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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片紙 ⅢⅩⅠ 고정관념에 대하여

성서와문화 2009.12.28 16:27 조회 수 : 1573

 
[ 작성자 : 김 순 배 - 피아니스트 / 음악평론 ]


언젠가 강의를 맡았던 ‘음악미학’ 시간엔 매주 에세이 쓰기 과제가 나갔었습니다. (학생들은 처음에 괴로워하다가 나중엔 결국 뿌듯해 하는 극히 ‘이중적’인 반응을 보였지요!) 그 제목들 중 하나가 ‘음악 전반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 이었어요.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왜 대개 검은 옷을 입는지 에서부터 시작하여 연주 중 악장 사이사이에 왜 박수를 치면 안 되는지, 연주 무대의 조명은 왜 그리 밝아야 하며 악보는 반드시 외워서 연주해야 하는지를 비롯 음악을 하려면 과연 돈이 있어야만 하는가와 같이 꺼내들기 다소 껄끄러운 질문(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에 이르기까지 말 할 기회가 없었다 뿐 드디어 배출구를 찾아 쏟아져 나온 ‘고정관념’들의 내용은 다양했습니다.
흥미로웠던 것들 중 하나는 전공악기에 따라 성격 및 인간성이 드러난다는 다소 원색적이지만 왠지 근거가 없지는 않을 법한 사항들이었습니다. 예컨대 성악 하는 이들은 사교적이며 오지랖이 넓고 관악기 전공은 틀림없이 노는 것도 잘 하며 피아니스트들은 대강 편협하고 자기중심적이라는(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좀 억울했지요!)등 개별적 경험들의 집합이 만들어 낸 데이터 축적에 의한 일련의 생각들 말입니다.

 

그러나 그 수많은 고정관념들이란 필연적으로 시대 및 공간적 상황 그리고 음악외적인 요인들에 의해 많은 부분 결정된다는 사실을 지나온 음악의 역사는 말해 줍니다. 암보는 리스트 선생의 지나친 자신감으로부터 비롯되었고 여성지휘자가 드문 까닭은 재능의 열세 때문이라기보다는 사회적 문화적 여건 탓이 더욱 큰 것이고 오페라 성수기였던 18-19세기에는 칸막이 박스 안에서 살림을 차려도 상관없을 만큼 감상태도가 자유로웠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 (이즈음 중국에서는 연주회에서 과자와 음료수 먹고 마시기는 보통이요 곡 중간에 박수치기, 휘파람 불기 등도 예사롭다는 정보에 접하고 보면 도대체 고정된 관습이나 관념의 근거나 타당성은 어디서부터 온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는 게 사실입니다.)

 

피아니스트 리히터(Sviatoslav Richter)가 무대 위에 희미한 스탠드 불빛만 하나 밝히고 악보를 넘겨주는 페이지 터너(Page Turner)를 대동한 채 프로코피에프를 치고 베토벤을 연주해도 아무도 시비를 걸지 못했던 독주회를 지켜보며 그 분을 죽도록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많은 경우 객석은 컴컴한 채 무대 위만 필요이상 가혹하게 강조된 조명을 보며 ‘이건 예술적 관음증에 가까워!’라고 생각한 적도 있지요. 문제는 그러나 리히터만큼의 카리스마와 철학이 수반된 연주행위의 정당성이 없이는 섣불리 고정관념을 깰 생각은 하지 못한다는 것에 있지만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드문 하프시코드 연주자인 오선생과 언젠가 나누었던 이야기에서도 느낀 바는 많았습니다. 하프시코드 주자들의 경우 연주자가 감당하고 채워 넣어야 할 부분, 즉 자유 혹은 책임의 반경이 피아니스트들의 그것보다 훨씬 넓다는 사실. (저는 이것이 우리나라에 아직까지 쳄발리스트들이 드문 이유 중 하나라 생각합니다만.) 대다수의 연주자들은 아직도 악보에 지시된 그대로 또 전수된 해석의 방식 그대로 해야 편하고 안전하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 그렇다면 우리식 건반 교육을 받아온 하프시코드 연주자들에게는 디테일이 생략된 바로크의 쳄발로 악보가 충분히 공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밖에 없었지요.
상황이 이러할 진대 작곡가가 곧 연주자였고 해석자였던 그 옛날의 음악가 정신(Musicianship)은 이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현상이 되어버렸다는 씁쓸한 자각이 엄습해 왔습니다. 음악행위의 곳곳에 그림자처럼 드리워진 고정관념은 이제 악보를, 음악을 일종의 박제(剝製)상태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되기까지 합니다. 교육이 그렇고 풍토가 그렇지요. 이런 경향은 모든 분야가 훨씬 열린 상황으로 나아가는 오늘 날에도 음악분야에서는 극히 더딘 발전의 양상을 보여줍니다.

