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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片紙 ⅢⅩⅡ 형식인가 내용인가?

성서와문화 2009.12.28 16:38 조회 수 : 1599

 
[ 작성자 : 김 순 배 - 피아니스트 / 음악평론 ]


역사는 ‘도전과 응전’ 의 되풀이라고 하지요. 음악사도 예외는 아니어서 어떤 흐름이 등장해서 한 시대를 풍미하고 난 이후에는 반드시 그에 대응하는 상반된 경향이 나타나곤 했습니다.
교회음악이 지배했던 중세시대에도 반대급부라 할 세속음악은 수면아래에서 크게 번성하고 있었고 성악음악이 대세를 이루었던 르네상스의 와중에는 기악음악이 보조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홀로 설 수 있는 여건과 기회가 성숙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이윽고 바로크 시대에 이르면 세상과 음악 내부의 정해진 질서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원심력’이 기운차게 요동치는 가운데 결국은 질서와 이성과 논리의 세계로 회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구심력’의 철학이 팽팽한 공존의 상태를 만들어냅니다.
작곡가들은 두 종류의 상반되는 음악적 기운들 사이에서 균형 잡기 혹은 어느 한 쪽 선호하기에 자신을 내맡기게 되었지요. 고전시대에 들어서면 모든 지역의(여기서는 물론 유럽을 뜻하지만) 모든 작곡가들이 공통된 형식 논리를 좇으며 같은 방식으로 음악 만드는 일을 한동안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작곡가들은 자신이 처한 지리적 문화적 환경조건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노릇이었고 각자의 고유한 여건들을 새삼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이른바 ‘공통관습’(common practice)의 시대가 무르익었을 때 피어오르는 민족주의는 다양한 환경 속의 다채로운 음악 언어를 개발하고 확장시켰다는 측면에서 음악사의 귀중한 자산입니다.
20세기에 들어서면 공통관습이든 민족주의이든 그간 편안하게 사용했던 음악 어법이 뿌리째 흔들리는 급진적 경험을 시작으로 새로운 것이 절대적 미덕인 시대를 맞이하게 되지요. 이후 근 한 세기를 풍미했던 ‘새로움’의 미학은 이윽고 자체정리의 국면을 맞이합니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사실을 결론으로 얻은 채 말이지요. 그리하여 각종 실험을 거친 20세기 후반의 음악은 더 이상 새로움을 추구할 명분도 내용도 답보 상태인 채 이전에 있던 것들의 재발견 혹은 재배열로 그 자리를 대신 채우게 됩니다.

 

중세 이후 음악사의 흐름과 추이에서 가장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게 되는 경우는 아무래도 형식과 내용에 관련된 의견들이 각기 다를 때였습니다. 사실 이는 음악 뿐 아니라 미술이나 문학에서도 끊임없이 제기되며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이슈이기도 하지요.
그 중에서도 내용과 형식의 문제가 가장 적나라하게 대치했던 순간은 바로 19세기 낭만주의에서입니다. 19세기 초엽 음악사의 거인 베토벤이 보여주었던 파격적 행보는 장차 도래할 낭만열풍의 사단(事端)이 되어주었지요. 고전을 지나 낭만으로 가는 시기 베토벤의 존재는 결정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마치 르네상스가 무르익었을 때 조스껭 데 프레(Josquin des Prez) 라는 걸출한 작곡가가 규제와 자유 사이에서의 의미심장한 몸부림을 보여준 것과 마찬가지로 천재는 과도기에 빛을 발합니다. 베토벤이 마침내 점화한 내용과 형식의 상충, 낭만과 고전의 대립들은 이후 낭만주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적나라한 갈등양상으로 비약하게 됩니다.

