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0년 성서와 문화

[김 경 재 ·신학]

 

 

장공 김재준(金在俊) 목사(1901-1987)는 흔히 한국 진보적 개신교의 정신적 사부(師父)이셨다고 평가되고 존경받는다. 특히 그의 ‘생활신앙’의 신념은 전통적인 한국 개신교도들의 교회중심의 ‘신앙생활’과 대비되어 사회윤리적 역사참여와 행동하는 양심의 사표로서 평가되었다. 그러나 그런 외양적 모습과 다르게, 장공의 신앙을 깊이 보면 볼수록, 인간본성의 내면적 혁명을 무척 강조한 분이었다. 그의 아호 장공(長空)답게 그의 생애는 초지일관 ‘비움과 순명’을 좌우명으로 삼아 살았고, 생애 말년에 갈수록 성령 안에서 ‘거듭남’의 절대필요성을 강조하였다.

 

거듭남
장공은 말년에 가면 갈수록, 그의 글 속에서 “사람이 거듭나지 않고서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요3:3)는 니고데모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절감하게 되었다. ‘거듭 난다’는 인간심령의 내면적 체험은 한문 용어로서 ‘중생’(重生)이라고 표현하여 왔다. 그 어휘의 헬라어 본래 의미는 ‘다시 난다’와 ‘위로부터 난다’라는 두 가지 뜻이 묘하게 융합되어 있다.
장공 선생은 87세를 살으시면서 그의 주위에 유명한 인사들을 많이 만났고 그들과 일을 함께 해보았다. 유명한 목사와 장로들, 신학자들과 교수들, 저명한 정치가들과 법조인, 군인장성들, 여성 지도자들, 기업가들 등등 무수한 사람을 겪어 보았다. 그러나 사람 속에 있는 근본적인 원죄적 찌꺼기들이 청산 되어있지 않으면, 항상 마지막 어느 경우엔 교회 일, 인권운동, 그리고 민주화운동 속에서 말썽을 일으키고 분파를 조성하여 대사를 그르치고 만다는 것을 경험했다.
‘원죄적 찌꺼기’란 자기중심적 이기심, 명예욕, 권력욕, 자기 과시욕, 남 위에 군림하려는 충동, 자기가 한일을 과시하고 당대에 완결하고픈 과욕들이었다. 그 ‘원죄적 찌꺼기’는 어찌나 집요한 것인지, 성직자들의 ‘영적탐욕’을 통해서까지 자신도 모르게 은밀한 잠재의식 속에서 암 종근처럼  자기자리를 은폐하면서 확보한다.
사람이 거듭나서 새사람이 되려면, 철저한 자기성찰과 도덕적 인격수행, 그리고 상당한 지혜통찰력도 필요함을 알지만, 그것들로서 철저한 ‘중생’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장공은 체험했다. 말하자면, 인간의 진지한 도덕적 노력 그 이상의 위로부터 오는 하늘의 능력,  성령의 새롭게 지으시는 변혁능력이 절대 필요함을 절감하셨다.
장공은 83세 때 어느 청명한 가을날 박재훈 박사와 함께 단풍이 절정인 캐나다의 국립공원을 답방하던 중, 푸르른 창공을 바라보면서 종교적 감동에 문득 사로잡혔다. 그 때 받은 강렬한 내면적 느낌을 ‘성령찬가’라는 기도문으로  여행 중 수첩에 메모하였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그런 것은 나에게 물 없는 메마른 와디 (wadi, 乾谷)이옵니다. 성령님, 당신의 재창조 없이는 ‘새 사람’도 없고 ‘새 역사’도 없나이다. 성령의 능력 없이는 교회도 선교도 없나이다. 오순절 성령강림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성령의 폭포였습니다. 인간의 범죄성은 백두산 천지보다 더 깊은 심연 같은 것이지만, 성령은 그 밑바닥까지 뒤집는 폭포였나이다.
2천년 교회사는 잔잔하고 고요하게 흘러흘러 억 억만 인간들 마음 밭 축이는 성령의 수로(水路)였나이다. 오, 성령님 은혜, 하늘 어머니 사랑, 그 무량애(無量愛) 품속에, 전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로 영원히 영광스레 살으오리다. (『김재준 전집』, 제17권, 47-48쪽)

 

