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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민족, 탈기독교적 기독교 평화사상가, 함석헌

성서와문화 2009.12.28 16:25 조회 수 : 1569

 
[ 작성자 : 이 정 배 - 신학 ]

 
작년 8월 세계 철학자 대회가 서울에서 열렸었다. 본 대회는 유영모와 함석헌을 한국의 주류 철학자로 인정한 뜻 깊은 자리였다. 물론 이들이야 누구의 인정 여부를 떠나 그 자체로 귀한 존재들이지만 그동안 학계의 소극적 평가에 비춰 볼 때 이들의 의미가 공식화된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6월에도 이 두 철학자를 주제로 한일 양국 학자들 간의 심포지움이 목포에서 열렸다. 일본 학자들 중에는 이들에 대한 연구로 남은 생애를 바치겠다고 말한 이도 있었다. 특별히 함석헌이 주목받는 이유는 위 제목이 말하듯 그가 탈(脫)민족, 탈기독교적 평화 운동가란 점에 있다. 민족주의가 ‘평화’를 방해하며 기독교적 절대성이 ‘공존’(일치)을 해치는 현실에서 그의 생각은 시대를 앞서 있었다. 더욱 식민체험을 했던 약소국의 사람이요 누구보다 철저한 기독교 신앙인이었다는 점에서 그의 ‘탈’(脫) 이론의 무게감은 더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만큼 민족을 사랑한 사람도 없고 그의 기독교 이해보다 우리의 폐부를 찌르는 신학을 만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바로 여기에 함석헌을 다루는 우리의 이유와 묘미가 있을 듯하다.

 

남강 이승훈이 세운 오산학교의 역사 선생이었던 함석헌은 김교신의 <성서조선>에 “성서로 본 한국 역사”를 연재했다. 학생들에게 민족의식과 기독교 정신을 가르치기 위해 만든 글들이었다. 여기에는 함석헌 나름의 독특한 역사‘관’(歷史‘觀’)이 담겨있었다. ‘觀’은 ‘見’과 달리 누구도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는 ‘믿음’의 산물이다. 칠흑 같은 어둠속을 오로지 부엉이만 날 수 있듯 일제치하의 어둠 속에서 함석헌만이 민족고난의 의미를 깨친 것이다.
이는 유학시절 우찌무라 간조 및 그 문하생으로부터 배운 성서의 영향이었다. 당시 일본 기독교인들은 관동대지진을 일본에게 내린 하느님의 심판이자 세계를 위한 일본의 구속사적 희생으로 읽었다. ‘구속사’란 용어는 기독교를 처음 접한 함석헌에게 너무도 감격스런 말이었다. 못난 조선의 역사를 구원할 수 있는 힘을 기독교에서 찾고자 한 것이다. 그렇기에 루터적 대속신앙을 전해준 우찌무라 간조는 함석헌의 위대한 스승이 되었다. 하지만 함석헌은 일본적 기독교내의 국수(제국)주의적 성격을 보았고 그를 힘껏 비판했다. 일제 치하의 조선 민중의 삶이 새롭게 인식되었던 탓이다. 침략국 일본이 아닌 조선 역사야 말로 성서의 고난사와 만나며 그로써 구속사적 지평을 갖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조선민족의 고난이 단순히 우리의 못남 때문도, 외세의 탓도 아니며 세계사의 더러움을 정화시키려는 신적 섭리로 인함이란 것‘이 그가 연재한 글의 골자였다. 이런 역사관은 신채호 류의 아(我)와 비아(非我)에 근거한 ‘저항적’ 민족주의와 맥을 달리한다. 민족주의의 핵심을 ‘저항’이 아니라 ‘고난’에서 보았던 까닭이다. 이사야서의 메시아 고난 예고를 민족의 고난과 병치시킴으로서 온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메시아적 역할을 바로 조선인의 몫이라 여긴 것이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탈 민족주의의 단초, 곧 세계주의의 본질과 조우할 수 있다.

