뜨개질을 멈추지 않으시면서 스웨터며 긴 목도리를 짜고 또 짜서 제게는 물론 모든 손자 손녀들에게 주시던 모습도 보입니다. 제 앞에 앉아 손에는 기도 염주를 잡으신 채, ‘내게 기름을 발라 주어 얼마나 기쁜지, 참으로 아름답구나. 이젠 나도 갈 준비가 되었단다.’ 하셨습니다. 그리

고 웃으면서 ‘하지만 헨리야, 참 잘했다. 내가 더 오래 머물러서 애들을 위해 염주 기도를 드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그 일이 나를 바쁘게 할 것이다. 알다시피 난 별로 할 일이 없잖니?’ 그리고 난 다음, 어느 날, 창가에 있는 의자에 앉으신 채, 손에는 낡은 기도책을 들고 할머니는 그저 고개를 숙이고 우리 곁을 떠나가셨습니다. 할머니의 얼굴에는 평화와 빛이 가득했습니다.” 늙음은 정말 빛으로 가는 길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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