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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는 마음 (7) - 연어(魚)

성서와 문화 2010.03.30 12:44 조회 수 : 1717

[ 작성자 : 임 인 진 - 시인 ]


높새바람 불어와
개천가 하얀 풀꽃들 춤을 추면
남대천 봇둑 밑에서
꼬리지느러미 팔딱이며
연어들 솟구쳐 오른다.

얼마나 사무치게 그리웠으면
수 천만리 먼먼 길 돌고 돌아
배냇짓하던 요람(搖籃) 되돌아왔을까

밤하늘 멀리 반짝이던 별빛
산 그림자 드리운 잔잔한 물가
이끼 낀 차돌모래까지
얼마나 뼛속 깊이깊이 새겨뒀으면
귀소(歸巢)의 염원 이뤘을까

뼛속 마디마디 녹아내리는 아픔
펄펄 끓어오르는 신열
이 악물고 엎드려

모천(母川) 후미진 곳에
만삭(滿朔)의 몸 풀어
새 생명 꽃 붉게 피우고
만신창이(滿身瘡痍) 구멍 숭숭 뚫려
숨 거두는 연어 - 졸시 「연어」 -

태백의 영봉마다 오색으로 물들었던 단풍이 어둔 빛으로 사그라질 무렵이면 남대천 개천가 언덕에는 무서리가 뽀얗게 내린다.
무슨 연유로 어디서부터 뒤처졌는지 몰라도 뒤늦게 꼴찌로 돌아오는 연어가 있다. 남대천 아랫녘 봇둑 밑에서 몇 번이고 뛰어오르려고 퍼드덕거리며 애쓰다가 끝내 지쳐서 자갈돌 깔린 물가로 밀려나 배를 깔고 드러눕는다. 마라톤 전 코스를 완주하고 돌아와 결승 지점을 눈앞에 두고 쓰러진 마지막 주자(走者)처럼.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어떻게 누구를 만나리라는 기약도,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이 무턱대고 떠난 길, 머나먼 북태평양, 오호츠크 바다, 베링해협을 거쳐 캄차카반도 서쪽 해안까지 수 천만리 바닷길을 천신만고(千辛萬苦)로 휘돌아온다던가, 갈기갈기 찢기고 짓이겨진 지느러미와 꼬리를 팔딱거리며 만삭의 부푼 몸을 이끌고 돌아온다. 모천회귀(母川回歸)의 지상명령 같은 염원을 안고서.
검푸른 잔등의 자랑스런 표지(標識)가 붉은 노을빛에 물들고 높새바람 한 줄기 휘몰아쳐 언덕 위의 마른 풀꽃들을 모조리 모로 눕힐 때면 고달픈 연어는 살포시 눈을 감겠지, 뼛속 마디마디 저리다 못해 녹아내리고 구멍 숭숭 뚫린 만신창이로 새 생명의 씨앗을 후미진 곳에 뿌려놓고 마지막 눈을 감겠지.

또 한 해가 저문다.
이맘때면 김장을 서둘러 크고 작은 독마다 갖가지 김치를 가득 채워두고 알배기 명태로 한 솥 가득 국을 끓이던 고향생각이 간절하다. 오순도순 저녁밥상에 둘러앉으면 소박한 일상의 지혜를 몇 번이고 이르시던 어머니의 가르침이 새삼스레 생각나 가슴이 시리다.
눈감으면 언제나 떠오르는 곳, 찬바람 휑하니 불어올 때마다 곱도록 차가워진 두 손을 꼭 잡아 녹여주시던 따뜻한 손길, 해를 넘길수록 꿈속에서 무지개 쫓다가 잠깬 아이처럼 아쉬움과 함께 진한 회심(悔心)에 사로잡힌다. 떠난 곳을 못 잊어 되돌아오는 연어처럼 귀소성(歸巢性) 본능이 다시금 발동하는 탓일까.
치어 때에 떠난 곳을 성어가 되어 다시 돌아와 알을 낳아놓고 아낌없이 모든 것을 다 주고 떠나는 연어를 떠올리다보니, 사람은 어쩌면 연어만도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한 종족번식의 본능만이 아닌 아낌없이 모든 것 다 주고 떠나는 삶이 너무나 아름다워 큰 감동을 안겨준다.

만추의 하늘은 거울처럼 차갑고 싸늘하다.
사람의 삶, 그 오욕(汚辱)과 질곡(桎梏)속에서 거친 물살 소용돌이로 어지럽게 떠밀려가고 있어도, 하나님께서 빚으셔서 입으로 불어넣어주신 생명이 아니던가? 그처럼 소중한 생명의 끝자락이 어디인지, 어떻게 마무리해야할 것인지를 생각하여 숨을 고르고 한 발짝씩 내딛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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