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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謙齋)는 왜 겸재인가

성서와문화 2010.01.19 18:34 조회 수 : 1441

 
[ 작성자 : 허 영 환 - 미술사가 ]


지난 7월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서는 겸재 정선 기념관 기공식이 열렸다. 지하 1층에 지상 3층 건물(연건평 1천평. 3305m2)을 짓는 행사에 참석한 필자는 감개가 무량했다. 331년 전에 태어나 83년간 살면서 좋은 그림을 그렸던 위대한 화가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에 대한 새로운 평가와 자부심이 이뤄지기를 기대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기념관을 꾸밀까 하는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필자는 10월부터 겸재 정선 기념관이 개관할 때가지 운영자문위원으로 위촉되었다.


조선후기의 6대화가
한국회화사에서 조선시대 508년간(1392-1910)의 회화사는 일반적으로 임진왜란(1592-1598)을 중심으로 전후 2기로 나눠 조선전기와 후기로 나눈다. 그리고 조선후기 3백여년(1598-1910)동안 활동한 화가 수백 명 가운데 특출했던 화가 6명을 부르기 쉽게 6대화가 또는 삼원삼재(3齋3園)이라 한다.
3齋는 공재 윤두서(恭齋 尹斗緖, 1668-1715), 겸재 정선(謙齋 鄭敾), 관아재 조영석 (現我齋 趙榮, 1686-1761)이고, 3園은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1745-1806 이후), 혜원 신윤복(蕙園 申潤福, 1758-1813 이후), 오원 장승업(吾園 張承業, 1843-1897)이다. 이 6명의 화가는 지금까지 수 십점 또는 수 백점의 작품을 남겨 오늘날까지도 빛나는 명성을 남기고 있는데 그들의 대표작을 한두점씩 거론한다면 다음과 같다.
즉 윤두서의 자화상, 정선의 금강전도와 인왕재색도, 조영석의 설중방우도, 김홍도의 군선도와 금강4군첩, 신윤복의 미인도와 풍속화첩, 장승업의 신선도와 기명절지도 등이다.


18세기라는 좋은 시대와 화가들
이들 6대 화가 가운데 가장 오래 살았고(83세), 가장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5백여점),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독창적인 그림을 그린 화가가 겸재 정선이었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18세기는 세계 역사상 가장 좋은 황금시대 . 가장 위대한 시대 . 문예부흥 시대였는데 조선시대의 18세기도 그런 시대였다. 이 무렵 조선의 지성인과 예술가들은 철학·역사학·지리학·의학·농학·언어학·문학·회화 등 각 분야에서 눈부신 활약을 했다. 안정복(1712-1771, 동서강목 지음) 이중환(1690-? 택리지 지음) 이긍익(1736-1806, 연려실기술 지음) 정약용(1762-1836, 목민심서 지음) 등의 방대한 저술활동을 했다.
화가들도 조국의 산하와 서민들의 일상생활에 관심과 애정의 눈을 돌렸으며, 동국진경(실경) 산수화를 그리는 한편 시정사(市井事), 서민의 잡사, 양반의 유한(遊閑), 여색이 풍기는 춘의도(春意圖)까지 과감하게 그렸다. 조선역사 이후 볼 수 없었던 새바람. 새 물결을 일으킨 신 회화 운동을 전개했다. 물론 임금들(숙종, 영조, 정조)도 정치를 잘했다.
이처럼 좋은 시절, 위대한 시대에 살면서 작품 활동을 한 화가들도 많았다. 겸재와 같은 시대(1676-1759)에 활동한 화가는 정선, 윤순, 조영석, 변상벽, 유덕장, 김두량, 이광사, 심사정, 윤용, 이인상, 강희언, 강세황, 최북, 신한평, 김응환, 이인문, 김홍도, 김득신, 신윤복, 김석신 등이 있다.


