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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孤獨) 과 연대(連帶)

성서와 문화 2010.03.30 12:47 조회 수 : 1641

[ 작성자 : 이 상 범 - 신학 ] 

 
카뮈의 작품 <요나>에서 주인공은 크게 성공해서 이름을 날리는 화가가 된다. 그의 스튜디오에는 언제나 친구와 제자들로 붐볐고, 평론가와 신문기자들의 발길이 끊어질 새가 없었다. 성공한 화가답게 그는 이와 같은 그의 환경을 한껏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항상 주목해주고 있다는 포만감은 그의 예술가로서의 영감과 창작의 원동력을 잃어가게 하고 있었다. 어느 틈엔가 그는 화필을 잡을 수 없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림을 그릴 수 없는 화가의 고민. 남다른 재능을 타고 난 사람이었기에 그의 고민은 남달랐을까. 그의 고민은 그를 가출로 몰아가더니, 마침내 끝도 없어 보이는 퇴패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예술가가 타락의 밑바닥에서 뒹굴고 있던 어느 날, 문득 영감이 다시 솟아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 그는 다시 화필을 들었고, 평론가와 친구들에게 재기를 선언했다. 그러나 그는 이 전처럼 스튜디오에서가 아니라, 한 평 남짓한 좁디좁은 지붕 밑 방에서 작업을 하겠다고 고집했다.
그러나 그를 지켜보는 이들의 눈에는 도무지 화가가 화필을 놀리는 것 같지 않았다. 창문도 없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고독 속에서 몇 날 밤낮을 생각에만 잠기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좁은 계단을 내려왔다. 손에는 겨우 완성했다는 화폭이 들려 있었다. 사람들에게 화폭을 건네주자 말자 그는 쓰러지고 말았다. 빈혈이 원인이었다.
그런데 그가 보여준 화폭에는 아무 것도 그려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찬찬히 살펴보았더니, 아주 작은 글자로 무언가 적어 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solidaire” 어찌 보면 “solitaire”로 읽을 수도 있었다. d인지 t인지 쉽게 분간할 수 없는 묘한 글체로 쓰여 있었다.
solitaire라면 고독(孤獨)이 되고, solidaire 라면 연대(連帶)가 된다. 인간은 고독한 존재인 동시에 연대하는 존재라는 말일까? 인간이 이웃과 연대하고 있다는 일치감을 실감한다는 것은 진정한 고독에서나 가능해진다는 뜻일까?

고독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누가 말했다. 영어로는 loneliness 와 solitude 를 분별해서 쓰고 있다. loneliness는 외로움 혹은 고독감으로 옮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상종할 친구가 없다.” “생각이 통하는 사람이 없다.” 등에서 오는 쓸쓸함 말이다. 노인들이 우울증에 걸리고, 자살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 고독감에서 오는 쓸쓸함 때문이라고들 말한다. 젊은이들이 만원 전차 속에서도 지겹게 휴대전화기에 매달리는 것도 알고 보면 외로움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 때문이라고 하는데……
loneliness와는 달리 solitude는 스스로 혼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가 골방에 들어가라고 했을 때, 골방은 solitude의 공간일 것이다. 이를테면 자신이 처해있는 동아리 안에서의 인간관계에 휩쓸려 그냥 떠내려가고 있는 자신을 의식하고, 문득 자신을 되찾아 충실한 삶을 살아가려 다짐하게 되는 자각된 상태, 혹은 그 과정의 공간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solitude란 잡념과 잡음의 세계로부터 벗어나 조용히 참된 자신을 감지하는 상태를 말한다.
외로움은 버림받았다는 분함과 쓸쓸한 느낌에 머물지만, 진정한 고독은 혼자이면서도 오히려 깊은데서 오는 기쁨과 안정감을 얻게 된다.

<요나>의 주인공이 오랜 침묵을 거쳐 한 폭의 그림에서 말하려 했던 메시지는, “고독을 거치지 않는 연대는 위험하고”, “연대와 연결되지 않는 고독은 무의미하다.”의 언저리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러고 보면 구약의 요나는 고래의 뱃속에서도 진정한 고독을 살지 못했다는 말일까?
라비 숫샤는 그의 만년, 눈이 어두워진 후에,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아브라함과 대치(代置)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내세에서 사람들은 나에게 ‘왜 그대는 모세가 아니었나?’ 하고 묻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물을 것이다. ‘왜 그대는 숫샤가 아니었나?’하고”
“고독”에서 이웃과 나를 발견하고, 동시에 나와 다른 이웃을 알게 되었을 때, “연대”는 갈등이 아니라 조화와 평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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