 

하지만 해방 후 함석헌의 시각은 또 다시 달라진다. 물론 연속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비연속적 측면을 중시해야 할 이유가 있다. 오산학교 재학시절 스승과 제자로 만났던 유영모로부터 동양적 사유를 배웠고 그를 주체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이에 대한 단적 반영이 책 제목 앞부분을 ‘성서’로부터 ‘뜻’으로 개작한데서 들어 난다.
1961년 수정증보판에는 다음처럼 쓰여 있다. “…고난의 역사라는 근본 생각은 변할 리 없지만 내게는 기독교가 유일의 참 종교도 아니요, 성경만 완전한 진리가 아니다. 나타난 그 형식은 민족과 시대를 따라 가지가지요 그 밝히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알짬 되는 참에 있어서는 다름이 없다.” 이런 변화는 그 옛날 다석(多夕) 유영모가 그랬듯 우찌무라 간조와의 결별을 뜻한다. 이는 속죄신앙을 더 이상 따르지 않겠다는 결의 인 셈이다. 동양종교 속의 알짬을 알고 배운 이상 기독교만의 진리란 것이 더 이상 유효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함석헌은 주류 기독교로부터 배척당했다. 그를 따르는 제자들도 교회 밖으로 내쳐졌다. 그럴수록 독재에 침묵하는 당시 한국 교회를 향한 함석헌의 외침은 더욱 분명해 졌다. “… 네 피 흘릴 맘 한 방울 없어 그저 남 대신 흘러 달래고 싶으나?”고 묻고 있는 것이다. 그에겐 대속(代贖)이란 말 대신 자속(自贖)이란 말이 기독교를 온전히 이해하는 새로운 틀이 되었다. “… 대속이란 말은 인격의 자주가 없었던 노예시대에 한 말입니다. 대신은 못하는 것이 인격입니다 … 대속이 되려면 예수와 내가 딴 인격이 아니라 체험에 들어가고야 됩니다. 그리스도는 예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속에도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예수와 나는 하나라는 체험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때 비로소 그의 죽음은 내 육(肉)의 죽음이요, 그의 부활은 곧 내 영(靈)의 부활이 됩니다. 속죄는 이렇게 해서 성립됩니다.”
모든 종교들 속에서 알짬, 곧 ‘뜻’이 있으며 代贖이 아닌 自贖을 기독교의 본질로 여기는 한에서 그의 기독교는 이미 탈(脫)기독교적 기독교가 되었다. 그의 이런 탈주(脫走)는 교회를 위한 기독교가 아니라 세상과 통(通)할 수 있는 기독교, 역사의 ‘뜻’을 찾는 기독교를 가능케 했다. 그렇기에 함석헌은 지금 기독교인 뿐 아니라 비(非)기독교인들의 위대한 스승이 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탈(脫)민족, 탈(脫)기독교란 함석헌의 개념은 ‘씨알’이란 말에서 합류된다. 유영모로부터 배운 말이긴 하나 함석헌 고유의 사상을 들어내는 키워드가 된 것이다. ‘씨알’이란 자신의 바탈(받할), 즉 위로부터 받아서(받) 할 것(할)을 깨달은 존재, ‘뜻’의 담지자들을 말한다. 여기에는 종교 간의 차이도 없고 민족 간의 구별도 무의미하다. 함석헌은 유불선 역시도 이 민족에게 ‘뜻’을 가르치러 왔던 종교임을 부정하지 않았다. 이순신을 민족을 위해 죽으러 온 제물, 하느님의 사람이었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 고난의 주체적 담지자(自贖)라면 그 누구라도 하느님의 독생자란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이처럼 ‘씨알’ 개념 하에선 민족 개념은 물론 특정 종교의 권위도 해체된다. 고난의 세계사적 지평만이 세계(평화)주의를 동트게 할 수 있을 뿐이다. 이점에서 함석헌의 불후의 명저 <뜻으로 본 한국 역사>는 고난의 삶을 살아 온 한국인 모두를 ‘씨알’의 존재로 각성시켜 ‘뜻’을 찾게 하는 책이라 말 할 수 있을 법하다.
이 책에 언급된 다음 말은 비록 그가 민족과 기독교를 ‘脫’했음에도 역설적으로 민족과 기독교를 사랑했고 희망했는가를 보여준다. “역사란 처음이 있어 마지막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이 있어 처음이 있다.” 그토록 모진 삶을 살아온 민족이지만 ‘뜻’을 자각한 ‘씨알’이 되기만 하면, 그래서 세계 평화를 이룩할 수만 있다면 우리 민족은 최고의 민족이 될 수 있다. 마지막을 믿고 처음을 재창조하려는 원동력, 바로 그것이 기독교란 것이 함석헌의 확신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어떤 종교, 이념, 국가, 영웅도 이 민족의 주인 노릇 할 수 없고 오로지 ‘씨알’ 해방, ‘뜻’의 발견을 위해서만 그들이 존재할 것을 강력히 주문했고 그를 위해 평생 싸웠다. 부족신, 계급신, 주의(..ism)신 일체를 다 몰아내고 새 종교, 새 믿음을 위해 살자는 것이 바로 탈(脫)민족, 탈(脫)기독교적 기독교를 주창한 함석헌의 원 뜻이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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