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08년 성서와 문화

교회가 있는 겨울 풍경

성서와 문화 2010.03.30 12:45 조회 수 : 1816

[ 작성자 : 허 만 하 - 시인 ]


1.
목소리가 추위에 떨리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영덕 대게’라는 목소리와 함께 멀어져 가는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나는 아버지 어머니 얼굴을 쳐다보았다. 오렌지빛 불빛에 떠오르던 얼굴. 서로 마주 보던 두 얼굴이 고개를 끄덕이면, 그 날 밤은 게 맛을 볼 수 있는 밤이 되었다. 붉은 껍질을 가를 때, 안에서 떠오르는 속살이 버석버석 얼어 있는 때도 있었지만 동해에서 내륙의 도시를 찾아 먼 길을 지게에 엎여 찾아온 게 맛은 잊을 수 없는 어릴 적 맛의 하나다.
목쉰 바람소리가 잎 진 가지 끝을 건너던 밤, 골목을 지나던 해삼장수를 불러 초롱에서 건져 올리는 딱딱하고도 시퍼런 해삼을 먹었던 일도 따뜻한 불빛과 함께 떠오른다. 어제는 길 모서리에서 군밤 냄새를 맡았다. 면장갑을 낀 손이 숫불 위에서 뒤집던 알밤의 냄새였다. 종이 주머니에는 터진 밤이 소복히 담겨 있었다. 연기처럼 번지던 그 냄새 때문인지 문득 어릴 적 겨울밤 하늘에서 얼어붙던 해삼장수 목소리가 80년 남짓한 시간의 지평 저쪽에서 들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반가웠다. 뜰에 채소밭이 있고 울타리 곁에 감나무가 한 그루 있던 대구의 남산동 집 큰방 아랫목의 따뜻함이 함께 생각났다 유년시절은 죽지 않는다.

2.
나는 한해 겨울을 이북에서 지낸 경험이 있다. 북국의 능선을 덮고 있는 흰 눈이 노을과 함께 얼어붙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때 단편적으로 사귄 지명을 나는 아직 기억한다. 안주, 신안주, 박천, 태천, 군우리들이 그것이다. 이들 지명 사이에 내리던 눈과 끊임없이 이어지던 트럭의 홍시빛 미등의 행렬은 잊을 수 없다. 나는 고등학교 학생 신분(중학교 5학년생이었다)으로, 군번도 없이, 최전선 영국군 보병부대에 배치되어 트럭에 실려 다녔던 것이다. 소위 말하는 학도병이었다. 호신용 카빈 소총 한 자루를 몸에 붙인 채 짚을 깐 참호 속에서 잠들고 침낭을 덮고 있던 눈을 털면서 일어나기도 했었다.
그런 눈이 희끗희끗한 야산에서 나는 내 생애 최초의 크리스마스를 지냈었다. 일선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절절히 스며드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때 내가 들었던 말은 ‘터키’였다. 처음에는 U.N. 군의 일원으로 한국에 와 있던 터키 군부대를 생각했으나, 곧 그것이 칠면조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우리들 동짓날 팥죽처럼 크리스마스 날 터키를 말하는 것이었다. 마침 그 무렵 우리 부대는 후퇴하여 의정부 시내를 스치다 시피 거쳐 이 도시 북쪽 야산의 어딘가에 머물게 되었었다. 그 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칠면조 고기 맛을 보고, 바다를 건너온 일본 맥주 맛을 보며, 성탄절 노래를 불렀었다. 가사는 달랐으나 곡조는 완전히 동일했다. 덤으로 나는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를 불렀다. 나는 의정부 시내를 지날 때 스치듯 바라본 책가방 든 학생 모습을 보고 놀랬었다. 잊어버리고 있었던 후방에는 일상이 살아 있었던 것이다. 나는 한정 없이 억울했다. 내가 두고 온 공부방 책상과 책상 위에 펼쳐진 채 나를 기다리고 있을 그랜빌 미분교과서 책갈피, 그보다 나의 행방을 모르고 있을 부모님 생각이 왈칵 떠올라 어쩌질 못했다. 그것은 홍수의 범람 같이 나를 휩쓸었다. 내 노래 소리는 그 날 그 옥타브를 더 높였을 것이고, 우리들이 둘러싸고 있었던 화톳불 샛노란 불길은 내 속눈썹에 이슬 같은 반짝임을 비쳤을 것이다. 내가 노엘 노엘하고 외치던 영국 병사들 합창의 물결에 휩쓸려 갔던 것은 1950년 겨울 일이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계곡에 고여 있던 휜 눈과 가로질러 걸었던 황갈색 야산의 경사다. 한해가 저물 무렵이 되면 내 심상에 떠오르는 풍경의 하나다.

