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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경(心耕)선생님과의 만남

성서와 문화 2010.03.30 12:41 조회 수 : 1651

[ 작성자 : 김 효 숙 - 조각 ]

 
우리 집 거실에는 백매도(白梅圖) 한 점이 걸려있다. 심경 박세원(朴世元) 선생님의 작품이다. 1980년 봄, 내가 첫 조각개인전을 서울 동숭동에 위치한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 열은 뒤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당시 모교의 학장님으로 재직 중이셨던 선생님께서 전시를 보시고 가시며 ‘작품을 하나 가지고 싶으니 전시가 끝나면 아무거나 좋으니 가지고 집으로 오라’는 말씀이셨다.
그 당시에는 큰 작품을 청동으로 뜨기에 나의 힘에 부쳤기에 거의 석고작품에 청동처럼 색을 칠하거나 흙을 직접 구어서 만든 테라코타 작품을 주로 출품하였었다. 그래도 석고나 테라코타 보다는 작지만 청동으로 뜬 것을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조그만 작품(동그라미2)을 가지고 선생님 댁을 찾았다.
내면 그냥 드리는 것이니 내 형편으로는 이 정도면 되지 않겠나 하는 속셈이 없지 않았다. 작업실 겸으로 쓰시는 듯한 거실에는 작품으로 거의 공간이 없어 보였다. 골라온 작품을 어찌 생각하실지 몰라 했는데 ‘마음에 드신다.’며 선생님도 그 작품을 가지고 싶으셨다고 좋아해 주셨다.
그리고 옆에 이미 준비 해 놓으신 큰 액틀 그림을 가리키시며 가지고 가라고 하셨다. 순간 얼마나 당황되었는지 그림 속의 글의 내용을 설명해 주셨는데 잘 듣고 새기지도 못했다. 사양하려 했으나 함께 당신의 승용차를 내어 작품을 옮겨주신 지인 선생님께서 ‘마음으로 주시는 것이니 가지고 가는 것이 좋겠다.’며 함께 권해 주셨다. 얼결에 승용차 뒷자리를 가득 채운 그림을 들고 오며 작은 작품을 가지고 간 것을 후회했다.
그 이후 이 그림은 우리 집 거실 긴 소파가 놓인 윗벽에 상설 작품으로 늘 붙여져 있게 되었다. 근 30년 세월 동안 어느 집으로 이사를 해도 선생님 작품은 그렇게 나의 삶 속에 함께 했다. 있는 듯 없는 듯, 그러나 그 곳에 없다면 집이 비어버릴 것 같은 소중한 값어치를 가지고 묵묵히 거실 중앙을 지키고 있다. 그림이 조용하고 소박한 것이 늘 선생님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선생님께는 2학년 때 동양미술사를 배웠다. 60년대 중반 한국에 책다운 교재가 없을 때라 보통은 선생님께서 시간 중에 강의해 주시는 것을 받아 적으며 노트필기를 열심히 해 그 내용을 시험지에 옮기는 수업형태였다. 그래도 선생님은 가리방(초 종이를 긁어 잉크로 찍어내는 방법)으로 인쇄한 얄팍한 책자를 나눠주시고 중국미술을 강의해 주셨다. 그 당시 40대이셨을 선생님이 20대 초의 나에게는 고대미술 강의처럼 꼭 옛 할아버지처럼 생각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동대문극장에서 선생님을 만난 것이다. 연건동에 위치했던 미술대학에서 10여분 걸으면 동대문 시장이 있는데, 그 곳이 우리들에게는 참으로 좋은 단골 장소였다. 화방에서 구하지 못하는 필요한 미술자료들을 대용으로 싸게 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 출출하면 시장 안의 싸고 푸짐한 음식들을 함께 몰려가 먹곤 했다. 그 중에서도 시간이 되면 몇 친구들이 모여 외유를 하는 곳이 동대문 극장이었다. 그 곳에서는 유명극장에서 지나 간 영화를 싼 가격으로 2개씩 동시상연을 해 주었다. 일류 극장에서처럼 시간과 좌석을 지켜야 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 시간이나 들어가 중간부터 돌려 보고, 좋으면 더 보고, 사람이 많으면 몸을 비비 대며 서서보았다. 이런 곳에서 선생님을 만난 것이었다. 그런데 당황한 쪽은 우리였고, 선생님은 값 싸게 두 개 씩 보아 참 좋다하셨다. 나는 그 때 선생님이 할아버지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대화가 가능한 분이며 참으로 소탈하고 솔직한 분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공이 달랐기에 선생님과의 별 다른 인연은 없이 대학을 졸업하였다. 80년 봄 첫 개인전 이후, 그 해 가을 학기에 모교에 강의를 나가게 되었다. 수업 초, 각 과에 출강하는 강사들과 함께 학장실에서 선생님을 뵈었다. 차를 대접하시며 선생님께서 그 날에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조금 전 방송통신대학 졸업식에 다녀오셨는데 본교 졸업식과 너무나 대조가 되더라는 말씀이셨다. 본교 졸업식 때는 떠들고 자리를 떠나 왔다 갔다 하며 질서를 지키지 않는데, 방통대에서는 모두가 숙연하고 선생과 학생의 정이 느껴지셨다는 것이다. 오히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신을 극기하며 얻은 것일 때 사람들은 그 것을 소중히 여길 줄도 알고 겸손히 남을 배려할 줄도 안다는 말씀이셨다.
