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08년 성서와 문화

통전자 그리스도

성서와 문화 2010.03.30 12:40 조회 수 : 1574

[ 작성자 : 유 동 식 - 신학 ]


통전(統全)이란 이질적인 존재들을 통합한 전체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 전체는 차원을 달리한 또 하나의 새로운 존재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통전은 하나의 창조적 개념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이 통합된 전체로서의 새로운 존재이다. 그리고 그는 또한 인간뿐만 아니라 세상을 통전하여 새로운 존재가 되게 하는 창조적 통전자이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을 통전하여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으며, 유대인과 이방인을 통전하여 하나의 새로운 민족을 창조하시었다.(에베 2:15) 통일이 음과 양이 하나가 된 태극으로 상징된다면, 통전은 음과 양 그리고 통전자가 서로 내재하는 삼태극으로 상징될 것이다. 여기서는 통전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인간의 존재양상에 대해 고찰해 보기로 한다.

1. 복음의 삼태극(하나님과 인간의 통전)
“그 날에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는 내 안에 있고, 또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4:20) 구원의 복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죽음과 그의 부활로써 구성되어 있다. 십자가의 죽음은 인간의 죽음을 대신 죽으신 사건이요, 그의 부활은 생명의 승리가 역사화 된 사건이다. 엄격히 말하면 역사 안에서 일어난 초역사적 사건이다. 십자가상의 죽음은 시간과 공간 안에서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육안으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부활은 시공을 넘어선 영성우주에 속한 사건이기 때문에 이것을 볼 수 있는 것은 믿음의 눈인 영안이다. 예수께서는 부활하게 될 자신에 대해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지만, 믿음을 가진 너희는 나를 보게 되리라고 하셨다.(요한 14:19) 이러한 복음을 믿고 보는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는 내 안에 있고, 나는 너희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하나님과 우리가 상호내재(相互內在)하는 삼태극적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인간은 이제, 하나님 안에 있는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고후 5:17) 피조자인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 안에 있을 수 있는가? 그것은 예수께서 아버지 하나님에게 요청하여 성령님으로 하여금 “영원히 우리와 함께 있게 하심”으로써 가능해졌다.(요한 14:16)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삼태극적 구조 속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편입되게 된 셈이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신격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 된 특권을 지닌 새로운 존재가 되었음을 뜻한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받은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 그래서 그 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릅니다.”(로마 8:14-15)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라면, 과연 누가 또 무엇이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는가? (로마 8:31)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평화가 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된 그리스도인의 실존양상이다.

2. 지금의 오늘(시간과 영원의 통전)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요한 11:25)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 편입된 그리스도인에게도 육체적인 죽음이 온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의 인격은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영체로 부활함으로써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보다 적극적으로 말하면, 그리스도인은 이미 영원하신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에게는 죽음이 없다.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사람은 영생을 얻었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죽음에서 벗어나 ‘이미’ 생명의 세계로 옮겨진 것이다.(요한 5:24) 영생은 육체적 죽음 너머의 어느 먼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생활 속에서 이미 시작된 새로운 생명이다. ‘지금’이라는 말의 한자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과거도 미래도 아닌 시방이라는 뜻의 지금(只今)이요, 또 하나는 도달점에 이르렀다는 지우금(至于今)의 준말로서의 지금(至今)이다. 하나님 안에서 이미 영생을 지닌 그리스도인이 사는 매일의 지금(只今)은 바로 그리스도인이 도달해야 할 그 곳, 곧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종말론적 지금(至今)이 되어야 한다. 곧 자유와 평화와 사랑의 기쁨이 실현된 하늘나라의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이란 “오고 있는 늘” 곧 항상 새롭게 오는 하루하루를 뜻한다. 자유와 평화와 사랑으로 구성된 하나님의 나라는 주어지는 객관적 대상물이 아니라, 항상 오늘의 삶속에서 창조되어져야 하는 생명의 세계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은 “지금의 오늘”을 통해 성취되는 생명의 세계이다.

3. 생활의 성례전(세속과 거룩의 통전)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있고, 나도 그 사람 안에 있다.”(요한 6:56) 예수께서는 제자들과의 마지막 식사인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너희를 위해서 주는 나의 몸이다. 너희는 이것을 행하며, 나를 기억하여라.”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로써 세우는 새 언약이 다.” (누가 22:19-20) 예수께서는 일상적인 식사를 종교적인 성례전(sacrament)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성례전은 “보이는 말씀(로고스)”이라고도 한다. 육적인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지만, 이것을 통해 실은 보이지 아니하는 영적인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이다. 이로 인해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고, 나는 그리스도 안에 통합된 새로운 존재가 된다. 식사란 하루 세끼를 먹어야 하는 가장 일상적인 삶의 행위이다. 그리고 이 식사 없이는 사람이 생존할 수가 없다. 바로 이 일상적인 식사를 그리스도께서 거룩한 성례전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일상적인 생활 안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내재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세속적인 일상생활 속에서 거룩한 영성세계를 동시에 살아가는 통전적 존재이다. 그들의 보이는 생활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담은 작품이다. 그리스도인은 통전자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된 하나님의 새로운 작품이다.(에베 2:10) 그와 동시에 그리스도인은 통전적 생활을 통해 일상생활을 성례전화 하는 예술가이다. 예술이란 미적 이념을 형상화하는 작업이다. 그리스도인의 미적 이념은 하나님의 뜻이요, 이것을 형상화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일상생활은 예술이요, 또한 성례전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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