비움
장공 영성의 둘째번 특징은 철저한 ‘비움’이다. 옛 사람의 자기확장 욕망과 프로메디우스 같이 크고 장대한 그 무엇을 성취하여 자랑하고픈 모든 욕망을 비움이다. 종교적 야망까지도 철저하게 비움이다. 비우지 않고 덤비는 ‘하나님사업’은 경건으로 가장한 인간의 욕망 분출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선교와 봉사 비전’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그리스도 예수의 심정으로써, 성령이 능력 주시는 은혜 안에서 겸허하게 동참하는 것이라야 한다.
이 철저한 ‘비움’은 곧 바로 하나님이 능력과 은혜로 채워주시는 ‘충만’임을 장공은 경험하였다. 비움이 곧 충만이다. 인간의 사뜻한 온갖 욕망과 야망을 철저하게 비울 때, 그리스도는 성령 안에서 당신의 일을 시작하심을 알았다. ‘그리스도 찬가’(빌립보서 2장)에서 초대교회가 고백하고 찬양한대로, 예수는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짐으로 하나님께서 그를 지극히 높여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장공은 청년시절에 앗시시 성자 프란시스의 ‘청빈의 영성’을 만나 그의 마음이 한없이 맑고 자유로워지는 것을 느꼈다. ‘청빈의 영성’의 요체는 낮아짐의 겸손만이 아니라 자기를 철저하게 ‘비움’이다. 성령을 맞이하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모시기 위하여 심령 속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비움이다. 이 ‘비움’의 사건은 인간의 자기성찰과 노력이면서도 사실은 그 ‘비움의 사건’ 자체가 성령의 은혜 안에서 가능해지는 일이다. 장공은 제자들에게 편지를 쓰실 때마다, 마지막 글 맺음에서는 마음을 비울 것을 늘 강조하셨다.
오늘 한국 개신교 교회가 세상 속에서 ‘왕따’를 당하고 수모를 받는 이유가 무엇인가? 특히 교회지도자들이 마음을 철저하게 비우지 못하고 ‘주님의 일’에 충성한다는 ‘영적 야망’이 도리혀 그리스도 얼굴에 먹칠을 하는 꼴이다. 교회가 성령의 은혜로 충만하는 비결은 다른 것이 아니고 교회공동체 구성원들이 마음을 비우는 일이다. 비우면 하나님이 은혜로 충만하게 채우신다. 비우면 비울수록 그리스도 임재의 공간은 넓어지고, 성령의 활동하시는 역사(役事)는 자유롭고 활발하게 되는 것이다.

 
순명(順命)
순명(順命)이란 그리스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행동으로 따르는 것이다. 그의 말씀과 부탁을 준행하는 일이다. 머리로 믿고, 가슴으로 뜨겁게 감동 할 뿐만 아니라, 손발을 움직여 실천하는 일이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14:21)
장공은 이 글 서두에서 언급한 대로 ‘신앙생활’을 잘 하라고 강조하신 분이 아니라, ‘생활신앙’을 하라고 강조하신 분으로 알려져 왔다. 그 말은 무슨 뜻인가? 머리로, 입술로, 감성으로서만 아니라 실질로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의 계명 곧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주님 예수의 부탁과 명령을 지키는 일이라고 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단순한 맘으로 “예, 주님이 말씀하시니 순명하겠습니다.”라고 계명을 준행하는 삶 자체가 영성이라는 것이다. 이유와 변명을 붙이지 않고 말씀에 순종하여 실천에 옮기는 삶이다.
주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고, 놀랍게도 그리스도 예수께서도 계명을 준행하는 그 사람과 동행하며, 신비스럽게 자신을 그에게 나타내 보이신다. 장공은 80평생을 뒤돌아보면서, 그런 경험을 자주 했노라고 생애 말년에 고백하였다. 장공선생이 늘 강조하며 또 자신이 그렇게 살았던 신앙의 내면적 비밀의 실체는 중생, 비움, 순명이었다. 사회와 종교계가 어지럽고 요란 할수록 명심할 일이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2 위대한 영웅 마하트마 간디(Ⅱ) - 그의 원체험(原體驗)과 사상 - 성서와 문화 2010.12.27 2459
31 성부와 성자와 성령 성서와 문화 2010.12.27 2126
30 산다는 것과 그린다는 것과 성서와 문화 2010.12.27 2348
29 하찌우마(八馬理) 선생님 성서와 문화 2010.12.27 2428
28 만년晩年의 광경, 추억 한국의 벗에게 띄우는 편지 성서와 문화 2010.12.27 2156
27 마魔의 벽을 넘고 있는 그릇 - 도예가 이종수의 세계 - 성서와 문화 2010.12.27 2321
26 음악 片紙 ⅢⅩⅥ 영혼을 사로잡는 ‘연습곡’ 성서와 문화 2010.12.27 2090
25 시인詩人과 설교자 - 보는 사람, 볼 수 있게 하는 사람 - 성서와 문화 2010.12.27 2081
24 공주의 조팝나무 성서와 문화 2010.12.27 2420
23 위대한 영혼, 마하트마 간디(Ⅰ) file 성서와 문화 2010.10.04 2617
22 한국적 통섭(通涉), 일명 함(含)의 신학 성서와 문화 2010.10.03 2129
21 미수米壽와 미수美壽 file 성서와 문화 2010.10.03 2459
20 맑고 순수한 영혼의 노래를 그린 이 남 규 화 백 file 성서와 문화 2010.10.03 2492
19 음악 片紙 ⅢⅩⅤ 책으로 엮인 음악편지 성서와 문화 2010.10.03 2331
18 나의 금강도金剛圖 - 고구려의 하늘 file 성서와 문화 2010.10.03 2443
17 역사의 자연화, 자연의 역사화 성서와 문화 2010.10.03 2468
16 난곡(蘭谷) 조향록 목사의 그 지극한 삶을 기억하며 성서와 문화 2010.06.25 2454
15 향기 나는 사람 file 성서와 문화 2010.06.25 2435
14 빛으로 가는 길 file 성서와 문화 2010.06.25 2355
» 장공(長空) 김재준의 ‘성령찬가’ file 성서와 문화 2010.06.25 25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