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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들에게 할 일이 많다

성서와 문화 2010.03.30 12:39 조회 수 : 1622

[ 작성자 : 장 기 홍 - 지질학 ]


나는 어제 충격적인 이야기를 두가지 들었다. 하나는 미술품이나 골동품 경매장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붓글씨가 만일 내용이 좋으면 수천만원 간다는 이야기다. 김구선생 글씨의 여러 배의 값이라 한다. 또 들은 이야기 하나는 철학과를 위시하여 인문계 여러 학과들이 여러 대학에서 폐지되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별개의 뉴스지만 관계가 없지 않다. 박장군의 글씨 값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인간의 육신의 비중이 생각났다. 물론 그 글씨 값은 구입해 주는 재벌들이 있어서 되는 값이기 때문에 거품이 들어 있음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을 보여준다. 그 현실은 무슨 의미인가? 경제발전이 우선이고 인간의 육신이 급선무다 하는 이야기다. 나는 그런 현실을 외면하지는 않으나 어딘지 조금 잘못 되어 있다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 인문학 특히 철학의 중요성은 한마디로 하면 정신의 중요성이다. 육신이 중요한 것만큼이나 정신도 중요한데 왜 인문학에는 가치를 덜 두는가? 생각을 요하는 문제이기는 하나, 옛 부터 육신의 의사는 대우를 잘 받되 정신의 안내자나 스승은 명예는 있으나 별로 보수를 잘 받지 못했음이 사실이다. 나 자신 요즘 정신에 도움이 될 강좌를 한 달에 한두 번 하고 있지만 대우를 받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공짜로 들어주는 사람들이 많기를 바랄 뿐이다. 너그럽게 생각하면 철학이 대우를 못 받는다고 새삼스러워 할 것이 없다. ‘朝聞道면 夕死可矣(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된다)’라는 말씀처럼 철학은 깨달음이요 궁극적 가치이기 때문에 대우를 바라고 할 일이 아니다. 육신의 수요는 가장 기초적인 것으로 사람을 포함하는 모든 동물에게 해당된다. 그러나 정신의 중요성은 동물은 느끼지 못하는 인간만의 고차원적 가치이다. 오늘날 사람들의 정신 상태는 많이 타락하여 속으로 병이 들었으나 표가 잘 나지 않는다. 육신의 병처럼 당장 병신으로 표가 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인류가 직면한 전쟁, 테러, 환경, 약물 남용 등 문제는 주로 정신 쪽의 문제요 병적임이 완연하다. 장차 인류에게 결정적 위험이 닥친다면 그것은 배고픔이 아니라 정신착란일 것이다. 그러므로 정신을 다루는 인사들의 책임은 막중하다. ‘필요의 산물’이라는 견지에서 매사를 보면 답을 얻기가 쉽다. 철학도 필요의 산물이다. 그런 만큼 필요에 부응하여야 성할 수 있다. 필요라는 측면을 외면하면 도리어 철학이 외면을 당하게 마련이다. 여기서 ‘필요’라고 말할 때 나는 무척 깊은 필요를 의미하고 있다. 히틀러가 나타났을 때 그의 필요에 영합했던 그런 ‘필요의 충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와 정반대로 진정한 좋은 필요를 의미한다. 하이데커는 히틀러에 협력할 것이 아니라 그 반대였어야 했다. 철학이 정말 지도적 철학 노릇을 해야 한다. 이는 대단히 어려운 요청이다. 그러나 이 깊은 요청에 응하지 못하면 설 자리를 잃어도 할 말이 없다. 오늘날 기술이 발달하여 무기가 첨예화하고 보니 전쟁은 한층 대량살상이 되고 전에 없이 비참 처절하게 되었다. 이런 살생의 행위를 방지할 평화의 철학이 크게 요청된다. 평화의 문제는 여러 분야 모두의 문제여서 연구과제가 산더미 같다. 시대의 요청으로 말하면 ‘인간 내면의 성숙’이야말로 점점 더한 시대적 요청이다. 철학이 어떻게 인류의 성숙을 돕느냐 하는 큰 과제 큰 문제가 있다. 철학은 과학이 밝혀놓은 바를 참고하여 우주와 인생의 통일적 이해에 도달해야 한다. 이 모두를 다 수행하자면 철학의 일거리는 중요하고 태산같이 많다. 바른 이해에 도달하고 달관을 얻을 때 사람은 힘이 난다. 옛날에는 사람들에게 힘을 내게 하자면 전쟁을 해서 싸움의 와중에 넣곤 했다. 이제는 그런 잔꾀를 부려서는 안된다. 정신적인 싸움에 주력하여 힘을 내게 해야 한다. 