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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도예도인(陶藝道人) 이종수(李鍾秀) 선생

성서와문화 2009.12.28 16:29 조회 수 : 1559

 
[ 작성자 : 김 효 숙 - 조각 ]


1980년대 중반 “정송화랑”이 여의도에 화랑을 열며 그 개관전에 함께 초대되어 처음으로 선생을 뵌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그 때의 선생에 대한 특별한 기억은 없고, 선생의 작품에서 받은 인상만이 강하게 남아있다.
항아리의 갈라지고 터진 거친 몸체는 도자기라기보다는 조각적으로 보였다. 일반 도자기들이 유약의 색채와 광채로 회화적인 느낌을 주는 것과 달리 유약이 거의 들어나지 않는 태토(胎土)의 질박함과 안으로 부터 우러나오는 빛은 청아하고 단정한 자태로 나의 눈을 사로잡았다. 항아리 중간부분의 거친 표현과 달리 윗부분과 아랫부분의 곱게 다듬어진 대비는 전통적인 그릇의 형태를 지키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었다.
이 전시 이후 선생은 거의 매년 정송화랑에서 초대개인전을 가지셨고, 그 때마다 뵐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면서 나는 선생작품의 산실인 작업장을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바람은 내가 생활의 터전을 대전으로 옮기면서 이루어졌다.

 

선생의 작업장은 앞쪽으로 갑천이 흐르고 천을 따라 난 길 옆으로 군데군데 창고 건물들이나 있는 인적이 드문 한적한 곳으로, 그 길에서도 큰 나무들 사이로 난 조그만 오솔길을 더 들어간 깊은 곳에 있었다.
댁을 어떻게 오가실까 궁금해 여쭈니, 처음에 내려와서는 여기서만 지냈는데 여러 해를 그렇게 지내다 보니 건강에 무리가 와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씩은 댁에 가신다는 것이었다.
이런 말씀을 나누면서 한 시대에 작가로서 격어야 했던 고뇌와 갈등을, 그리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써 감내해야했던 아픔과 연민이 그대로 전해오는 듯했다. 터지고 갈라진 작품의 균열들은 혼신을 다한 자신과의 대결의 흔적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

 

다시 선생의 작업장을 찾게 된 것은 아직은 쌀쌀한 초봄이었다. 조각을 하는 나로서는 마음대로 소리가 나도 되고, 지저분한 것들을 늘어놓고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원해 왔다. 만만한 작업장을 구하기 위해 대전 외곽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옆에서 위험해서 안 된다고 말리는 것이었다. 고집을 부리는 나를 잠재우기 위해 남편은 이종수 선생과 의논해 보고 결정하자 했다. 나는 내심 잘 되었다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기대와는 달리 선생은 자신이 남자인데도 이곳에 있다 보면 섬짓섬짓 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미친 사람이 느닷없이 들이닥치기도 하고, 장정들이 찾아와 으름장을 놓기도 하고, 어느 때는 뱀이 똬리를 틀고 있기도 해 가슴이 철렁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후, 나의 소망은 아직 이루어지지 못했다.
선생은 그 날 작업을 하고 계셨다. 선생과 물레 위의 작업 중인 큰 항아리, 그 옆에 29공탄쯤 들어가는 난로가 있고, 손님 둘로 작업장은 어찌해 볼 수 없이 꽉 차 보였다. 방금 연탄을 가신듯 냉랭한 실내는 가스 냄새로 가득했다. 어떻게든 손님을 앉혀 보려고 애써 주시는 것과 달리,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손으로 항아리를 잡고, 찬물에 스폰지를 빨아 연신 항아리를 문지르는 선생의 빨갛게 언 손과 빨갛게 언 코에 맑게 비치는 물기를 보니 그렇게 한참은 작업을 하신 것 같았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힘든 작업을 하는 모습에서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느낀 가슴 저린 날이었다.

 

서울에서 다시 대전으로 이사를 왔을 때 선생의 작업장은 금산으로 옮겨져 있었다. 어떻게 찾아 뵐 수 있을까 하던 차에 조각을 하는 김용수 님의 도움으로 선생을 뵐 수 있었다.
작업장은 전과는 달리 시골 동네 골목 안에 있었다. 들어가며 마당이 있고 마당 안쪽에 기거(起居)를 할 수 있는 작은 집이 있었다. 방 안에 들어가 앉으니 한 여름 열어 놓은 미닫이문 밖으로 작은 뒤뜰이 둘러져 있고 대 발 넘어 보이는 풍경이 아늑하고 다정해 보였다. 어디선가 구하셨다는 작은 돌다리는 뒤뜰의 운치를 더하고, 이끼 낀 바위벽과 나직한 나무에 걸어 놓은 새 없는 새장,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선생의 풍류를 보는듯했다.
가마와 작업장은 여기서 조금 내려가 아래편 마당에 있었다. 마당 한편에 있는 작업실 안은 잘 정돈되어 있었다. 물레 작업대가 거의 벽 쪽에 붙여져 놓여있었고 작업장 안은 좁고 음침했다.


