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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의 아름다움을 향한 여정

성서와문화 2009.12.28 16:36 조회 수 : 1770

 
[ 작성자 : 이 문 균 - 한남대학교 / 신학 ]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애는 피조물의 아름다움에서 궁극적인 아름다움, 즉 신의 아름다움을 찾는 여정이었다. 그는 신의 아름다움을 통해서 세계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었다. 그의 저서에서 발견되는 몇 개의 구절을 통해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아름다움을 향한 여정을 따라가 본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아름다움은 신의 이름이기도 했다. 그는 신을 ‘지극히 오래되고 지극히 신선한 아름다움’이라고 불렀다. 그는 오랜 세월 아름다움을 찾아 헤매었지만 정작 아름다움 자체이신 신과 함께 있지 않았음을 후회하였다. 그는 그처럼 아름다운 신을 뒤늦게 사랑하게 되었음을 슬퍼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아름다움 자체이신 신을 만난 사람의 행복한 슬픔이었다.

 

“지극히 오래되고 지극히 새로우신 아름다움이여, 내가 뒤늦게 주님을 사랑하였나이다. 뒤늦게 사랑하였나이다.”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제 10권, 27:38)

 

아우구스티누스의 젊은 시절은 육체적 아름다움과 감미로움을 찾아 방황한 세월이었다. 그가 쓴 최초의 논문도 아름다움에 대한 글이었다. 그는 세속적인 아름다움과 아름다움의 향유를 추구하다가 거기에서 만족을 얻지 못하고 그리스도교로 귀의하였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 내게는 감미로운 것이었으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몸을 향유했을 때는 더욱 감미로웠나이다. 그리하여 나는 사욕의 더러움으로 우정의 샘을 더럽혔고, 정욕의 더러움으로 우정의 광채를 흐렸나이다. 하오나 나는 더럽고 불결하였어도, 여전히 지극히 허망하게도 격조 있고 세련된 사람으로 인식되기를 갈망하였나이다.”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제 3권 1:1)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름다움은 그것을 보는 사람의 취향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 사물 자체 안에 각인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것은 객관적인 힘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름다움을 형색(形色)에서 보다는 조화와 적합성에서 발견하였다.

 

“너희가 아름다운 것 외에 무엇을 사랑하였느냐? 그러면 아름다운 것은 무엇이냐? 미는 무엇이냐? 우리를 꾀어 사랑하는 것들에 우리를 결합시키는 것이 무엇이냐? 그 안에 우아함(조화)과 아름다움이 있지 않다면, 그것들은 우리를 자기에게 끌 수 없음이라. 그리고 나는 이를 명상하면서, 사물들 안에 자기들이 전체를 형성하는 것으로부터 나오는 일종의 아름다움이 있으며, 상호 적합성(조화)으로부터, 몸의 한 부분과 전체 혹은 신발과 발의 조화와 같은 적합성으로부터 나오는 다른 종류의 아름다움이 있음을 보았나이다.”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제 4권, 13:20)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름다움을 파편(자연) 가운데 있는 보편(the Whole)의 현전(presence)으로 이해하였다. 그는 모든 존재는 최고선(最高善)이요 최고유(最高有)인 신으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에 선하고 아름답다고 하였다. 존재하는 모든 것의 가장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실재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신에게서 와서 영원한 최고의 아름다움인 신을 다시 가리킨다.

 

“육체는 나름대로 지체들의 조화를 지니고 있으며 그 조화 없이는 그것이 아예 존재하지 못한다. 그 뿐 아니라 육체도, 모든 조화의 원리이신 분에게서 창조 받았다. 육체도 자기 형상에 있어 어떤 균형(평화)을 간직하고 있으며, 그 균형이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닐지 모른다. 그분에게서 모든 평화가 온다. 조성되지 않은 형상이시면서 모든 사물 중에 가장 고우신 분, 바로 그분이 육체의 창조자이시다. 육체는 어떤 형용(形容)을 갖고 있으며 그것 없이는 육체는 육체가 아닐 것이다. 따라서 누가 이 육체를 빚으셨을까 묻는 자가 있다면 그는 만유 중에 가장 미려하신 분을 찾는 셈이다. 그러면 이분이 누구시겠는가? 유일하신 하느님, 유일하신 진리, 만인의 유일하신 구원, 최초이자 최고의 유(有)이신 분 말고 누구시겠는가?” (참된 종교, XI, 21)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름다움을 찾고 느끼는 ‘감정’의 효용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이 우리를 신에게로 나아가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그는 아름다움을 느끼고 누리는 ‘감정’을 발에 비유하였다. 감정은 우리를 신에게로 가까이 나아가게도 하고, 신으로부터 멀리 떠나게도 하는 ‘발’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존재와 아름다움의 원천인 신을 떠나면 그 인생은 허무하게 된다고 경고하였다.