 

흔히 ‘20세기 음악’이라고 하면 애호가이건 전공자이건 불문하고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쯤으로 여겨지기 십상입니다. 이럴 때 던져보고 싶은 질문은 ‘현대(20세기)음악을 웬만큼 듣긴 들어보셨나요?’이지요. 잘 모르기 때문에 품고 있는 고정관념은 위험합니다. 가령 전공자들의 경우 20세기 음악에 대해 알아볼 만큼 알아본 다음 호불호(好不好)나 가치판단의 잣대를 들이대야 하는 것이 정상이겠지요.
바로 지난 학기 모 대학원 박사과정 학생들과 함께 뒹굴며 탐구했던 ‘20세기의 피아노 음악’에서 특히 메시앙을 중심축으로 한 후반기의 음악 경향들을 꼼꼼히 짚어본 학생들의 반응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그들은 20세기 후반부 음악에 대해 보다 열린 사고와 판단력을 가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급기야는 너무 좋아하게 되어서 반드시 연주해보고 싶은 레퍼토리의 목록에 그것들 중 다수를 올려놓게까지 된 것이지요. 이렇게 홀연 마음이 열리고 집착해 왔던 좁은 고정관념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로워지려면 우선 많이 알고 많이 경험해야 함이 필수입니다.

 

끝까지 고수해도 좋은 고정관념도 물론 있을 수 있습니다. 예컨대 클래식 음악의 메리트는 세월이 흘러도 결코 퇴색되거나 변색되지 않을 것이다 와 같은... 그러나 대부분의 선입관이나 고정관념들은 자칫 편협한 지식, 질문을 던지지 않는 습관 그리고 군중심리에 영합하는 무개념 등으로부터 파생되었을 우려가 다분합니다. 그리고 그 고정관념의 피해자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 되겠지요. 스스로의 생각을 제한하고 남과 다르게 생각하기를 꺼리며 기왕의 관행에 꽁꽁 묶여있는 와중에 진정한 음악듣기의 기쁨이나 전공자의 경우 음악을 하는 의미영역이 시간이 흐를수록 초라하게 축소되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음악관련 우울증’을 앓게 될 수도 있을 겁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생각의 발전이 더디고 창의적인 관행이 새로 생겨나기 힘든 분야가 음악이라는 사실이 진정 우울하게 다가올 때도 있습니다. 불필요한 고정관념을 벗어던지고 열린 상태로 자신을 내어 보내는 일은 음악하기와 듣기에서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고정관념’이라는 제목을 받아든 미학 클래스의 학생들은 곤혹스러운 말문 열기의 과정을 지나 무심코 우리 속에 자리 잡은 정체불명의 그것들을 끄집어내어 신기한 듯 또 불편한 듯 바라보는 작업을 통과했었습니다. 리히터의 철학이 그러했듯 ‘음악’자체를 위하지 않는 모든 고정관념은 불식되거나 폐기되어야 할 것입니다. 음악적 우중(愚衆)이 되는 일은 너무도 쉽지요. 군중심리에 휩싸이는 일이 음악계라고 해서 안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변별력의 제대로 된 작동. 그것을 위한 노력들. 아직도 많이 아쉬운 부분들이지요. 생전 아무도 던져주지 않았던 ‘고정관념’이라는 화두를 고통스럽게 부둥켜안았을 귀여운 학생들을 통해 제가 새삼 확인했던 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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