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09년 성서와 문화

제3 교회

성서와문화 2009.12.28 16:33 조회 수 : 1695

 
[ 작성자 : 유 동 식 - 신학 ]


1. 성찬식과 교회

 

예수께서는 최후의 만찬석상에서 포도주의 잔을 들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이 피를 흘리는 것이다.” “자, 이 잔을 나누어 마셔라.” 그리고 “나를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라.”

 

이것이 교회와 예배의 중심인 성찬식의 근원이다. 교회란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먹고 마심으로써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신앙공동체이다.
포도주로 상징되는 그리스도의 생명은 불변의 영원한 것이다. 그러나 술잔으로 상징되는 문화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것이다. 이 때문에 같은 그리스도를 신봉하는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교회전통이 형성되었다.
라틴문화의 그릇으로 진행된 성찬식은 서방교회를 형성했다. 그 특징은 윤리적이며 법치적이라는 데 있다. 이것이 로마 가톨릭교회와 그 연장선상에 있는 개신교의 전통을 이루어 왔다.
한편 비잔틴 문화의 그릇으로 진행된 성찬식은 동방교회를 형성해 왔다. 그 특징은 형이상학적이며 신비적이라는 데 있다. 이것이 그리스와 러시아 등의 정교회의 전통을 이루어 왔다.
그러나 이 두 교회의 전통이 인류문화 전체를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피를 담아야 할 또 하나의 방대한 문화가 있다. 곧 아시아의 문화가 그것이다. 그것은 유교, 불교, 도교를 실체로 한 종교 문화권이며, 그 넓이와 깊이에 있어 라틴-그리스 문화권 전체에 버금가는 것이다. 기독교가 세계화되기 위해서는 라틴의 윤리문화와 그리스의 철학문화와 함께 아시아의 종교문화의 술잔에 그리스도의 피를 담은 성찬식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곧 아시아의 제3 교회가 형성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2. 문수보살의 성배

 

최후의 만찬석상에서 예수께서 드셨던 포도주 잔을 거룩한 잔 곧 성배(聖杯)라고 한다. 이 그리스도의 성배로 계속 성찬식이 거행되었더라면, 그가 약속하신 평화의 새 하늘과 새 땅이 전개되었을 런지 모른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교회가 전개되고 성찬식이 시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역사는 여전히 전쟁과 어두움으로 얼룩져왔다. 이에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성배를 찾아 나서게 된 것이다.
이 성배는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성배는 하나의 문화적 예술작품이다. 이 잔이 있는 곳은 고고학자들이 찾는 무덤 속이 아니라, 아름다운 예술의 전당 속에 있을 것이다.
일찍이 일본의 한 미학자는 경주 석굴암의 불상들을 보고 감탄하여 마지않았다. “이것은 어떤 개인이나, 한 민족의 작품이 아니라 동양의 종교와 예술이 도달한 귀결점”이라고 했다(야나기 무네요시). 그런데 놀랍게도 그 불보살상 가운데 한 분인 문수보살이 오른손에 잔을 들고 서 있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찾던 성배가 석굴암 문수보살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닌가?
문수보살은 지혜의 보살이요, 반야경의 편집자로 알려져 있다. 반야경의 핵심사상은 진리의 법인 공(空)과 현상계인 색(色)이 서로 즉(卽)해서 있다는데 있다(色卽是空 空卽是色). 실로 색과 공은 둘이면서 하나이다.(不一不二). 거룩과 세속이 둘이 아니며, 영과 육은 둘이면서 하나이다.
성찬식이란 무엇인가. 떡과 포도주를 마시지만, 그것이 곧 그리스도의 피와 살이라는 신비로운 사실을 담은 행위예술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피와 살은 영이요, 거룩한 것이요, 공에 속한 것이지만, 떡과 포도주는 육적인 것이요, 세속적인 것이며, 색에 속한 것이다. 그러나 성찬식에서의 영과 육, 거룩과 세속은 둘이 아니며, 또한 하나도 아니다.
문수보살이 오른손에 들고 있는 성배란 무엇인가.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라는 반야의 그릇인 것이다. 그 안에 담길 포도주가 곧 그리스도의 피인 것이다. 우리는 구태여 그리스철학이나 라틴문화의 그릇을 빌려서 성찬식을 행할 것이 아니라, 문수보살의 잔으로써 성찬식을 거행함으로써 우리의 교회 곧 아시아의 제3 교회를 전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3. 동방의 등불

 

“아시아의 황금시대에, 한국은 그 등불의 하나였다. 이 등불은 다시 점화되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세계를 빛낼 동방의 등불이 되기 위하여.”(타골)

 

아시아는 7, 8세기 당나라를 중심으로 문화의 꽃을 피웠다. 그 중심에는 불교문화기 있었다. 신라의 문화 역시 그 문화의 일익을 담당했다.
그러나 신라의 문화는 단순한 당나라의 문화의 연장이 아니었다. 불교문화에 점화된 우리 문화의 전개였던 것이다. 우리 문화의 실체를 고운은 ‘풍류도’라고 했다. 이는 실로 유, 불, 선 3교의 종지를 포함한 것이요, 이것이 뭇사람으로 하여금 참 사람이 되게 하는 민족적 얼이라 했다.
풍류란 멋으로 표현되는 아름다움의 개념이다. 이것은 아시아의 모든 종교적 이상을 내포한 종교·예술적 개념이다. 이것이 한인의 얼이 되어 우리의 문화를 창조해 왔다.
이 풍류도가 불교문화를 매개로 화려한 신라문화를 전개해 나갔다. 그 흔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 불국사와 석굴암의 예술이다.
근세에 와서는 유교문화에 점화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세종 연간에 한글 창제의 꽃을 피었으나, 풍류도를 제어하는 율법성 때문에 크게 문화 창조에 기여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다시 점화되는 날을 기다려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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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동식 작

 

 

신라 황금시대의 상징인 석굴암의 문수보살은 오랜 세월을 두고 성배를 손에 든 채 새로운 포도주가 채워지는 날을 서서 기다려야만 했다.
드디어 20세기가 되면서 그 성배에 그리스도의 피가 담겨지기 시작했다. 우리의 등불이 다시 점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식민지의 질곡으로부터 해방되었고, 이제는 세계의 젊은이들을 모아 평화의 축전인 올림픽 경기를 주최하게 되었으며, 이제는 원조를 받아서 사는 나라가 아니라 후진 약소민에게 원조를 베푸는 시혜의 나라가 된 것이다.
우리는 이제 서방교회가 전해준 라틴문화나 그리스 문화의 잔으로 성찬식을 행할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문수보살이 들고 기다리던 반야의 성배로써 성찬식을 행해야 한다. 그리하여 진정한 제3의 우리의 아시아 교회가 형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때에 한국은 동방의 등불이 될 것이며, 기독교는 비로써 참된 세계교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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