 

“이처럼 육체를 갖춘 피조물은 어느 것이나 하느님을 사랑하는 영혼에게 소유될 때에는, 비록 미천한 것이기는 하지만, 형상과 형용을 갖추고 있는 만큼 나름대로 아름답다 … 시간의 아름다운 변화가 그 궤도를 달려가면, 인간이 그토록 탐닉하던 아름다움은 (자기를 사랑해온) 그를 저버리고 떠나며, (인간이) 괴로워하는 사이에 그의 감관으로부터 빠져나가 버리며, 그를 환상으로 흔들어 놓는다. 그리하면 그는, 속임수 많은 감각을 통해서 잘못 사랑해 오던 자기의 육이 가리켜 보이는 대로, 모든 것 중에서도 가장 낮은 것, 곧 육체적 본성에 불과한 것들을 마치 첫째가는 아름다움처럼 여기기까지 한다. 자기는 마치 무엇을 깨달은 것처럼 생각하지만 기실 그는 표상들의 그림자에 속는 까닭이다.” (참된 종교 XX, 40.)

 

우리 인간은 흉한 것을 싫어하고 아름다운 것을 사랑한다. 그렇다. 우리는 아름다운 것에 매혹 당한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는 계시를 통해 발견한 믿음의 지식을 따라서 신은 인간에게 새로운 형상을 주고(reform), 아름답게 하기 위하여 흉하게 된 인간을 사랑하신다고 주장하였다. 신의 아들 그리스도는 인간에게 아름다움을 회복시키고 그에게 새로운 존재를 부여하기 위하여 스스로 흉하게 되고 유한한 존재가 되셨다. 그리스도는 최고의 아름다움과 신의 형상(forma Dei)을 지녔지만 인간의 형상, 인간의 사멸성과 죄의 형상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셨다. 그렇게 해서 신은 자신의 사랑을 드러내셨고, 인간에게 아름다움을 회복시켜 주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신의 절대적인 형상(形相)과 아름다움이 절대적인 흉함(십자가의 죽음)을 향하여 내려가셨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러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모습에서 흉한 자를 아름답게 하시는 신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그는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모양(form)도 없고 고운 모습도 없다.’ 그리스도의 흉함(deformity)이 너를 형상(form)이 되게 하였다. 왜냐하면 그가 흉하게 되기(be deformed)를 원하시지 않았다면 너는 잃어버린 형상(form)을 돌려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흉하게 달렸지만 그의 흉함(deformity)은 우리의 아름다움이 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 『Sermones』, 27, 6.)

 

흉하게 된 죄인을 받아주신 신의 사랑에서 신의 아름다움이 나타났다는 것을 아는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아름답게 되라고 설교하였다. 요한일서 4:17-21에 관한 설교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의 사랑에 응답하여 신을 사랑함으로써 우리는 아름답게 변화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형제들이여, 우리의 영혼은 불의 때문에 추하지만, 신을 사랑함으로써 아름답게 된다. 사랑하는 자를 아름답게 만드는 사랑은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신은 항상 아름다우시고, 결코 추한 적이 없으시며, 결코 변함이 없다. 항상 아름다우신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으며, 더럽고 추한 우리를 그가 사랑하셨을 때 우리는 어떠했는가? 그러나 우리를 추한 그대로 내버려 주지 않고, 우리를 변화시켜 추한 것에서 아름다운 것으로 만드신다. 우리가 어떻게 아름다워질 수 있는가? 항상 아름다우신 그분을 사랑함으로써니이다. 사랑이 당신 안에서 커가듯이, 아름다움도 커가나이다.”
(리차드 해리스,『현대인을 위한 신학적 미학』, p. 84.)

 

이처럼 그리스도교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해는 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사와 찬양으로 끝난다. 『참된 종교』처음 부분에서 하느님을 만물의 원천이라고 고백한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책 끝부분에서 만물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그 분을 통하여, 그 분 안에 모든 것이 존재한다는 고백한다. 이 신앙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은 세계의 아름다움을 인식하고 신의 아름다움을 찬양한다. 그리스도교 미학은 찬양으로 마친다.

 

“유일하신 하느님, 그분을 창조주로 하여 우리가 살아 있고, 그분을 통하여 쇄신됨으로써 지혜롭게 살아가며,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을 향유하는 가운데 우리가 행복하게 산다. 유일하신 하느님, 그 분으로 말미암아, 그분을 통하여, 그분 안에서 모든 것이 존재한다. 그분에게 세세 대대에 영광이 있어지이다. 아멘.”
(아우구스티누스,『참된 종교』, LV, 113.)

 

토스토에프스키(Dostoevsky)는 『백치』라는 소설에서 주인공인 미쉬긴 공작의 말을 빌려 “아름다움이 세계를 구원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어떻게 아름다움이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가?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이해를 통해서 그 해답의 단초를 발견한다. 그리스도는 신의 아름다움을 구체화한 분이다.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아름다움은 어떤 것인가? 그리스도는 신의 형상과 신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사멸성과 흉한 형상을 스스로 취하여 흉하게 되신 분이다. 그래서 신은 단지 아름다운 존재가 아니라 타자를 아름답게 하는 존재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궁극적인 아름다움은 사랑임을 보여주었다. 결국 아름다움이 세계를 구원한다는 말은 사랑이 세계를 구원한다는 뜻으로 새겨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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