테라코타 작업을 위해 장작 등가마가 있는 곳을 전전해 본 나로서는 흙의 습도조절과 물건을 서서히 말리기 위해 창을 위에 두지 않고 아래편에 두어 어둑하고 눅눅한 것을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곳에 오래 계시면 몸에는 좋지 않으실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작품을 위해 그 작가만이 갖는 작업 환경과 분위기는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며 밝은 햇빛이 내리쬐는 마당으로 나왔다.
대전에 온 후로는 일 년에 몇 번씩은 선생을 뵐 기회가 있었다. 특히 서울에서 최종태 선생께서 오시는 때는 의례 선생과 약속이 되어 있으셨고, 나도 자리를 함께 할 수 있었다. 선생은 언제나 조용하고 말을 듣는 편이셨다. 서두르시는 것을 뵌 적이 없다. 선생의 느린 말투가 더욱 그렇게 느끼게 했는지도 모른다. 당신의 의견을 강요하는 것도 뵌 적이 없다. 그러나 자신의 뜻을 밝힐 때에는 분명하고 단호하셨다. 당신 자신에 대해 엄격하나 타인에 대해서는 언제나 따뜻하고 너그러우셨다.

 

선생의 작품은 선생을 꼭 닮아 있다. 나는 선생의 작품을 크게 세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하나는 태토의 맛을 거의 그대로 살려 만든 것들이다. 여기에 기체(器體)의 중간부분을 메마른듯 갈라지고 터지게 만든 텃치가 강한 것들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소박하고 꾸밈없는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그러면서 세상 속에서 겪는 질고와 아픔을 넘어 우리를 위로하며 함께하는 따듯함을 느끼게 한다.
두 번째는 넉넉하면서도 우아한 조선의 여러 달항아리의 품격을 넘어, 햇빛을 받아 조용히 빛나는 흰 눈의 깨끗함과 청초함이 담긴 것들이다. 은은히 빛나는 유약의 광채와 갈라진 빙렬이 주는 아름다움은 욕심 없는 맑고 깨끗한 영혼으로 우리를 이끌어가 우리의 정신을 고양(高揚)시킨다.
세 번째는 둥근 항아리의 형태에서 벗어나 조각적인 구상성을 띄는 것들이다. 아기를 업고 있는 어머니, 항아리를 이고 있는 여인, 기도하는 여인, 다정한 한 쌍의 새 등등... 여기에서 우리는 선생의 인간관, 자연관, 종교의 깊이를 엿보게 한다.
그러나 겉으로 들어난 형과 색이 어떻게 다르든 선생의 작품에서는 모두 ‘살아 있는 자연’과 ‘사람의 호흡’을 느끼게 한다. 나는 이종수 선생의 작품을 한 마디로 “숨 쉬는 도자기” 라고 부르고 싶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사람의 인격을 느끼게 하는 도자기라는 것이다.

 

지난 봄, 대전시립미술관에서는 <이종수 - 겨울열매展>와
<프랑스 국립 세브르 도자기展>이 함께 기획전시 되었다.(2008.4.25~8.3) 이 전시는 선생의 마지막 학춤이었다. 죽을 때 가장 아름다운 춤을 춘다는 학처럼 선생 작품의 도정(道程)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아름다운 전시였다.
이 전시는 서양(프랑스)과 동양(한국)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세브르의 도자가 화려하고 장식적인 ‘표피의 예술’이라면, 선생의 작품은 안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인간내면의 소리를 담아내고자 하는 ‘혼(魂)의 예술’이었다. 또한 전자가 대량생산과 정교함을 끈질기게 추구해 온데 비해, 선생은 도자기 하나를 위해 기교를 넘어 치열하게 예술혼을 불태워 온 삶의 궤적(軌跡)이었다.
마음에 드는 도자 하나를 얻기 위해 다 구어 완성된 것들을 가차 없이 깨어버리는 비움의 수많은 과정과 활활 타는 가마의 불을 지켜보며 붉게 물든 선생의 얼굴사진 속에서 도예가로서의 진정한 삶이 무엇인가를 함께 볼 수 있는 전시였다.
선생은 당신의 투병 생활을 아무에게도 내색하지 않으신듯하다. 편찮으셨었다는 것 뿐 평소와 전혀 다름이 없으셨다. 이런 것도 선생이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남을 먼저 배려하는 깊은 생활철학의 한 모습이라 여겨진다.
선생과의 마지막 만남은 두 번의 잔치(대전시립미술관 초대전시 개막축제와 아드님의 결혼식)자리에서였다. 나에게 선생은 슬픔과 헤어짐으로 남아있지 않다. 우리 모두는 잔치의 기쁨과 축제의 한마당에서 선생과 살아서 작별을 나누었다.
나는 선생을 선비라 생각한다. 학구적이고 예술적이며 지사적(志士的)인 조선 선비의 정신을 이은 우리 시대의 참 선비이시다.
한국 전통 도자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으셨고, 그 예술적 품위와 기품을 더욱 풍요롭게 했으며, 부당하고 옳지 않을 때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낙향하여 자신의 뜻을 펴가는 올곧은 정신의 소유자였다.

 

괴로웠던 사나이 /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 처럼 /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하는 윤동주의 시처럼, 선생은 도자기를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인생을 완성시킨 우리시대의 도예도인(陶藝道人)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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