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09년 성서와 문화

섬진강 물방울 이야기

성서와문화 2009.12.28 16:37 조회 수 : 1736

 
[ 작성자 : 허 만 하 - 시인 ]


1.
길은 강을 따라 흐른다. 섬진강 둔치를 따라 태어난 국도도 예외가 아니다. 섬진강 물길 상류에 공장 또는 대도시가 없기 때문에 물길과 모래사장은 정갈하다. 물길이 한번 휘어질 때마다 모래사장 위치가 달라지는 것을 살펴보는 일도 이 길을 달리는 재미가 된다. 물줄기가 경상도 하동과 전라도 광양 틈새를 비집고 남쪽 바다에 흘러드는 일대는 일부 갈밭이 남아 있지만, 광양 제철소가 차지하는 면적 때문에 옛날의 원시적 풍광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2.
일정한 유속을 가지는 강물이 바다에 흘러 들 때의 수력학은 어떤 것인지는 알길 없으나, 나는 강물이 능동적이고 바다는 수동적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고 두 물이 서로 교차한다는 이야기를 섬진강 기슭에 사는 한 주민한테서 들었을 때 나는 약간 놀랬었다. 그 분 이야기로는 섬진강 흐름의 가운데를 조용히 살펴보면 한 줄의 물거품이 나란히 선다는 이야기였다. 이 거품을 본 그는 이 고장 토박이 한 분에게 그 거품의 정체에 대해서 물었다. 그 노인 어른 대답은 광양만 쪽 바닷물이 밀물 때 섬진강 물길을 파고들어 바다를 향하여 먼 길을 흘러온 물길과 접촉하는 면에서 생기는 물방울이란 것이었다. 그리고 그 물방울을 경계로 강물 맛이 다르다는 것이다. 염분 함량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달밤이면 하동 쪽 기슭에는 참게가 많이 잡힌다는 것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물길 가까이 다가서서 수면을 찍은 아내의 사진을 현상해 본 결과 세 마리 수달이 수면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한 줄로 서서 헤엄치고 있는 모습이 잡혔었다. 예상하지도 안했지만 그 젊은 분이 말했던 한 줄 물거품은 잡혀 있지 않았다. 그러나 맑은 물에만 사는 수달이 섬진강 하구에서 멀지 않는 곳에 살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고 섬진강 물이 맑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물때를 잘 잡으면 섬진강 흐름 한 가운데쯤 물방울이 떠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일은 그 날 나들이의 수확이라면 적잖은 수확이었다. 벤치가 놓여져 있는 아담한 정원을 거느리는 조그마한 호텔 1 층 다방에서 있었던 소중한 자연 공부였다. 그 물방울을 확인하려 물때를 맞추어 그 숙소를 찾아보리라 마음먹었지만 이런저런 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비교적 자주 이 길을 찾아보는 편인 나에게 섬진강 물방울은 지금까지 숙제로 남아 있다.

 

3.
눈부신 햇살을 반사하며 수런거리던 연두색 잎사귀를 바라보며 싱싱한 생명의 힘을 느꼈던 것이 바로 어제의 일 같은데, 벌써 사람들은 코트 깃을 세우고 길바닥을 구르는 낙엽을 바라보며 쌀쌀한 바람 속을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다. 가로수 잎사귀가 구르는 길을 걸으며,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영원히 집이 없을 것입니다.라는 시 구절을 떠 올렸던 릴케의 가을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올해는 아름답게 가을이 물든 나무 잎사귀를 강원도 태백시에서 장성에 이르는 황지천 기슭에서 처음 보았다. 공교롭게도 그 곳은 낙동강 물길의 시원이 있는 황지와, 또 다른 시원이 있는 함백산에서도 멀지 않는 조그마한 언덕에서 우리 가족들이 둥지를 트고 두 해를 살았던 추억의 장소였다. 다시 날을 잡아, 경북 함양의 용추계곡과 거창 월성계곡 일원, 남덕유산 자락에서 노랑과 선홍색으로 조용히 타오르는 나무들의 마지막 잔치를 만나보았다.
과연 가을과 겨울 사이에는 경계가 있는 것인가. 바다에 흘러드는 강과 바다 사이에는 경계가 있는 것일까. 흐르는 시간은 한결 같은데 올해와 새해 사이에는 어떤 경계가 있으며 그 경계의 본질은 어떤 것일까. 사실, 자연에는 경계가 없는데 사람의 언어(이성)가 곳곳에 경계선을 긋는 것이 아닐까.