인류가 한층 고급 인류가 되어야 한다는 과제이므로 참으로 철학은 막중한 과제를 안고 있다. 과제에 비해 오늘날의 학계는 미흡하기 그지없다. 서양철학의 학자들은 구미 철학자들을 따라 배우고 그들을 소개하는데 온 생애를 바치고 만다. 어서 그들을 딛고 자기 나름의 철학을 할 수 밖에 없도록 주위의 압력은 대단하다. 주위의 아우성을 들어보라. 온 세상이 도탄에 빠져 살려달라고 소리 지르고 있다. 삶의 의미를 몰라 모두가 허우적이는데 그 구원의 요청에 응하자면 산 공부가 필요하며 고민 고뇌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에 대한 책임감과 사랑이 있어야 하겠더라 하는 것이 내 소감이다. 그 열정이 없으면 자격이 없다. 사람은 아무리 훌륭한 자라도 잘못을 저지르게 마련이다. 훌륭할수록 잘못을 저지르기 쉽다. 서양의 근대철학은 데카르트에게서 시작되는데 그는 자아를 너무 중요시했다. 기독교 교리의 무게 아래 살면서 ‘의심’의 필요를 크게 느낀 그는 ‘다 의심스러워도 의심하는 자아는 의심할 수 없다’하여 자아를 대단히 높이 샀다. 일찍이 석가모니는 자아가 대단한 것이 아님을 간파했으나 데카르트가 어찌 석가를 따르랴! 데카르트가 심어놓은 자아관 때문에 서양철학은 계속 소아병적 요소를 받아 안고 오늘에 이르렀다는 견해를 나는 가지게 되었다. 차라리 동양인인 우리는 유리한 고지에 있다. 서양철학자들의 번쇄(煩)에 사로잡혀서 될 일이 아무 것도 없다. 알고 보면 길을 잃고 헤매는 서양 철인들이 많다. 그들을 따라가다가는 길을 잃기 일쑤이다. 전쟁은 살인의 문제이고 환경문제는 동식물의 살생의 문제이다. 불교와 자이나교는 이미 수천년 전에 이 문제를 바로 보고 실천했다. 평화의 문제와 환경문제의 해결의 열쇠는 그토록 가까이 있다. 정견을 가지려는 양심이 있으면 불교와 자이나교를 썩 받아들이면 된다. 서양식으로 말을 많이 하고 토론을 해가지고 될 일이 아니다. 이미 나와 있는 해답을 보지 못하는 것은 수준이 미달이고 안목이 없어 그렇다. 마음에 준비가 없어서다. 불교는 종교이기 때문에, 그리고 내 종교가 아니기 때문에 남의 일처럼 아는 그런 선입견 때문에 있어도 눈에 보이지를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나를 거창사람이라 하여 소위 거창사건에 관해 질문을 더러 한다. 하필 거창사건이 아니더라도 우리 민족은 남북이 갈라져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된 나머지 동족살상을 한 뼈아픈 내력이 있다. 그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바로 철학의 문제이다. 이데올로기란 '고정관념'을 의미한다. 생각이란 무서운 것이다. 바른 생각 건전한 생각 유연한 생각으로 사람을 이끄는 일은 참으로 필요하고 중요하다. 우리 겨레는 철학의 필요성을 깨닫기 위해 이미 그 대가를 피로서 지불했다. 그만한 고생을 하고도 철학이 솟아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이상한 일이다. 아무리 천박한 백성이라도 그만큼 매를 맞았으면 머리에서는 생각이 좀 나와야 한다. 자기 나름의 해답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우리 역사가 억울하지 않다. 오늘날 세계의 사정을 보라. 지금이 어느 때인데 해적이 날뛰고 해적에게 해를 입는 일이 백주에 자행되는가? 이것이 과연 문명세계인가? 언어도단의 일이 횡행하고 있다. 그 밖에도 무수히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베트남 전쟁이나 이라크의 전쟁이 다 그런 것이다. 문명이라는 야만에 대해 생각을 좀 해보라는 요청이다. 우리는 현장에서 멱살을 잡혀 생각을 낳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생각은 피할 수 없어서 하는 것이다. 남의 학설의 찌꺼기를 되씹는 일에 너무 정력을 많이 바쳐서는 안 된다. 대학의 총장이나 교육부의 장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서든 사람들에게 생각과 철학의 중요성을 설득하겠다. 내가 재벌이라면 돈을 마구 써서 김구선생 글씨보다 박대통령 글씨가 값이 더나가도록 그렇게 하지는 않겠다. 나라라는 배, 세계라는 선박이 균형을 잃지 않고 항해하기 위해 우리는 매사에 책임을 느껴야 한다. 바른 가치관이 유행하도록 각자가 이바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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