겸재의 천재성과 명작들
지금 세상에 전해지고 있는 겸재의 작품은 5백여점이 있고, 이 가운데 제작년(간지)을 밝힌 작품은 1711년(35세)의 심묘년풍악도첩(13폭)부터 1757년 (81세)의 청송당도까지다. 그러니까 약50년 동안 그림을 그렸다는 얘기다.
겸재가 양천현(陽川懸 . 오늘의 서울시 강서구)의 현령이었을 때인 5년 동안 (1740-1745, 64~69세)에 그린 그림만 해도 경교명승첩(33폭), 양천팔경첩(8폭), 연강임술첩, 양천현아도가 포함된 한양진경도(50여 폭) 등 1백여 폭에 이른다.
겸재는 소품에서 대작까지 종이(紙) 비단(絹) 모시(苧) 등의 수묵 담채 농채 등을 사용하여 산수화, 인물화, 도석화, 화조화, 풍속화 등 다양한 그림을 그렸는데 산수화(중국화를 모방한 관념 산수화와 조선의 실경을 그린 동국진경산수화)를 가장 많이 그렸다.
겸재의 탁월하고 독창적인 구도(원형구도나 조감식구도)와 상상력이 뛰어난 화법(集線法, 斧劈法, 謙齋法)에 대한 찬사는 겸재 생존시부터 많았는데 몇가지를 보면 다음과 같다.
“필력이 웅혼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두려움까지 느끼게 한다.” (이병연, 1671-1751)
“그림의 창윤함이 시원스럽고, 윤택한 점이 그의 그림의 특색이다”(조영석, 1686-1761)
“겸재는 나이가 들수록 더욱 세련되었다. 그는 스스로 화법을 얻고 필묵을 닦았다. 천부의 기지에 깊이 들어가지 않고는 그렇게 되기 어렵다. 겸재야말로 마땅히 중고(中古)이래 동국제일의 명가로 받들만하다” (김조순, 1765-1831)
“겸재노인은 산수화를 잘 그렸는데 나이가 80여세나 되었는데도 붓놀림은 더욱 신기할 만큼 잘 한다. 그의 그림은 웅건하고 호활하다. 그는 주역을 좋아하고 역리(易理)해석을 잘했기 때문에 변화에 능통하였다.” (박준원, 1739-1807)
“현재는 옛 화법을 잘 모방했지만 스스로 깨달아 붓을 놀림이 모자라고, 겸재는 자운(自運)이 있으면서도 옛 그림을 잘 모방하며, 더불어 두 가지가 다 기묘함에 이르렀으니 두 화가의 우열은 그와 같았다.” (신위, 1769-1847)
“겸재는 산수화를 잘 그렸는데 특히 진경에 뛰어났다. 스스로 일가를 이루어 동방산수의 종화(宗畵)가 되었으며, 전해지는 그림도 매우 많다.(오세창, 1864-1953)
위의 여러 사람이 겸재 그림을 호평한 것을 참고로 하여 그의 명작을 다시 보면 겸재야말로 조선 5백년 회화사상 최고의 화가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미술사가들이 공통적으로 추천하는 겸재작의 명화는 다음과 같다.
사직송도(1728년, 52세작) 금강전도(1734년, 58세작) 금강내산총도(1734년, 58세작) 교남명승첩(1734년, 58세작, 58폭) 관동명승첩(1738년, 62세작, 11폭) 경교명승첩(1740년, 1741년, 64,65세작, 33폭) 해악전신첩(1747년, 71세작, 21폭) 인왕제색도(1751년, 75세작) 등이다.
이 가운데 1734년 봄에 그린 금강내산총도(지본수묵화, 60×300cm)는 지금까지 알려진 겸재 그림으로서는 제일 큰 대작이다. 오른쪽 장안사에서 왼쪽 정양사 쪽으로 전개된 금강산의 중요한 봉우리와 절 이름이 다 적혀있고 450여자나 되는 긴 화제(畵題)가 그림의 좌우에 쓰여 있어 그림의 격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겸재의 대담성, 창조성, 세밀성 등을 잘 볼 수 있다고 하겠다.
국보로 지정된 금강전도(지본수묵화 130.7×95cm)는 역리사상과 태극(太極)사상을 원용하여 조감식구도로 그린 명품이다.
75세 때 여름에 그린 인왕제색도(79×138.2cm)는 서울 인왕산의 비개인 모습을 그린 그림인데 그의 독특한 수묵법과 대담한 준법을 볼 수 있는 뛰어난 작품이다. 그야말로 겸재는 왜 겸재인가를 말해준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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