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09년 성서와 문화

신(神)의 저울

성서와문화 2009.12.28 16:41 조회 수 : 1647

[ 작성자 : 김 성 환 - 신학 ]


겨울은 죽음의 계절입니다. 나무는 가지만 앙상하고, 들과 산의 모든 생명 활동이 멈추어 버렸습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가을바람에 몸을 흔들어 단풍잎을 털어 내는 나무들을 보았습니다. 겨울나기를 위한 준비였던 모양입니다.

 

필자는 정년퇴임 이후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임종환자들은 일반적으로 통증이 주된 고통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통증 치료는 호스피스의 중요한 과제로 되어 있고 주로 의료진에서 담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필자는 이 글에서 통증완화에 의료 외적인 요소가 있다는 사실을 말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영적’(靈) 차원입니다. 영적 차원이 더하니까 좋은 결과를 가져 오더라는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만 굳이 한마디로 설명하라면 “삶의 에너지 공급 원”(根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의 다른 표현은 바로 ‘신앙’으로 연결됩니다. 신앙은 “자기의 존재를 어떤 대상에게 전폭적으로 맡기고 거기에서 삶의 영양분을 공급받겠다는 결단입니다. 그것 이외의 다른 모든 것들은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잡다한 것들과 관계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 관계들이 어떤 것에는 특별한 애착을 가지게 되기도 하는데. 그것이 특별히 심하게 되면 집착으로 발전되기도 합니다. 집착이란 어느 한 대상에만 관심을 집중해서 그 주변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경우를 말합니다. 또 그것이 욕심이라는 현상으로, 혹은 미움이라는 감정으로 나타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은 사람들의 삶을 부정적으로 살게 합니다.
필자는 임종환자들의 두려움과 통증을 이 ‘집착’, ‘욕심’, ‘미움’이라는 시각에서 관찰해 보았습니다. 필자가 터득한 사실은 환자의 두려움과 통증은 그 집착, 욕심, 미움 등의 강도에 비례하더라는 사실입니다. 그 집착, 욕심, 미움 등은 재물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자기 명예나 자기 자존심, 또는 사람 특히 가족일 수도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생명에 대한 집착이 가장 크겠지요. 결국 그런 것들을 놓지 않으려는 집착, 욕심, 미움 등 때문에 임종환자가 두려움 혹은 통증이라는 올무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어떤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찾아 와서 “영생 할 수 있는 길”을 물었습니다. “율법을 지켜라”라는 말을 비롯하여 몇 마디 나눈 뒤 “네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이웃에게 나눠 주고 나를 따르라”했습니다. 청년은 가진 것이 많았기 때문에 영생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성서에 있습니다. 이 청년은 도덕적으로 완벽했기에 칭찬을 받으리라 생각하고 자신 만만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좀 달랐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하나님의 생각]은 어떤 기준으로 그 청년을 저울질했을까요. 이 부자 청년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보다는 결국은 재물에 대한 집착 때문에 생명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셀 쉴버스타인의 작품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그림동화 책이 있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한 그루의 나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에게는 사랑하는 한 소년도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하루도 빠짐없이 나무에게로 와서 나무와 재미있게 이야기도 나누고, 나무 가지에 메어달리기도 하고, 올라가 놀기도 하고, 또 때론 나무 그늘 밑에서 낮잠 자기도 하였습니다. 하루는 소년이 나무에게 말합니다. “내가 이 나무로 배를 만들고 싶은데 괜찮겠느냐”고? 나무는 쾌히 허락했습니다. 소년은 나무를 톱으로 자르고 다듬고 하여 배를 한 척 만듭니다. 그리고는 그 배를 타고 멀리 떠납니다. 세월이 얼마쯤 지났습니다. 소년은 나이가 많아졌습니다. 머리도 하얗게 되었고 허리도 구부러진 노인이 되어 나무에게로 돌아 왔습니다. 백발노인이 된 소년은 지팡이에 의지하여 힘들게 걸어서, 밑둥 밖에 남지 않은 나무에게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나무야 내가 매우 힘이 드는구나. 여기 밑둥에 앉아서 좀 쉬었다 가도 되겠니?” 합니다. 그 나무는 또 흔쾌히 허락을 합니다. 노인 소년은 나무 밑둥을 의자 삼아 쉬면서 과거에 자기가 떠났다 돌아온 바다를 멀리 바라다보고 회상에 잠겨있습니다. 그 나무는 그래서 행복하다고 합니다.

 

김수덕 선생은 그의 명상록에서; “오랫동안 마음을 괴롭히는 문제가 있습니까. 고요히 앉아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세요. 내가 어떤 집착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 문제를 내가 붙들고 있어서 해결될 문제인지 아닌지? 아니라고 생각되면 과감하게 그것을 놓아버리라“고 합니다.

 

강남(영동)세브란스병원 이희대 교수는 유방암 분야의 권위자입니다. 그분은 환자 치료에 여념이 없었던 2003년 초, 어느 날 대장암 2기라는 진단을 받게 됩니다. 그분은 항암치료와 10여회의 수술을 받으면서도 틈틈이 연구와 환자 치료에 손을 놓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분의 암세포는 뼈에 까지 전이되었고 4기말 암, 현대 의학으로 손을 쓸 수 없는 상황까지 갔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죽음의 문턱에서 신앙의 힘으로 그 암을 이겨 냅니다. 그분은 오늘도 열정적으로 진료와 수술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또한 자기에게서 치료받은 유방암 환자들을 모아서 “목요기도회”까지 주관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말하길 “암 4기는 끝이 아니다. 5기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신앙의 차원”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신앙은 하나님 이외에 모든 것들을 버리는 결단이라고 합니다. 그분 자신은 “이제까지 자기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들, 특히 30년 암 전문가라는 경력과 최고의 명의라는 명성을 비롯한 여타의 욕심들을 모두 버렸다”고 고백합니다. 그분의 암과의 투병 과정은 사실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던 것입니다. 신앙의 5기는 생명의 원천이 되는 영을 살리기 위해 불필요한 것들을 다 버리는 신앙의 결단입니다
의사들은 일반인을 위한 의학 강좌에서 “건강을 위해서는 체중을 줄이라”고 강력하게 권고합니다. 체지방(體脂肪) 같은 몸에 불필요한 것들은 아낌없이 없에버리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뱃살을 빼려고 피나는 노력들을 하고 있습니다.

 

호스피스의 기초를 마련해 준 E. Kubler-Ross (미국 시카고 의대 정신과 교수)가 연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의 제자 데이비드 케슬러가 스승의 유작을 모아서 [상실 수업]이라는 책으로 내 놓았습니다. 요즘 널리 읽히고 있는 책입니다 그 책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우리네 삶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잃어가는 반복 속에, 결국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니 그 상실은 ‘모두 끝났다’의 의미가 아니라 ‘아직도 계속되는 삶’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겨울은 점점 깊어가고 있습니다. 자연은 지난 가을에 가지고 있었던 소중한 것들, 아름다웠던 단풍잎, 맛있는 과일, 가을의 그 아름다운 날씨, 이 모든 것들을 겨울을 나기 위해서 버렸습니다. 결코 자기만이 가지고 즐길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자연은 죽음의 계절이 지나면 새봄이 온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가을 동안 정들었던 것들에 집착하지 않고 모두 버렸습니다. 그래서 겨울을 가벼운 몸으로 날 준비를 했던 것입니다. 이 죽음의 계절에 [신의 저울]은 우리 인생의 무게를 달아보시고 뭐라 하실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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