3.
중부 내륙 고속도로의 현풍에서 김천에 이르는 구간을 달려 보지 못한 나는 어느 하루 이 토막을 달리다가 ‘남성주·용암’이란 IC에서 별 볼 일 없이 내려 보았다. 마침 용암면 소재지가 틀림없는 그 교회였다 그 붉은 벽돌집 교회는 길에서 바로 가까운 언덕 위에 성채처럼 솟아 있었다. 옛날에도 그랬었다. 나는 교회 까지 기어오르는 꼬불꼬불한 길을 쳐다보고 내가 지친 걸음으로 오르내리던 그 경사를 직감했다. 몸의 기억이 되살아난 것이다. 문득 이상한 그리움 같은 분위기가 나를 둘러싸는 것을 느겼었다. 그것은 틀림없이 벤야민이 말하는 ‘아우라’였다. 우리는(영국 육군 미들섹스 연대의 D 중대) 이 교회에서 한 동안을 머물며 이 일대를 순찰하며(패트롤) 지냈던 것이다. 1950년 여름 일이다. 그 동안 내 머리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떠나지 않고 있던 이 교회가 나를 불러 용암 IC에서 내렸던 것이 틀림없었다. 반세기만의 재회였다. 많은 주둔지 가운데 하필 이 자리가 기억나는 것은 그 것이 교회 건물이었다는 사실과, 내가 이 교회에서 처음으로 오발 사고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언제나 일렬 종대로 줄지어 한 여름 이 둘레 산을 둘러 본 끝에 저녁 무렵이면 이곳으로 돌아 와서 쉬곤 했었다. 그런 어느 날 나는 일과처럼; 카빈 소총을 수입(손질)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순간 나는 썰렁한 교회 공간을 울리는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를 듣게 되었다. 사람들은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그 시선 한가운데서 나는 내가 총을 잘못 건드려 총알이 발사된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사건이 먼저 있고 내 의식은 그 뒤를 쫓았던 것이다. 옆을 살펴본 나는 화약 냄새 안에서 옆자리 동료가 머금는 엷은 미소를 보고 가슴을 쓸어 내렸었다. 그런 추억의 현장을 나는 우연히 만나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지난 여름 일이다. 약 50년 세월이 지나는 동안, 그 교회는 외모의 변화를 보이면서도 한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었고, 나는 세상일에 시달리면서 그 교회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언덕 위에 올라 가보자는 권유를 마다하고 나는, 학봉재를 넘어 운수면 회천 물줄기를 따르는 도로 위에서 멀리 가야산 봉우리를 바라보았다. 스무 살의 내가 걸었음직한 시골길을 백발의 내가 다시 지날 줄은 그 무렵은 상상하지도 못했었다. 길은 잘 다듬어진 도로로 바뀐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먼 구름 한 송이를 바라보면서 나는 이번 성탄절에는 쑥스러운 카드 한 장을 이 용암 교회 앞으로 보낼 것을 생각했다. 발신인은 6·25 사변 때 한동안 용암 교회 신세를 진 사람으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 날 언덕 위 교회를 찾아보지 않았던 것은 그 가파른 비탈 때문이 아니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집필을 위하여 노르망디로 혼자서 마차를 몰았던 프루스트를 본받아, 혼자서 조용히 이 고장 둘레에 남아 있을지도 모를 젊은 날의 내 발자국을 찾아보고 싶어서였었다. 선홍색 홍시가 잎 진 가지에 매달려 있던 무렵 이 교회를 떠난 나는 육로로 바로 무너진 벽돌의 폐허 서울( 인천상륙작전으로 다시 우리 손에 돌아 왔었다)을 지나, 38선을 넘어 혹독한 겨울이 기다리는 북쪽을 향했던 것이다. 1950년에서 51년에 걸친 잊혀진 겨울을 나는 스스로 나 자신에게 보상해야할 의무를 느낀다. 이 지음 드물게 발표하는 시가 이 겨울 경험을 소재로 삼는 것은 그 보상의 한 방법이다. 나는 경험을 공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독자가 없을 그런 시를 쓸쓸하게 써야 할 것 같다. 나는 현실을 소급하는 것이다. 사람은 기억을 길들이고. 기억을 기르며 사는 기억의 동물이다.