 

나에게는 ‘낙동강 하구에서’라는 시 한편이 있다. 몇 시화집에 대표작의 하나로 수록되어 있는 시편이다. 이 시에서 강물과 바다의 경계(한 독자는 이를 삶과 죽음의 경계라 읽었었다)는 어떻게 다루어져 있을까. ‘슬픔의 어머니(Muter dolorosa)’는 내가 로마(바티칸·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손끝으로 만져본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떠올리며 어머니의 품(사랑) 일반을 상징했던 것이다. 그때만 해도(1969년 6월 입추 이틀 후) 이 조각은 관객에게 개방되어 있었다. 나는 창백한 대리석에 따뜻한 살이 있고 물결치는 머리칼과 주름잡히는 천이 있다는 사실을 그 곳에서 처음 알았다. 미켈란젤로의 조각 가운데서 그의 서명이 들어 있는 단 하나의 작품인 이 피에타가 이즈음에는 방탄 유리상자 안에 들어 있다고 들었다. 나는 미켈란젤로의 징과 망치 자국을 직접 만져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감동적 경험이 먼 훗날 나의 시에서 모습을 드러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때였다. 이런 경우를 시는 ‘감정’(느낌)이 아니라 ‘체험’이라 말했던 릴케의 시학에 부합하는 경우라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낙동강 하구에서

 

바다에 이르러
강은 이름을 잃어버린다.
강과 바다 사이에서
흐름은 잠시 머뭇거린다.

 

그때 강은 슬프고도 아름다운
연한 초록빛 물이 된다.
물결 틈으로
잠시 모습을 비쳤다 사라지는
섭섭함 같은 빛깔.
적멸의 아름다움

 

미지에 대한 두려움과
커다란 긍정 사이에서
서걱이는 갈 숲에 떨어지는
가을 햇살처럼
강의 최후는
부드럽고 해맑고 침착하다.
두려워 말라, 흐름이여
너는 어머니 품에 돌아가리니
일곱 가지 슬픔의 어머니.

 

죽음을 매개로 한 조용한 전신 (轉身).
강은 바다의 일부가 되어
비로소 자기를 완성한다.

 

낙동강 하구 일대는 우거진 갈대숲과 철새 도래지로 이름이 있지만, 김해 쪽 먼 능선을 물들이는 주홍색 노을이 유난히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지난달 30일, 이 하구를 가로지르는‘을숙도 대교’ 개통식이 있었다. 릴케는 자연을 존재자의 근거라는 의미에서 근원이라 불렀다는 사실을 하이데거는 그의 『궁핍한 시대의 시인』에서 지적하고 있다. 우리들의 근원인 자연과 인공물로서의 존재자인 강철의 다리가 서로 어울려 심미적 가치로서의 조화가 살아있는 새로운 풍경이 태어나 있기를 믿는다. 낙동강 물길의 어디쯤까지 남해 바닷물이 역류처럼 파고드는지를 한 줄 물방울을 지표로 살펴보기 위해서도 강기슭을 훑어 오르며 좀 더 촘촘히 찾아보아야 할 것 같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5 사랑하는 능력 성서와문화 2009.12.28 1836
44 시를 쓰는 마음 (11) 시나이 반도를 지나며 성서와문화 2009.12.28 1712
43 신(神)의 저울 file 성서와문화 2009.12.28 1646
42 다석(多夕) 유영모의 비정통적 기독교 - 없이 계신 하느님, 덜 없는 성서와문화 2009.12.28 1837
41 퇴계와 율곡 성서와문화 2009.12.28 1840
40 음악 片紙 ⅢⅩⅡ 형식인가 내용인가? file 성서와문화 2009.12.28 1599
» 섬진강 물방울 이야기 성서와문화 2009.12.28 1736
38 아우구스티누스의 아름다움을 향한 여정 성서와문화 2009.12.28 1764
37 대지(大地)의 은총(恩寵) file 성서와문화 2009.12.28 1704
36 소금(素琴) 유동식 선생의 신학세계는 오악(五嶽) 중 금강산 성서와문화 2009.12.28 1730
35 제3 교회 file 성서와문화 2009.12.28 1694
34 예술과 신앙 - 4번째 성서와 문화 미술동인전에 부쳐 - 성서와문화 2009.12.28 1560
33 시를 쓰는 마음 (10) 허수아비의 눈물 성서와문화 2009.12.28 1598
32 수고동지(受苦同志)의 실존과 새 윤리 성서와문화 2009.12.28 1576
31 무종교인(無宗敎人)의 변(辯) 성서와문화 2009.12.28 1503
30 창조신앙과 기독교 환경윤리 성서와문화 2009.12.28 1523
29 내가 만난 도예도인(陶藝道人) 이종수(李鍾秀) 선생 성서와문화 2009.12.28 1558
28 음악 片紙 ⅢⅩⅠ 고정관념에 대하여 성서와문화 2009.12.28 1572
27 추억의 예하재 복수초 성서와문화 2009.12.28 1657
26 탈민족, 탈기독교적 기독교 평화사상가, 함석헌 성서와문화 2009.12.28 15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