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09년 성서와 문화

 
[ 작성자 : 이 정 배 - 감리교신학대학 교수 / 신학 ]


함석헌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 일반사람들은 다석 유영모(1890-1981)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지 않다. 다소 안다고 하는 사람들도 선생에 대해서 상반된 평가를 서슴지 않는다. 혹자는 선생을 인도의 간디하고도 바꿀 수 없는 인물로, 한국이 낳은 근대 최대의 학자로 평가하지만 어떤 이는 비정통적 기독교 이단아로 정죄하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그의 영향을 받고 일생을 살아온 한국의 인물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함석헌을 위시하여 <성서조선>을 창간했던 김교신, 한국 농업을 이끈 류달영, 정역(正易)의 대가 이정호, 정신문화원장을 지낸 류승국, 민중신학자 안병무, 적십자 총재를 지낸 서영훈 그리고 다석일지를 펴낸 김흥호 등이 바로 그분들이다. 오산 학교를 세운 남강 이승훈도 선생과 깊은 교감을 갖고 인생을 살았고 소설가 이광수도 선생의 인격에 흠뻑 빠졌던 인물이었다.

 

정통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여 세례를 받고 주일이면 세 번씩이나 예배를 드리곤 하던 선생은 몇 가지 이유로 교회로부터 멀어졌다.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으로 본 단재 신채호의 민족사관의 영향과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동생 영묵의 갑작스런 죽음이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어린 시절 유학경전을 읽고 자랐던 선생의 손에 다시금 노장(老莊)의 서적과 불교경전이 들려지게 되었다. 이 시기에 영향을 준 사상가 셋을 꼽으라면 톨스토이, 간디 그리고 우찌무라 간조라 할 수 있다. 톨스토이는 서구 기독교의 교리를 비판할 수 있는 눈을 열어주었고 간디는 선생 평생의 삶의 원칙이 된 일식(一食)과 종교 간 회통(會通)에 대한 감각을 깨울 수 있었다. 우찌무라 간조와는 후일 결별하였으나 성서에 대한 기본이해와 무교회주의는 일정부분 그의 영향 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多夕을 톨스토이주의자나 간디주의자로 환원시켜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多夕의 비정통적 기독교 이해가 톨스토이나 간디, 그리고 교회 존재를 부정하는 우찌무라 간조의 영향 때문이란 것이다. 일리(一理)있는 지적이긴 하나 이런 식의 환원은 多夕 사상의 독창성을 손상시킬 수 있다.
비정통주의를 말한다 하더라도 선생의 경우 동양적, 한국적인 맥락에서 나온 개념이기 때문이다. 선생께서 우찌무라 간조의 대속신앙을 거부한 것은 바로 동양적 정신세계, 곧 수행적 삶의 체계에 대한 이해 때문이었다. 선생에게 있어 비정통주의란 동양적(한국적)으로 이해된 기독교를 언명한 것이다. 물론 선생의 비정통주의를 종교다원주의의 틀에서 논하는 시각도 있다. 불교, 유교 그리고 기독교를 상호 회통시켰던 선생에게서 현대적 의미의 종교다원주의가 싹트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多夕은 예수만을 자신의 유일한 스승으로 고백하였다. 그가 걸머진 십자가의 도(道)를 동양적(수행적)으로 이해하여 자신이 따라야 할 유일한 길로 인정한 것이다. 이점에서 비정통적(동양적)으로 이해된 스승 예수, 곧 토착화된 예수 이해가 多夕 사상의 더 깊은 본질에 속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多夕은 불교의 견성, 고행, 성불(見性, 苦行, 成佛,) 유교의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의 빛에서 기독교의 하느님, 예수, 성령에 대한 이해를 시도했다. 불교, 유교가 저마다 자기 속의 절대 존재를 깨닫고 자기를 갈고 닦아 자신 속의 절대와 하나 되는 길을 제시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바탕에서 多夕은 서구 기독교를 수용하여-토착화시켜-유불선을 아우르는 새로운 케리그마(진리)를 이 땅의 민족에게 선사했던 것이다. 다석의 기독교 이해는 다음과 같다.