4.
어제는 가을걷이가 끝난 썰렁한 들녘을 찾아보았다. 괭이 자국이 가라앉아 있는 낮은 자리엔 살얼음이 고여 있었다. 처음으로 씨앗을 뿌렸을 그 누가 바라보았을 들녘 끝에는 변방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먼 노을이 아름다웠다. 노을이 가장 아름다운 것은 한겨울이다. 공기에 습기가 없기 때문이다. 하늘을 향하여 소리 지르고 있는 나목 회초리가 뿌연 안개처럼 바깥에 녹아드는 겨울의 정신은 명징하다. 시는 겨울의 정신에서 태어난다. 가식을 모르는 씩씩한 겨울. 계절은 나의 이데올로기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2 시련 속의 감사 성서와 문화 2010.03.30 1951
31 고독(孤獨) 과 연대(連帶) 성서와 문화 2010.03.30 1641
30 통영 단상(斷想) 음악 片紙 ⅡⅩⅧ 성서와 문화 2010.03.30 1605
» 교회가 있는 겨울 풍경 성서와 문화 2010.03.30 1816
28 춤추는 하나님 성서와 문화 2010.03.30 2206
27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준 일아(一雅) 변선환 선생님 성서와 문화 2010.03.30 1712
26 본(本)과 말(末) 그리고 선(先)과 후(後) 성서와 문화 2010.03.30 1637
25 시를 쓰는 마음 (7) - 연어(魚) 성서와 문화 2010.03.30 1719
24 우주의 존재 이유 성서와 문화 2010.03.30 1781
23 광야 60년을 지나며 [1] 성서와 문화 2010.03.30 1651
22 시를 쓰는 마음 (6) 고 작은 숨결들이 모여앉아 성서와 문화 2010.03.30 1729
21 음악 片紙 ⅡⅩⅦ ‘제주 국제 관악제’ 참관기 성서와 문화 2010.03.30 1677
20 심경(心耕)선생님과의 만남 성서와 문화 2010.03.30 1646
19 시의 길·철학의 길 성서와 문화 2010.03.30 1709
18 해천(海天) 윤성범 선생, 그 분의 맑았던 영혼을 기억한다 성서와 문화 2010.03.30 1835
17 소가 더 신사(紳士)다 성서와 문화 2010.03.30 1727
16 통전자 그리스도 성서와 문화 2010.03.30 1573
15 철학자들에게 할 일이 많다 성서와 문화 2010.03.30 1620
14 스승 박대선 박사님과의 만남 성서와 문화 2010.03.30 1589
13 음악 片紙 ⅡⅩⅥ - 백건우 선생과의 만남 성서와 문화 2010.03.30 17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