지금 학생들이 어머니 품에서 모유를 먹고 자라야 하는데 소젖을 먹고, 등에 업혀 따듯한 숨소리를 듣고 자라지 않아 그런지 부모님과 선생님 말을 잘 안 듣고 거칠어졌다는 것이었다.(그 당시는 학생 데모가 극심했던 때였다.) 오히려 선배 말은 들으니 선배 입장에서라도 잘 가르쳐 주기 바란다는 부탁이셨다.
그 이후, 선생님의 정년퇴임전을 인사동 동산방에서 선생님을 뵙듯 본 것으로 특별히 선생님을 뵌 일이 없이 지금껏 살아 왔다. 그러나 나는 매일 선생님과 함께 하고 있다. 집안일을 하다 지치거나, 밖에서 들어와 피곤하면 소파에 누워 무심히 그림을 바라보곤 한다. 요즈음은 그 횟수가 늘어 소파에 눕는 일이 잦아지면서 누어서 바로 위에 걸린 선생님의 그림을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 그림은 내가 여기 있으니 보라고 사람의 마음을 잡아끌지 않아서 좋다. 그냥 그렇게 조용히 있다. 그래서 피곤하고 지친 나를 쉴 수 있게 한다.
처음 그 그림을 보았을 때는 이것이 백매화가 아니라 홍매화였으면 좋았을 걸 하고 생각했었다. 뭔지 색이 없어 맥이 약해 보이는 듯했고 홍매화의 화려함이 더 큰 감동을 줄 것 같은 아쉬움을 가졌었다. 그러데 세월이 갈수록 그것이 홍매화가 아니어서 얼마나 좋은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볼수록 정이 들었고 그 그림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른쪽 위에 놓인 나무 등걸은 오래되어 굵고 곁에 새 나무줄기들을 여럿 거느리고 있어 무게가 있고 더 늠늠해 보인다. 한편 아래편의 가지는 새 나무처럼 연륜은 적어 보이나 더 생생해 보인다. 위의 길게 뻗어진 가지에 의해 일으켜 세워지는 듯한 느낌도 든다. 아래 위에서 양쪽으로 뻗은 가지가 본체의 줄기와 함께 사람이 팔을 벌리고 있는 듯이 보여 나무를 인체처럼 표현할 수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크고 작은 두개의 덩어리의 구성을 통해 선생님이 말하려는 것이 무엇이었을까를 가금씩 생각했다. 완전히 다 해독할 수 없는 시문을 이리저리 읽어보고 꿔어맞춰 보기도 했다. 추운 겨울 인고를 딛고 이른 봄 향기를 머금고 청초하게 피어나는 매화나무가 쌍으로 표현되어 있다. 하나가 아니라 쌍이어서 좋다. 그리고 그것이 보배로운 섬으로 생겨난다는 것이 좋았다.
꼭 사람이 팔을 뻗은 것처럼 보이는 튼실한 윗부분의 나무는 아래에서 약간 뉘어져 도움을 바라는 것처럼 보이는 위로 뻗은 가지와 거의 맞닿아 연결되어 있다. 둘은 떨어져 있으나 둘이 아니다. 그 어느 한쪽이 없어도 그림의 의미는 없어진다.
그래서 위로가 되고 정겹게 생각되었다. 아무 외침 없이 늘 그렇게 있어 바라보는 이에게 조용히 다가가게 해 주는 그림이 있어 쉬는 동안이 평화로웠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누어 그림을 보다가 놀랐다. 그림이 미켈란젤로의 시스틴 성당 천정화의 “아담의 창조” 장면과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아담의 창조”를 연상하며 그림을 뜯어보면 볼수록 그 느낌과 구성 형태가 닮아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맞다. 선생님이 이 그림을 그리신 뜻을 이제 알았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이 그림을 나에게 골라 주신 뜻을 이제 알았다.”하고 벌떡 일어나 다시 그 그림 앞에서 다시 선생님을 만나는 기쁨을 가졌다.
신이 인간을 창조하시는 장면, 그것을 미켈란젤로는 화면 오른쪽 윗부분에서 천사들을 거느리고 아래쪽에 반쯤 누어있는 아담에게 손을 뻗어 생명을 불어 넣는듯, 아니면 무엇을 지시하는 듯 손끝에 힘을 주어 표현하고 있다. 반면 아래쪽 아담의 손은 위를 향해 구원을 청하듯,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듯 손가락은 아래로 처져있다. 두 손끝은 닿을 듯 아니 닿을 듯 가까이에서 하나님과 인간을 하나로 연결시켜주고 있다.
역시 매화는 그냥 보기 좋으라고 있는 꽃이 아니었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이셨던 선생님께서는 당신의 신앙을 그림에 담으셨고, 그 숨은 뜻을 의미도 모르고 보는 나에게도 언제나 힘과 위로가 되어주고 안식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지금 이 고마움과 깨달음을 전하고 싶어도 선생님은 이미 가시고 계시지 않는다. 더 빨리 알아차릴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도 가져보지만, 이제껏 속없는 강정만 만들고 있는 내가 선생님께 부끄럽다.
새삼 작품의 맥은 고전 속에 있고 그 전통이 우리에게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 줄 수 있다는 당연한 생각을 해 본다.
선생님의 호는 심경(心耕)이시다. 마음을 농사짓듯 갈아 생명을 낳고 보배로운 섬을 만들고 싶었던 크리스천의 삶이 이 그림을 낳게 했으리라 믿는다. 예술을 하는 이의 마음 닿는 곳이 어디여야 하는가를 가르치려 하셨던 선생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가슴이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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