 

베토벤이 보여주었던 과감한 실험정신은 후대 작곡가들 각각의 취향과 역량에 따라 사뭇 다른 형태와 방식으로 발전합니다.
멘델스존이나 브람스 같은 ‘보수주의자’들은 전 시대의 유산인 소나타와 교향곡 형식이 갖는 미덕을 십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가운데 자신들이 표현하고픈 내용을 그것에 효과적으로 담기 원했지요.
그래도 시대정신이란 언제나 열려 있는 쪽을 더 갈구하나 봅니다. 슈만, 리스트 또 후반의 바그너로 이어지는 본격 혹은 과장된 낭만의 정신은 이전 시대에 존재했던 작품 형태나 작곡 이디엄을 거의 무가치 한 것으로 치부하게까지 됩니다. 인간 정신이 이윽고 확보하게 된 자유롭고 유연하며 탈현실적인 정신 작용을 담기에는 기존의 양식들이 갖는 한계가 너무 분명하다고 본 탓이지요.
새로운 낭만주의자들은 아예 기존의 제목을 버리고 음악외적 요소들로부터 받은 영향들을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묘사적인 제목들을 대거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그 선두대열에는 리스트와 바그너가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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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트는 기존의 교향곡 대신 ‘교향시’라는 명칭을 사용하여 악장 구분의 전통적 장치를 없애고 단일하게 이어지는 스토리 라인을 음악으로 표현했습니다. 기승전결의 이야기를 담고 있거나 특정한 감정의 기복을 드라마틱하게 표출하는 것이 주제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신화나 전설 속 영웅들의 모험담은 낭만 문학 속 히어로들의 이미지와 겹쳐진 채 상승효과를 불어넣는 소재로 더 없이 훌륭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프랑스의 베를리오즈 같은 이도 이에 동조해 교향곡의 형태를 가졌으되 ‘환상적’인 내용의 작품들을 잇달아 내어놓습니다. 이윽고 이들의 정신적 후예인 리하르트 바그너는 음악에 음악 이상의 그 무엇을 첨가시키며 음악의 전방위적 역할을 확신하는 자신만의 철학을 꿋꿋이 전개시켜 나아갔지요.
이는 모두 19세기 중, 후반에 벌어지는 풍경이었지만 그 속에는 이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불세출의 고전적 낭만주의자인 브람스가 살아 숨 쉬고 있었습니다. 자신만의 정서적 경험 탓이었는지 아니면 타고 난 취향이었을지 그도 아니면 역사적 사명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브람스는 고전적 형식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에 큰 비중을 두었지요. 그는 논리를 갖춘 형식 안에 자유로운 내면을 가감 없이 담을 때 비로소 음악에 있어서 진정한 시너지 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형식을 전적으로 배제하고 무시한 상태의 음악에 브람스는 심대한 우려를 표명했던 것이지요.
반면 바그너는 브람스 진영을 겨냥하여 ‘그들은 형식이라는 틀 속에 자신을 가둠으로써 장차 올 메시아라도 기다리는가?’와 같은 독설도 서슴지 않았답니다.

 

그 와중에 골수 ‘내용주의자’였던 리스트가 차차 변해갑니다. 말년에 사제의 신분을 얻음과 동시에 종교적 음악으로 깊숙이 심취해 들어간 리스트는 바그너 쪽에서 보면 변절이라면 변절이었습니다.
한편 바그너는 열렬한 추종자들인 브루크너와 말러 같은 이들을 통해 자신의 음악철학의 정당성을 꾸준히 유지 발전시키고 있었지요. 20세기 접어들어서도 바그너리즘이 음악사에 끼치고 던진 파장의 폭은 크고도 깁니다.
물론 그곳에는 언제나 이견과 갈등의 소지가 상존하긴 했지만. 한편 브람스가 보기에는 꽤 괜찮은 작곡가인 브루크너가 그토록 바그너에 심취하는 것이 못내 탐탁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이유에서였을까요? 브람스는 말년에 풍자와 냉소가 진하게 담긴 비평을 자주 그들을 향해 썼습니다. 그런 브람스는 결코 형식을 버리지 않았지만 그가 내용을 포기한 것도 아닙니다. 내용과 형식 그 두 대립되기 쉬운 개념들은 그의 품안에서 고도의 음악적 정제작업을 거쳐 오늘날의 우리에게 남아있습니다. 역사적 필연인지 개인적 취향인지 혹은 시대적 요구인지 규정하기는 쉽지 않아도 형식이냐 내용이냐의 논쟁은 이제 각 진영에서 성취된 작품이라는 결과물로 언제라도 사람들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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