 

우선 하느님은 ‘없이 계신 분’이다. 이는 태극이무극, 진공즉묘유(太極而無極, 眞空卽妙有), 다시 말해 A=NonA 라는 동양적 방식으로 하느님을 이해한 것이다. 즉 하느님은 서구의 존재론적 형이상학의 틀에서 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성의 틀 하에서 존재자만을 존재로 규정한 서구 형이상학에서 無. 空에로 신학적 사유를 전환시킨 것이다. 이로써 하느님은 내속에 있게 된다. 없이 계신 존재가 인간의 깊은 바탈(本然之性)이란 사실이다. 이 둘은 나눠질 수 없는 불이(不二)의 상태에 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돈오(頓悟)이고 믿음인 것이다.
이 믿음, 깨침을 바탕으로 참나(얼나)로 솟구치는 것이 성불(成佛)이며 십자가의 도라고 가르쳤다. 하느님을 종당에 참나로 고백하는 종교가 바로 기독교라는 것이다. 이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부자불이(父子不二)의 관계에 들어가신 분이 된다. 자신 속의 하느님, 씨알(바탈)을 깨닫고 白死千難(십자가) 끝에 탐진치를 벗고 얼나(眞我, 無我)가 된 존재라는 것이다. 육체를 지닌 몸나로서의 예수는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십자가를 통해 시간을 끊고 얼로 솟구친 존재인 그리스도, 그분이 진정한 주님인 것이다. 십자가는 인과율이 지배하는 세상(시간)을 뚫고 절대계에 이르러 자신의 몸나(탐진치)를 끊는 사건일 뿐이다.
多夕은 젊은 나이에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자신의 스승으로 고백했다. 이 예수를 통해 자신도 믿음에 들어갔다는 오도시(悟道詩)를 말한 바 있다. 다석에게 성령은 하느님의 영이자, 인간의 바탈(本性)이고 참나인 성령이다. 그리하여 그는 인간 및 우주 역사가 지속되는 한 하느님 영은 한 번도 끊어져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십자가의 道를 통해 그리스도 예수는 전체생명이 되었고 우리 인간은 그 생명에 잇대어 살고 있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하느님 영은 전체로서의 우주 생명이고, 내속에 있는 속알(얼)이고 상대계를 초월한 절대정신일 수밖에 없다. 모든 인간 속에 하느님 영(그리스도)이 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수행(고행, 십자가)함으로 누구나가 그리스도가 될 수 있다고 보는 한에서 다석의 종교다원주의는 서구 다원주의의 급진적 내재화(보편화)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수행, 곧 십자가의 道를 강조하는 多夕에게 정통 기독교의 대속사상은 유대민족의 풍습으로 해석된 유대적 기독교의 일면일 뿐이었다. 동양전통에는 대속사상이란 없고 오히려 수행전통이 그 본질이란 것이다. 하여 多夕은 수행전통의 틀에서 기독교 십자가를 자속적(自贖的) 방식으로 재해석하였다. 그것이 “일좌식, 일언인(一座食, 一言仁)”이란 말로 정리되었고 多夕은 그대로 살았다.
일좌란 언제든 무릎 꿇고 앉아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일이며, 일식은 하루 한끼 먹는 일로 자기 자신을 일상에서 산 제물로 바치는 행위이다. 일언은 남녀간의 성적 관계를 끊는 것으로서 선생이 부인과 해혼(解婚)하며 친구 자매처럼 지낸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마지막으로 일인은 언제든 걸어 다니는 것으로 자신의 몸을 지키는 방식이었다. 간혹 다석의 몸/얼나 개념을 오해하여 선생의 사상을 몸을 부정한 영지주의로 비판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선생에게 몸은 얼나로 나가는 바탕이었다. 매일 아침 냉수목욕을 한 것이나 자신의 하복부 단전이 돌처럼 단단해져 있는 것을 만져보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얼나로 가는 길이 항시 몸성히, 마음놓이, 바탈태우의 순서인 것을 잊어서는 않될 것이다.
多夕이 제자 김교신이 죽은 이래로 자신의 산 날 수를 계산하며 산 것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여기에는 중요한 뜻이 담겨있다. 오늘을 선생은 오! 늘 이라고 말하였다.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영원을 보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선생에게는 하루를 사는 것이나 일 년을 살고 칠팔십을 사는 것이 다르지 않았다. 셀 수 없을 만큼 긴 세월을 산다 하더라도 그가 인과율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하면 그 인생이 조금도 나아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자의 말처럼 多夕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공자의 말처럼 절대를 그리며 살았다. 그렇기에 하루를 살아도 그는 영원을 산 것이 되었고 하루 속에서 춘하추동, 인생 칠팔십을 다 경험하며 산 것이다. 그렇기에 그에게 오늘은 언제든 ‘오! 늘’ 되었다.
물질은 개벽하고 있으나 정신의 개벽이 요원한 이 때, 아니 어쩌면 사람이 사람이기를 포기하고 금수처럼 욕망덩어리로 살고 있는 시점에서 ‘일좌식 일언인’의 십자가의 道를 전하는 多夕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존재이다. 성서의 하느님은 지금 곡간을 크게 짖고 많은 것을 드려 쌓고 스스로 만족해하는 부자에게 오늘 네 영혼을 취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지금 너무도 많은 것을 갖고 있어 ‘덜’ 없는 인간이기에 더러운 존재로 변해 있지 않은 지 깊게 성찰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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