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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와 율곡

성서와문화 2009.12.28 16:39 조회 수 : 1851

 
[ 작성자 : 이 광 호 - 연세대교수 / 철학 ]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 선생과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 선생은 조선 시대의 쌍벽을 이루는 위대한 두 학자이시다. 그러나 두 분이 타고난 기질과 학문적 취향은 서로 크게 달랐다. 퇴계 선생이 물러나기를 좋아하는 대기만성(大器晩成)의 학자라면 율곡선생은 나면서부터 총명한 천재형의 학자였다. 퇴계 선생의 향내적(向內的) 경향은 성리학을 리(理)를 중심으로 이해하게 하였으며, 율곡 선생의 향외적(向外的) 경향은 성리학을 기(氣)를 중심으로 이해하게 하였다. 두 분의 학문적 차이가 후학에 의하여 계승되며, 대립의 측면이 부각될 때는 당쟁을 격화시킨 면이 있지만, 두 분 가운데 한 분이 없었다면 한국사상사는 너무나 단조로운 양상을 띠게 되었을 것이다. 짧은 지면을 이용하여 두 분의 삶을 간략하게 비교하여 본다.

 

1. 石蟹詩(석해시)와 花石亭詩(화석정시)

 

무심결에 자신의 지향을 담게 되는 소년시절에 지은 시에는 그 사람의 운명이 담겨있다고 한다. 15살 때 퇴계가 지은 石蟹詩를 보자.

 

負石穿沙自有家, 돌을 지고 모래를 뚫어 스스로 집을 짓고,
前行却走足偏多. 앞으로 나가다 뒤로 내닫는데 발은 특히 많다.
生涯一山泉裏, 평생을 한 웅큼 산속의 샘물에 살지만,
不問江湖水幾何. 강과 호수의 물이 얼마나 많은지 묻지 않는다.

 

깊은 산속의 맑은 샘물에서 즐겁게 살고 있는 가재를 보고 공감을 느끼는 어린 시절의 마음은 퇴계의 생애에 일관된다. “모든 생물이 오묘한 하늘을 하나씩 머금고 있다(物物皆含妙一天)”며 연꽃을 정우(淨友), 소나무·국화·대나무·매화를 절우(節友)로 삼아 풍상계(風霜契)를 맺고 퇴계(退溪)의 물가 도산서원(陶山書院)에 사는 삶은 마치 가재의 삶을 연상케 한다. 내면에서 들리는 하늘 소리를 듣고, 하늘을 가꾸며, 죽음을 맞이해서도 “천명이 즐겁다는 말 어찌 의심하리오(樂夫天命復奚疑)”라고 노래하는 삶이 그의 삶이다.

 

파주의 임진강가 언덕 花石亭에 지금도 새겨져 있는 화석정시를 보자. 3살 때 외할머니가 석류를 보이며 무엇과 같으냐고 물으니 “겁찔에 쌓인 붉은 진주알(皮裏碎紅珠)”이라고 대답하고, 7살에 진복창전(陳復昌傳)을 지어 이웃에 사는 소인의 악행을 비판한 천재 소년 율곡은 8살에 이미 장성한 시인의 풍모를 보여준다.

 

林亭秋已晩, 숲 속 정자에 가을이 이미 저무니,
騷客意無窮. 나그네의 생각 끝이 없구나.
遠水連天碧, 멀리 흐르는 물 하늘에 닿아 푸르고,
霜楓向日紅. 서리맞은 단풍 햇볕을 향해 붉구나.
山吐孤輪月, 산은 둥근 달을 토해내고,
江含萬里風. 강은 만리의 바람을 머금었다.
塞鴻何處去, 하늘가의 저 기러기 어디로 가는지,
聲斷暮雲中. 저무는 구름 속으로 울음소리 끊기네.

 

누가 이 시를 보고 8살 소년의 마음을 연상할 수 있겠는가? 어린 율곡에게는 아득히 멀리 흐르는 강물과 함께 해와 달, 바람과 하늘, 넓은 자연세계가 한 눈에 전개된다. 23살에 자연철학을 논한 天道策(천도책)을 지어 명성이 중국에 떨쳤다는 율곡의 마음은 8살에 이미 광활한 우주를 향하여 열려 있었다.

 

2. 리(理)에 대한 관심과 기(氣)에 대한 관심

 

