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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60년을 지나며

성서와 문화 2010.03.30 12:43 조회 수 : 1649

[ 작성자 : 박 영 배 - 편집인 ]

 
광복 63년과 정부수립 60년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이르기 전 광야에서 헤맨 40년의 역사 보다 훨씬 긴 세월이다. 그러나 우리의 가나안을 향한 길은 멀기만 하다.

성서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무려 430년의 긴 세월을 노예생활로 보냈다.(출 12:40) 노예생활이란 지옥의 삶 그 자체이다.
그러기에 이스라엘은 하느님께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하느님은 모세를 통해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벗어나 자유의 천지를 향하게 했다. 그러나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곧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이르게 하지 않았다. 무려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온갖 고생과 시련을 겪으며 방황하고 배회한 후 그들의 목적지에 달하게 했다.
왜 하느님은 몇 날이면 갈 수 있는 지름길을 두고 먼 길을 돌아가게 하였을까? 이야기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이스라엘은 다급하게 이집트를 탈출하는데 성공하여 자유의 땅에 뛰어들기는 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그들은 한 민족으로서의 정체성도, 훈련도, 준비도, 경륜도 없었다. 그들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타성과 나태와 노예근성뿐이었다.
그들은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지도자를 원망하고 노예생활이기는 해도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었던 이집트를 그리워했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싸우고 분열하며 우상숭배를 일삼았다.
만약 이러한 오합지졸의 집단으로 직통길을 갔다면 중도에서 모두 멸절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험난한 광야길을 가면서 기어코 율법을 부여받고 그것을 기초로 삶의 새로운 틀을 확립했다.
자신들이 하느님의 선민임을 자각하며 자신들의 삶의 현장 속에 하느님이 함께하심을 믿었다.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강력한 신앙공동체를 형성하며 그 집결된 힘으로 가나안에 이르렀다.
이 대목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다면 하느님은 인간들이 아무리 다급하고 서두른다 해도 일정한 연단과 준비 없이는 결코 가나안에 이르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의 광야길 60년은 어떠한가?
1945년 8월 15일 일제에서 벗어나는 날 우리 모두는 하늘에라도 나를 듯 기뻐하며 감격하여 서로 부둥켜안고 춤을 추었다. 그러나 그러한 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우리는 곧 분열하여 싸웠고, 40년대 후반에는 어린 중학생까지 좌우로 나뉘어 싸웠다. 그리고는 1950년, 6.25전란으로 서로 죽이고 죽어갔다. 온 강토(疆土)가 절단이 났다. 그리하여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못살고 가난한 나라로 세계 사람들에게 각인되었다. 50년대의 가난과 정치적 부패, 사회문화적 혼돈, 4·19, 5·16, 70년대 유신체제, 군사정부의 횡포, 민주화 과정에서의 정치적 긴장과 갈등, 계속되는 학원사태, 노사 간의 갈등, …… 등
실로 우리의 광야 60년은 시련과 도전과 질고의 역사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와중에서 대한민국의 정부를 수립하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일구어 냈으며 세계 200이 넘는 나라 가운데 세계 13번째의 교역국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온 세계인을 불러 모아 올림픽과 월드컵을 개최한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는 GNP 1만5천에서 2만불 정도의 정치, 문화, 사회에서 무려 10년 가까이 머물러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거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과연 오늘 우리에게 가나안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모두가 지향하고 염원하는 선진사회, 또는 선진국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물론 선진 사회, 또는 선진국이라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를 위해서는 우리의 모든 관행과 삶의 틀을 새롭게 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다시 한 번 하느님이 주시는 말씀으로서의 역사적 교훈에 귀를 기우려야 한다. 역사란 정해진 하느님의 계획이 꼼짝없이 진행되는 과정이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이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즉 하느님이 주시는 시간과 기회 속에서 그 가능성을 자각하고 선택하고 결단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그러기에 시련과 고통이 아무리 극심해도 그 뜻을 깨닫는 자는 축복이 되고, 은혜가 되고, 약이 되지만, 그 뜻을 모르는 자는 무서운 저주가 되고 숙명(宿命)이 된다.
우리는 우리의 가나안을 위해서 무엇보다 도덕적 청결과 도덕적 양심을 회복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온갖 부분에서 모순을 극복해 가야한다. 그리고 적자생존(適者生存)이라는 생물학적 원리가 아니라 협력자생존(協力者生存)이라는 상생(相生)의 틀을 만들어 사람다운 인격이 살아나는 사회를 지향해 가야한다.

가나안을 향한 우리의 길 위에 하느님이 함께 하심을 기원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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