퇴계는 12세에 숙부 송제공(叔父 松齋公)에게서 논어를 배우다가 “모든 일에 있어서 옳은 것을 理라고 합니까?”하고 물었다고 한다. 퇴계의 삶은 理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되어 리와 어울려 하나가 되어(克協于一), 천인합일(天人合一)의 묘함을 얻음으로 하나의 장을 이룬다. 퇴계에게 리는 음양오행을 비롯하여 만물만화(萬物萬化)의 근원이면서 그 가운데 구속되지 않는 초월적이면서도 내재적인 영원불멸의 절대진리이다. 모든 것을 스스로 창조하면서도 만물에 구속되지 않는 초월적 존재, 모든 생명 가운데 내재하고, 특히 인간의 심성 가운데서는 인의예지로서 발현되고, 인간의 인식의 노력이 극진하면 스스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내재적인 존재이다.
퇴계는 인간의 심성 가운데서 진리의 능동성을 확인하며, 이러한 진리의 능동성이 인간의 도덕 실천의 근원이라고 본다. 그래서 “선한 정인 사단(四端)은 리가 발하여 기가 그에 따르는 것이며, 칠정은 기가 발하여 리가 거기에 타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사단은 그 자체로 선하지만, 칠정의 경우에는 리가 능동성을 발휘하여 칠정을 절도에 맞게 하면 선이 되지만 그렇게 못하면 악하게 될 수도 있다고 하였다. 인간의 선함과 악함은 인간에 내재한 진리가 주인이 되어 능동성을 발현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린 것이라고 한다.
율곡은 理通氣局(리통기국)을 논하고 리를 보편의 원리로 기를 개별성의 근거로 설명하지만 율곡에게 리는 능동성과 작용성이 없이 한갓 기에 타고 있는 소이연이다. 음양운동의 원인은 氣의 작용원리가 스스로 그러하다고 하여機自爾 (기자이)를 주장하고, 천지로부터 인간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현상은 기의 활동이며 리는 단지 그 원인으로서 그 위에 타고 있을 뿐이다. 율곡에게 리는 모든 현상의 所以(원인, 까닭)로서 객관적 세계의 이유와 법칙에 가깝다. 율곡이 설명하는 리는 과학적 인식의 대상으로 전회하기 쉽다. 퇴계의 리는 창조적 능동적 절대진리이지만 율곡에게 창조성과 능동성은 기의 몫이다. “물은 그릇의 모양에 따라 모나기도 하고 둥글기도 하며, 허공은 병에 따라 크게도 작게도 된다(水逐方圓器, 空隨小大甁)”고 하여 리는 물과 허공과 같고 기는 자유롭게 크고 작고 모나고 둥글게 될 수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자연현상에나 인간의 심성에는 기가 발하면 리가 그 위에 타고 있는 “氣發理乘一途(기발리승일도)”만 있을 뿐이라고 하여 모든 능동성은 기에 속한다. 인간이 선하고 선하지 않음도 리에 달린 것이 아니라, 오직 기의 맑고 탁함, 기가 본연성을 유지하느냐 않느냐에 달려있다고 보기 때문에 율곡의 수양론에서는 성인이 되기 위한 목표를 확고하게 세우는 입지(立志)와 기질을 변화시키는 변화기질(變化氣質)이 가장 중요한 것이 된다.

 

3. 爲己之學(위기지학)과 經世之學(경세지학)

 

퇴계에게 리는 절대자이며 인간의 본성은 하늘로부터 부여된 천명(天命)이다. 인간의 본성인 천명은 사단(四端)을 통하여 드러나며, 경(敬)을 통하여 함양(涵養)되며, 궁리(窮理)와 성찰(省察)을 통하여 실천으로 현실화되어 인격화되는 능동적인 것이다. 인간은 도덕적 삶을 통하여 자신에게 내재한 천을 따르고 함양하여 하늘과 하나가 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러한 경지가 곧 성인의 경지라고 한다. 퇴계에게 학문은 바로 성인을 지향한 자기완성의 길이었다.

 

“군자의 학문은 자신의 완성을 위할 뿐이다. 자기의 완성을 위한다는 것은 장경부(이름은 拭(식), 주자의 친구이다)가 말한 위하는 바가 없이 그러한 것이다. 깊은 산속 무성한 수풀 속에 있는 한그루의 난초가 종일토록 향기를 피우면서 스스로 향기로운 줄도 모르는 것이 바로 군자의 자기완성의 학문과 부합한다.”(언행록)

 

율곡의 리는 모든 현상의 소이연이기 때문에 율곡의 리에 대한 인식은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우주자연의 현상에 대한 원인과 사회적 현상의 원인에 대한 탐색에 이르기까지 객관적 사태의 원인에 대한 규명을 궁리로 이해한다. 천도책에 드러나는 우주론적 관심과 경장론을 통하여 드러나는 경세사상은 율곡의 문제의식이 광활한 우주와 넓은 천하, 객관화된 세계를 향하여 바깥으로 열려있음을 의미한다.

 

“저는 정치는 때를 아는 것을 귀하게 여기며, 일은 실제에 힘쓰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고 생각합니다. 정치를 행하면서 시의를 모르고 일을 당해서 실제의 노력에 힘쓰지 않는다면 비록 성스러운 왕과 어진 신하가 서로 만나더라도 정치의 효과를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萬言封事)

 

시의파악을 중시하고, 실제의 공효를 중시하여 東湖問答(동호주답)을 짓고, 國是論(국시론)과 更張論(갱장론)에 기초하여 萬言封事(만언봉사) 등 여러 차례의 상소문을 올려 사회개혁을 갈파하는 율곡의 삶은 국가와 인민을 위한 것이었다.
퇴계가 내성(內聖)의 삶을 지향한다면 율곡은 외왕(外王)의 삶을 지향하였다고 할 수 있다. 유학의 이상이 내성외왕이라는 두 기둥이라면 퇴계와 율곡은 그 중 하나를 세우고자 노력하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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